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어제는 예진, 예원이랑 신세계 아쿠아리움을 구경하였습니다.
신기한 물고기들을 말씀으로 만들어내신 주님을 생각하였습니다.
10분 공연하는 인어공주쇼가 가장 인기있는 시간이라, 그것을 보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인생은 그 반대임을 생각합니다.
영원에 잇댄 10분과도 같은 짧은 인생임을 생각하며
주를 위한 이 땅의 삶을 잘 살아내게 하옵소서.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두 아이랑 스파밸리에 가서 놀기로 하였습니다.
수영장은 제일 흥미없는 곳이지만 아이들이 좋아서 길길이 날뛰며 기대하니 보호자로서 할 수 없이 갑니다.
두 아이의 믿음의 싹을 틔우기 위한 과정임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잘 견디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수시로 오염되는 마음,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7. 열두째 해 어느 달 열다섯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애굽의 무리를 위하여 슬피 울고 그와 유명한 나라의 여자들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에 던지며
19. 이르라 너의 아름다움이 어떤 사람들보다도 뛰어나도다 너는 내려가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와 함께 누울지어다
20. 그들이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엎드러질 것임이여 그는 칼에 넘겨진 바 되었은즉 그와 그 모든 무리를 끌지어다
21. 용사 가운데에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와 함께 스올 가운데에서 그에게 말함이여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내려와서 가만히 누웠다 하리로다
22. 거기에 앗수르와 그 온 무리가 있음이여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라 그 무덤이 그 사방에 있도다
23. 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24. 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25. 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침상을 놓았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뉘었도다
26. 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27.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가운데에 이미 엎드러진 용사와 함께 누운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용사들은 다 무기를 가지고 스올에 내려가서 자기의 칼을 베개로 삼았으니 그 백골이 자기 죄악을 졌음이여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로다
28. 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29. 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30. 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31.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 내가 바로로 하여금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게 하였으나 이제는 그가 그 모든 무리와 더불어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곧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이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 주해)
애굽의 지상적 멸망에 이어 죽음 이후의 멸망을 다룬다.
17~21절 : ‘도대체 네가 누구보다 더 아름답다는 거냐? 너는 아래로 내려가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과 함께 누워라’(새번역)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자신의 강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자들이 구덩이 지하 무덤에 내려가서 누울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유명하였고 아름다웠고 용사였던 자들이 다 무덤에 가만히 눕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유대인 사회에서 아주 수치스러운 이방인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에게 언약 백성의 표지인 ‘할례’는 매우 중시되었다. 만일 할례 받지 않고 죽으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모멸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할례받지 않은 죄는 지하 세계(스올)까지 효력을 발생하는 죄로 간주되었다.
에스겔의 예언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22~30절 : 고대 강대국들이 당하는 죽음 이후의 운명을 기술한다.
22~23절--그 무덤에 앗수르와 그 온 무리들이 있다.
앗수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나라로서 한때 세상을 두렵게 한 자들이다.
유대인들은 하늘을 신적인 영역으로, 땅은 산 자의 영역으로, 지하는 죽은 자의 영역으로 보며 이와 함께 구덩이나 스올은 심판받는 자들이 가는 곳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지금 무덤이라고 하는 곳은 곧 스올과 연결이 되며 이곳이 결국 지옥이다.
그런데 이런 지옥에 들어가 있는 자들이 생존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두렵게 한 자들이었다.
24~25절--그곳에 엘람도 있다.
엘람은 앗수르 동편에 거한 나라인데 역시 생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한 나라이지만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다.
26~28절--그곳에 메섹과 두발도 있다.
메섹과 두발은 소 아시아의 산지족들이다. 이 나라들은 두로와 무역을 한 나라의 목록에 등장한다. 이들도 역시 생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한 나라들이다.
그러나 결국 다 스올로 내려간 자들이다.
27절--“그러나 그들은, 전쟁 무기를 가지고 스올로 내려가 칼을 베개로 삼아 베고 방패를 이불로 삼아 덮고 자는 고대의 전몰 용사들과 함께 눕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던 자들이었다.”(27절, 새번역)
전쟁 무기를 가지고 스올로 내려간 자들은 고대의 용사들로서 영예롭게 죽은 자들이다. 영예롭게 죽은 용사들의 경우 그들의 칼이나 방패와 같은 무기를 부장품으로 묻어주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그런데 26절에 나오는 메섹과 두발의 군인들은 모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요 칼에 찔려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고대의 용사들과 함께 눕는 영예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8절--“이제 너 이집트는 패망하여, 칼에 찔려 죽은 자들과 함께,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과 함께 누울 것이다.”(새번역)
갑자기 표현되는 애굽에 대한 삽입 구절이다.
29~30절--그곳에 에돔과 시돈 사람들도 있다.
이 왕들과 고관들도 역시 강성하였기에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다.
이러한 자들이 이미 지옥에 가 있는데 이곳에 최종적으로 바로가 들어가는 것이다.
31~32절 : 오늘 본문의 결어로서, 애굽 왕과 그의 군대에 대한 최종 운명을 거듭 진술한다.
바로가 스올에 들어가서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자기만 망한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위로가 되었다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 한때 강성한 나라가 되어 세상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을 두렵게 한 사람들이 스올에 다 함께 모여 있다는 것이다.
바로가 망하고 지옥으로 갈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런데 그 결국이 지옥인데 그곳에 가보니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하면서 왕으로, 용사로, 세상의 유명한 자로 살았던 자들이 다 그곳에 와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에스겔을 통한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나의 묵상)
생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던 자들의 최후가 비참하다.
오늘 본문에서는 땅 속 깊은 곳에 허무하게 시체로 누워있는 꼴로 표현되지만, 그러기만 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렇다면 ‘죽으면 끝’이 될 것이지만,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영혼들은 꺼지지 않고 타는 불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16:22~24)
생존 세상에서 감히 비교할 수 없었던 부자와 나사로가 영원의 세상에서 그 운명이 180도로 바뀐다.
오늘날 온 세상은 다 힘을 가지기 위해 달려간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도 다 힘을 가지고 군림하고 싶은 것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두렵게 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소극적으로는 힘이 있으므로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함이요, 적극적으로는 그 힘을 가지고 남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의 힘을 가지려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주님의 말씀일까? 사탄의 말일까?
사탄의 말을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세상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힘을 무너뜨리는 십자가를 가지게 될 뿐이다.
죄의 세력은 세상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떵떵거리는 삶을 허락하는 대신 그 영혼을 영원히 불지옥에 내던져 버린다.
그 속임수에 넘어갔던 자들이 애굽을 위시한 떵떵거리던 나라와 그 고관들이었다.
100년도 안 되는 이 세상의 생을 예수 없이 살아가면 영원한 고통에서는 헤어날 길이 없다.
그 끝 날에 후회하고 뉘우쳐도, 아니 이를 갈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사로를 두렵게 한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사정을 해도 물 한 방을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의 선포를 들으며 나는 오늘도 이 세상을 마주한다.
그렇게 그 힘이 부럽고, 그 화려함에 목이 돌아가던 자를 주님께서 그 세상에서 탈출시키시니 이제 세상에 대해 애가를 부르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주님과의 매일의 교제에서 세상의 힘을 못 박는 십자가의 능력에 대해 듣고 배우며, 나의 별세를 주님께 의탁하는 자가 된다.
(묵상 기도)
주님,
세상에 착붙 하여 살아가는 자에게 ‘세상의 힘이 아니란다’ 계속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귓등으로도 알아듣지 못하던 자의 귀를 열어
말씀이 쑥 들어오게 하시고 마음판에 새겨주십니다.
세상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니
단어로만 들었던 별세 신앙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 됩니다.
세상에 대한 애가를 부르는 자 됩니다.
그리고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별세를 성령님께 의탁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