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X문제 문장은 중국 사서에 기록된 걸 그냥 그대로 해석한 결과임...
외교적으로 중국과 가까웠던 부여인데, 부여에 온 중국인 눈에는 부여의 읍락민들이
마치 자기들의 하호(소작농,농노)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리고 제가,호민들은 역시 전쟁에 나서고
하호들은 역시나 잡일을 거드는구나 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했던 것 같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의 읍락민은 모두 동일한 처지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읍락민이 호민의 통제 하에 있었지만, 그들 내에서도 자영농민층과 빈농층의 분화가 진전되고 있었다. 전쟁 때에는 스스로 무장해 참전했던 이들과 그렇지 못해 양식을 운반하는 노무부대로 참가하는 이들로 나뉘어졌음은 그런 면을 말해준다.
--> 그러니까 중국인들은 읍락민 전체를 하호로 본 거 같음...
제가,호민,전투참가 자영농민층 다합치면 전쟁인원은 무리없이 나오겠네요^^
<좀 길지만, 이거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아서 붙임, KBS 역사를 찾아서 방송대본임>
<해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고구려의 신분과 관련된 흥미로운 표현이눈이 띕니다.
낭독자 고구려의 대가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좌식자가 만여 명이나 되는데,
하호들이 먼 곳에서 양식과 고기와 소금을 운반해다가 그들에게 공급한다.
<해설> 여기 나오는 두 신분, 즉 좌식자와 하호가 눈에 띄는데요, 우선 하호부터
살펴보기로 하죠. 하호는 고구려에서 쓰이던 말이 아니라 중국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널리 쓰이던 말입니다. 이 삼국지 기사 가 쓰여졌던 후한시대에는
하호(下戶)가 '힘없고 가난하지만 독자 적인 가계를 가지며 자유로운 신체를
보유한 소작농'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호란 당시
귀족층을 지칭하는 제가, 호민, 혹은 대인 등과 대비되는 열세한 이들을
가리키는 통칭이었다는 것입니다. 쉽개 설명하자면 힘없고 가난하되
그렇다고 노예신분은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양식과
고기와 소금을 운반해 주었던 대상, 즉 좌식자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인서트-22.
(42:29 이 좌식자 만여 구는 일종의 지배층이라고 볼 수 있고 바로 전사집단이라고
할 수 있죠. 초기에는 군사활동에 참여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특권이었습니다.
왜냐면 군사 활동 정복활동의 결과 어떤 성과물들을 분배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런데 점차적으로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쟁의 규모가 커져가면서
지배층만으로 전쟁을 수행하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그 때부터 일반 민들을 군대에 군사로 동원하게 되죠. 즉, 군역 이라는 게
등장하게 됩니다. 대체로 4세기 이후에 수만 명들이 동원되는 이런 전쟁에는
귀족들이나 지배층만이 아니라 일반민들이 참여하는.43:43:17)
<해설> 앉을 좌(坐)자에 먹을 식(食)자를 쓰는 좌식자를 글자 그래도 풀이 한다면
'앉아서 먹는 사람' 즉 놀고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되지만, 이들은 놀고먹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농사짓는 일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 바꿔 말해서
정복활동에 종사하는 즉 군인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효과> (말 타고 거리 걸어가는)
군인 고구려 전사들에게 알린다! 위나라 군사가 우리의 국경을 침범하였다!
적군을 소탕하기 위해서 대왕마마께서 군사를 지휘하여 출정할 것이다!
전사들은 모두 전투 준비를 갖추고 나오도록 하라!
<해설> 전쟁이 벌어지면 이들 좌식자들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소지한 채로 병영으로
집결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갑옷이나 무기 등의 군사 장비를 개인이
지참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 초기에는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은 신분상으로 상당히 선택받은 계층이었습니다.
<효과> (군사들, 말 타고 달려나가 상대와 엉켜 싸우는)
장수 적군이 물러서고 있다! 도주하는 적군을 쫓아가 소탕하라!
<효과> (군사들 함성 지르며 몰려가는)
장수 이제 적진을 점령하였다. 병사들은 민가를 약탈하라!
<효과> (달려가서 마구 부수는)
(민간인들 비명 지르며 도망치는)
<해설> 전쟁에 참여했던 전사들은 정복전쟁을 통해서 노획한 약탈물을 분배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사서에서는 그들을
좌식자라라고 표현했지만 그저 놀고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약탈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던 셈이지요. 이들이 분배받을 수 있는 노획물 중에는
군대에서의 지위에 따라서 정복지의 땅일 수도 있고 포로일 수도 있었습니다.
일반 평민들의 경우 무기를 들고 싸울 자격은 없고, 기껏해야 군량이나
전쟁 장비들을 운반하는 역할 밖에 할 수 없었으니 전장에 나가 싸우는
군인들이 부럽기만 했겠지요. 그런데,
왕 짐이 군사를 거느리고 요서를 침공할 것이다. 기병과 보병 만 명을 징발하여
대기하도록 하라!
<해설>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 단위의 군사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전쟁의 규모가 커졌고,
낭독자 수나라 군사의 수가 1백13만3천8백 명에 이르렀는데, 외형적으론 2백만 명이라
하였다. 그러나 군량수송을 맡은 자의 수는 그 두 배가 되었다.
<해설> 이렇듯 고구려군이 상대해야 할 적군의 수가 수십만에서 수 백만에 이르다보니
이제는 일부 선택받은 귀족들이나 지배계층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국민 개병제 성격의 군역이라는 제도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특혜가 줄어든 대신에,
일반인들에 대한 사회적 지위나 국가의 대우가 향상됐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너무나도 상세한 설명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KBS방송내용도 일견 타당한 것 같지만...논리적으로 공감이 안가네요.(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니 기분나빠하지 마시구요. 님 설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온 중국사람이 쓴 기록에 상황과 논리를 지엽적으로 맞춰가다보니 위와 같은 논리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네요.
중국같은 경우에 초기 부여,고구려 당시 이전보다 훨씬 이전에도 이미 피지배층을 동원해서 전쟁을 한 것이 (중국역사기록이긴 하지만) 역사기록에 있구요. 고조선도 그에 대항할 정도로 막강했다는 기록을 보면, 이미 그 당시에도 피지배층을 동원해서 전쟁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구요.
중국 한나라나 또는 고조선 이후 시기의(위만조선시대에 이미 전쟁은 어떤 지배층의 이해관계가 아닌, 국가의 존립 여부를 결정짓는 국가지대사였는데 말이죠) 연맹국가들이 일부 지배층만으로 군대를 구성해서 전쟁을 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네요.
***하지만, 님이 상세하게 써주신 KBS방송내용을 읽고 나니, 공무원 기출 지문을 애써 억지로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암튼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