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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도분 / 이종문
은하수 추천 0 조회 44 16.10.15 22: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도분 / 이종문

 

() 벗 이정환이 어느 날 나를 보고 노벨 문학상을 타면 국밥을 사라기에,

상금을 싹둑 잘라서 반을 주겠다고 했네

 

아 글쎄 그랬더니 그가 손사래를 치며 국밥 한 그릇 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네.

그 대신 시조상(時調賞) 타면 절반을 잘라 주고.


정말 도분이 나서 그렇게는 못하겠고 그 노벨 문학상을 기어이 타야겠네.

상금을 싹둑 잘라서 절반을 나눠 주게……

 

- 격월간유심(2010 9,10월호)

..................................................................................


 흔히 무슨 상을 타면 한 턱 쏘라는 얘기들을 한다. 여기서 시 벗 이정환은 시인에게 노벨상을 타면 국밥 한 그릇이면 족하고, 대신 시조상을 타면 절반을 잘라달라고 제의한다. 얼핏 많이 봐주는 생색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단단히 챙기겠노라는 으름장이다. 물론 농담이겠는데 그 농담에도 뭔가 불안한(?) 낌새를 느꼈는지 시인은 ‘정말 도분이 나서 그렇게는 못하겠고’ 그 노벨문학상 기어이 타서 ‘상금 싹둑 잘라서 반을 주겠다’는 역 제의를 한다.


 이 농담 따먹기 대화로 미뤄보면 시인이 그해 펴낸 시집 <정말 꿈틀, 하지 뭐니>가 좋은 반응을 얻어 무슨 시조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시조문학상에 근접해 있다는 반증처럼 들린다. 왠지 상 하나는 탈 것 같은 예감이고, 그 상의 상금을 거들내면서 과도한 턱을 낼 수는 없다는 방어개념의 복심도 얼핏 엿보인다. 이종문 시인은 이렇듯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원본의 훼손 없이 익살스럽고도 천연덕스럽게 시 한편을 뚝딱 꾸미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런데 정말 ‘도분’이 나는 건 여직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나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도분은 '화'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지만 그냥 화로 직역하기 보다는 ‘성질’이란 의미를 함께 버무려 읽는 게 옳지 싶다. 예를 들면 ‘그 자석 택도 없는 얘기를 자꾸 해쌓는데 어찌나 도분이 나던지’ 이때는 화가 난다라기보다는 성질난다는 의미가 더 짙다. 지금껏 노벨상 한번 타지 못한 사실을 두고 성질이 나고 오기가 발동한다는 뜻이리라.

 

 밥 딜런의 수상을 반기면서도, 14년째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결국 올해도 고배를 마시고만 고은 시인을 생각하면 이젠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한다. 고은 시인은 최근의 신작 시집 <초혼>에서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며 역사 속에 무고하게 희생된 원혼을 달래는 제의 성격의 시로 다시 한 번 거장다운 작품세계를 보여준 바 있다. 평소 그는 “한국에서 시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언젠가는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또 기약 없이 미루어졌다.


 하지만 그걸 보여주는 것은 고은 시인만의 책무이고 오기여서는 안 될 것이다. 고은 시인이 한국문학의 노벨상 도전사에서 가장 목표에 근접한 인물이고 앞으로도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 시의 힘이 그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진정한 문학정신이 살아 꿈틀대는 작품을 쓰고, 나라에서 조금 돕고, 세계로 바르게 번역 소개한다면 정말 노벨문학상이 우리 앞에, 이종문 시인의 코앞에서 크게 꿈틀할 날도 머지않으리라.


 그런데 번역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우리 정부의 문학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다. ‘블랙리스트’ 따위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진정한 문학을 꽃피울 수 없고, 심지어 고은 시인의 노벨상 수상을 달가워하겠느냐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아직 예술원 회원조차 되지 못했다. 반기문이 혼자 잘나서 유엔 총장이 된 게 아니듯이 정부의 올바른 문학에 대한 인식과 응원 없이 어찌 노벨상을 기대하겠는가. 일련의 문학인을 대하는 정부태도를 보면 우리문학의 지형도와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이나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지난달 지진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경주에서 ‘제2회 세계한글작가대회’가 3박4일 일정으로 열렸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주최한 이 대회에 정부는 5억을 지원했고 경상북도와 경주시에서 각각 1억씩을 부담했다. 단발성 문학행사에서 7억이란 돈은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7천명에게 10만원씩 돌아가는 돈이다. 관계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국제팬클럽이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문인단체라 여기는 문학인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정부만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을 대신해 조윤선 장관이 축사를 했다. 몇몇 초청받은 저명 문인들이 섞여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문인들은 배제된 채 치러진 호화판 행사였다. 당연히 고은 시인도 빠져있다. 게다가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참여 문인은 30여만 원의 별도 회비도 부담해야했다. 세계적인 대회라고는 하나 ‘외화내빈’ 실속 없는 문학행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분’이 난다. 진정한 한글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다른 세상이 오긴 와야겠다.



권순진


Bob Dylan-Knockin' on Heaven's Door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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