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에 칼 빼든 중국… 한국 반도체에 보내는 경고일까
마이크론에 인터넷 안보심사 실시
반도체규제에 동참 말라는 메시지
미국이 일본과 네덜란드의 손을 잡고 중국의 반도체 규제에 나선 이후 ‘보복’을 다짐하던 중국이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규제에 나선 것이다. 한 외신은 중국의 이런 보복은 ‘한국기업들에 대한 경고’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 대해 미국편에 서지 말라는 것이다.
●중, 미 마이크론 제품 인터넷 안보 심사 실시 =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3월 31일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인터넷 안보 심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판공실은 안보 심사 이유에 대해 “핵심적인 정보 인프라의 공급망 안전을 보장하고, 잠재된 제품의 문제가 인터넷 안보 위험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해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보 심사 내용이나 문제가 드러날 경우의 대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조처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규제에 나선 가운데 나왔다. 따라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작년 10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조처를 내렸고, 일본과 네덜란드에도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동참을 요구해왔다. 일본은 이날 23개 첨단반도체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 하위 규정을 개정, 오는 7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발표해 미국의 요구에 부응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리에 슈라이네마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이 의회 보고서에서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 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규제를 여름 이전에 도입하겠다”고 밝혀 미국의 규제에 보조를 맞출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탄젠 주네덜란드 중국대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가 첨단 반도체 장비의 수출을 막는다면 중국은 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맞대응을 예고했다.
중국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의 조사는 최소 30일이 걸린다. 그러나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의 경우 1년의 조사 끝에 80억2600만 위안(약 1조5000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되는 등 사안에 따라 조사 기간이 훨씬 길어질 수 있다고 베이징의 반도체 전문 변호사 펑충은 말했다. 그는 “중국이 마이크론에 다양한 처벌과 제한 조치를 가할 수 있다”며 “국가보안법상 더 엄격한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왕리푸 분석가는 벌금은 가장 가벼운 경고일 수 있다며 그 후에도 아무런 반성이나 변화가 없다면 시장 접근 금지 등의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움직임은 ‘시장은 당신에게 열려있고 일정한 당근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를 화나게 하면 채찍으로 받아칠 것이다’라는 중국 정부 관리들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당국은 마이크론을 상대로 한 조사에 대해 ‘정상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관련 부서가 법률과 법규에 따라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터넷 제품에 대해 보안 심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한 정상적인 관리감독 조치”라며 “중국기업이든 중국에서 경영 활동을 하는 외국기업이든 중국의 법률과 법규를 준수해야 하고 중국의 국가 안보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오 대변인은 다른 기업에 대한 추가 조사 여부를 묻는 말에는 “법률을 준수하고 합법적으로 경영한다면 걱정할 것 없다”고 답변했다.
●일본에 “과단성 있는 조치 취할 것” 경고 = 중국 정부는 반도체 규제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경고를 보냈다. 일본 정부가 3월 31일 섬세한 회로 패턴을 기판에 기록하는 노광장치, 세정·검사에 사용하는 장치 등 첨단 반도체 분야 2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4일 밤 기자 질문에 대한 대변인의 답변 형태로 낸 입장문에서 “일본 측이 고집스럽게 중·일 반도체 산업 협력을 인위적으로 저해할 경우 중국 측은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해 자신의 합법적 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또 “일본이 제기한 관련 조치는 본질적으로 개별 국가의 협박 하에서 중국에 해를 가한 행위”라며 “중국 기업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해칠 뿐 아니라 일본 기업에도 손실을 입히고 자신(일본)과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자 일본 반도체 제조 장비의 최대 수출처여서 양국 업계는 오랫동안 산업망의 상·하류 융합 관계를 형성했다”며 일본 측이 조치를 시정하고, 양국 경제·무역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추동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 강화를 발표하면서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며, 중국을 겨냥한 조치가 아니라고 별도로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결정한 미국과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본 정부가 의견수렴 등 과정을 거쳐 7월부터 강화된 규제를 시행할 예정인 상황에서 중국 측은 강도높은 보복 조치를 경고함으로써 재고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중국 외교라인의 최고위 인사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4월 2일 베이징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국내 일부 세력이 미국의 잘못된 대중국 정책을 추종하며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 관련 문제에서 중국에 먹칠을 하고 도발을 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행동은 전략적으로 근시안적이며,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이자 외교적으로는 더욱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하야시 외무상과 만난 친강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은 직접 반도체를 거론하며 원색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외신 “특히 한국에 보내는 경고 신호” =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은 한국과 일본 같은 이웃 나라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문가를 인용해 최근 보도했다.
상하이의 반도체연구회사 IC와이즈의 왕리푸 분석가는 중국 반도체 시장이 미국과 동맹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개시된 이번 조사는 한국과 일본에 보내는 경고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대만과 함께 미국이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고자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의 일원으로, 이들 나라의 고위 관리들은 지난 2월 첫 번째 화상 회의를 개최했다.
왕리푸는 특히 한국이 중국의 마이크론 조사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에 여전히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해당 조사는 미국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해당 경고가 미국의 중국 상대 수출 규제에 동참한 네덜란드에도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외국 반도체 회사에 대해 사이버 안보 심사를 하는 것은 마이크론이 처음이다.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를 발표하기 전까지 중국은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시행한 것에 대해 별다른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마이크론이 자국 기술 산업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고 왕리푸는 말했다. 그는 “마이크론이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 부과를 뒤에서 밀어붙였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에 서명한 이후 상하이의 D램 설계 센터를 폐쇄했고 약 150명의 중국인 엔지니어에게 미국이나 인도로 이전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앞서 마이크론은 2021년 보고서에서 중국이 자국 D램 제조사들을 지원하면서 자사의 성장이 제한되고 중국 시장에서 내몰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네덜란드 ASML의 반도체 생산 장비나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와 달리 마이크론의 제품은 중국 YMTC나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제품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