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 저녁
평소보다 일찍 퇴연(退硏)했다. 집에 당도하기 3분 전쯤, 초등학교 2~3학년은 됨직한 아이 하나가 다가오더니 공수(拱手)하고 큰소리로 “안녕하세요?”한다. 순간 깜놀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착해라. 안녕.”했다. 흐뭇한 마음에 몇 발자국 걷다 돌아보았다. 아이는 씩씩한 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녀석의 모습이 오래도록 남는다. ‘요즘에도 저런 아이가~.’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어렸을 때는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보았다. 그때는 동네에서 어른을 만나면 누구랄 것도 없이 다가가 인사를 했다. 어른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명절이면 집안 어른은 물론 이웃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기까지 했다. 사실 예절(禮節)은 누가 특별히 가르쳐 억지로 지키는 규칙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연스러운 생활의 습관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불릴 만큼 예(禮)를 소중히 여겼다. 시대가 변하고 생활방식이 변했다고 마음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 문화 깊은 저변엔 사람을 존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여전히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너무나 익숙했던 풍경이 어느새 보기 드문 모습이 되어버렸을 뿐 아닐까. 그래서 오늘 만난 아이의 작은 인사가 특별히 다가왔던 것인지 모르겠다.
거창한 예절이 아니어도 좋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건네는 밝은 인사 한마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작은 몸짓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오늘은 보기 드문 모습이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흔한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아이의 맑은 인사가 또 다른 인사를 낳고, 그렇게 작은 예절이 우리 사회 곳곳으로 번져갔으면 참 좋겠다. 아이의 씩씩한 뒷모습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