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5일 묵상 본문 : 에스겔 30장 10절 - 26절 - 세상에 대한 심판과 주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과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7월의 마지막 주말을 시작하며 주께로 나아갑니다.
장마도 끝나가는 가운데 있기에 이제는 폭염을 대비하여 살아가야 함을 느낍니다.
계절의 변화는 주님 오실 때까지 변함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상황과 환경에서 소망을 찾지 않고 변함없이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며 진리를 선포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삶을 주관해 주시고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힘쓰게 하옵소서.
오늘도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로 갈 길을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으로 애굽의 무리들을 끊으리니
11 그가 여러 나라 가운데에 강포한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그 땅을 멸망시킬 때에 칼을 빼어 애굽을 쳐서 죽임 당한 자로 땅에 가득하게 하리라
12 내가 그 모든 강을 마르게 하고 그 땅을 악인의 손에 팔겠으며 타국 사람의 손으로 그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통해 애굽을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신다. 바벨론의 군대는 잔인하고 흉포하기로 유명했으며 적국에게 조금의 자비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에 맞게 하나님은 애굽이 황폐하게 되고 죽은 자로 가득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1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 우상들을 없애며 신상들을 놉 가운데에서 부수며 애굽 땅에서 왕이 다시 나지 못하게 하고 그 땅에 두려움이 있게 하리라
하나님은 애굽의 8개 도시들을 언급하며 그 도시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신다. 8개의 도시들은 애굽의 종교,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도시였다. 놉은 멤피스를 의미하며 애굽을 대표하는 우상의 도시였다. 즉 애굽의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고 있다.
14 내가 바드로스를 황폐하게 하며 소안에 불을 지르며 노 나라를 심판하며
15 내 분노를 애굽의 견고한 성읍 신에 쏟고 또 노 나라의 무리를 끊을 것이라
바드로스는 애굽의 남부지역에 위치한 애굽의 발원지요 수도였다.(29:14) 소안은 B.C. 7세기 경에 하애굽의 수도로 추정하며 야곱과 가족들이 거주한 고센과 동일한 지역으로 추정한다. 노는 상애굽의 도시로 애굽의 수도였던 때도 있었으며 ‘노’는 ‘노 아몬’의 축약형으로 아몬은 애굽의 신으로써 노아몬은 아몬의 거주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은 진흙이나 점토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늪지대로 둘러싸여 대적들이 공략하기 어려운 천혜의 요새였다. 이 지역은 나일강 삼각주 동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애굽을 침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요충지였다.
16 내가 애굽에 불을 일으키리니 신 나라가 심히 근심할 것이며 노 나라는 찢겨 나누일 것이며 놉 나라가 날로 대적이 있을 것이며
신 도시가 정복당할 때 사람들은 근심하게 되고 노 도시가 찢겨 나누일 것이라는 표현은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군사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의미하고 있다.
17 아웬과 비베셋의 장정들은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그 성읍 주민들은 포로가 될 것이라
18 내가 애굽의 멍에를 꺾으며 그 교만한 권세를 그 가운데에서 그치게 할 때에 드합느헤스에서는 날이 어둡겠고 그 성읍에는 구름이 덮일 것이며 그 딸들은 포로가 될 것이라
19 이같이 내가 애굽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아웬은 우상숭배로 유명한 도시였으며 태양신 ‘라’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다. 비베셋은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km지점의 도시로 고양이 머리를 가진 애굽의 여신 바스트의 집이라는 의미이다. 장정들은 제사를 돕던 미동들을 의미하며 성읍 주민들은 여자들을 의미한다. 드합느헤스는 다른 이름으로 다바네스이며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들어가는 관문도시였다. 따라서 드합느헤스에 대한 심판은 애굽 전체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기에 그의 딸들이 포로가 된다는 것은 애굽의 동맹국들도 바벨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심판의 과정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관자요 심판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을 보여준다.
20 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1년 1월 7일은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11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때는 B.C. 586년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3개월 전의 시점이다. 그래서 본 단락은 29장 17절에서 시작된 예언(27년 1월 1일)보다 앞선 시점의 내용임을 보여준다.
21 인자야 내가 애굽의 바로 왕의 팔을 꺾었더니 칼을 잡을 힘이 있도록 그것을 아주 싸매지도 못하였고 약을 붙여 싸매지도 못하였느니라
바로의 팔을 꺾었다는 표현은 2가지 사건으로 추측하는데 첫째는 애굽 왕 호브라가 유다를 돕기 위해 출정했다가 바벨론과 싸워 패배한 사건이거나 애굽의 통치자 느고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에게 패배한 사건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그 패배로 인해 애굽은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회복불능의 상태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22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애굽의 바로 왕을 대적하여 그 두 팔 곧 성한 팔과 이미 꺾인 팔을 꺾어서 칼이 그 손에서 떨어지게 하고
23 애굽 사람을 뭇 나라 가운데로 흩으며 뭇 백성 가운데로 헤칠지라
이미 꺾인 팔은 호브라나 느고의 패전을 의미하며 성한 팔은 호브라가 리비아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힘을 회복하려고 하다가 전쟁에서 패배하여 죽음을 당한 사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24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고 내 칼을 그 손에 넘겨 주려니와 내가 바로의 팔을 꺾으리니 그가 바벨론 왕 앞에서 고통하기를 죽게 상한 자의 고통하듯 하리라
25 내가 바벨론 왕의 팔은 들어 주고 바로의 팔은 내려뜨릴 것이라 내가 내 칼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고 그를 들어 애굽 땅을 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6 내가 애굽 사람을 나라들 가운데로 흩으며 백성들 가운데로 헤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애굽을 심판하실 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하여 선포하신다. 그리고 그 선포 가운데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행할 것임을 드러내심으로써 참된 역사의 주관자는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계신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애굽에 대한 심판을 상당히 자세하고 길게 선포하고 계신다.
특별히 애굽의 8개 도시들에 대한 심판을 구체적으로 선포하심으로써 애굽이 보여주었던 종교, 정치, 군사력에 대한 총체적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애굽이 세상이 보여주는 힘과 능력과 부요함의 모습을 의미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멸망을 드러내고 계신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부터 침략을 받고 멸망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바벨론이 아닌 다른 나라를 통해 바벨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그 의지의 대상이 애굽이었으며 아마도 그들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이다.
도울 나라도 없고 도울 수 있는 힘을 가진 대상이 없었기에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유일한 대안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애굽을 완전한 멸망으로 이끄실 것을 선포하신다.
애굽의 우상부터 시작하여 부요함과 군사력까지 모두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게 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전혀 의지할 수 없는 대상으로 만드셨으며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그들에게 소망이 주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고 애굽을 의지하던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순종을 배우도록 만드셨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도 결국 이스라엘에게 소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사용되는 대상 그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의지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의지의 대상이요 소망이며 붙잡아야 할 기둥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애굽은 눈에 보이는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단의 세력에 대한 심판도 상징한다.
이는 바벨론을 비롯하여 로마, 각 나라와 주권과 우상들도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사단의 세력들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된 믿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세워 가신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그 약속의 성취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모습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 하면서 진정한 믿음에 대한 정의를 선포한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믿음은 보이는 것에 대한 신뢰를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며 그 약속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믿음이 되고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며 의로움으로 여기신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됨으로써 믿음의 절정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으며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자가 믿음을 가진 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12:1~3)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데 그 계획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세상에 대한 심판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가진 자임을 보여준다.
결국 애굽에 대한 심판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심판이며 바벨론도 심판의 도구로 여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자로 서게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세상의 것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의 언약을 바라보며 순종하여 살기를 소망하는 자가 참 믿음을 가지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됨을 고백하게 된다.
그 믿음이 고백이 오늘 나의 삶, 그리고 동일한 생명의 길을 가기 위해 힘쓰며 살아가는 지체들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날 수 있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계절을 따라 변하는 자연 만물의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또한 세상에 세워진 수많은 수공물들도 사람의 업적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의지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어리석음이 인생의 본질임을 봅니다.
심판당하고 사라질 것에 미련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께 소망을 두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은 변화되는 상황과 환경에 잘 적응하여 유익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의 마음과 생각은 주의 뜻을 분별하는 것에 두고 그 뜻에 순종함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에서는 늘 세상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것을 복음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날마다 복음에 연합되어 살아가며 주님과 교제함으로 삶의 목적을 성취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풍성한 은혜와 변함없는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