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지도에 그려진 지역 중에서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은 남쪽 부분이 왜곡된 이슬람의 세계지도와 실제 지형이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아프리카의 서쪽 기니 만 부근의 해안선이 다소 왜곡 되어 있지만 동쪽 해안의 윤곽은 제모습을 갖추고 있다.
대륙의 내부에 나일 강이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가는 모습은 이슬람의 지도와 유사하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대륙 내부에 커다란 염호를 그렸고 중앙에는 황사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사하라 사막으로 생각된다.달의 산을 의미하는 '제벨 알 카말'은 '저볼노합마' 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1400년을 전후한 이 시기에 서양의 지도에서는 아프리카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1300년 경에 제작된 헤리퍼드 지도에는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성경에 수록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위쪽은 아시아. 왼쪽 아래는 유럽, 아래 오른쪽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표현하고 있는데, 아프리카는 아시아에 붙어 있으며 길쭉한 배의 형상으로 왜곡되어 있다.
14세기에 제작된 서양의 세계지도는 기독교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형상도 실제와는 다른 형태를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15세기 이후에 제작된 세계지도에서도 이런 흐름은 지속된다. 15세기 중반에 제작된 카탈란의 지도에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지도의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에 가상의 거대한 대륙이 붙어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인식은 이전 시기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1459년 마우로가 제작한 세계지도는 포르틀라노 해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안내] 그리고 마르코풀로가 발견한 지식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새로 획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지도의 아프리카의 윤곽을 보면 여전히 이전 시기의 왜곡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서양 지도의 아프리카의 모습이 뚜렷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말 기니만을 넘어 아프리카 남부를 향한 향해가 시작 되면서이다. 이를 선도한 것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였다. 디아스는 1487년 8월 두 척의 괘속 범선 카라벨과 한 척의 식량선을 이끌고 출범해 아프리카 남단을 통과했다. 그는 이 항해에서 희망봉은 보지 못했지만 해안선이 북동쪽으로 향해 있음을 알고만족했다.
귀국하는 도중에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곶에도 비석을 세웠는데 , 그 곳을 주앙2세로 부터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를 통해 인도를 발견한 커다란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디아스의 항해는 1489년 귀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려진' 헨리쿠스 마르텔루스'의 세계 지도에 기록되었다. 마르텔루스의 세계 지도를 보면 인도양의 윤곽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를 따르고 있지만 당시 향해에서 얻은 지식을 반영해 내해가 아닌 외해로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아프리카 동쪽 해안선은 매우 왜곡해 표현하고 있다. 혼일강리역대강역지도의 아프리카 해안선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이스의 아프리카 탐험에 이어 바스쿠 다가마는 3개월 동안 대서양을 항해 한 후 희망봉을 돌아서 동아프리카 해안을 북상해 1498년 5월에 인도의 캘리컷에 도작했다.
한편 카브릴이 이끄는 제 2선단은 바스쿠 다가마의 충고를 받아들여 기니 해안에 무풍을 피하려 남서 코스를 선택해 브라질에 도착한 뒤 1500~1501년에 인도에 도달했다. 1502년에 알베르토 칸티노가 리스본에서 빼내어 페라리에게 보낸 세계지도는 바스쿠 다가마, 카브릴과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의 향해 결과를 밝한 지리학상의 지식을 기록하고 있다. 이 지도는 동.서양의 새로운 기록을 기록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르투칼의 지도이다.
(칸타노의 세계지도.이탈리아로 몰래 빼돌린 지도 ᆞ1700년 리스본 대지진때 대항해시대 자료가 다 소실되는데 이 지도만 보존하게 된다ᆞ아프리카의 지역은 매우 정교 하지만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은 동아시아는 사실과 다르게 표시된 지역)
지도에는 당시 탐험의 성과를 반영해 남아메리카의 해안 동쪽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바스쿠 다가마의 향해 결과로 아프리카 동쪽 해안선과 인도 반도 등의 실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아프리카의 최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최초의 지도인데 [혼일강리역대국지도]와는 100여년의 시간차이가 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보면. [혼일강리역대국지도]는 서양보다 100년전에 아프리카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 낸 지도가 된다. 현존하는 지도 가운데 아프리카의 온전한 모습을 그린 최초의 지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혼일강리역대국지도]가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가장큰 의의이다
15세기 조선에서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지도 그 효능은 현존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세계지도입니다.
당시 이지도를 가지고 바다를 향해 나섰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당시 수준높은 배 건조기술을 가졌던 조선, 조선이전 고려가 외국이랑 활발하게 외국과 교역을 했던 자료들 이 당시에는 많이 있었을터...
성리학을 수용했지만 장보고 이래로 바다를 누비며 활발한 활동을 했던 고려의 해상 활동은 조선이 건국되면서 서서히 잊혀지고 바다를 포기합니다
조선 건국에 아쉽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당시 조선의 지배층은 지리 천문 등 당시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넓고 이해도가 상당했음을 혼일 강리역대국지도는 말해줍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에는 몽골족과 세계제국을 경영했던 이슬람인들이 상당히 많이 정착하였고 그들이 고려말 조선초기 조선 사대부층이 전해준 천문 지리 역법등은 세종조에 빛나는 천문의 발달에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