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작심한 軍 동료가 모는 비행기 탔다 엉겁결에 北으로… 前군무원 30년 만에 명예회복
“납북 직전까지 공무수행” 법원 “순직 공무원” 판결
월북을 작심한 군 동료가 모는 비행기에 타는 바람에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30년 만에 월북자에서 납북자로 인정받은 비운의 군무원에게 법원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창원지법 행정1부(재판장 안창환)는 지난 1977년 납북돼 실종·사망 처리된 전 육군 군무원 조병욱(당시 37세)씨의 부인 문모(64)씨가 자신에 대한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창원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조씨는 경남 창원의 육군기지창에서 항공기 정비사로 근무하던 지난 1977년 10월 동료 정비사 이모씨가 갑자기 이륙시킨 비행기에 타고 있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
- ▲ 조병욱씨가 근무하던 부대로 가족들을 불러 함께 찍은 사진.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조씨, 부인 문모씨, 아들, 둘째 딸. 조씨는 이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1977년 월북을 결심한 동료때문에 강제 납북됐다. /조병욱씨 가족 제공
당시 소속 부대는 이씨가 간통 혐의로 고소당할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월북한 것으로 파악했으나, 조씨는 월북할 만한 동기가 없어 강제 월북당한 것으로 조사해 보고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 이씨와 조씨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종신 특혜금을 받았다는 내용과 기자회견 사진 등이 실린 전단이 경기도 파주 일대에서 발견되자 공안 당국은 조씨를 이씨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탈출) 혐의로 입건해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부인 문씨는 남편이 졸지에 납북당한 뒤 딸 둘과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았으나 정보기관 직원들이 달라붙어 감시를 벌인 탓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세 살 때 아버지와 이별한 조씨의 아들(36)은 "1994년 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하다가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 있다는 뉴스가 나온 직후 운전병으로 갑자기 보직이 바뀌는 등 온갖 불이익을 겪었다"며 "언제부터인가 가족들이 모여도 아버지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잊고 살던 가족들은 납북자 실태가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야 아버지의 강제 납북으로 진 멍에를 벗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법원은 '아버지를 실종자로 처리해달라'는 가족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조씨에 대해 실종 선고를 내리면서 법적으로 사망자가 됐고, 가족들은 이를 근거로 유족급여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어 부인 문씨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해 2007년 '조씨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회신을 받아낸 데 이어 같은 해 7월 통일부에서 강제 납북자로 인정받았다. 조씨는 월북자로 분류됐던 사람이 납북자로 인정받은 첫 케이스라고 통일부 관계자는 밝혔다.
마지막 남은 절차는 국가유공자로 인정을 받아 진정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조씨의 실종 원인이 전투나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창원보훈지청은 지난해 1월 문씨가 낸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행정 소송으로 이어졌고, 법원은 조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조씨가 이씨 때문에 북한으로 끌려가 실종·사망 처리됐고, 끌려가기 직전까지 비행기를 점검하는 등 공무를 수행 중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국가유공자법상 순직공무원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여러 공공 기관에서 납북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북한의 선전에 동원됐다는 사실만으로 공무 수행 중 납북됐다는 사실을 의심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