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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직 근무하면서 서핑하다가 찾은것인데 너무나 재밌어서 이렇게 공유코자 합니다.
두고두고 알아도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꼭 알아야 할 만한거 같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를 너무 등한시하고 심지어는 이게 우리의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상의학이 발달하고 기체조가 외국에서 유행인 지금시대에 우리의 것을 확인하고 어떻게 현대 디자인에 접목 시킬지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전통적인 디자인은 많겠지만 어디에나 들어갈 수 있는 문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문양이란
형태, 색채와 함께 조형예술을 구성하는 미적 표현요소의 하나인 문양은 일반적으로 건축, 조각, 공예, 디자인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조형예술품의 표면에 상징의 미를 담아 여러가지 형태로 장식된다.
문양의 기원과 발전
사람들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 면이나 빈 공간을 보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그러한 백색공포 혹은 공간 공포를 진정하기 위한 심리학적인 기원설이 있다. 한편, 인간이 자신의 몸을 장식하거나 옷을 입기위해 편물이나 직물을 짤 때 나타나는 기하학적인 문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기원을 지닌 장식적인 문양도 본래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주술적인 목적이나 종교적인 상징 그리고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목적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소재의 문양이 지역이나 시대, 혹은 종교와 문화 등과 같은 여러 조건에 의해 표현상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또한 한번 만들어진 문양이라 할지라도 같은 형태로 계속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문화에 자극을 받거나 영향을 받게 되면 다른 문화적인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미 있었던 토착문양이 외부의 문양과 접촉하여 새로운 문양을 형성, 토착화되거나 외부문양에 흡수되어 소멸되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각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 환경에서 시작된 문양은 여러 문화조건에 따라 변모되고 발전하면서 유행되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또다시 채택되어 유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문양은 양식적인 면에서 볼 때 몇 단계의 변천단계를 겪는다. 문양이 발생하는 초기에는 종교나 사상적인 의미를 지닌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었다가, 의미내용이 복잡해지거나 또는 토착화되면서 단순한 디자인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초기의 문양이 가졌던 다양한 형태와 활기찬 묘사가 외부의 자극을 받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서 문양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형태도 급속히 경직되기도 한다. 더욱이 문양은 문양을 형성시킨 지역 사람들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담고 있기 때문에, 문양의 양식 변천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그 문양을 이용한 사람들의 의식변화나 생활의 변모를 구체적으로 파악 할 수 있는 좋은 증거라고 할수 있다.
문양의 요소
문양은 소재, 형식, 의미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소재가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동식물과 같은 자연적인 것, 자연의 소재에서 세부를 단순화하여 시호화 한것, 점이나 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인 것이 있다. 문양의 소재들은 종교나 신화적인 주제를 상징하거나 사용하는 사람의 소망 등의 내용을 담게 된다. 따라서 문양은 단순히 장식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신분사회에서는 신분을 구분하는 표시로도 사용하였는데 동양에서 용문양은 왕을 뜻하며 봉황은 왕비를 상징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사용을 금지 하였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문양은 지역적인 특성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인도, 중국 및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양인 연꽃의 경우 다 같은 소재이면서도 각각 나라마다 조금씩 의미와 양식 표현이 다르다.
문양의 구성과 배치
문양은 형성에서 응용에까지 매번 균형, 율동, 조화, 대비, 비례, 통일, 반복 등의 조형요소가 고려되며, 실제로 미술품의 표면에 장식되거나 결합될때에는 그 외에도 강조, 연속, 변화, 착시, 색채 등을 염두에 두고 배치하여 그 효과를 증가시키게 된다.
이 처럼 문양의 구성은 미적인 원리에 기초를 두었으며, 건축, 공예, 디자인 등 일상생활에 적용되었던 미술 분야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그 문양 소재들은 형태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문양을 덕용해야 하는 기물의 표면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같은시대, 같은 지역의 문양이라도 문양의 배치가 달라지게 되며, 결국 전혀 다른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초문의 경우 띠문양으로 배치한 경우와 전면에 넓게 배치한 경우 대단히 큰 차이를 느끼게 되는것과 같다.
단독문양
한정된 공간의 표면에 한 개의 문양을 단독으로 배치하거나 정해진 면을 문양으로 채우는 방법 또는 같은 종류나 다른 종류를 모아 하나의 독립된 단위 문양으로 배치하는 것 등이 있다.
연속문양
정해진 면에 문양을 반복하여 배치하는 것으로 이방연속, 사방연속 등이 있다. 이방연속의 경우 띠의 형태로 반복되는 것으로 한 단위가 좌우 혹은 상하로 연결되거나 사선방향으로 연속하는 것이다. 반복하는 방향을 고려하여 배치하는 것이 전체구성의 기본이다. 사방 연속문양은 상하좌우 네 방향으로 반복되고 연속하여 전개되는 것이다. 사방연속의 배치에는 방형, 계단식, 능형, 산점상 연속 등이 있다.
<연속문양>
동물 문양
1) 봉황
봉황은 고대 중국의 전설에서 유래된 상상의 새로 어질고 현명한 성인과 함께 세상에 나타나는 새이다. 수컷을 봉(鳳)이라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지만 본래는 암수를 구분하지 않고 '鳳'자만을 사용하였다.
고대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봉황의 생김새는 닭처럼 생겼지만 5색의 깃털 무늬를 지니고 울음소리는 5음을 내며, 오동나무에 깃들이고,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산다는 상서로운 새로서, 머리의 무늬는 덕(德)을 나타내고, 날개의 무늬는 의(義)를, 가슴의 무늬는 인(仁)을, 배의 무늬는 신(信)을 뜻하고 있어 덕·의·예·인·신을 골고루 갖추고 있으므로 용, 기린, 현무와 함께 사령(四靈)이라 불리었다.
더 자세한 봉황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봉황의 머리 앞쪽은 기린의 수컷, 뒤쪽은 사슴, 몸은 뱀, 꽁지는 물고기와 같다"라고 되어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여덟 가지 짐승의 좋은 형상만을 갖추고 있다고 했는데 앞모습은 군신의 의를 지키는 기러기며, 뒷모습은 어진 성군을 상징하는 기린이다. 턱은 천심을 전달하는 제비를 닮았고, 부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밝음을 불러내는 닭의 부리를 닮았다. 목은 풍년과 다신을 불러들이는 뱀의 목이고 꽁지는 물고기 꽁지인데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며 언제나 무리지어 다닌다하여 병권(兵權)을 상징한다. 이마는 결백하고 장수하는 황새의 이마요, 등은 재앙을 막고 앞일을 예견하는 거북이의 등이다.
옛사람들의 상상에 의한 이 모습은 군왕이 갖추어야 모든 조건을 상징적으로 갖추었다하여 군왕을 상징해 왔으며, 왕비의 적의나 원삼의 대란치마에 금실로 수놓았다. 지금도 대통령의 전용휘장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상장이나 상패, 휘장 등에서도 봉황을 볼 수 있다. 봉황은 암수가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베개에 봉황을 수놓아 부부의 애정을 나타내며, 부인들의 머리 장신구나 민예품으로 많이 만들어 졌다
2) 용
용과 관련된 단어로 입신출세한다는 말에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을, 풍농·풍어를 비는 제례에는 "용왕제(龍王祭)"란 말을 사용하였다. 또한 용두사미(龍頭蛇尾), 화룡점정(畵龍點睛)등 수많은 고사성어가 생겨난 우리 겨레와 가장 친숙한 상상의 동물이 바로 용이다.
용의 종류는 외형이나 성격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하는데, 용경(龍經)에 의하면 "규룡은 용의 무리 중 우두머리요, 능히 무리를 나오고 물러나게 한다. 구름을 타고 비를 내려 창생을 다스린다"하였으며 사룡(四龍)중에 우두머리인 황룡은 사방 중에서 가운데를 관장하는 용이라 하였다.
이 용의 모습 대한 설명을 보면 몸통은 뱀과 같고 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이 있어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으며, 머리에는 사슴과 같은 뿔이 있다.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 사람이 이에 닿으면 죽게 되고 토끼 같은 눈, 소의 귀, 뱀의 목, 범의 발바닥, 매의 발톱, 큰 조개 같은 모습의 배를 가졌다고 한다.
용의 모습은 표현이 매우 다양하다. 중국의 고문헌 삼정구사설(三停九似說)에 나타난 용의 모습은 "낙타의 머리에 사슴의 뿔, 토끼의 눈, 암소의 귀, 뱀의 목, 개구리의 배, 잉어의 비늘, 매의 발톱, 범 발바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용은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또 교룡(蛟龍), 사룡(蛇龍), 청룡(靑龍), 적룡(赤龍), 백룡(白龍), 현룡(玄龍) 등 종류가 많다. 용의 종류가 복잡하고 많은 까닭은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부각시키려고 한데에 기인한 결과로 보인다. 용의 모습은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에 걸쳐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궁궐 유물, 사찰 문화재에 특히 많이 보인다.
이와 같이 용은 전통적으로 고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비유되어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앉는 걸상을 용상(龍床), 의복을 용포(龍袍)라고했다. 왕을 용에 비유하게 된 것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화에서는 청룡, 황룡, 흑룡, 어룡등을 볼수 있다. 청룡은 벽사를 뜻하고, 황룡·백룡은 임금, 즉 황제를 뜻하며, 흑룡·어룡은 가뭄이 들때 기우제를 올려 비를 구하는 대상이된다. 용을 그리는 것에도 격식이 있는데 왕실이나 불교적인 내용의 용은 발톱을 다섯으로 그린 오조룡(五爪龍)이 통용되었고 민간에서는 사조(四爪)이하로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민간에서도 기우제때 사용되었던 용 그림에는 칠조의 용을 진채로 그리기도 했는데 이는 오조룡을 사용하였던 계층에 대한 반발이나 항거라기 보다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 진다. 또한 우리나라의 불교가 삼국통일이래 독자적인 호국신앙으로 발전함에 따라, 용은 불교의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수용되었다. 즉 호법불교(護法佛敎)와 어울려 불법을 보호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신장(神將)으로 부각되어, 호법룡으로 믿어졌다. 황룡사 9층탑 건립과 문무왕을 장사한 대왕암(大王巖)은 대표적인 예이다.
또 용은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에서도 알수 있듯이 관계(官界)진출이나 과거급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용은 만물 조화의 능력을 갖춘 영험과 신비의 상징 혹은 권위의 상징으로 간주되어온 한편 길상과 벽사, 또는 수호의 능력을 동시에 갖춘 동물로써 애호되었다
3) 거북 (현무)
신구(神龜)라 불리는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함께 사영수(四靈獸)의 하나로 3천년을 산다고 전하여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다. 등껍질은 하늘의 지붕을 나타내고 그 표면에는 별자리가 나타나 있으며 배의 껍질은 땅을 나타낸다. 즉 상하의 껍질은 천지 음향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 수명과 우주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북은 수명이 길고 수륙양생이라는 특성으로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제왕의 출현과 관련한 주술적 제의에서 불려진 구지가(龜旨歌)에서 거북은 신성한 군주의 출현을 촉구하는 백성의 뜻을 신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개자였다.
또한 거북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장수하는 사람을 경하하고 더욱 만수무강하기를 빌 때에 "귀령학수(龜齡鶴壽)"라는 글귀를 써서 보내기도 한다.
점(占)과 관련된 것으로 거북의 등딱지는 앞날의 길흉과 운세를 보는데 사용된다. 등딱지를 태워 그 갈라지는 모양에 따라 점을 보는데, 이것을 귀복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占"자의 모양이 거북등에 막대기를 꽂고 그 방향을 가리키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현무라 이름붙인 까닭에 대해서 설명한 글이 있는데, "현무는 암수가 한 몸이고 거북과 뱀이 모인 것을 이른다.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현(玄)이라하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武)라고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북방, 수기(水氣), 현(玄:검정) 등 모두 오행설에 근거한 것이고, 암수가 한 몸이라 한 것은 암수가 합쳐진 성(性)을 상징한다고 하여 민간신앙에서 남여상사의 신을 모시기도 한다.
위의 사신(四神)은 일본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데, 큐슈(九州)의 작은 농촌인 야나가와시(柳川市) 미쯔바시진자(三橋神社)의 축제에서 진자의 앞마당에 네 귀둥을 세우고 이 사신이 곱게 수놓아진 깃발을 걸어 놓고 있었다. 이 깃발은 축제 때에만 내거는 신성한 것이다."
현무는 북방의 수호신으로 북쪽에 있으면서 수기(水氣)를 맡은 태음신(太陰神)이다. 동방의 청룡과 남방의 주작, 서방의 백호와 함께 사신(四神)의 하나로 거북과 뱀이 배를 맞대고 휘어 감긴 그림으로서 현무를 상징한다.
4) 두루미(학)
한국적인 의식으로 학은 승화나 초월등과 관련이 있다. 신선들이 외출할 때 타고 다닌다고 믿었으며, 이 학은 천년만에 푸른색으로 변하여 청학(靑鶴)이 되고, 다시 천년이 되면 검은 색으로 변하여 현학(玄鶴)이 되는 불사조(不死鳥)로 믿었다. 그리고 이 청학은 지리산에 살고 있다고 전해져, 그곳을 청학동 이라하여 옛 부터 신성시해 왔으며 길지(吉地)로서 한국인의 이상형을 상징하고 있다.
학은 정통회화나 민화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대체적으로 구름 속을 날고 있거나 소나무를 배경(鶴壽松齡圖)으로 하고 있다. 또 장생의 의미로 소나무 대신 바위를 그리기도 했다.
학은 다른 날짐승과 달리 청순하고 깨끗하며 외진 곳에서 은거하면서 유유하고 점잖게 사는 모습은 은둔하는 군자의 모습과 닮았고 이런점 때문에 새들중에서 가장 높은 품계를 지니는 일품의 새로 우러렀다. 또한 벼슬아치의 관복 흉배에 문관일 경우 학을 수놓았는데 이는 학이 관직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학의 문양은 고려시대에는 상감청자에 운학무늬가 많이 시문되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청화백자와 자수품 등 각종 민속공예품이나 건축의장, 민화 등에서 십장생의 하나로서 학수(鶴壽)의 뜻으로 쓰였다.
고려 때의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은 여러 개의 작은 원 속에 위로 비상하는 구름과 학이 들어 있는 운학 무늬가 전면에 시문되고 있는데 이는 '상서로운 구름과 해'를 상징한다.
많은 물, 푸르른 소나무는 희고 깨끗한 깃털, 긴 다리와 우아한 목의 학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사람들은 그 청렴함과 고고함을 사랑해왔다.
다양한 화조도 병풍 가운데 첫 장은 송학이 끝장은 오동나무와 봉황이 주로 그려진다. 이 화조도에 나타나는 동물이나 꽃은 대개 쌍을 이루는데 이는 부부화합을 나타낸다. 송학도의 경우 한 쌍의 학, 사슴을 비롯하여 소나무, 구름, 바위, 불로초 등이 곁들여져 장생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5) 박쥐
박쥐는 얼핏 생각하기에 그 생태가 길상과는 반대되는 듯한 이미지를 주는 동물이지만, 조선시대의 가구나 자기류 속에 문양으로서의 많은 장식 사례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강한 길상사상으로 미루어 길상동물임을 추측하게 한다.
박쥐를 행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해석 하는데는 박쥐의 한자어 편복의 박쥐복자를 복복(福)자로 해석하는데서 기인한다.
또 박쥐는 하늘나라의 쥐라고 하여 천서(天鼠)라고도 하고, 신선의 쥐라고 하여 선서(仙鼠)라고도 한다. 그래서 박쥐는 일상용품이나 회화, 공예품, 가구의 장식, 건축 장식등의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어 오고 있다.
길상문양으로 사용 된 예를 보면, 베갯모에 쓰인 것은 다산(多産)과 득남(得男)을 상징하였다. 박쥐의 강한 번식력과 하늘을 덮듯이 날아다니는 박쥐무리를 보면 다산을 떠올리게 된다. 또 박쥐 삼작 노리개는 금과 은으로 박쥐모양을 새긴 세가지 노리개를 한 고리에 단것이며 이것도 다산을 기원하는 뜻에서 지녔다.
박쥐는 오복(五福)을 가져다주는 동물이라고도 믿어왔는데, 오복이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수호덕(收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부작(부적)에도 오복의 수호신으로 상징되며, 덕을 많이 쌓는 사람의 행복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는 표상으로 그려진다.
또 흰 박쥐는 천년 묵은 것이라 해서 잡아먹으면 장수한다고 믿었다. 붉은 박쥐(황금박쥐)가 나타나면 특별히 좋은 징조라고해서 사악한 기운을 막고 큰 복의 징표라고 믿었다. 지금도 중국식당에 붉은 글씨로 쓴 복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는 것은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있듯이 복이 달려 있기를 비는 뜻이다.
풍수지리서에는 산(山)모양이 박쥐 형일 때, 이곳에 묏자리를 정하면 후손들이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고 부귀를 누리게 된다고 한다.
6) 호랑이
우리의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젊잖게 입을 다물고 있거나 혹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거나 때로는 바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다정스럽고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모습의 호랑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은 수호적인 역할을 했던 사신도(四神圖)의 한 변형으로 보이며 좌청룡, 우백호로 왼편은 용이 막아주고 바른편은 호랑이가 막아준다는 벽사용으로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매년정초가 되면 궁궐과 여염집에서 벽사의 수호신으로 호랑이를 그려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붙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호랑이도 사납고 용맹스러운 험상궂은 모양은 아니다. 우리 호랑이는 칼이나 창을 쥐고 두 눈을 부릅뜬 중국의 수호신이나 불교의 험상궂은 사천왕상과는 대조적인 웃음기를 띄고 있다. 사납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다. 위엄이 있으면서도 무섭지 않고 늠름한 자태, 이것이 우리 호랑이의 모습이다.
호랑이는 용험스러운 짐승이라서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주고 병난, 질병, 기근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벽사의 뜻으로 그려지는 호랑이 그림 중에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것이 있는데, 이 그림속의 호랑이는 대개 포효하는 모습이거나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악귀를 향해 정면으로 도전하여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배경이 되는 대나무도 벽사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나무가 타서 터지는 소리에 귀신이 놀라 달아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림이 아니더라도 호랑이가 벽사의 의미로 사용된 예는 호랑이 발톱노리개나 시집가는 신부의 꽃가마에 덮는 호피 문양의 가마 덮개, 또는 상여나 무덤가에 세웠던 호상 같은 것들이 다 그것들이다. 이것은 어떤 자연물이나 인공물을 몸에 지니거나 접촉함으로써 그 주력의 힘이 미친다는 숭배에서 비롯 된 것이다.
7) 기린
기린(麒麟)도 봉황과 함께 상상의 동물이다. 사슴의 형상에 뿔이 하나이고 전신에 물고기 비늘이 덮이고 꼬리는 소와 같다. 중국의 전 한 말에 지은 경방(京房)의 [역전]에 보면, "기린은 몸이 사슴과 같이 크고 네다리는 소발굽 이고 갈기는 말과 같고 등 털의 빛깔은 5색이고 배의 털은 황색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을 이렇게 상세하게 적어내고 있다.
기린은 인자한 동물로 봉황과 마찬가지로 기린이 나타나면 세상에 어진 성왕이 나와 왕도를 펼 길조라고 했다.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있는데 그 끝에 살이 있어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생물을 아껴서 풀도 밟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인수(仁獸)라하고 백수(百獸)의 영장이라는 점에서 걸출한 인물에 비유되고 뛰어난 기품을 보이는 젊은이를 기린아(麒麟兒)라고 한다.
8) 물고기
우리의 민화에서 물고기들은 해초와 꽃나무 또는 바위와 어우러져 평화스러운 낙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러 마리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생동감 넘치고 구도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 방법으로 화면의 분위기는 유유자적하고 평화스럽고 한가로운 분위기로 가득차있다.
어느 문양이든지 같은 소재라도 장식하는 사람이나 목적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여서, 일반적으로 부녀자들 사이에서 널리 애호하는 물고기 문양은 다남자(多男子)의 의미와 함께 부부화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삼여(三餘:중국에서 한자의 '魚'자와 '餘'자가 발음이 같아서 세 마리의 물고기는 '三餘'를 의미하기도 한다)문양은 주로 사랑방에 장식되어, 세 가지 여유 있는 시간(밤, 비 오는 날, 겨울)을 잘 활용하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쌀뒤주나 서랍의 손잡이에서 물고기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물고기가 밤이건 낮이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여 귀중한 것들을 지킨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용 문양에서도 설명한바 있듯이 등용문(登龍門)이란 말이 있다. 입신출세와 관련한 것으로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것처럼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출세하는 것을 등용문이라 한다. 과거급제를 위해서 힘들게 면학에 힘쓰는 선비들을 등용문에 오르기 위해 사투하는 잉어에 비유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였다. 그래서 잉어는 물위로 힘차게 뛰어 오르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아침 해와 함께 그려지는 경우도 있고 거칠게 출렁이는 파도가 그려지고 하늘과 여의주가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불교의 사찰과 관련된 물고기를 보면 건물의 기둥이나 벽 천정 등에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목어(木魚), 목탁, 풍경(風磬)의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목어와 목탁을 이 물고기로 만든 것은 앞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이 물고기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 것과 같이 수행도 항상 부지런하게 도를 닦으라는 뜻에서였다 고 한다. 목어의 모양을 줄여서 간단하게 만든 것이 바로 목탁이다. 이 목탁의 손잡이는 물고기의 꼬리가 몸쪽으로 붙은 형태이며, 목탁에 뚫어져 있는 두 구멍은 물고기의 아가미를 뜻한다. 또한 건물에 물고기를 그려 넣은 것은 물고기가 물에서 살기 때문에 화재를 예방하려는 의미에서였다.
식물 문양
1) 연꽃
인도의 토속 신앙에 기초하여 빛과 생명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연꽃은 불교 성립 이후에는 부처의 상징으로서 불교를 설명하기 위한 교리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연꽃은 오랜 수행 끝에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되고, 빛의 상징이자 생명의 근원인 연꽃 하나하나에 부처가 탄생한다는 무한 창조 관념이 이루어 졌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연꽃은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상징한다. 극락 정토는 연꽃으로 장엄된 아미타여래의 세계이다. '화엄경'에서의 '연화장(蓮華藏)세계'도 부처의 세계이며, 정토의 세계이다. 세계의 맨 밑에 풍륜(風輪)이 있고, 그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다. 이 향수해 속에 커다란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속에 함장된 세계가 연화장의 세계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쳐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인간들이 호수의 연꽃으로 보였다고 한다. 어떤 것은 진창 속에 있고, 어떤 것은 진창을 헤어나려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간신히 머리만 물 위로 내밀고 있고, 어떤 것은 꽃을 피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러한 연꽃의 모습은 소해를 헤매고 있는 중생의 모습이었다.
불상은 신성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니다. 이것은 무명(無明)과 어리석음, 곧 진창 속에 살더라도 더럽혀지지 않고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관음보살이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원래 갖춘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나아가, 연꽃은 극락세계나 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화세계나 연방(蓮邦)은 극락세계를 말하고, 연경(蓮境)이나 연사(蓮舍)는 사원을 말한다.
연꽃의 생김새를, 축을 중심으로 방사되는 바퀴살에 비겨, 연꽃은 윤회(輪廻)의 가르침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연꽃은 윤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구려와 백제 고분 벽화에서 연꽃을 볼 수 있다. 고구려 쌍영총(雙楹塚)의 경우, 천장 중앙에 큰 연꽃이 배치되어 천계(天界)의 중심을 나타내고 있다. 백제의 부여 능산리 고분벽화의 경우 천장에 그려진 연화운문도(蓮花雲紋圖)는 우미하고 섬세한 백제적 감각으로 천계를 나타내고 있다.
연꽃은 바퀴같이 생긴(法輪) 꽃 모양과 진흙 수렁에 뿌리를 내리고 맑은 꽃을 피우므로 부처 또는 그 대좌의 상징으로 쓰인다. 특히 꽃잎 하나하나가 바퀴살과 같아, 현존의 끝없는 순환에 관한 가르침을 암시한다. 불타는 신성한 연꽃위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흔히 묘사된다. 또, 연꽃은 팔보(八寶), 즉 불타의 발바닥에 그려진 상서로운 기호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연꽃 그림은 불교사상과 관련되어 그 밖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일은 비교적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즐겨 그려지고 있으며, 기쁜 감정을 끌어 올리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시원한 그림으로 존중 받았다. 흙탕물 같은 더럽혀진 연못에서도 곱고 사랑스러운 꽃이 핀다고 하는 감격은 자연히 연꽃에 대한 정감을 끌어 올렸을 것이다
2) 모란
꽃중의 왕으로 부귀와 명예를 상징한다. 모란은 다른 문양들과 결합하여 다양한 의미를 표현하는데, 모란꽃을 병에 꽂은 문양은 "富貴平安" 이라는 뜻이 되며모란과 白頭鳥한쌍과 결합되면 "머리가 하얗게셀때까지 부귀하다"는 뜻이 된다.
선덕여왕이 나라를 다스린 16년간에 예지(豫知)한 일이 세가지 있다. 다음은 그 중의 하나이다. 당(唐)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3색 모란그림과 그 씨앗 3되를 보내왔는데, 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곧 뜰에 씨를 심게 했는데 그 꽃이 피어 떨어질 때까지 과연 그 말과 같았다. 여왕은 "꽃을 그렸는데도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왕(唐王)이 나의 배우자 없음을 희롱한 것이다."고 하였다.
또 모란꽃은 자라나는 형태를 보고 앞날의 길흉을 점치는 점구(占具)로 사용된다. 꽃과 잎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피어나면 복된 앞날이 있고, 꽃이나 잎이 갑자기 시들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화가들은 모란꽃을 그릴 때 풍성하고 화려하게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 모란꽃을 수 놓았다. 또 왕비나 공주의 옷도 모란 문양으로 장식하였다. 부귀영화와 함께 천하제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여 절세미인을 모란(天香國色)에 곧잘 비유하였다. 덕스럽고 복 있는 미인을 활짝 핀 모란 꽃에 비겼다. 또, 선비의 청운의 꿈이 담긴 책거리에도 모란꽃을 그렸는데, 모란은 부귀와 공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모란은 여러 그루가 함께 어우러져 피어야 더욱 아름답다. 그러한 모습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을 상징한다. 그래서 모란으로 꾸민 병풍을 모란병(牡丹屛)이라 하여 혼인식 등 경사스러운 날에 썼다. 궁궐에서 애용된 석모란(石牡丹)병풍은 궁모란이라고 달리 불렀다.
모란은 천향국색(天香國色)의 꽃 중의 꽃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와 화목을 상징하여 복식, 가구 등의 장식 도상으로 널리 쓰였다. 한편, 모란꽃에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려 넣는데, 나비만 그려 넣지 않은 까닭은 모란꽃이 향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고양이를 넣어서 부귀모질(부귀모질)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3) 매화
매화(梅花)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삶의 의욕과 희망을 되찾아 주는 눈 속의 꽃이다. 양가의 여인들은 대나무의 절개 상징성에 더하여 매잠 대신 매죽잠(梅竹簪)을 사용하였다. 조선 세조 때의 성삼문은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고 하였다.
매화도 한 철, 국화도 한 철이라는 이라는 속담이 있다. 매화가 아무리 사람들의 애호를 받는 꽃이라 하더라도, 그 생명성은 한 철에 그치므로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뜻이다.
매화의 열매는 한방에서 약으로 쓰였는데 이는 약성은 온(溫)하고 산(酸)하며 수렴(收斂), 지사(止瀉), 생진(生津), 진해(鎭咳), 구충(驅蟲) 등의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궁중에서는 똥을 매화라고 하였고, 임금의 대변기를 매화틀이라고 하였다. 왕의 신선성을 높이고자 한데서 생겨난 상징이라고 본다.
매화의 다섯 잎사귀는 다섯의 상서로운 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운수를 예측하는데 사용하였다.매화는 몸종이나 시녀 이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성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며 기생집 침상도구에는 매화그림이 많으며, 이도매(二度梅)는 재혼을 말한다. 또, 양매병(楊梅病)은 매독(梅毒)으로 몸에 매화같은 반점이 보인데서 유래한다.
매화는 고려이래로 우리 미술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진 소재이다. 사군자(四君子)라 일컬어지는 매(梅), 난(蘭),국(菊), 죽(竹)이 묵화로 즐겨 그려졌으며 고려 상감청자에는 매화, 대나무, 소나무가 그려진 매병(梅甁)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청화백자 매조문 항아리(靑華白磁梅鳥紋 )등에서 매화가 즐겨 시문(施紋)되었다. 이러한 매화는 선비의 아취를 상징한다.
4) 인동 당초
인동(忍冬)은 근동지방 기원의 팔멧트(Palmette)무늬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딘다고 하여 인동이라하며, 당초(唐草)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초화문이 근동지방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 왔고 그것이 다시 우리나라, 일본등지에 퍼진것이다.
덩굴식물로서 끊어지지않고 오래도록 계속 이어 때문에 장수한다(益壽)는 길상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주로 불교적인 장식문양으로 많이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당(唐)자를 쓸 때는 보통 중국에서 유입된 것을 의미하는데 당초라는 명칭도 이러한 중국 전래의 덩굴무늬를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같은 덩쿨무늬라도 그것이 인동과 결합하면 인동당초, 보상화와 결합되면 보상당초 등으로 부른다.
덩쿨인 당초의 속성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쉬지 않고 살아간다(生生不息)"의 의미를 갖는다. 연꽃, 포도, 인물, 새등과 결합되어 공범위한 분야에 활용되었다.
우리나라 당초문의 진면목의 발휘는 통일신라에 시작되어 고려의 범종의 높은 소리와 함께 개화하였는데, 신라의 와당에서 볼 수 있는 세련되고 섬세한 Sassan조풍의 당초문에 비해 고려의 것은 풍성하고 호화로운 북위를 통한 Hallenisme양식에 연결된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사례가 다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랫동안 문양의 옥좌를 차지하고 있던 안동당초문은 고려를 고비로 점차 쇠퇴하였으나 조선조 공인의 단순화적 천재에 의해 다시 재생승화하게 괴는데, 주로 가구 공예품에 나타난다.
5) 보상화
인동당초문이 Palmette를 서곡으로 하는 교향곡이라면, 보상화문은 화려한 원무곡(圓舞曲)에 비할 수 있을 것이며 당초 중의 여왕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문양은 구성 형태가 복잡한 탓으로 그 조성이 분명치는 않으나 화당초(華唐草)의 공상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상적 상상 동물인 용문이 그러하듯 이 보상화문도 그 조형성분이 다양하다. 여기에 동원된 대체적인 모티브를 분석해 보면, 이른 무렵의 것으로서는 주로 서방적 Palmette적 엽식(葉飾)을 비롯한 포도형 운기문적 탈화의 만발형(曼髮形)등의 요소로 직성(織成)되며, 불교 동점의 이후에는 연화문적 요소도 가미되어 더욱 다양한 선율이 계속된다.
이 문양이 우리나라 사례 중에서 완벽하게 정형화 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와전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화려한 이중팔엽(二重八葉)의 연화보상문으로서, 네 귀퉁이의 Palmette 당초와 호응하여 완정한 양식 통일의 조화미를 이루고 있다.
고려의 청동종문(靑銅種紋)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섬세한 기교를 접할 수 있고 청자의 문양이 보여주는 화려한 표현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표현 양식이 서로 다른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서로 다른 문양의 대상물의 재질에 순응한 표현의 다양성이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반 공예품에서는 보상화문 요소의 구성은 보기 드물며, 그 형태도 조선시대의 특색인 단순화의 시전(施展)을 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유는 문양이 지닌 다양하고 풍부한 구성율을 간결 단순화 한다는 것에는 조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식물문양은 본래 강한 서방적 요소를 지닌 것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에서 보듯 완벽한 소화에 의하여 민족적 문양으로 양식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조형요소의 복잡하고 다양한 장식성이 기능주의적 직재성을 전제로 하는 현대 감각에서는 거리감이 있으나 조선시대의 공인들의 탁월한 단순화의 전형을 찾아냄으로서 현대적 활용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진달래가 봄꽃의 여왕이라면 국화(菊花)는 가을꽃의 왕자이다. 이러한 국화는 그 종류도 많아 산국화, 들국화, 수국화(水菊花), 울릉국화 등 10여종에 이른다. 또 상하걸(霜下傑), 동리(東籬), 동리군자(東籬君子), 은일화(隱逸花), 동리가색(東籬佳色) 등으로 불린다.
예부터 음력 9월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민간에서는 특별한 음식을 장만해 단풍이 물든 산이나 경치 좋은 계곡으로 나들이를 하였다. 이 때 즐겨 먹는 음식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국화전과 국화 만두, 국화주이다.
국화는 매화 난초 대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시인묵객의 사랑을 받아 왔다. 선비들은 국화가 뭇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하여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는 모습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에 즐겨 비겼다.
국화는 고려이후 각종 공예품에 많이 사용된 문양의 소재이다. 고려청자 상감 국화문은 한적한 가을의 들국화를 묘사하고 있다. 또 조선시대에 성행한 분청사기 국화 인화문(印花紋)도 고려 상감청자 국화문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나전칠기(螺鈿漆器)에서도 같은 소재가 나타나고 있다.
민화 중에는 국화에 새가 날아드는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국화가 핀 뜰에 참새가 날아드는 그림은 온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새는 까치와 같이 기쁨을, 국화는 수(壽)를 뜻한다. 또, 괴석(怪石)에 층층이 벌여 피어 있는 국화를 그린 그림에서, 바위 또한 장수를 의미하므로 고수(高壽)와 익수(益壽:오래 삶)를 뜻한다.
7) 포도
석류는 수태와 다산을 상징하고, 복숭아는 장생(長生)과 벽사(벽사)를 상징하는데 비해 포도는 이 두 과일의 상징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생기 있게 뻗어가는 덩굴은 연속되는 수태를 뜻하고, 덩굴손이 용(龍)의 수염을 닮았다고 해서 큰 인물의 잉태나 벽사의 의미가 부여되었다. 또, 포도를 즐겨 먹으면 명이 길어지고 잔병이 없어진다고 믿는다.
포도(葡萄, 포도나무)는 한 가지에 많은 열매를 맺는데서 풍요를 상징한다. 또, 토양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땅에서나 잘 자라며, 겨울철에는 특별히 보온해 주지 않아도 얼어 죽지 않으므로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포도 그림을 집안에 두거나 포도 모양의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어 몸에 지니면, 가문이 번창한다고 한다. 고려 청자의 술병과 주전자에 동자(童子)들이 포도송이가 달린 덩굴을 잡아 당기며 노는 모습이 상감된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포도주를 담았던 술병으로 짐작된다.
포도주는 무병 장수의 상징성을 지닌 술이다. 홍역 등으로 아이들이 어려서 많이 죽었기 때문에, 아이의 무병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를 둔 것일 수도 있다. 원숭이가 포도를 따는 그림은 옛벼루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모두 장수를 나타낸다.
경복궁 자경전 꽃담의 십장생도에서도 포도무늬가 보이고, 조선백자에서도 포도덩굴을 그린 장식이 보인다.
한편, 포도당초문(葡萄唐草紋)은 불로장생의 상징으로서 공예품과 가구, 의복 등에 사용되어 왔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곡옥(曲玉)이 딸린 수태부(受胎符) 목걸이의 포도 모양 안에 서역인이 상감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서역의 교역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호리병박이나 포도와 같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것은 자손을 상징한다. 또, 포도는 덩굴에 달려 있으므로, 덩굴의 한자어 '만대(蔓帶)'가 '만대(萬代)'와 동일시되어 자손이 끊이지 않고 계속 번성한다는 '자손만대(子孫萬代)'를 뜻한다. 그러므로 포도는 덩굴과 함께 그려야 의미가 충실 해 진다. 덩굴 없이 포도송이만 따서 그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하학 문양
1) 구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기록에 의하면, 뭉게구름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징후로 간주되었고, 먹구름이나 짙은 구름이 갑자기 끼거나 걷히는 상황은 한국인의 사고 영향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처용을 만나는 장면에서 '홀연 구름과 안개가 캄캄하게 끼여 길을 잃었을' 때, 일관은 이것을 '동해의 용의 변'으로 풀이하였다. 이로보아 짙은 먹구름은 안개와 함께 흉변의 징조이나, 그것이 음과 물의 기운인 용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의 속담중 에서 "검은 구름이 땅을 덮으면 병이 생긴다"와 같이, 검은 구름은 흉변의 징조이다. 이에 비하여, 오색 영롱한 구름은 채운이라 하여 일종의 신성현시, 즉 거룩한 것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로 여겨졌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교는 인의를 중시하고 의가 사회에 실현되는 덕치주의를 이상으로 한다. 그런데 구름은 날 빛을 덮는, 즉 임금의 밝은 뜻을 흐리게 하는, 부정적인 기능을 하는 간신의 존재로 흔히 나타난다. 한편 구름은 학문을 연마하고 인격을 수양하면서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뜻도 함축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구름에 간교함, 허무, 초월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한시나 시조를 통해 노래하였다.
불교에서는 운수(雲水)가 곧 승려이고, 또 수행이다. 수도승을 운수객, 운수승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열구름과 흐르는 물은 번뇌와 무상의 표상이다.
도교에서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이라는 천둥번개의 신 아래에 뇌운신이 있어서, 천둥번개의 집으로서 구름이 신격화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도교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구름이 안개나 이내와 더불어 이상향 또는 피안의 징표가 되었다는 것이다. 겹겹이 층을 이룬 구름 위에 솟은 나라나 구름 너머에 가려져 있는 나라라는 관념이 추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구름은 세속을 멀리 떠난 초월의 경지를 상징한다.
동양 문화에서 구름이 지닌 상징성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유교, 불교, 도교가 3국에 고루 퍼져있기 때문이다. 다만 각국의 색채 상징의 차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푸른 구름이 벌레 또는 곤충의 재앙이 일어날 징조로, 흰 구름이 상(喪)을 당할 징조로 간주되는 등 개성의 차이는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청운의 뜻'. 청운은 희망을, 백운은 미래나 피안을 상징한다. 3국의 공통점은, 붉은 구름은 재난을, 검은 구름은 흉변을, 누른 구름은 풍요와 번영을 뜻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구름의 문양을 보면, 고대인들은 구름이 새 또는 용과 일체라는 관념이 있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당초형식의 구름에 새의 머리나 동물의 머리(대부분 용의 머리)가 표현된 괴운이 보이는데, 이는 "용이 나타나면 구름이 모인다"는 말과 일치한다.
<괴운문
대안리 1호분 전실 괴운문(고구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는 추상화한 구름문양이 보이는데, 감신총, 덕흥리 벽화 고분, 각저총, 무용총, 천왕 지신총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구름무늬는 신라 칠기에서도 볼 수 있다.
<환문총 주실 북벽 괴운문과
당초문의 혼합>
[당초운문]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 천장 굄돌 측면에 여러 가지 모양의 당초 구름무늬가 표현되어 천상계와 벽면을 구분하고 있다. 구름무늬의 기본 형식은 'S'자형의 파상 당초문 형식인데, 구름줄기에 고사리 손 모양의 작은 돌기가 다닥다닥 붙었다. 사신도 고분 등 후기 고분벽화에서는 인동초화 형식으로 발전하여 인동 당초문 형식의 구름 띠가 특징을 이루는데, 진파리 1호분에서 볼 수 있다. 그 이후의 공예품에 나타나는 각종 초화 당초문도 구름을 상징한다.
[유운문]
고구려 고분 벽화 진파리 1호분 현실 네 벽면의 사신도에 배경으로 인동초와 천화(天花)등이 물결처럼 율동감 넘치는 유운(流雲)의 사이사이를 떠돌고 있는 모양이 묘사되어 있다.
[보운문]
보운문은 구름 머리 부분이 심엽형(心葉形) 또는 여의 모양을 이루고, 꼬리가 두 갈래로 갈라져 도식화된 구름무늬로, 통일 신라 시대의 불화 또는 불교 공예에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점운]
점점으로 흩어져 있는 구름의 모양이다. 13세기 고려시대의 상감청자 중에서 운학, 운봉 무늬 등에서 볼 수 있다. 금사운학흉배
[운판]
운판은 구름모양의 형상으로 청동으로 주조한 조형물을 말한다. 불교의 4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의 하나이며 범종루에 걸려져 그 소리로써 날짐승을 교화, 제도한다. 선종사찰에서는 재당이나 부엌에 매달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릴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죽이나 밥을 끓일 때에 세 번 침으로 화판, 끼니 때에 길게 침으로 장판이라고도 한다.
2) 번개
번개는 비, 구름, 바람과 함께 하늘 또는 자연이 인간에게 내리는 계시를 나타내며, 보통 징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는 자연이나 인간에게 드러내는 시대와 나라의 운명에 관한 예언과 점괘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
번개를 상징하는 지그재그 모양의 무늬 또는 之(지)자 모양의 무늬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 그밖에 각종 의식용 기구의 둘레 장식 무늬로 쓰여졌다. 주로 연속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가장자리에 가늘고 길게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중심이 되는 문양보다는 부속문양으로 사용되었다.
불교 법구의 하나로 금강저가 있는데, 금강저는 금강석인 바즈라(Vajra)로, 대체로 삼지창 모양을 하고 있다. 승려들이 불법을 수행 할 때 쓰인다. 금강저는 본래 보리심(菩堤心)을 보호하고 외도 악마를 깨뜨리는 법구로, 수행할 때 이것을 쥐고 있으면 손에 무게를 주어 묵중하고 엄정한 기분이 감돌아 온갖 잡념과 방해물을 굴복시킴으로써 깨끗한 불성의 세계로 인도된다고 한다. 따라서 금강저의 형상을 도형화하여, 점칠 때에 꽃 살 무늬 또는 의식용 악기의 장식, 불교 자수, 불교 조각 등에 번개를 상징하여 사용되고 있다.
3) 원
무속과 민간 신앙에서의 원은 하늘, 태양, 등을 통해 그 상징성을 표현하는가 하면, 갈이나 거울, 알 등을 통해서도 그 상징성을 나타낸다. 하늘과 일월, 곧 해와 달은 원의 도형으로서 종교적 의미 또는 해, 달이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서 가진 속성을 원이 부분적으로 나누어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령스러움, 거룩함이 일깨우는 충족감, 만족감, 풍요 등을 상징하는 원은,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도형이라는 면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용왕 고사나 용왕 먹이기를 해돋이 때 함으로써, 해의 원형을 통해 새벽기운과 해 기운의 역동성을 동시에 느낄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달의 원형은 달 자체가 고요하고 우아하고 정갈하므로, 해와는 다른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평화, 안식, 고요, 원만함, 자유스러움 등의 상징을 지니는 달의 속성은, 몽상이나 상상으로 열어 젖혀질 자연의 속 깊은 마음 또는 영혼이 잡혀진다.이것은 태양의 원형이 지니는 남성적인 힘과는 전혀 다른 상징성을 가진다.
<오봉 일월도 중의 태양>
종교적 의미에서는, 유교가 하늘을 가장 높은 이념적 기표로 삼을 때 원의 상징성은 극대화 된다. 공명정대함, 관영과 인자함 등이 하늘과 맺어진 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태극에서도 역동적인 원은 영원한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만다라에서의 4각과 원의 관계(양:하얀 원, 에너지, 하늘/ 음:검은 사각형, 땅)와 유사하며, 한국인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표현하는 상징(국기)으로도 유명해 졌다.
또한, 원은 불법과 불성을 상징한다. 특히, '월인석보'나 '월인천강지
곡'등이 표상하는 불성은 달과 어우러져 한층 원의 의미를 심화 <군학서상> 시킨다. 불법이나 불성이 광채로 표상되면, 달빛이 되고, 모양으로 표상되면 만월의 원이 된다. 이렇게 양자가 어울리면서 원은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게 된다.
불교의 칠보문중에서 전보문은 엽전 모양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무늬이다. 전보문은 십전도라고도 물렸는데, 많은 일이 모두 뜻대로 이 루어질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밖에 엽전무늬는 건축, 가구, 책 표장, 능화판, 옷의 문양 등으로 다양하게 쓰여 졌다. 중국 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무늬를 복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우주 또는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원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 환문총의 현실에 그려진 동심원상은 벽면 전체에 여러개의 동심원이 일정하게 그려져 있다. 이 동심원은 태고적에는 여러 개의 태양이 있었다는 전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토기 표면 장식에 보이는 원이나 와당의 원 무늬도 대개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4) 창호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의 벽면은 오늘날의 벽돌이나 시멘트로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는 닫혀진 구조가 아니라, 창인지 문인지 구분이 모호한 창호(窓戶)로 안과 밖이 서로 통하도록 되어 있다. 환한 태양빛이 방안을 직접 비추지 않고 창호의 안쪽에 바른 창호지를 통하기 때문에 채광은 은은하게 된다. 또한 해질녘에는 바깥에서 등불이 비친 방안의 정경을 그림자로 보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곧 한국 창호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가옥에서 창호의 기호론적 의미 작용은 계층이나 가옥양식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 조선시대 이래의 전통가옥에서, 양반과 상민의 창에는 큰 격차가 있다. 양반의 가옥은 창의 쓰임과 생김새가 다양하고 공예품적 의장을 하여 높은 장식성을 갖추고 있다. 자연이나 주위 환경과의 정서적 교감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이는 통풍과 채광이라는 실용성을 앞세우면서도 전체의 구조, 창살의 무늬, 창호지 지질 등에 의해 이룩한 창의 심미적 상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상민 가옥의 창은 단순하며 실리적이다
달빛과 달 그림자의 마음을 일깨워주는 듯한 한국의 창호무늬는 우리의 독자적인 서정이기도 하다. 미닫이 창으로는 용자창(用字窓), 완자창(卍字窓), 정자창(井字窓), 교창(交窓), 빗살창, 빗살 완자창, 세살창, 아자창(亞字窓)과 광창(光窓)으로 살창, 격자창(格字窓)등이 있어 다양하다. 또한 살을 비스듬히 교차시킨 짜임새로 된 창이 빗살창인데, 이 창살에 꽃무늬를 조각한 것이 빗꽃살이고 소슬무늬 형태의 꽃무늬를 새긴것이 소슬비꽃살이다.
이와 같이 창호의 살 무늬는 하얀 창호지에 비치는 달빛 그림자에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창상 무늬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좋아하는 바가 덕이라는 뜻), 고종명(考終命:오래 장수하고 일생을 마친다는 뜻)의 오복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꾸며진다.
<소슬비꽃살>
5) 태극
태극 도형은 우주가 음양의 대립적인 원리로 갈리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태극의 신화적 배경은 모든 창조신화에서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천지개벽 직전의
혼돈과 무정형의 상황이다. 태극의 바탕이 된 이러한 혼돈과 무정형, 미분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화적 상황을 우주란(宇宙卵, Cosmic Egg)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이것은 우주및 사물의 근원을 상징한다.
우리나라는 음양의 상대(相對), 순환(循環)으로 만물의 생성을 지속해가는 구국적 실재로서의 태극을 도상화하여 국기로 만들었다. 따라서 태극은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역경의 계사(繫辭) 상(上)에 나오나, 문양은 그려져 있지 않다. 이것을 유학자 주돈이가 '태극도설'에서 문양화하고, 우주를 형성하는 음양의 두원기를 그림으로 풀어 만물 발전의 이치를 밝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태극의 관념과 도형은 그 이전에 이미 이해하고 활용되었음이 고대문화나 생활 습속을 통해 나타난다. 고구려 벽화 사신도의 현무도는 음양 상화의 이치를 나타낸 것 이며, 민간에서는 액막이 부작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신라의 감은사지 유적의 석각에서도 태극도형이 보인다.
암각화나 청동경등에 원, 일점 원, 삼원 동심원 등으로 태극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의 태극은 하늘이고 우주이며, 해와 달이고 음양의 본체로서, 음양의 화합을 통해 풍년과 다산 등을 염원한 표상이다.
동양 철학의 핵심으로서 태극은, "우주의 근원은 무극(無極)이면서 태극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極)하면 정(靜)하여 음(陰)을 낳는다.... 양이 변하고 음이 화합하여 수, 화, 목, 금, 토를 낳아서 오기(五氣)가 차례대로 베풀어지고, 사시(四時)가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며,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고,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무극의 진과 이오(二五)의 정기가 오묘하게 화합하여 응결된다.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루며 이기(二氣)가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게 하고, 만물은 나오고 또 나와 변화가 무궁하다." 이것이 태극의 이치이다
기타 문양
1) 문자도
민화에서 문자도는 충효 또는 삼강오륜의 교훈적 의미거나 길상적인 뜻을 지닌 글자를 통하여 바라는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서 주로 병풍으로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그 종류는 효제도와 백수백복도가 주종을 이루었다. 효제도란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여덟글자를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그린것이다.
문자도 특히 효제도는 비백서(飛百書) 혹은 비백체라고하는 일종의 회화적 서체가 연원이라고 할수 있다. 유득공(1749~?)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 "비백서는 버드나무의 가지를 깍아 그 끝을 갈라지게 하여 먹을 찍어 효제충신예의염치 등의 글자를 쓴 것이다. 점을 찍고 긋고 파임하고 삐치는 것을 마음대로해서 물고기, 게, 새우, 제비 등의 모양을 만든다"라는 비백서와 효제 문자와의 관계를 밝혀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자도는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회화성이 더욱 강조되는 면모를 보이는데 글자의 의미보다는 도안적인 장식성과 형상 표현에 치중하여 때로는 문자의 형태가 거의 무시된 상태로 변형되어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비백체 뿐 아니라 인두를 불에 달구어 지져서 그리는 낙화(烙畵)나 시골장터나 민속촌에서 볼 수 있는 혁필화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혁필화는 가죽을 붓같이 만들어서 이름자나 쓰고 싶은 문구를 쓰되 화려한 물감으로 꽃이나 새, 나무 등을 글자에 어울리게 그려서 만드는데 글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일종의 도안화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효제도 이외의 문자도로는 백수백복도가 있다. 수(壽)자나 복(福)자를 열자나 열여섯자 혹은 백자를 모두 다른 모양으로 한 화면에 그림처럼 서 놓은 것으로 상서로운 의미를 가진 글자를 반복해서 씀으로써 그 글자가 나타내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자 했던 의도를 담은 것이다. 수자와 복자를 한 화면에 반복하여 쓰거나 혹은 한 글자만을 다르게 하여 한 화면 가득 채운 작품들도 있다.
또 만호도라 하여 범 '호(虎)'자를 반복하여 하나의 커다란 虎자를 쓴 일종의 문자도가 남아 있는데 이는 반복적인 글자를 통하여 잡귀의 침범이나 액을 막는 일종의 벽사용으로서,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만(卍)자
만(卍)은 석가모니가 탄생할 때 가슴에 있었던 무늬였는데, 후세에 이를 길상의 표지로 인식하였다. 사찰이나 궁궐의 담이나 벽, 다리 난간 또는 장신구의 가장자리에서, 만(卍)자의 사방 끝을 연결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형태의 문양을 흔히 볼 수 있다.
경남 울주 반구대의 회오리 바람 문양에서 볼 수 있듯이, 무속적인 제사터의 알 바위에는 회오리바람 문양이 나타난다. 만(卍)과 마찬가지로 회오리바람도 회전하면서 우주적인 에너지가 발동하는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운명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집에는 흰 바탕에 붉은색으로 만(卍)자를 쓴 기를 볼 수 있다. 불교와 무교가 합쳐진 예이다. 우주와 인간의 삶과 죽음, 윤회를 주관하는 신의 영력을 나타내는 만(卍)자기를 꽂아놓음으로써 그 곳이 신의 대리자인 무당(점장이)이 있는 곳임을 알리고 있다. 무당을 만신이라고 부르는데 에서도 신의 영력을 지닌 자임을 알리고 있다.
만자등(卍字燈)
연질(軟質)의 통나무속을 파내고 바닥을 편평하게 마무리한 것으로 절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다. 벽에는 '卍'자를 큼직하게 투각하였으며 등의 뒤에는 전열문을, 아래에는 '卍' 자문을 장식하였다. 등의 위쪽은 유리뚜껑을 덮어 빛이 주로 위쪽과 몸통의 투공을 통해 비추게 되어있다.
불교에서는 불심의 상징이며, 존재의 바퀴 또는 윤회등을 나타내고, 팔길상인(八吉祥印)의 하나로서 불족석(佛足石)에도 새겨져 있다.
사방끝이 종횡으로 늘어나 펼쳐지면서 계속 이어지므로 회전의 개념에서 연상된 무한성과 장구성을 상징한다. 수(壽)자와 합쳐져서 단만수자(團萬壽字), 만수금(萬壽錦)이라 하기도 한다. 불상의 가슴과 불교 건축과 다리 난간, 공예물 및 법복등에 문양으로 사용한다.
3) 효제도
민화 가운데 보통그림과 달리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등 여덟 가지 문자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있다. 이런 그림을 앞의 두 글자를 따서 효제도(孝悌圖)라고 부른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문자도"라고도 한다. 이 그림은 가구나 의복 등에 많이 시문되는 수(壽), 복(福), 희(喜), 부귀(富貴)등 보통의 길상문자와 달리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윤리덕목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다른 문자도와 구별하여 윤리문자도(倫理文字圖)라고 부르기도 한다.
윤리 문자도는 기본적으로 문자를 다루고 있지만, 각 글자에다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나 동식물을 곁들여 그리고 있기 때문에 회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이 순수한 서예와 다른 점이다. 윤리 문자도는 서민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제작하고 향유했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윤리 문자도에는 서민들의 윤리의식과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유교적 윤리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도교적 요소와 불교적 요소가 더욱 강하게 배어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는 유교적 전통사회에 있어서 인간 내지 사회 윤리의 기본이 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이들 덕목은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하여 항상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고 화목하며, 사람사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예의바르며, 언제나 검소, 절제하면서 명분을 잃지 말며,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효제도의 소재를 살펴보면,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를 한 글자씩 나누어 각 폭에 그리고, 이것을 병풍으로 꾸민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그림에는 그 문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관련된 기물이나 동식물, 또는 일화나 고사의 내용이 그려지는데, 글자의 획의 일부를 구성하거나 여백에 곁들여 그려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당시 서민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윤리덕목과 관련된 상징적 소재들이다. 이 들 소재들 중에는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에 등장하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은 물론, 근엄한 유학자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었던 시경속에 나오는 소재들도 포함되어 있다.
<효(孝)자 그림> 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보통 잉어, 죽순, 부채, 거문고, 귤 혹은 인물 등인데, 이 소재들은 모두 효를 수행한 특정인물과 그와 관련된 기물 혹은 동식물들이다.
[잉어] : 왕상의 효행과 관련된 소재인데, 왕상이 효성이 지극하여 계모가 엄동설한에 일부러 산물고기를 원할때, 이를 마다하지 않고 쌍잉어를 잡아다가 계모에게 정성껏 공양하였다,
[죽순] : 맹종의 효행과 관련한 소재로, 그의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므로, 대나무 밭으로 달려가 울면서 애원하니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별안간 죽순이 솟아나 그것을 잘라 가지고 어머니께 달려가 공양하였다.
[부채] : 황향의 효행과 관련한 소재로 황향이 효성이 지극하여 더울 때는 부모가 누워계시는 베개에 항상 부채질을 하고, 추울 때는 자신의 체온으로 부모를 따뜻하게 감싸면서 부모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한다.
[귤] : 육적의 효행과 관련된 소재로, 여섯 살 때에 원술이라는 사람이 귤을 주니, 육적은 그것을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품속에 품으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원술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어머니에게 갖다 드리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제(悌)자 그림
제(悌)자는 형제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형제간에 서로 도우며 우애롭게 살아야 한다는 덕목이다. 제(悌)자 그림에는 척령이라고 하는 할미새와 상체라고하는 산앵두나무가 등장하는데, 할미새와 산앵두가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게 된 것은 시경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悌)자 그림의 형식을 보면 할미새 두 마리가 서로 입을 맞대고 먹이를 나누어 먹는 모습을 그리되 제(悌)자의 '心'변의 두 점에 해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하였다. 상체는 제(悌)자의 위부분의 제 획에 붙여 그려지거나, 글자의 획 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충(忠)자 그림
충(忠)자 그림은 용, 잉어, 대나무, 새우나 대합, 혹은 거북이가 등장한다. 이 그림은 각 소재들이 충(忠)자의 각 획을 대신하여 교묘하게 배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충(忠)자의 '中' 부분에는 용과 잉어가 등장하는데, 잉어가 용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心'부분은 새우나 대합이 획을 대신하여 좌우로 배치되고 있다. 때로는 '中'자의 가운데 획을 대나무로 대신하고 새우를 구부려 그려서 '口'부분을 대신하기도 한다.
신(信)자 그림
신(信)은 원래 '인언위신(人言爲信)'의 뜻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신(信)이란 사람 사이에 언약과 말을 믿고 지키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신(信)자 그림에는 새가 편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파랑새와 흰기러기이다. 파랑새는 서왕모(西王母)에 나오는 상상의 새인데, 얼굴은 사람, 몸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예(禮)자 그림
예(禮)자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을 보면 거북이가 책을 등에 메고 있는 모습이 예(禮)자의 '示'변의 첫 번째 획에 그려져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어떤 때는 공자가 행단에서 예를 강론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 옆에 '공부자예대수지하(孔夫子禮大樹之下)'라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것은 공자가 행단에서 제자들에게 예를 강론하였다는 고사를 그린 것 이다.
의(義)자 그림
의(義)자를 그린 그림은 글자의 넓은 획 속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하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하며, 때로는 복숭아 꽃만 그려 도원의 결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의(義)자 그림에는 도원결의 고사 외에 두 마리의 새를 그리고 '관저화명(關雎和鳴)'이라는 화제를 붙인 그림이 있다. 이 화제는 시경 주남의 관저편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데, 춘향가에서 이도령이 책방에서 춘향이를 생각하면서 바로 이 구절을 읊조렸던 것을 보면 이 시의 내용이 의와 관련이 있다기 보다도 남여간의 애정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도원결의에서 보듯이 의로움은 상호화합이 이루어 졌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보면 어우러져 지저귀는 한 쌍의 물수리도 의(義)의 의미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고는 볼 수 없겠다.
염(廉)자 그림
염(廉)은 청렴, 검소, 정직과 통한다. 염(廉)자 그림에는 봉황새나 게가 단독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봉황이 등장하는 이유는 봉황의 성품이 염의 내용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한편 게의 등장은 게의 행동 습성을 인간의 윤리에 조응시킨 결과이다. 게는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반복하면서 먹이를 찾는 행동습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습성을 인간이 지녀야할 도리, 즉 남이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 때 무조건 사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분수에 맞으면 즐겁게 나아가 호의로 받아들이고, 분수에 넘치면 과감히 물러나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염의 도리에 조응 시킨 것이다.
치(恥)자 그림
치(恥)는 치격(恥格)을 말한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스스로 알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는 그들의 나라가 망한데 대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은둔하면서 비극적인 생애를 마친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산중 생활이 묘사된다. 또 다른 경우에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달과 매화나무를 그려 넣기도 하는데 이 달과 매화 꽃은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달과 매화, 즉 자연과 더불어 일생을 보냈다는 고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달과 매화는 옛날부터 은일처사들의 애호이며 마지않던 고아함의 화신이요, 정절의 상징인 자연이었다.
Discussion
처음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 영화 미술에 대한 부분도 상당한 매력이 있었고 Wearable Design도 요즘에 한창 각광 받는 분야이므로 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것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 되었고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언급하셨던 서양 선진국에서 동양사상 혹은 동양 디자인에 관심이 깊어져 가고 있다는 부분에서 이 주제를 택하게 되었다.
Asia의 문화는 예전엔 많이 발달되어 있었다. 인도의 미술이라던지, 중국의 웅장하고 힘있는 미술과 일본의 아기자기한 디자인. 무엇보다 대륙의 미술과 나름대로의 문화를 접목한 한국의 미술도 고고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나라 디자인은 너무 서구화 되어 있고 학생들의 관심학과도 동양화쪽 보다는 서양화에 회화 보다는 디자인에 치우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제를 택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전통 디자인과 현대의 디자인을 접목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한국의 미술로 넘어와서, 한국의 전통미술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살아 숨쉬는 건축에서부터 회화, 서예, 염색, 문양, 공예까지 그 분야는 실로 방대하다. 처음 에는 모든 부분을 소개하고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려 했으나, 현대 디자인과 가장 접목하기 쉬운 그리고 효과적으로 접목 시킬 수 있는 문양으로 그 방향을 잡았다. 디자인과 생활 3주 시간에 배운 시각 디자인과 많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시각 디자인은 광고 혹은 제품의 이미지나 회사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키워드이므로 간결하고 상징적인 한국의 전통문양은 C.I.P(Corporate Identity Program)이나 B.I.P(Brand Identity Program)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된다. 가령 만(卍)자 혹은 한자를 문신으로 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고, 외국의 스타들이 기체조를 연습하고 하는 것을 볼 때 더욱 확실히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Fusion, Cross-over 라는 단어가 말해주는 것처럼 서양의 기술위에 우리 한국의 전통적인 문양을 발전시켜 접목 시킨다면 확실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References
①한국미술 문화의 이해 장경희외 5명, 김원용 감수 예경 1994
②한국문화상징사전 한국문화상징사전 편찬위원회 두산동아 1992,1995
③전통미술의 상징 허균 교보문고 1991
④전통 문양 허균 지음, 유남해 사진 대원사
⑥http://www.konmt.com/
⑦http://www.artland.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