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지의 물
원제 : Swamp Water
1941년 미국영화
감독 : 장 르노아르
제작 : 대릴 F 재눅
출연 : 다나 앤드류스, 월터 브레난, 월터 휴스턴
앤 백스터, 버진 길모어, 존 캐러다인
메리 하워드, 워드 본드, 유진 팔렛
러셀 심슨, 조 소여
프랑스 영화사의 초기 거장으로 꼽히는 장 르노아르는 유명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아들입니다. 그의 영화이력은 무성영화 시대부터였고, '나나' '기쁨없는 삶' 등의 영화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30년대 유성영화 시대에는 '랑주씨의 범죄' '위대한 환상' '게임의 규칙'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1940년대 할리우드 진출기가 있었고, 다시 50년대 프랑스 복귀 후 활동하면서 '프렌치 캉캉' '엘레나' 같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꽤 다양하고 긴 이력을 갖추었죠. 그의 이력 중 비교적 할리우드 진출기 작품들이 덜 알려졌습니다. 사실 1940년대 초중반은 프랑스 영화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것 때문이지요. 장 가방 등 프랑스의 대표 배우들의 프랑스 영화를 떠나야했고, 마르셀 카르네는 영화 연출을 중지했습니다. 망명을 한 감독들도 있고. 세계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프랑스 영화가 2차 대전시기에 사실상 공백기를 가졌지만 할리우드는 여전히 활발한 작품들이 등장했고, 연합군을 응원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도 등장했습니다. 그 시기에 장 르노아르가 연출한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늪지의 물'은 장 르노아르의 할리우드 진출 1호작입니다. 프랑스 감독이지만 명성이 높아서인지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많이 출연합니다. 크레딧에 보면 월터 브레난, 월터 휴스턴, 앤 백스터 등 이름있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실제 원톱 주인공은 네 번때 크레딧에 등장하는 다나 앤드류스 입니다. 앤 백스터 역시 당시에는 신예였는데 크레딧에 주인공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조지아 주에 위치한 실제 늪지대에서 촬영했습니다. 아주 긴 늪지대인데 미로같이 좁고 긴 늪지대라서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악어, 살모사 등이 있어서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으로 일종의 미국속의 정글 같은 곳이죠. 이곳에 살인 혐의를 쓰고 숨어 살고 있는 톰 키퍼(월터 브레난)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이곳에 온 젊은 청년 벤(다나 앤드류스)은 톰 키퍼를 만나게 되고 그가 실제로는 살인범이 아니고 누명을 썼다는 걸 알게 됩니다. 처음에 벤을 경계했던 톰은 그가 괜찮은 청년이라는 걸 알고 빠져나가는 곳을 알려 줍니다. 벤에게서 자신의 딸 줄리(앤 백스터)가 마을 상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벤은 이후 늪지를 잘 아는 톰의 도움으로 이곳의 동물들을 잡아 가죽을 팔면서 돈을 벌게 되고 수익금 일부를 줄리에게 전달합니다.
마치 소설 '보물섬'에 나오는 벤 건이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활하는 톰 키퍼와 그를 발견한 청년의 우정인데, 이후 전개될 이야기는 톰이 누명을 벗고 나오게 되고 진범이 드러나는 내용이겠죠. 그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벤의 아버지 더스데이(월터 휴스턴)는 젊은 여인 한나와 재혼해서 살고 있는데 한나에게 집적대던 제시 라는 기타맨이 더스데이가 오자 허겁지겁 달아납니다. 한나는 괄괄한 더스데이의 성격상 제시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 같아서 그의 얼굴을 못 본 더스데이에게 자신에게 집적댄 남자가 누군지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벤은 한나가 숨겨둔 기타를 보고 제시가 그랬다는 걸 알게 되고 제시를 찾아갑니다. 과거 제시가 톰 키퍼의 살인을 증언했다는 사실을 기억한 벤은 그를 추궁하여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을 실토받고, 마을의 악당 도슨(워드 본드) 형제가 실제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제시의 증언으로 보안관은 진실을 알게 되고 벤은 톰을 데리러 늪에 가는데 도슨 일당이 뒤를 쫓습니다. 늪지에서 톰을 만난 벤은 도슨의 추격을 받는데....
제법 인간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늪지대에 사는 시골 남자들의 거칠고 투박하지만 단순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지요. 다나 앤드류스가 연기한 벤은 의롭고 용감한 청년이고 아버지 역의 월터 휴스턴은 투박하고 무뚝뚝하지만 내면은 인간적인 인물이지요. 다나 앤드류스는 데뷔한지 1년 밖에 안된 신예였고, 월터 휴스턴은 30년대 '미국의 광기' '공작부인' 등 수작에 주연한 이름있는 배우였는데 의외로 월터 휴스턴의 비중이 굉장히 적습니다. 거의 다나 앤드류스의 독무대로 펼쳐지는 내용이지요. 이후 그는 '로라 살인사건' '우리생애 최고의 해' 같은 40년대 걸작에서 주연을 맡게 되지요. 다나 앤드류스와 앤 백스터가 기대되는 신예 배우의 발탁이라면 월터 휴스턴, 월터 브레난 등은 베테랑 배우의 안정적 캐스팅이었지요. 게리 쿠퍼와 함께 여러 편에서 함께 콤비를 이룬 것으로 기억되는 명 조연 배우 월터 브레난은 여기서 누명을 쓰고 늪지대에서 몇년 숨어 살고 있는 톰 키퍼 역으로 의로운 청년 덕분에 결국 누명을 벗는 역할입니다. 존 포드 영화에 감초 조연으로 많이 등장하는 등 30-50년대 많이 활동한 워드 본드가 악역이지요. 그 외에도 유독 마른 얼굴이 특징인 조연 배우 존 캐러다인도 진실을 은폐했다가 실토하는 기타맨 역할입니다. 월터 휴스턴이 명감독 존 휴스턴의 아버지인데 존 캐러다인은 TV 인기 시리즈 '쿵후'로 알려지고 '킬 빌'에도 출연한 배우 데이빗 캐러다인의 아버지입니다. 데이빗 캐러다인 역시 아버지 닮아 유난히 마른 얼굴이 특징이지요. 그러고 보니 감독도 유명 화가의 아들이니 감독, 배우 몇 명이 모두 대를 이어 유명한 인물인 셈입니다.
세련된 미국 스튜디오와 스텝의 도움이었는지 사실 프랑스 시절 만든 걸작으로 칭송받는 작품들에 비해서 오히려 차분하고 안정적인 영화로 보입니다. 감독이 누군지 모른다면 거의 미국영화 같지요. 하지만 장 르노아르는 제작자 대릴 재눅과 계속 충돌을 하고 심지어 때려칠 뻔 했다고도 하는데 로케 촬영을 주장하는 그와 스튜디오 촬영 위주로 가자는 제작자와 충돌이 심했다죠. 프랑스와 할리우드의 촬영 방식의 차이와 제작자의 입김이 센 할리우드 스타일이 충돌의 원인이 된 셈이죠. 그래서 크레딧에 오르진 않았지만 어빙 피첼이 대신 연출한 부분도 제법 있다고 합니다. 영화가 비교적 깔끔하고 재미있게 나왔지만 장 르노아르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운 작품이 된거죠.
배역도 앤 백스터의 역할은 진 티어니에게 갈 뻔 했는데 그럴 경우 존 포드가 같은 해 연출한 '타바코 로드'와 너무 흡사한 역할이 될 뻔 했습니다. 결국 앤 백스터가 린다 다넬, 진 티어니 등을 제치고 캐스팅 된 것입니다. 다나 앤드류스 역할에 장 가방도 고려되었다고 하지만 캐릭터 특성상 안 되길 잘한 것으로 보입니다. 헨리 폰다나 타이론 파워 였다면 어울릴 수 있었겠지만.
무난히 흥미로운 작품이고 적절한 로케 촬영과 세트 촬영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장 르노아르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40년대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외형을 갖춘 영화라서 감독의 이력에서는 그다지 꼽히지 않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물론 일반 대중이 보기에는 낭만적이고 권선징악 내용이 담겨져서 무난히 흥미로운 컨츄리 스타일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해 만들어진 존 포드의 '토바코 로드' 보다 흥미로웠습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진 티어니는 이 영화에서 앤 백스터에 밀려서 캐스팅되지 못했지만 3년 뒤 다나 앤드류스와 필름 느와르의 몇 손꼽힐 걸작 '로라 살인사건'을 함께 하게 되죠.
ps2 : 조지아주는 미국 남동부쪽 지역으로 남부의 제일 동쪽이고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지사를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부지역이니 목화와 섬유산업이 활발한, 즉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이기도 하죠. 미국의 인종문제의 영화를 다룰 때 남동부 지역이 많이 배경이 되곤 합니다.
ps3 : 월터 휴스턴은 믿음직스러운 상남자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인데 여기서도 다소 다혈직적 면이 있지만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듬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출처] 늪지의 물 (Swamp Water, 1941년) 장 르노아르 미국 연출 1호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