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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5일(토)
* 시작 기도
(막 7:27-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님...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여인은 이 말에 발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개라고 하면서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는 것처럼 자기들에게도 그 은혜의 부스러기를 던져달라고 합니다.
이런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너의 딸이 나았다고 천명하십니다.
이런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진짜 믿음임을 압니다.
나 또한 이 여인의 고백처럼 개요 벌레입니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30:1-26
제목 : 내가 바로의 팔을 꺾으리니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통곡하며 이르기를 슬프다 이 날이여 하라.
3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4 애굽에 칼이 임할 것이라. 애굽에서 죽임 당한 자들이 엎드러질 때에 구스에 심한 근심이 있을 것이며 애굽의 무리가 잡혀 가며 그 터가 헐릴 것이요
5 구스와 붓과 룻과 모든 섞인 백성과 굽과 및 동맹한 땅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칼에 엎드러지리라.
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 믹돌에서부터 수에네까지 무리가 그 가운데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황폐한 나라들 같이 그들도 황폐할 것이며 사막이 된 성읍들 같이 그 성읍들도 사막이 될 것이라.
8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며 그 모든 돕는 자를 멸할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9 그 날에 사절들이 내 앞에서 배로 나아가서 염려 없는 구스 사람을 두렵게 하리니 애굽의 재앙의 날과 같이 그들에게도 심한 근심이 있으리라. 이것이 오리로다.
1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으로 애굽의 무리들을 끊으리니
11 그가 여러 나라 가운데에 강포한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땅을 멸망시킬 때에 칼을 빼어 애굽을 쳐서 죽임 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하리라.
12 내가 그 모든 강을 마르게 하고 그 땅을 악인의 손에 팔겠으며 타국 사람의 손으로 그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 우상들을 없애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에서 부수며 애굽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고 그 땅에 두려움이 있게 하리라.
14 내가 바드로스를 황폐하게 하며 소안에 불을 지르며 노 나라를 심판하며
15 내 분노를 애굽의 견고한 성읍 신에 쏟고 또 노 나라의 무리를 끊을 것이라.
16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리니 신 나라가 심히 근심할 것이며 노 나라는 찢겨 나누일 것이며 놉 나라가 날로 대적이 있을 것이며
17 아웬과 비베셋의 장정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그 성읍 주민들은 포로가 될 것이라.
18 내가 애굽의 멍에를 꺾으며 그 교만한 권세를 그 가운데에서 그치게 할 때에 드합느헤스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그 성읍에는 구름이 덮일 것이며 그 딸들은 포로가 될 것이라.
19 이같이 내가 애굽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20 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1 인자야 내가 애굽의 바로 왕의 팔을 꺾었더니 칼을 잡을 힘이 있도록 그것을 아주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느니라.
22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의 바로 왕을 대적하여 그 두 팔 곧 성한 팔과 이미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 손에서 떨어지게 하고
23 애굽 사람을 뭇 나라 가운데로 흩으며 뭇 백성 가운데로 헤칠지라.
24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고 내 칼을 그 손에 넘겨주려니와 내가 바로의 팔을 꺾으리니 그가 바벨론 왕 앞에서 고통하기를 죽게 상한 자의 고통하듯 하리라.
25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내려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고 그를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6 내가 애굽 사람을 나라들 가운데로 흩으며 백성들 가운데로 헤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애굽과 그 동맹국들에 대한 파멸과 함께 애굽을 무너뜨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몰락의 양상이 묘사되고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애굽과 그 동맹국들이 장차 받을 심판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데 그것도 무려 4번씩이나 거듭해서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애굽과 주변의 동맹국들이 심판 당할 것에 대하여 거듭거듭 힘을 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겔이 이처럼 여러 차례에 걸쳐서 동일한 사실을 반복해서 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애굽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확실하고 철저하게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애굽을 향한 이 예언의 말씀을 에스겔 선지자가 전할 당시는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포위를 당하는 급박한 상황 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유다에게는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고대근동의 패권자로 군림해 온 애굽이었다.
유다는 애굽과의 동맹에 의한 애굽 군대의 원조를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유다에 있어서 애굽은 그들이 끝까지 붙잡아야 할 동아줄이었다.
비록 지금 당장은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있지만 언제든 애굽 군대가 일어나 자기들을 돕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바벨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다를 바벨론에 넘기시기로 작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가 애굽을 동아줄로 생각하고 그것을 붙잡으려는 것은 그야말로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참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끊임없이 선포하시기를 바벨론을 사용하여 유다의 범죄를 징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기 동족에게 항복을 전하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믿지 않고 끝까지 애굽을 의지하여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허탄한 망상을 버리지 못하였다.
이처럼 당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너무나 완고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에스겔은 그들의 헛된 망상을 깨뜨리고자 한두 번도 아닌 무려 네 번에 걸쳐 애굽의 심판을 예언하였다.
이뿐 아니라 애굽 주변의 동맹국들까지 파멸에 이를 것이란 준엄한 심판을 반복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네 번에 걸쳐 반복된 애굽 심판 예언을 하게 하시면서 유다 백성들이 애굽을 향해 가지고 있던 헛된 소망을 버리고 바른 삶의 길, 즉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복음의 말씀을 받기를 원하셨다.
나는 예전에 에스겔서를 비롯한 선지서를 읽으면서 간혹 짜증을 내곤 하였다.
그 이유는 왜 하나님은 그렇게 똑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하시는가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목사이면서도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달으려 하기 보다는 그저 성경을 읽었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무엇보다 많이 읽었다는데 큰 의미를 두면서 생각 없이 읽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는 물론 말씀 묵상을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복음도 모르고 성경을 읽으면서 내가 보기에 좋은 구절들을 골라서 곶감 빼먹듯이 그것으로 교훈적인 설교를 하곤 하였다.
이런 나는 사실 일찍이 목사를 그만 두었어야 했다.
나는 목사라는 직분을 내 자신의 명예와 위치를 위하여 이용하려 하였고, 목사로써 말씀을 이용하는 파렴치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내가 이제 복음을 듣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다 보니까 그제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짜증나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심판 받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그들을 진멸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심판을 통하여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여 다시 생명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목적이다.
아무리 이방 나라요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일지라도 모든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기(출 19:5) 때문에 그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와 언약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토록 간절하게 표현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을 전하는 예레미야는 유대 백성들이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오히려 치욕과 모욕을 주는 것을 보면서 복음 전하는 것을 그만 두려 하다가도 동족들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렘 20:8-9)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나는 성도들이 듣기 좋은 말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기 원하시는 말씀만을 전하기로 작정하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듣기에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파악해서 그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했던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그들의 칭찬과 박수를 받았다.
그것으로 선지자로서의 기득권을 챙겼으며, 백성들을 통하여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짜 전하기 원하시는 말씀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그들의 귀에 거슬리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듣기 싫어했다.
무엇보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의지하고 붙잡아야 할 하나님은 붙잡지 않고 썩은 동아줄인 애굽만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한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애굽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그들은 정말 듣기 싫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에스겔도 죽이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 역시 굽히지 않고 그들이 듣기 싫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기에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복음을 전한다.
세상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도 아닌 오직 복음이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고 그 생명으로만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예수 잘 믿어서 육신이 잘 되는 세상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치거나 나의 뜻과 생각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아 영원한 소망의 나라를 현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자신들의 뜻을 일치시키지 않고 따로 국밥처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어서 이 땅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여 부요하고 윤택하게 사는 것이 대부분의 목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하지 않은 것에 결코 목숨을 거실 리가 없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복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기 원하신다.
바로 그 생명은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자연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다.
나는 이것을 위하여 나의 남은 생을 바칠 것이다.
성도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가 전할 것은 내 말도, 세상 이야기도,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그런 말도 아닌 오직 복음이다.
이 복음을 전하는 나는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에스겔의 마음으로, 무엇보다 날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전할 것이다.
세 번, 네 번 반복해도 모르면 전하고 또 전해서 그들이 복음으로 생명을 얻어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누리는 날까지 전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님께서 반복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극히 정욕적으로만 판단하여 불평과 짜증을 냈던 자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많이 읽는 데만 치중하여 그 뜻도 모르고 주님의 심정도 헤아리지 못한 채 내가 읽는데 불편한 것만 생각했었던 바보였음을 고백하나이다.
왜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빠트림을 당하면서도, 시위대 뜰에 갇히면서도 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왜 주님은 대제사장이나 장로들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그토록 수모와 멸시를 당하시면서도 십자가를지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얼마든지 그 상황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음에도 왜 그 모진 고난을 담당하셨는지요?
나는 이제 주님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나는 그것을 피하던 자였으나, 주님은 그것을 담당하셔서 생명을 주기 위함이셨습니다.
나는 한시적인 세상의 3A(Appearance 드러냄, Achivement 성공, Affluence 풍요와 윤택함)를 추구하던 자였으나, 주님은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주기 위함이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그 뜻을 알기에 나도 주님과 함께 주 안에 말씀으로 거하여 주님의 생명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 안에 오직 영생이 있음을 알기에 말씀을 떠나지 않으렵니다.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구원자이오니 그 몸 버려 나를 구하신 주님을 나의 생명으로 모셔들입니다.
주님의 영광 영원히 빛나소서.
주의 빛으로 나를 비추소서.
내가 그 빛으로 살겠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