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은 정말 사도들이 한 신앙고백인가.
기사승인 2024.02.13 05:07:16
임종석 seok9448@daum.net
사도신경은 정말 사도들이 한 신앙고백인가.
― ‘사도신경(새번역)’ 이전의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을 중심으로 ―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은 오늘날 교회들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쓰고 있는 신앙고백이다. 이 ‘사도신경’을 많이들 사도들이 한 신앙고백, 또는 사도들에 의한 신앙고백으로 알고 예배 시 암송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사도들이 한 것도, 사도들에 의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도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성경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성경의 사실과 다르다. 물론 성경적인 면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극단적인 이단이라 해도 성경을 경전으로 한, 기독교를 표방하는 집단이라면 성경적인 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지금은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새번역)’이 나와 많은 교회들이 쓰고 있지만, 여태껏 그 이전의 것을 쓰는 교회들도 적지 않다. 양자 모두에 문제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그래도 ‘새번역’ 쪽이 약간은 개선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굳이 문제가 더 많은 쪽을 쓰는 교회들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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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런데 ‘천지를 만드신’의 ‘만드신’이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지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드는 것은 재료를 써서 그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창조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르다 할 수 없는 지적이다.
이 지적자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에도 동의할 없다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우리’라는 복수를 의미하는 말을 쓰셨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단수의 의미로 성부하나님만을 의미하니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위의 둘 다 일리 있는 지적이기는 하지만, 암송자들은 ‘만드신’을 ‘창조하신’의 의미로, 그리고 하나님을 말할 때 보통 하나님, 또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지 성삼위 하나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대로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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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의 ‘그 외아들’도 그렇다. ‘1남3녀’의 ‘1남’도 ‘외아들’이다. ‘무녀독남’이라는 의미의 말이 적절한 표현이다. 성경은 이를 ‘독생자’라 표현하고 있다. ‘새번역’은 ‘외아들’을 ‘유일하신 아들’이라 고치고 있으나 피장파장이다. 그런데 이 ‘그 외아들’ ‘유일하신 아들’ 또한 암송자들은 ‘독생자’로 알고 외우는 것이니 이 역시 간과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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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표현은 내용이야 어떻든 어법에도 맞지 않는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란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임신)하여’라는 의미의 표현이다. 임신한 것은 마리아가 아니라 예수라는 말이다.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표현도 그렇다. ‘나시고’의 ‘나다’는 ‘생명체가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그러니 이 말은 ‘마리아에게 태어나시고’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의 이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를 ‘새번역’은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로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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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유대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도록 유대인들에게 내어 준 사람이기는 하지만, 힘닿는 한 그를 놓아 주려 노력하였다. 예수를 죽인 주범은 하나님의 선민 유대인이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등 그들의 종교 지도자였다. 그것도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저지른 계획적인 것이었다. 라틴어 원문 ‘passus sub Pontio Pilato’은 ‘본디오 빌라도 통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어’이다. 번역만 제대로 했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인데, 왜 이런 무리를 빚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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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의 ‘장사한 지 사흘 만에’도 사실과 다르다. ‘하루’가 ‘만(에)’이라는 의존명사 앞에 올 경우는 ‘한 낮과 한 밤이 지나는 동안’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는 금요일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어 일요일 해뜨기 전의 어느 시간엔가 부활했다. 그러니 ‘사흘 만에’가 아니라 ‘이틀 만에’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된다. 라틴어로는 날수를 셀 때 세기 시작하는 날을 포함한다. 그러니 금, 토, 일의 사흘이 된 것인데, 그것을 그대로 옮긴 데에서 비롯된 오류인 것이다. 번역의 ABC도 모른 탓이다.
이보다 더 큰 번역의 오류는 ‘장사한 지’에 있다. 이의 라틴어 원문은 ‘descendit ad inferos’로 이를 그대로 옮기면 ‘지옥으로 내려가시어’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옥에 갔다는 말(의 의미)에서 오는 신자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 같은 번역을 낳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어떻든 자의적이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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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 말 그대로라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재림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편안히 쉬고 계시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천지만물을 주재, 운행, 관리하고 계신다. 행간[語間]이 생략된 것이라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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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의 ‘저리로서’를 ‘새번역’은 ‘거기로부터’로 옮기고 있다. 예수께서 ‘오르신 하늘로부터’라는 뜻이다. ‘저리’가 무슨 뜻인가. ‘저쪽으로’ ‘저쪽 방향으로’ 또는 ‘저곳으로’라는 의미의 부사이다. ‘새번역’처럼 ‘거기로부터’로 옮기면 될 것인데, 이 같은 아리송한 번역을 왜 해야만 한 것인가. 왜 이 같은 말을 암송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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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의 ‘거룩한 공회’도 문제이다. 성경은 ‘산헤드린공회’를 약해서 ‘공회’라 하기도 하는데, 이 ‘공회’의 회원인 ‘공회원’ 즉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물론 ‘사도신경’이 말하는 ‘공회’는 이 ‘산헤드린공회’가 아니다. ‘Catholic Church’로 ‘보편교회’를 가리키는데, ‘새번역’은 이를 ‘공교회’라 옮기고 있다. 조금은 나아진 건 맞지만, 그냥 ‘교회’라고 하면 될 것을 이 또한 굳이 ‘공교회’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싶다. 무엇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공회’라는 말을 ‘공교회’가 됐건 ‘교회’가 됐건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은 없다. ‘공적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열리는 모임’ ‘일반 대중의 모임’이 ‘공회’의 사전적 의미이다. 기독교가 ‘공회’라고 하면 물론 ‘산헤드린 공회’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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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의 ‘교통’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새번역’의 ‘교제’가 맞는 표현이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집단’이 교회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의 단체(공동체)’가 되는데, 이게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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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사도신경’에 대한 견해는 구구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변천과정에 대해서도 천차만별이다. 그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사도신경이다. 그런데 그런 줄도 모르고 예배시간이면 암송하는 것이 대부분의 교인들이다. 신앙으로서의 고백이 아니라 암송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나도 앞에서 의도적으로, 아니 교회의 현실에 따라 ‘암송’이라 했는데, ‘신앙’은 ‘암송’이 아니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전술한 대로 사도들이 한 것도, 사도들에 의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도적이지도 않다. 성경과 많이 달라 성경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그런 ‘사도신경’을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드리는 예배에서 암송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것을 신앙의 고백으로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집단적으로 하는 신앙고백은 누가 봐도 성경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개인이 하는 것이라면 자기만의 체험 같은 것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예배시간마다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새번역 주기도문’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의 각주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가 달려 있는데’ 이 각주의 기도를 원문과 바꾼다면 그야말로 최상최선의 기도가 되리라고 여겨진다.
‘…기도문’이라고 되어 있다 해서 그것을 ‘암송’하라는 것은 아니다. 온 심령과 마음을 다하여, 그러니까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드려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료들을 살펴 보다 어느 것이나 할 것 없이 ‘사도신경’을 말하며 그것을 암송하다, 외우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도신경’이 됐건 ‘주기도문이’이 됐건 그것은 암송을 하거나 외우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라면 고백하는 것이고, 기도라면 드리는 것이다.
사도적이지도, 성경적이지도 않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도신경’을 그 존귀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왜 암송하거나 그것으로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리 뜯어 고치고 저리 뜯어 고쳐 온 것을 그래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인가. 교회에서 해 온 것이니 그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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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15:1-3 참조)
임종석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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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인슐린 주사를 5번 맞는데 2가지를 맞아야 하고요 혈 당 체크
대문에 수시로 몸에 바늘을 10번 넘게 찔러야 하고요 먹는 약이 합병증
때문에 여러가지라서 약 먹고 주사 맞는데...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것도 못하는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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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도 사야 되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마련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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