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작은 문제에 대해서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바른 것을 지적해주거나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토론이 이루어진다. 상대방이 자기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을 증명해주고 승복해주기를 바란다. 이 때 동기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면 그가 승복하지 않을 때, 자기가 옳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계속 입증하려는 것은 상대방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더 옳다는 것에 대한 승부를 가리려고 하는 태도이다. 여기서 동기가 드러난다. 상대를 도우려는 것인지 내가 더 잘난 것을 입증하려는 것인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승부욕은 저수지의 균열에 비교된다. 처음에는 물이 조금 새는 약간의 이견이지만 승부를 가리려고 함으로써 저수지의 둑이 터져 물이 것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것에 비유된다. 결국 상대방을 의 입을 봉쇄할 정도로 논증하고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은 자기를 친구에서 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즉, 논쟁에서 이기고 친구를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기는 것보다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는 사실, 적은 차이를 크게 확대시키지 않고 양보함으로써 좋은 동맹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개인 간의 경우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도 적용된다. 전쟁도 처음에는 매우 작은 문제에서 출발한다. 한발의 총성으로 일어난 '사라예보 사건'은 외교적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건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여기서 물러나면 제국의 권위가 무너진다.”라는 승부에 집착하게 되었고 굴욕적인 최후 통첩은 상대방이 거절하도록 설계된 요구였다. 이 때부터 평화적 외교가 아니라 국가의 체면을 건 한판의 승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전쟁이 커지게 된 것은 여러 국가들이 두 나라의 문제에 간섭하여 끼어들게 됨으로써이다. 이것은 잠언이 경고한 바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들이 평화를 원했다면 타협을 권했겠지만 간섭하게 됨으로써 점점 더 둑이 크게 균열을 일으켜 물이 많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승리했지만 남는 것은 국력을 소진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오스트리아는 제국이 해체되었으며 독일은 패전으로 인해 굴욕감을 느끼고, 훗날 더 큰 전쟁의 씨앗을 안게 된 것이다. 결국 이기려는 태도는 자기에게 손해를 가져오고 모두를 불화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지배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도우려는 자세가 평화와 유익을 가져오는 것이다. 사소한 이익을 얻으려고 상대를 제압하려 든다면 힘이 약한 상대는 그 순간 물러설지 모르지만, 언젠가 자기 힘이 세 지기를 기다리며 보복감을 길러갈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리실 때 그가 강한 민족이 되는 것은 세계를 제압하여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이되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라들이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명분은 도우려는 것으로 만드려는 것이다. 하지만 돕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간섭하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월남 전쟁이 종식된 것은 월남의 국민들이 다른 나라가 그들의 일에 간섭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미군이 철수했기 때문이다. 이 처럼 나라들의 전쟁이 확대되는 것은 서로 이권과 관련하여 간섭하기 때문이다. 비록 당사자격인 두 나라의 다툼이나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큰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다. 국가간의 충돌을 이용하여 무기를 팔아 먹으려는 것은 간섭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만일 한국에서 대만으로 무기 수출을 할 경우 중국 본토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우선 이익을 위하여 다른 나라에 무기를 파는 행위 자체가 전쟁의 도화선을 만드는 것이다. 자국을 지키기 위한 무기 개발은 정당 방위 차원으로서 인정될 수 있으나, 무기의 수출은 결국 간섭으로 몰고갈 위험이 있다. 둑의 작은 균열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며 간섭함으로써 호미로써 막을 수 있는 둑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게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옆집 사람들의 싸움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행위는 결국 자국의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