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힘] 1부 힘든 시절 ㉕ 다시 들이닥치는 어둠의 시간들
암 환자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셔터스톡
순조롭게 회복되는 것 같다가도 난관은 늘 있다. 우울증이 가지는 관성의 힘은 무섭다. 기분이 반짝 환해지다가 금세 어둠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이 싸움은 장기전이다.
참호를 깊이 파고 진지전을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복병은 무수히 많다. 작은 상처, 사소한 부대낌에도 애써 가다듬었던 마음이 흔들리거나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심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회사에 출근한 지 보름 정도 지났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동창 친구 몇 명을 불러내 술자리를 가졌다. 이런 평범한 만남조차도 내겐 꿈만 같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만남도 어려운 상태였다. 물론 이들은 내 상태를 잘 모른다. 힘든 상황이란 것은 알지만 그런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신적으로 환자였고,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그날 나도, 친구들도 잊고 있었다.
내가 잘 가는 고깃집에 모여 소주를 마셨다. 화기애애했다. 그러다 작은 언쟁이 일어났다.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일어나는, 그렇고 그런 언쟁이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그동안 품었던 섭섭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그냥 둘이 이야기하도록 놔두면 될 터인데 중간에 내가 끼어들었다.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나. 오늘같이 좋은 날 그냥 한잔하자.”
잔뜩 기분에 들뜬 내 말은 물론 호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네가 뭔데 나서는 거야. 너도 똑같은 놈이야.”
그 친구는 내게도 화풀이를 했다. 섭섭함을 토로하고 공격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껄껄 웃으면서 넘어가거나, 아니면 야무지게 한마디 해주고 끝냈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평소 주량보다 훨씬 적게 술을 마셨는데도 어질어질할 정도로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만큼 몸이 허약해져 있었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무방비 상태였다. 가드나 수비수가 없었다. 상대방의 비판 섞인 말이 내게는 안면을 강타하는 강펀치와 같았다. 보통 아픈 게 아니었다.
“아니. 내가 뭐….”
그러나 한마디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고 상대방의 질타를 고스란히 맞고만 말았다. 워낙 기가 죽어 있어서 뭐라고 대꾸할 말도, 기운도 없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비몽사몽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후회됐다. 괜히 술자리를 만들었다 싶었다. 매우 불쾌했다. 그 친구에게도 불쾌했지만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던 내가 더 불쾌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예전의 지옥 같은 심리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어젯밤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그의 말이 비수같이 내 가슴에 내리꽂혔다.
“넌 나쁜 자식이야.”
그날 나는 온종일 누워 끙끙거리며 힘들어했다. 주말인데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동안 운동으로 좋아졌던 컨디션이 곤두박질쳤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하든, 어떤 자세로 누워 있든 힘들다.
암 환자의 고통이 바로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있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힘들었다. 그 고통은 겪은 사람만 안다. 오직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 외에는 삶에 어떠한 욕망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원래 나는 산을 좋아했다. 번잡했던 마음도 등산을 하면 홀가분하게 정리되곤 했다. 그러나 이날은 이틀 전 충격 때문에 맥이 빠진 채 소파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산을 싫어하는 아내가 도리어 산에 가자고 졸랐다.
“자꾸 움직여. 운동을 해. 그래야 예전의 당신으로 돌아오지.”
아내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버스를 타고 정릉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북한산 능선으로 바로 올라갔을 텐데 우리는 주변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그것도 내겐 힘이 들었다. 20분 걷고 쉬고, 또 20분 걷고 쉬고…. 그렇게 둘레길 5킬로미터를 3시간이나 걸려 걷고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계속>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