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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12.11.11)]
/ 아버지께 나아감(이장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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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설교]
/ 여호수아 24장
에베소서 2:14~18 아버지께 나아감 2012. 11. 11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로 태어난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에베소서 2:1~3절입니다. “봉독” 이 말씀을 한 마디로 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환경이 그렇게 되지 않기에 하는 수 없이 타협하며 살뿐이지 틈만 나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통일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하나님의 원수라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상을 통일시키려고 합니다(엡1:10). 이것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작정된 일입니다. 그런데 시편 2편을 보면 하나님의 이 일을 막아 나서려고 하는 것이 세상의 임금들과 관원들이 하는 일입니다.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왕을 시온에서 세우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로 너희가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시편의 끝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로서 악인의 형통과 의인이 고난을 보고서 거의 실족할 뻔하였다고 합니다. 악인은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과 재앙도 없고 항상 형통하며 재산은 늘어가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지 의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전에 나아가서 그들의 결국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편 끝 부분에서 하늘에는 주 밖에 없사오니 땅에서 주 외에 사모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이며 주를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이런 고민으로 여호와께 질문하였는데 그 답변은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주를 가까이하겠습니까? 주를 가까이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 여기에 있고 하나님 저기에 있으니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나에게 필요한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 모든 신을 찾는 인간들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참 하나님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는 자는 고난과 재앙을 당하고 온갖 우상숭배를 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과 재앙도 없이 항상 형통하다고 하면 누가 주님을 가까이 하겠습니까?
우리가 주를 가까이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배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헌신 봉사 목사에게 잘하기 등으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 복을 받고 하늘에서 상을 크게 받는다고 저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런 우리의 행위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전하니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동안 괜히 열심을 내었구나!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찍이 따라갑니다. 거저 지옥에 가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신앙생활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과연 신앙입니까?
신앙상담 란에 공개적인 질문을 보셨습니까? 상급의 차이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제가 답변을 하면서 어느 광고를 인용하였습니다. 가정에 어머니와 아들과 딸이 있는데 아버지가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서 초인종을 누릅니다. 서로 미적 되면서 문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택배회사에서 온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니 빠름, 빠름, 빠름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옛날 저의 어릴 때에 아버지가 외출하여 돌아오시거나 어머니가 먼 시장을 다녀오면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그 손에 무언가 먹을 것을 들고 오기 때문에 부모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물이 우리가 기대하는 선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니 열심히 일할 맛이 나지 않지요! 남과 비교 경쟁하는 재미가 없으니 할 마음이 생기지 않지요!
이런 세상에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이 왔습니다. 세상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누가복음 23:12절입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과 빌라도가 다들 자기의 통치영역에서 왕과 총독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서로 원수처럼 지내다가 공동의 적인 예수가 나타나자 당일에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유대인들과 합동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4:25~28절입니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시편 2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였고 지금도 복음 전하는 사도들을 핍박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정도로 세상은 예수가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사도들을 어떻게 세상이 미워하여 죽여 버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성령을 통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도 동일한 은혜를 받아서 믿게 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스스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되었는데 이것을 에베소서 1장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이 일어나고 이웃과 화목이 일어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육체로, 십자가로 이루어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면 우리가 화목제물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스스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나아갈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화목제물을 마련하여 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3:23~26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화목제물을 예수님의 피로 세웠습니다.
요한일서 4: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물이 화목제물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하니 항의를 하였습니다.
말라기 1:2~3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에서는 고생을 하지 않았고 야곱은 죽도록 고생을 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후손이라는 자들이 하나님이 사랑한다면 이렇게 고생시키느냐고 항의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답변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만드십니다. 그 약속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화평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원수였는지를 오늘 더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런 원수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난주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처럼 된 관계를 그의 십자가로 허무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원수된 것은 율법으로 인한 것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죄인임을 알라고 주셨는데 율법으로 자기들의 의를 세움으로 오히려 이방인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모든 율법을 폐하심으로 율법의 의로 편 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사람을 만드셔서 이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이웃과도 화목하게 하는 한 새 사람을 만들어내시는 능력입니다. 이제 그렇게 새 사람이 된 자는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아버지께 나아감입니다.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새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본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고 그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17:1~3절입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의 기도로 인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를 인하여 또한 성령님께서도 기도하십니다(롬8:26,27). 이렇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은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드디어 예수님만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롬8:15, 갈4:6).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성령 안에서 새 사람을 만드신 것은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아버지께 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면 죽음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으로 화목하게 되었기에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이렇게 하여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는 아버지가 좋아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5:1~2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에베소서 3:12절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4: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10:19~25절입니다. “봉독” 옛 언약 안에서 이방인이 성전에 들어오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유대인들도 성소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제사장만 성소와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 피 뿌림을 받아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성도가 함께 모여 서로 교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로 화평케 자들이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가운데 더욱 풍성하여져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일 오후 설교]
/ 여호수아 24장
여호수아 24장 2012. 11. 11
여호수아 24장은 언약의 갱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언약을 배반하고 광야 40년을 지낸 후에 모압에서 다시 언약을 갱신합니다. 모압에서 언약을 갱신한 내용이 신명기입니다. 언약을 갱신한다는 것은 전에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의 중재자가 되었다면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가 언약의 중재자가 되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에 모아놓고 언약을 갱신합니다.
신학교 때 실천신학시간 수업 시간에 예배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지나가던 다른 교수가 지나가는 말로 ‘예배란 언약의 갱신’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으로 언약을 새롭게 하지만 신약에서는 새 언약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을 새롭게 한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새 언약이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세우신 언약이기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새 언약 안에 있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주전 1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국제 정치 조약문서들에서 언약의 내용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성경과 정확하게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는 많은 일치를 보입니다. 이러한 언약의 구조를 따라 여호수아 24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를 볼 수가 있습니다.
1. 서문:1~2
2. 역사적 서언:2~13
3. 언약의 중심내용:14~24
4. 언약문서 보관:25절
5. 증인:26~27
6. 축복과 저주:(19~20절에서 암시)
1. 서문:1~2: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섰다고 합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2. 역사적 서언:2~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여호수아가 중재자가 되어서 전달합니다. 그 내용은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 강 저편에 있을 때에 불렀다고 합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다른 신을 섬겼다고 합니다. 이 중에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끌어내어 가나안 땅과 씨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들이 애굽으로 내려간 사실과 애굽에서 출애굽한 것과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넌 것을 다 말합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에 적들을 물리치시고 그들이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을 포도원과 감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따라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합니다.
3. 언약의 중심내용:14~24: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합니다. 만약에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 않거든 애굽의 신들이나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역사적 서론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신 것을 말씀하고서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14~15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수요일 에스겔서를 보면서 말씀드렸습니다(겔20:7, 23:3). 애굽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음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의 이 결단의 요청에 대하여 모든 백성들이 다른 섬기지 않겠다고 언약의 동의합니다.
4. 언약문서 보관: 25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에 동의하였기에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언약문서 작성이며 언약의 갱신을 하고 보관하는 것입니다.
5. 증인:26~27: 돌과 상수리 나무아래 큰 돌을 세우는 것은 언약의 증인으로 세웁니다. 언약의 증인들은 하늘과 땅도 증인이 됩니다. 그래서 이 돌이 언약에 동의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6. 축복과 저주:(19~20절에서 암시). 여호수아는 언약에 동의한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도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신명기 31:20~21절입니다.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모세나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언약을 체결합니다. 그러면 율법을 왜 주신 것인지 이미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저주를 돌이키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는 것입니다(갈3:13).
29~31. 여호수아의 죽음.
여호수아는 언약을 갱신하고 110세에 죽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사사시대에 어떻게 될지를 미리 보여줍니다.
32~33. 요셉의 뼈를 장사지냄.
요셉이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긴 내용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자신은 죽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고서 자기 후손들에게 유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실 때에 자기의 해골을 들고 가서 약속의 땅에 묻도록 하였습니다(창50:25, 출13:19).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자기 언약대로 이루고야 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믿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며 복인지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