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스파밸리에서의 시간을 잘 견디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너무도 즐거워하였지만 저는 시계를 몇 번이나 체크하며 마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만족하니 그저 감사합니다.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예진이랑 국립대구과학관 관람을 합니다.
예진이 성향에 어울리는 곳이라 기대를 해 봅니다.
관찰하고 이해하고 계산하는 아이의 눈이 장차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운 눈이 되길 기도합니다.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언제나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온전치 못한 마음을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본문 주해)
1~6절 : 파수꾼의 역할이란 적이 오면 나팔을 불어서 경고하는 것이다.
파수꾼은 적이 오는 것을 보고서 나팔을 불어 백성을 경고하는데 나팔 소리를 듣고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의 죄악으로 죽을 것이다.
그런데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았기에 적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지만, 그 책임을 파수꾼에게 돌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반드시 나팔을 불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보게 되는 것은 참된 선지자보다 거짓 선지자가 절대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미가야 선지자 때에는 거짓 선지자가 400명이었고 참 선지자는 한 명이었다.
엘리야 때에는 850:1이었다.
사람들은 다수 속에서 안전을 찾는 본성이 있다.
더구나 거짓 선지자들의 선포 내용은 사람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희망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보기에는 거짓 선지자들은 참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나 에스겔은 그들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레미야 선지자는 매국노처럼 보이는 것이다.
7~9절 :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그 파수꾼으로 세우셨다고 하신다.
에스겔 3:16~21절에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시는 말씀과 파수꾼의 역할을 말씀하였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에스겔이 파수꾼의 역할을 한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파수꾼이 되어 백성들을 경고하였다.
에스겔은 온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줌으로 그들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나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이나 간에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신다.
파수꾼은 적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에게는 쳐들어올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심은 다른 적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쳐들어오시는 것에 대하여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게 생명의 복음을 듣게 하신 후, 나는 복음의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자가 되었다.
비록 목회자는 아니지만 말로, 글로, 삶으로 나팔을 부는 자가 되었다.
온 몸과 마음과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에스겔 선지자와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나도 하나님께서 복음의 나팔을 부는 파수꾼으로 세우셨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절감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나팔 부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에스겔이 악인과 의인에 대해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을 에스겔에게 묻겠다고 하시니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람을 가리기 때문이다.
기질이 달라서 못 전하고, 신앙의 색깔이 달라서 전하기 싫고,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아서 안 전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패스하고, 심지어는 전하고 싶지 않은 자도 있다!
이게 무슨 파수꾼인가?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행20:26~27)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하게 증언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저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새번역)
바울 사도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한 것은 그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꺼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최고의 파수꾼 역할을 해 주셨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만을 다 전해 주시고, 내게 내려질 심판을 온몸으로 막아주신 파수꾼이시다.
이것을 알게 되니 가슴이 벅차 나도 예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간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거룩한 마음이 된 듯 파수꾼의 명칭은 기뻐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다해내지 못하니, 호랑이 가죽만을 탐낼 뿐, 무서워 동굴로 들어가지 못하는 간사하고도 못난 자이다. 거기다가 요즘은 복음의 나팔을 부는 것을 막고 점점 조여오는 상황이 전개되니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매일의 묵상 글을 나눔으로 복음의 나팔을 쉬지 않고 불게 하시니 주님 주시는 기쁨은 한결같이 차고 넘친다.
이 한결같은 기쁨을 통해 더 적극적이고, 더 야생적으로 복음의 나팔을 불라고 격려해 주신다.
나로 복음의 나팔수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살리시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니 이 나팔 불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도 살리고 나도 사는 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생각에 따라 고르고 머뭇거리는 나팔수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온전한 나팔수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제게 영생을 누리는 은혜를 주신 것은
이 은혜를 전하라고 하신 사명임을 생각합니다.
상황적으로 막힌 벽을 실감할 때 마음이 무겁지만,
열린 하늘을 기억하며 하늘의 호흡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실 분은 주님이심을 기억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처럼 주님께 순종하고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불붙는 마음을 주시고
바울처럼 꺼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마음이 되게 하셔서
주님 쓰시는 긴요한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