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현존하는 건축물 중 유일한 일본풍 목조 건물이다.
1923년 지은, 사형 선고를 받고 투옥된 전국의 애국지사들이 이감 후
생을 마감한 장소다.
형무소는 죄인들을 감금하는 곳이지만, 서대문형무소에서 온갖 고초를 당한
이들은 목숨을 바칠 만큼 나라를 사랑한 애국지사들이었다.
서대문형무소를 걷는 내내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서대문형무소는 전시관, 중앙사, 12옥사, 공작사, 한센병원, 순국선열추모비,
사형장과 시구문, 유관순 지하 옥사, 담장과 망루의 순으로 관람한다.
전시 공간을 두루 돌아보고 나오면 강우규, 안창호, 유관순 열사 등
순국열사의 이름을 기록한 추모비가 눈에 띈다.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지난날의 기록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과거의 의미를 아로새겨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역사의 장이다.
유관순 지하 감옥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의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한 소녀가 체포당한다.
그녀는 3년형을 선고받고 그 해 8월 서대문 감옥으로 옮겨졌으나
법정모독죄로 7년형이 추가된다.
또한 동료 수감자와 함께 대규모 만세운동을 벌이다 지하 독방에 감금되고
고문과 영양실조를 견디다 못해 1920년 10월 12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바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던 지하 감옥도 보존되어 있다.
연혁1908년 10월 21일 | 경성감옥으로 신축 |
1912년 9월 3일 | 서대문감옥으로 명칭변경 |
1923년 5월 5일 | 서대문형무소로 명칭변경 |
1945년 11월 21일 | 서울형무소로 명칭변경 |
1961년 12월 23일 | 서울교도소로 명칭변경 |
1967년 7월 7일 | |
1987년 11월 15일 | |
1988년 2월 27일 | 국가사적 지정(제 324호) |
1998년 11월 5일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
2007년 3월 6일 | 제1종 전문박물관 등록(제37호) |
2007년 10월 18일 | 국가현충시설 지정(제 10-1-23호) |
2010년 11월 5일 | 전시물 교체 정비 |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 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과거 악명 높았던 감옥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87년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기도 하다.
크기는 부지 19만 8,348m2, 연건축면적 26,446m2,
수감 가능인원 3,200명(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지금의 역사관은 당시 부지 중 일부만을 재보수 및 복원해놓은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구성은 출입문 바로 앞으로 보이는
전시관, 바로 뒤로 중앙사, 그리고 그를 이어서 제9~12옥사와 공작사, 한센병사,
추모비, 사형장, 시구문, 격벽장, 여옥사(구 유관순 지하감옥), 취사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취사장은 건물이 부족해서 그런지 기념품 가게와 같은 건물에서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지하 고문실에는 밀랍인형으로 고문을 받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한 데다가, 고문실 자체가 지하에 있어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견학하러 온 어린 학생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줄 정도이며
여성 독립지사를 고문 장면을 재현한 데에는 처절하게 음성까지 들린다(...)
센서라지만 무섭다.[6] 한 사람이 서 있을 공간만 있어 2~3일 동안 갇혀있으면
전신마비가 온다는 고문실인 벽관도 재현해 놓았는데, 이것도 정말 무섭다.
무서운 것에 약하다든가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가지 말자.
대부분의 감옥은 옥문을 닫아놓았지만 몇 개는 열어놓아서,
3평 남짓한 옥내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단, 유관순 지하감옥은 완전히 막아놓았는데,
유리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로 내부를 관찰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감옥은 3평에서 5평 정도로 운신의 폭이 있지만 지하감옥은 독방이라
그런지 한평 남짓한 좁은 내부를 가지고 있다.
갇혀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옥고를 짐작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구조이다.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과 중앙사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개조해서
영상실, 기획전시실, 자료실, 옥중생활실, 임시 구금실, 고문실 등으로
당시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나머지 7개 동의 옥사 중
제 10, 11, 12 옥사는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0년부터 전시물 교체 정비를 하여 1987년 서대문 형무소 이전 당시 철거되었던
식당, 격벽장, 여옥사(1979년 철거) 등을 복원해냈으며,
보안과 건물 역시 일제강점기 시절 그대로 복원해 내기도 했다.
참고로 서대문 형무소의 옥사와 격벽장은 한국에서 흔한 구조가 아닌
파놉티콘 구조로 만들어진 형무소였다.
중앙사는 중앙사로부터 연결된 모든 옥사를 다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지만 감방에서 간수를 육성으로 부르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관 운영업무는 2003년까지 서대문구청에서 맡다가
2004년부터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이 담당 중이다.
첫댓글 쉬어 갑니다.
우리의 뼈아픈역사 서대문 형무소에 대하여 세세하게
적어 주셨네요.
그 뼈아픈 과거를 지나고온 우리세대들 이지만
아직도 알게..모르게..일제 잔재에 동조하거나 묶인되며 지나치는 일들이
있는곳 같아서 마음이 그리 하네요.
잘 읽었읍니다.
소녀의 몸으로 옥고를 치루다 돌아가신 유관순 열사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해방과 자유
참으로 기리 기리 새겨야 겠습니다
국력이 약할때 먹히는 식민지의 아픔은 위안부문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 생명들을 앗아 갔지요?
잊지말아야 하겠습니다
18세소녀가 그런 위대한 신념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누구도 감히 따라할수 없는
애국소녀 유관순열사--대단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