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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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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난초꽃을 보다가 외 / 임보
동산 추천 0 조회 55 09.10.03 09: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시집 < 황소의 뿔 >  - 책머리에

 

 

작년 11월 《은수달 사냥》을 묶어 낸 지 1년이 채 못 되어

《황소의 뿔》내놓게 된다.

10년에 시집 한 권 만들기 힘들 정도로 과작이었던 내가

요즈음 와선 1년에 한 번씩 묶어 낼 만큼 다산을 하고 있으니

무슨 신명이 들었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시 많이 만들어 낸 사람들 빈정댔더니 이제 보니 스스로를

빈정댄 꼴이 되었다.

 

제1부 ‘지하철부근’은 연작시로서 문명비평적인 작품들이다.

짧은 형식에 촌철살인의 기지를 담을 수 없을까 의도적으로

시험해 것인데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제2부는 그동안 내가 모색해 온 ‘율’(律)시리즈의 연속이고,

제3부는 비교적 정관적 자세로 세상을 바라다보고 쓴 작품들,

그리고 제 4 부는 사회 비판적 작품들이다.

 

어떠한 내용의 작품이든 쉽고, 재미있고, 멋스럽게 써 보고 싶은데

이러한 내 뜻이 이 시집의 작품들 속에서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작품을 맡아 수고해 주신 신원문화사 여러분께 감사한다.

                                                                                               

 

1989.     林 步

 

 

 

 

 

 

 

난초꽃을 보다가 / 임보

 

 

 

소심(素心)이 참 오랜만에 뒤 송이 흰 꽃을 밀어 올리기에

창가에 올려 두고 만지며 보았는데, 그 진한 향으로 종일

방을 흔들어 제법 시끄럽게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열흘쯤 했을까 문득 어느 아침에 녀석의

목이 쉬어 있음을 보았다.

그 쉰 목소리가 창에 붙박힌 방충망에 걸려 찢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이제껏 갇혀 있었구나, 벌과 나비 그리고

새들의 즐거운 세상 저 천공의 자유로부터 유폐된 방,

우리는 포로였었구나.

 

그렇구나, 네가 뿌린 그 짙은 향은 절규였었구나,

옥중 춘향이 장탄가로 님을 목메어 부르다 쓰러지듯 너는

코를 저미여 그렇게 울다 목이 갈라져 이제 주저앉았구나.

 

오늘밤 잠이 들면, 네 짙은 울음이 묻힌 내 가슴 속에서는

몇 마리 나비가 부화하여 천사처럼 그대에게 가겠구나,

가서 그대 젖은 눈을 닦는 님의 입술이 되고 그리고 드디어

꽃은 지겠구나.

 

 

 

 

 

 

 

 

그러면 어떻게 될까? / 임보 

 

 

미쓰 김

너와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너와 사랑에 빠져

남해 매몰도쯤에 가서

한 보름쯤 박혀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제 것을 뺏겼다고

아우성을 칠까?

제자들은 딸 같은 처녀와 달아난 교수에게

저주를 할까?

 

그러면 미쓰 김 아무도 몰래

한 반 년쯤 그렇게 푹 사랑에

처박혀 있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내가 돌아오도록

밤새도록 철야기도를 드리고

제자들도 그쯤 되면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마음이 누그러들질까?

 

그러면 미쓰 김

우리 한 10년쯤

아예 그렇게 지내면 어떨까?

 

온 세상이 우리를 다 잊고

우리도 이 세상 다 잊을 수 있는

그때까지 미쓰 김

두 개의 작은 섬으로

파도에 발이나 닦으면

어떻게 될까?

 

 

 

 

 

 

Untitled

 

 

 

 

우화 (禹話) / 임보 

 

 

 

낮에

파리가 꿀단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꼴을 보고

나방이가 웃었다.

 

밤에 나방이가 불꽃 주위를 돌다

드디어 불 속에 떨어져

타 죽는 꼴을 보고

파리가 다시 웃었다.

 

이솝의 이 우화를 읽고

사람들은 자못 의젓해 하며 웃는다.

그러나 그들도 이 곤충들처럼

금력의 꿀단지

권력의 불꽃 속에 빠져

죽어 가는 자신을 못 보는 것이다.

 

제법 속이 트인 시인이

비로소 그것들을 보고 또 웃었다.

그러나 그들 시인도

부질없는 언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곤충인 것을

저 위에 계신 한 분

그 분만이 보고 있다.

 

 

 

 

 

 

at West Bay Beach

 

 

 

 

세이천(洗耳川)가 늙은 솔 / 임보 

 

―율(律) 73 

 

세이천가 늙은 솔 서너 그루 

서로 고개 끄덕이며 하는 시늉 

귀도 없는 우리는 무엇을 씻나? 

바람결에 손 흔들며 배꼽 내밀고 

기지개 하품하며 웃고만 있네.

 

 

 

 

 

 

The Hendersons

 

 

 

 

우이동에 와 보셨던가? / 임보

 

 

우이동에 와 보셨던가?

 

서울에서도 가장 촌 동네

북한산 솔밭 골짝에 와 보셨던가?

 

한 번 들어오면

한 20년 산에 잡혀 떠나지 못하는

멍청한 시인들 모여 사는 동네,

 

그 동네에 와서

솔이 우는 소리 아직 못 들어 봤던가?

 

오지 말게 오지 마,

 

솔바람에 그대 귀 틔어

한 보름쯤 앓아누우면

 

어이할라고?

어이할라고?

 

 

 

 

 

진달래꽃 떼 / 임보

 

―율(律) 70 

 

 

 

진달래도

진달래도

세상 천지에

얼음 풀려 제일 먼저

하는 짓들 좀 봐

무엇이 그렇게도 조급하다고

이파리도 이파리도 내밀기 전에

급한 년 속것에다 그냥 묻히듯

그렇게들 시끄럽게 퍼질러대나

부끄럼도 모르고 내놓고들 서서

목이 갈라지도록

짝 찾고 있나?

 

 

 

 

 

 

 

 

 

 

동여맬까 봐 / 임보

 

―율(律)?57

 

 

 

비진도(比珍島) 숫바다 그 돌밭에서

연꽃 시늉한 돌 하나 만나

내 책상머리에 끌어다 놓고

밤마다 파도소리 듣고 있는데

 

오늘밤 매실주 홀짝이면서

내 소견 좁음을 다시 보네

뭘 하러 예까지 그걸 업고 와

얽힌 가슴 첩첩이 더 얽어매나?

 

허기사 차라리 정을 풀까 봐

먹물 같은 눈먼 정 바다만큼 풀어

이 반생(半生) 무거워 더디 가도록

얼키설키 이 세상 동여맬까 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침목(枕木) / 임보

 

 

 

침목들은

침목들은

종일 누워서

 

맨몸으로

맨몸으로

못이 박힌 채

 

달리는 전동차를

받치고 있다.

 

 

 

 

 

The retirement

 

 

 

황소의 뿔 / 임보 

 

 

 

애초에 우리들은

바다를 지키는 순진한

수병들이었다

망대에서 바다를 감시하거나

정찰선을 타고 가끔 바다를

순양하는 일 외에는

해안의 언덕 위에 한가롭게 자리한

우리들의 기지, 그 녹색이 막사에서

종일 딩굴며 지내는 것이

우리들의 일과였다.

 

우리들의 막사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곳에

가난한 어촌이 하나 있었고,

고개를 넘어 북으로 가면

한적한 농촌이 두엇,

그리고 고개를 또 넘어

한 시간쯤 걸으면

작은 읍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주변은

온통 바다와 산

우리들의 상징, 게양대의 깃발만이

외롭고 평화로운 해안에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총을 가진 병사들이었지만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니 한 번도 생명을 향해

굽은 방아쇠를 당겨 본 적도 없는

순진한 숙맥들이었다

비번일 때 우리들은

묵은 편지를 꺼내 다시 읽거나

다 닳은 화투장을 돌리며

남은 시간을 죽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들의 막사 안에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무엇이라고

꼭 다잡아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들의 잔잔한 가슴을 흔들어대는

어떤 흥분 같은 것이었다

아니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전투나 혁명 전야에 흔히 기대되는

바로 그 짜릿한 전율 같은 흥분이었다

이 조용한 우리들의 막사에

무엇이 이 바람을 일으켰는가?

누가 이 열병의 바람을 몰고 왔는가?

그것을 우리는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바람의 주도자는

바로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해 온

우리들이 ‘쥐’라고 명명한

우리들의 선임하사

그 자의 배꼽에서부터 일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건,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차라리 그것은 우리들의 무료를 푸는

낭만이기조차 했다

우리는 즐겁게 계획을 세웠고,

명랑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출발했다

낯익은 어둠 속을 헤치고

개들이 짖어대는 가난한 어촌,

울타리도 없는 골목으로 포복해 들어갔다

그리고 두 마리의 닭을

감쪽같이 훔쳐왔다

취사장 주변에 모인 우리들은

뼈에 묻은 마른 닭의 살점을

싱글거리며 아쉽게 핥았다

그리고 미처 몰랐던 이상한 공복을 깨달으며

침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며칠 뒤

두 번째의 사건을 음모했다

그것은 좀 심각한 것이어서

작전을 세울 때부터 웃는 놈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들고

반대하고 나선 놈도 하나 없었다

자정이 넘어 우리들은 출발했다

어촌을 지나 고개를 넘어

농촌의 축사 쪽으로 접근해 갔다

우리들의 목표는 살진 중돝이었다

백정의 아들이었던 한 녀석이

소리도 없이 잡아오는 법을 알고 있었다

두 번째도 우리는 성공했다

그리하여 취사장 곁 간이식당에서

소주에 돼지다리를 뜯으며

죄악의 달콤한 구렁에 빠져들어

우리들의 창자가 썩어 내린 줄도 모르고

날이 새도록 떠들며 먹어댔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제 그것으로 그만두었어야 했다

훔치는 일이 얼마나 자신들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일찍 깨닫게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선임하사 그 ‘쥐’의 눈빛은

우리들을 쉽게 풀어 주지 않았다

아니, 순진한 병사들도

이젠 제법 음모와 약탈에 길이 들어

신나는 새로운 계획,

보다 크고 전율스런 새 사건을

은근히 열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드디어

그 마지막 죄악의 수렁 속에

우리들의 육신을 던져 넣었다.

 

세 번째 거사,

우리들의 음모와 약탈도 성공했다

읍내 쪽의 먼 마을을 향해

어둠을 가르며 진격해 갔다

우리는 드디어 소도둑이 되어

한 마리 황소를 훔쳐서 몰고 왔다

황소는 우리들의 기대보다 온순하게

그것이 죽음을 향해 걷는 그의

마지막 걸음인 줄도 모르고

우리들의 앞을 서 걸었다

막사 앞 노천 광장에 모닥불을 피우고

우리는 삽과 칼로

풍요한 약탈물을 짓이겨댔다

함포고복,

술과 원무로 어둠을 부비며

해가 뜨도록 뜯고 뜯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노획물은

우리들의 작은 장들을 채우기엔 너무 커서

먹다 남은 발목과

다루기 힘든 머리는 잘라

바닷가 모래밭에 묻어 버렸다

막사는 온통 소의 피비린내로 가득했지만

어리석은 죄악의 병사들은

그것이 새로 다가온

행복의 냄새로 잘못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의 무거운 늪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휴가를 다녀온 병사들이 마을을 지나다

이상한 모습들을 보고 왔다는 것이다

어촌에는 닭장 주변에

바닷그물을 높이 치고,

농촌에서는 축사를 헐어

대낮같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밤을 새우며 농부들이

낫을 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목이 굵은 사람들이 검은 세단을 타고

마을에 드나드는 것을

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겐 비상이 걸렸다

불침번의 숫자가 늘고

휴가가 통제되고

우편 검열이 강화되고

군기가 서릿발처럼 일어섰다

바다를 향해서 내 쏘던

초소의 서치라이트는 방향을 바꾸어

막사에 이르는 해안의 언덕과 보도를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

우리들은 눈을 부릅뜨고

우리들의 죄악을 탐지하기 위해

접근하려는 어떠한 외부세력도

단호히 사전 거부하기 위해

일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막사의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바다를 감시해야 하는 우리의 본분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버리고

우리들의 범죄를 옹호하기 위해

지상의 방어로 시선을 돌렸다

평화의 막사가 불안의 형장으로

순진한 병사들이 불신의 사병(邪兵)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불안 속에서 며칠이 흘렀다

우리들은 범죄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우고 지웠다

병사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모습을,

으깨진 얼굴들을 직시하며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가혹하게

누렸던 평화와 자유를

앗아가 버렸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어떤 병사는 성호를 긋기도 하고

어떤 병사는 관세음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갔다,

우리들의 범죄는 벌써

망각의 무덤 속에 묻혀 사라져 버릴 듯

이제 새로운 평온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막사 안에서는 더러 웃음소리도 일어나고

육지에 붙박혀 있었던 초소의 감시경은

이제 가만가만 바다를 향해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먼 항구의 지휘본부에서

순양함이 지나다 닻을 내렸다

혼비백산,

우리들은 우리들이 얼마나 모범 병사인가를 과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재빨리 검열 준비를 마치고

질서 정연 해안에 도열하여

검열관의 보트가 상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해안의 은빛 모래사장 위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갈매기 몇 마리

꺼우꺼우 울면서

목각처럼 늘어서 있는 우리들의 도열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도열의 맨 앞에 서 있던

우리들의 선임하사 ‘쥐’의

가는 눈이 불빛을 번득이며

파도가 스쳐 지나간 모래톱의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들의 도열 바로 몇 걸음 앞

파도의 부드러운 혓바닥이 쓸고 간 자리에

빈 고동의 껍질처럼 돋아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동보다 매끄러운

진주빛 고체,

파도의 끝자락을 애타게 물고

흔들며 일어서는 그것은

황소의 뿔이었다,

우리가 모래 속에 묻었던 황소의 머리가

파도를 불러 뿔을 씻고

지금 막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우성을 들었다

황소의 뿔이 나팔 되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그 아우성을 들었다

그리고 모래를 박차고 당장 일어서

우리들의 막사를 짓밟고 달려가는

황소의 환영 속에서

우리들은 이미 다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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