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餘地)
남은 땅의 뜻으로, 여망이 있는 앞길이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말한다.
餘 : 남을 여(飠/8)
地 : 땅 지(土/3)
사람이 발을 딛는 것은 몇 치의 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거리인데도 벼랑에서는 엎어지거나 자빠지고 만다. 좁은 다리에서는 번번이 시내에 빠지곤 한다. 어째서 그럴까? 곁에 여지(餘地)가 없었기 때문이다.
군자가 자기를 세우는 것 또한 이와 다를 게 없다. 지성스러운 말인데도 사람들이 믿지 않고, 지극히 고결한 행동도 혹 의심을 부른다. 이는 모두 그 언행과 명성에 여지가 없는 까닭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안지추(顔之推)가 지은 안씨가훈(顔氏家訓) 중 명실(名實)에 나오는 말이다.
여지의 유무에서 군자와 소인이 갈린다. 사람은 여지가 있어야지, 여지가 없으면 못쓴다.
신흠(申欽)이 휘언(彙言)에서 말했다. "군자는 늘 소인을 느슨하게 다스린다. 그래서 소인은 틈을 엿보아 다시 일어난다. 소인이 군자를 해치는 것은 무자비하다. 그래서 남김없이 일망타진한다. 쇠미한 세상에서는 소인을 제거하는 자도 소인이다. 한 소인이 물러나면 다른 소인이 나온다. 이기고 지는 것이 모두 소인들뿐이다." 군자의 행동에는 늘 여지가 있고, 소인들은 여지없이 각박하다.
성대중(成大中)이 말한다. "지나치게 청렴한 사람은 그 후손이 반드시 탐욕으로 몸을 망친다. 너무 조용히 물러나 지내는 사람은 그 자손이 반드시 조급하게 나아가려다가 몸을 망친다." 역시 지나친 것을 경계한 말씀이다.
청렴이 지나쳐 적빈(赤貧)이 되면 청빈(淸貧)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터수에 가족의 희생만 강요하면 후손이 벋나간다.
세속을 떠난 삶이 보기에 아름다워도, 자식은 제가 선택한 길이 아니어서 자꾸 바깥세상을 기웃대다 제 몸을 망치고, 집안의 명성을 깎는다.
내가 옳고 바른데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 행동이 너무 각박했기 때문이다. 제 입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늘 조심해야 한다.
그는 자신 확신이 지나쳐 주변 사람을 들볶는다. 왜 이렇게 하지 않느냐고 야단치고, 어째서 이렇게 하느냐고 닦달한다.
여지가 없는 사람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한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에게 대들고, 사람을 문다. 이렇게 되면 뒷감당이 어렵다. 하물며 그 확신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폐해를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 餘(남을 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밥식변(飠=食; 먹다, 음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余(여)가 합(合)한 글자이며 먹을 것이 남아 돌다에서 '남다, 나머지'의 뜻으로 나중에 약자(略字)로서 余(여)를 쓴다. ❷형성문자로 餘자는 ‘남다’나 ‘나머지’, ‘여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餘자는 食(밥 식)자와 余(나 여)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余자는 나무 위의 오두막을 그린 것으로 ‘나’나 ‘남다’, ‘여분’이라는 뜻이 있다. 하지만 余자에 있는 ‘남다’나 ‘여분’이라는 뜻은 지금의 余자가 餘자의 속자(俗字)로 쓰이기 때문이고 본래의 의미는 ‘나’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쓰인 余자는 발음요소일 뿐이다. 餘자는 ‘음식이 남다’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食자가 의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餘자는 단순한 의미에서 ‘여분’이나 ‘남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余자는 餘자의 속자로 쓰인다. 그래서 실제 쓰임에서는 余자와 餘자가 혼용되는 예가 많다. 그래서 餘(여)는 (1)일정한 수를 나타내는 수사(數詞) 위에 붙어, 그 수 이상(以上)이라는 뜻을 나타냄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남다 ②남기다 ③나머지 ④나머지 시간(時間) ⑤여가 ⑥여분 ⑦정식 이외의 ⑧다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남을 잉(剩), 두터울 후(厚), 도타울 돈(敦), 짙을 농(濃), 풍년 풍(豊)이다. 용례로는 넉넉하고 남음이 있음을 여유(餘裕), 남은 땅을 여지(餘地), 큰 물결이 지나간 뒤에 남는 잔물결을 여파(餘波), 남은 시간을 여가(餘暇),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년(餘年), 나머지의 것을 여개(餘個),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하는 기술이나 재간을 여기(餘技), 주된 일을 하고 아직 남아 있는 힘을 여력(餘力), 종이 따위의 글자나 그림이 있는 이외의 빈 부분을 여백(餘白), 나머지 다른 것을 여타(餘他), 본디부터 소용되는 것 밖에 남거나 남긴 물건 또는 일을 여건(餘件),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한 가지의 질병에 곁들여 일어나는 다른 질병을 여병(餘病), 병이 나은 뒤의 남아 있는 증세를 여증(餘症), 다른 생각을 여념(餘念), 남아 있는 운치나 울림을 여운(餘韻), 쓰고 남은 것을 모아 둠 또는 그 물건을 여축(餘蓄), 어떤 양에 차고도 남는 부분이나 채 차지 못한 부분을 여분(餘分), 넉넉하게 갖춤을 여비(餘備), 한 번 실패하였으나 아직 남아 있는 희망을 여망(餘望), 쓰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돈이나 물건을 여존(餘存), 앞으로 남은 인생을 여명(餘命), 앞으로 남은 생애를 여생(餘生), 주되는 죄 밖의 다른 죄를 여죄(餘罪), 어떤 일을 겪은 다음의 그 나머지 세력이나 기세를 여세(餘勢), 다 쓰고 난 나머지를 잉여(剩餘), 그 나머지나 그 이외를 기여(其餘), 남아 있는 것을 잔여(殘餘), 넉넉하여 저절로 남음을 자여(自餘), 쓰고 난 뒤에 남아 있는 돈이나 물건을 영여(零餘), 여유가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여유만만(餘裕滿滿),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좋게 보여 사랑 받던 것이 나중에는 도리어 화근이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담군(餘桃啗君),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한다는 뜻으로 편지 끝에 쓰는 말을 여불비례(餘不備禮), 대체가 이미 결정 되었으므로 나머지는 의논할 여지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무가론(餘無可論), 같은 행동이라도 사랑을 받을 때와 미움을 받을 때가 각기 다르게 받아 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여도지죄(餘桃之罪), 이미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다른 나머지도 다 이와 같음을 일컫는 말을 여개방차(餘皆倣此), 나머지는 볼 만한 값어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여무족관(餘無足觀), 필요하지 아니하여 생각에 두지 아니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여사풍경(餘事風景), 빠듯하지 않고 아주 넉넉함을 이르는 말을 여유작작(餘裕綽綽),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를 일컫는 말을 우여곡절(迂餘曲折), 막다른 골목에서 그 국면을 타개하려고 생각다 못해 짜낸 꾀를 일컫는 말을 궁여지책(窮餘之策), 독서를 하기에 적당한 세 여가로 즉 겨울 밤 비올 때라는 독서삼여(讀書三餘) 등에 쓰인다.
▶️ 地(땅 지)는 ❶회의문자로 埅(지), 埊(지), 墬(지), 嶳(지)가 고자(古字)이다. 온누리(也; 큰 뱀의 형상)에 잇달아 흙(土)이 깔려 있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땅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地자는 ‘땅’이나 ‘대지’, ‘장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地자는 土(흙 토)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也자는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地자는 이렇게 물을 담는 주전자를 그린 也자에 土자를 결합한 것으로 흙과 물이 있는 ‘땅’을 표현하고 있다. 地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뱀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지(土)와 뱀(也)’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地(지)는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곳임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 옷의 감을 나타냄 (3)사대종(四大種)의 하나 견고를 성(性)으로 하고, 능지(能持)를 용(用)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땅, 대지(大地) ②곳, 장소(場所) ③노정(路程: 목적지까지의 거리) ④논밭 ⑤뭍, 육지(陸地) ⑥영토(領土), 국토(國土) ⑦토지(土地)의 신(神) ⑧처지(處地), 처해 있는 형편 ⑨바탕, 본래(本來)의 성질(性質) ⑩신분(身分), 자리, 문벌(門閥), 지위(地位) ⑪분별(分別), 구별(區別) ⑫다만, 뿐 ⑬살다, 거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곤(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천(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땅의 구역을 지역(地域), 어느 방면의 땅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덩어리를 지구(地球), 땅의 경계 또는 어떠한 처지나 형편을 지경(地境),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위(地位), 마을이나 산천이나 지역 따위의 이름을 지명(地名),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 변동 현상을 지진(地震),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땅의 표면을 지반(地盤), 집터로 집을 지을 땅을 택지(宅地), 건축물이나 도로에 쓰이는 땅을 부지(敷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남은 땅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여지(餘地),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매겨 놓은 땅의 번호를 번지(番地), 하늘과 땅을 천지(天地), 주택이나 공장 등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단지(團地),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곳을 현지(現地),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곳을 객지(客地),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천방지방(天方地方),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감격무지(感激無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