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79]전라도 사람들만의 인사법
전라도 사람들은 자신을 말할 때 ‘호남사람’이라 하지 않고 ‘전라도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내란에 적극 동조한 어느 얼치기 정치가(?)가 빛고을 광주에서 손바닥을 모아 그렇게 말하며 사랑해달라고 했다해 실소(失笑)한 적이 있다. 그는 한밤중에 별 희한한 ‘듣보잡’의 입당(入黨)쇼를 해 우리를 웃기기도 했다. 그 말이 떠오른 것은, 어제 속청태콩국수로 유명한 남원 춘원회관에서의 해프닝 때문이었다. 나와 함께 식사를 하던 지역 형님을 발견한 그 형님의 지인이 대뜸 “저그매네. 오랜만이여잉”라며 반가워하는 바람에 빠-앙 터졌다. 저그매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언제때 들어보고 안들어본 우리말인가? 아마도 전라도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그 뜻과 그 말의 뉘앙스를 짐작하거나 흉내낼 수조차 없는 토박이 인삿말인 것을.
어원(語源)을 따질 필요는 없지만 ‘저그매’는 ‘저그(저희, 너네) 엄마’의 줄임말일 터.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당신의 부인을 부를 때 ‘여보’ ‘자기’ ‘당신’ ‘00엄마’는 천만의 말씀이었다. 어느 분은 ‘임자’라고도 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저금마’ 또는 ‘저그매’라고 했다. 저금마는 저그매와 같은 말. 반대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적(저그) 아부지’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이 반가워 불쑥 튀어나오는 인사가 ‘저그매’라니? 물론 욕(辱)도 아니고 상말도 아니다. 그러나 우습지 않은가. 몇 년만에 만났는데, 그게 ‘엄마’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분은 임실군과 남원시를 오간 70대 중반의 행정공무원 출신이란다. 그들은 이후 손을 부여잡고 중늙은이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식사가 끝난 후 물었다. “성님, 어떻게 저런 인삿말이 다 있다요?” 형님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머시 어찌서 그려? 반갑다는 말을 그러케 허는구만”이라고 말했다. 아항-, 전남은 어쩐지 몰라도 전북의 순토종 인사말이 ‘롱 타임 노 씨(long time no see)’가 아니고 ‘저그매(your mother)’구나. 이런 전북지역의 ‘표준말’을 듣거나 만날 때마다 대처인 서울에서 살았다면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새삼 반갑다. 일단 무조건 정겨워서 좋았다. 나같았으면 어떻게 말했을까, 생각해 봤다. 출신지가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같은 전라도라면 “하따(아따)-, 오랜만이다잉, 안죽고 살아 있었구나잉”하며 손을 내밀 것이다. 만나서 반가운데 하필이면 안죽고 살아 있다고 할까? 그게 살아 있어 좋다는 말인 것을.
‘욕의 문화’가 가장 잘 발달된 곳은, 내 좁은 소견으로는 전남보다 전북인 것같다. 부모들은 수시로 욕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호랭이가 달착 물어갈 놈’ ‘오살헐 놈’ 등 거의 쌍욕으로 말이다.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많은 엄마들이 그 뜻을 알았으면 놀라 자빠졌을 것이나, 그들에게서 욕은 그저 ‘사랑의 관용구’였다. 어떤 경우에도 저주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저 썩을 놈’이나 ‘상게을배기, 죽어 소나 되어라’ 등은 아예 상용어였다. 초로의 선배가 돌아가신 엄마로부터 그런 욕이나마 한번 들어봤으면 원이 없겠다며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욕들이 그리웠던 게 분명하다. 결코 욕의 일상화를 옹호하거나 미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욕은 애정(愛情)의 반어법으로도 곧잘 쓰였다. 요즘이야 어느 여성을 ‘가시내’나 ‘지집애’라고 지칭하면 당장 성차별로 고발되겠지만, 우리 자랄 때에는 여성끼리도 그들만의 애칭이기도 했다. 여중, 여고 동창생들이 수십 년만에 길거리에서 만나면 “아이고, 지집애(가시내), 안죽고 살아 있었네”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얼싸안고 좋아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제 그것은 완전히 없어진 풍경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욕을 장려하려는 뜻이 아님을 잘 알리라.
아무튼 ‘저그매네’는 인삿말로도 쓰이지만, 어떤 사건이나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도 쓰이는데, 그때는 ‘낭패를 봤다’ ‘망했다’ ‘그럴 줄 알았다’ 등의 의미이다. 참말로 다채로운 것이 ‘전라도 말의 풍경’. 어느 방송사가 주최한 <전라도 사투리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핸숙이의 일기’를 보면 시종일관 빠앙 터진다(동영상 검색도 가능). 또한 <전라도닷컴>에서 해마다 하는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보면 사투리나 방언의 진수를 여실히 맛볼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의 <폭삭 속았수다>에 뜻도 모르면서 정겨운 제주도 방언들이 수두룩하지 않던가. ‘속았다’고 해 사기를 당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애썼다’는 뜻이란다. 애순이와 관식이의 사랑에 눈시울을 몇 번이나 적셨던가. 그들도 한세상의 길고 깊은 강을 건너며 애 참 많이 썼다. 사투리, 방언 만세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