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끝과 저 끝까지의 거리 700미터. 잡초 하나 없이 가지런히 지평선 저 끝까지 뻗어있는 초록색 나무들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그 사이로 트랜스포머에 나올 법한 거대한 바퀴를 가진 기계가 지나다닌다.
기계에 달린 6개의 기둥 끝에는 각각 두 사람씩 등을 맞대고 앉아 열심히 수풀을 해치며, 초록색 열매를 따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던진다.
영화 <모던타임즈>의 채플린이 그랬던 것처럼 700미터가 끝나는 그 지점까지 쉬지 않고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인다. 한 로우(row, 한 고랑, 약 700미터)를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 반.
아름다운 초록 수풀 저 너머에는 또 다른 거대한 기계가 하얀색 약을 뿌리며 지나다니는 게 보인다. 열매와 잎사귀에 하얀색 얼룩이 말라붙어 있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잡초 하나 없고, 개구리 한 마리 찾아보기 어렵다. 결벽증에 걸린 듯 깨끗한 토마토 농장을 유지하는 비결은 하얀색 농약이다.
토마토 머신에 올라탄 지 10분 만에 마치 내 몸은 기계의 일부분이 되어 먼지와 농약을 마시며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슈바(슈퍼바이저)는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는 버리라고 했다. 우리 손에 들린 건 아직 덜 익은, 마치 단감같이 딱딱한 초록색 토마토. 그게 돈이라고 했다.
작업 중간 약 20분 가량의 짧은 점심시간을 가진다.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서 밥은 토마토 머신 그림자 아래서 먹고 화장실은 수풀 사이에서 해결한다. 법적으로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게 되어있고, 실제로도 있지만 관리되지 않는 화장실은 더러워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다.
새벽 5시에 시작된 작업은 오후 4시가 되도록 계속된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모자를 쓰지 않은 한 청년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리곤 응급차에 실려간다. 직사광선을 막는 긴 옷과 모자는 필수다. 햇살의 강도는 한국보다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무슨 이유로 이 먼 곳까지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자발적으로 이른 새벽에 일을 나오는 대부분의 이유는 돈 때문이다. 농장에서는 영어를 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몸은 힘들다. 디스크를 얻어서 귀국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다행히 통장에는 돈이 쌓여가지만, 안타깝게도 몸속에는 농약과 먼지가 쌓여간다. 낭만적일 것 같았던 호주에서의 농장 일은 생각하곤 달리 전쟁이다. 새파란 토마토와 벌레 하나 없이 아름답게 가지런히 자라있는 토마토 나무들. 30도가 넘는 뜨거운 햇살 아래 쉬지 않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중간마다 나타나 토마토를 싣고 가는 컨트렉터들 그리고 허리 펴지 말고 일하라며 윽박지르는 슈퍼바이저들. 토마토 농장 안에서 천민자본주의의 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