피사로
Camille Pissarro (1830∼1903) 프랑스의 화가. 피사로의 작품에는 온기가 통하는 듯 따스한 감정이 충만하다. 인상파의 이론을 실천하여 섬세한 터치로 색채를 쌓음으로써 색채는 아로새기듯 빛나는데, 피사로는 단지 색채를 물체의 빛깔 이상으로 보는 자기의 감정의 언어로 하여금 섬세하게 감정을 펴고 있다. 피사로는 쿠바에 가까운 생 토마섬에서 태어났으며, 12세 때에 파리로 나가 도화(圖畵)를 익힌 다음 회화에 뜻을 두고 1855년에 재차 동경하던 파리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코로와 도비니의 풍경화에 매력을 느꼈고 연구소에서 모네와 세잔을 알게 되며 그 후에도 외광(外光) 아래에서 풍경 그리기에 열중한다. 그는 루브센에 주거를 두고, 보불전쟁이 시작되자 전화(戰禍)를 피하여 런던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금 모네를 만난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터너를 만나서 빛의 표현에 대한 지도를 받고 인상파의 표현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전후 귀국해 보니 그의 집은 전화로 황폐되어 있었다. 피사로는 얼마 동안 퐁토아스에 살며 거기서 세잔을 만나 그를 인상파의 표현을 끌어들였다. 거기에서 1874년에 친구들과 더불어 인상파 전람회를 결성했다. 피사로는 인상파전(印象派展)의 중심인물이 되어 그의 생애는 제작으로 일관했다. 만년에는 루앵 항구나 파리의 오페라가(街) 등의 풍경을 그렸다. 근대의 가장 훌륭한 풍경화가의 한 사람으로서 감정은 섬세하고, 초기의 농원(農園)의 연작(連作)도 또한 아름다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
[편집] 붉은 지붕
1877년, 피사로 작. 루브르 미술관 소장. 인상파 이전의 풍경화는 자연의 아름다운 전개나 커다란 성격을 추구하지만, 인상파의 작품은 마을의 아무것도 아닌, 한쪽 귀퉁이나 농원의 일부 등, 아무 곳에서나 아름다움이나 매력을 찾아 내고 있다. 피사로의 아주 초기의 작품은 보불전쟁으로 잃어버렸기 때문에 <붉은 지붕>은 비교적 초기에 해당되지만, 이미 인상파의 화법을 완전히 보여주고 있다. 섬세한 터치에 색채는 잔잔하게 고동치듯 생기를 띠고, 자잘한 빛깔이 서로 융합하여 이른 봄 하루의 농가는 햇빛의 따스함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전경(前景)의 풀은 녹색으로 하고, 과수(果樹)의 가지는 부드럽고 태양을 받아 흰 벽이 반사하고 있다. 거기에 붉은 지붕이 매력을 굳혀 화가는 농원의 생활에 축복이라도 주는 듯하다. 모네는 흔히 새로운 발견에서 행동한 데 비해 피사로는 발견은 적지만, 작품은 중후한 짜임새로 밀도가 있으며 성실과 따스함이 가득 차 있다.
**피사로의 그림들
5) 바르또 모리조(1841-1895)
모리조는 여성 화가로서 외교관의 딸이다. 1860년에 까미유 코로를 만나 그림을 배우므로 그의 영향을 받는다.,
1863년에 살롱전에 입선한다.
1868년에 마네를 만나고, 1874년에 마네의 동생 으젠느와 결혼하다. 이후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분을 맺으면서 인상주의 유파의 그림을 그렸다.
1874년에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한 후로는 의식적으로 인상주의 유파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여성답게 가정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모리소
Berthe Morisot (1841∼1895) 프랑스의 화가. 아버지는 지방의 지사(知事)이며, 처음에는 코로에게 배웠으나 1868년에는 마네를 만나 그 제자가 되었다. 마네의 작품에는 자주 등장하는 여성이지만, 마네 밑에서 재능을 기른 모리소는 1874년에 마네의 동생과 결혼했다. 제작을 계속한 모리소는 인상파의 전람회에는 제1회부터 참가했다. 가정은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는 환경이어서, 작품은 신변의 평화로운 생활을 그려 밝은 신선미를 보이고 있다. 여성적인 작품의 전형(典型)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교양을 갖춘 모리소의 작품은 자유로운 터치에다 단아(端雅)한 감각을 빛냈다
6) 메리 커셋(1845-1926)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1873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였다.
1877년에 드가를 만난다. 드가의 권유로 인상파 그룹에 참여하였다.
특히 인물화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지만 어린애를 잘 그렸다.
7) 귀스타브 카유보트(1848-1894)
화가인 동시에 수집가이다. 그의 집이 부자라서 많은 상속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의 뒤를 봐주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인상파 화가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는 남자를 주로 많이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