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9편] ⊙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면 지금이 쉼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20160113)
오늘 시편도 앞의 시편과 마찬가지의 찬양 시 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지은 주이시며, 왕이 되신 여호와를 새 노래로 찬양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을 하되, 기쁨으로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이 없이, 형식적인 찬양을 거부하십니다. 그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그런데도 만일,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면 바로 지금이 쉼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기도의 장으로 나아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시편을 통해 기쁨으로 찬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말씀에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찬양에서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성도들과의 교제에서 역시, 보이지 않는 상실감이 나타납니다. 과연 무엇때문일까요? 교회 때문일까요? 아니면 목회자들 때문? 그것도 아니면 공동체의 지체들 때문일까요? 물론 그런것도 어떤면에서는 분명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내 자신의 문제입니다. 내가 귀를 막고, 좋은것만 들으려하고, 듣기싫고, 나를 정죄하는듯한 그런 말들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래서 힘이듭니다. 그래서 모든것에 기쁨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형식적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횟수가 줄어들고, 그래서 교회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위로를 받지 못하며, 급기야 교회를 떠나게 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우리 분명히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러한 말씀을 저희 공동체이기에 과감이 드릴수 있는것입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하기 힘든 말이기 때문입니다. 왜그렇습니까? 한 영혼이라도 실족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방법상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여러분에게 믿음을 주었습니까? 목회자의 설교가 여러분을 감동시켜 믿음에 이르게 했습니까? 아니면 성도들간에 교제를 통해, 아니면 성경공부를 통해 믿음에 이르게 되셨습니까? 그러나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이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합니까? 하나님은 이처럼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느나라에 글 재주가 있는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꽃이 붉게 물든 산을 보고 형은 개화만산홍 즉 '꽃이 피니 모든 산이 붉구나'라고 했습니다. 이에 반해 아우는 낙화만산홍 즉 '꽃이 지니 모든 산이 붉구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한가지 현상을 높고 긍정적으로 노래했던 형은 후에 정승이 되었지만, 부정적으로 노래했던 아우는 옹색한 서생으로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부정 보다는 긍정을 좋아하십니다. 그건 이러한 긍정의 태도에서 우리의 믿음이 출발하기 때문이며 찬양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하십니까? 하루 하루가 은혜이십니까? 그럼 찬양을 드리십니오. 말로 만의 감사와 말로 만의 은혜와 감격은 보기 좋은 허울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십시다. 찬양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