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솔문학회 20년 회고담
김 선중
1998년 IMF 사태를 겪고 이듬 해 1999년 봄이 왔다. 금 모으기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시절 큰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직원들이 건축사사무소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CHOI가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필반을 수강하자고 제안하였다. CHOI와 잘 아는 B건축사도 같이 수필반에 발을 들여 놓았다. 수필이란 자기 경험과 삶을 담담히 써내려가는 것이라는 선입관은 첫 날 지도교수의 수필이란 곧 문학이라는 일갈에 깨져버렸다. 작가가 되지 않고 대충 글을 쓰려면 시작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독특한 성격의 교수님으로 다가왔다. 대학시절 방학이 되면 고향 집에서 밤을 새우며 읽었던 세계 한국문학전집 수필집 시집 등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마음을 다져 먹었다. 처음 쓴 글이 청주 처음 올 때의 프라다나스 길을 지나던 감상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지난 경험을 적는 일부터 시작한 수필이 학기 말에 가서야 문학적 표현과 감상을 어떻게 조리 있게 전개 하는 것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체득하였다. 그 해 겨울 “제야의 종소리”라는 제목의 수필을 발표하니 많은 발전을 하였다고 격려해주시던 문우님들과 교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1999년의 봄 사무실을 접고 서울의 중견 회사의 중역으로 근무하게 되어 자연히 청주를 떠나 서울생활을 시작하였다. 주말부부로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청주로 내려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수필반을 못나갔으나 그때 문우들의 등단식이 계속 열리는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나가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느 날 푸른솔문학회가 창단되어 창간호를 발간하니 글을 내라는 소식이 욌다. 창단식 하는 날은 근무 하는 날이라 참가하지 못하였으나 창간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몇 년 후 청주로 내려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고 수필반에 나간 것이 2002년이었다. 옛날의 문우들이 몇몇 남아 있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새 얼굴들과 목요일 오후에 평생교육원 수필반에서 수업을 받았다. 평생교육원 조그만 별관은 숲속에 둘러싸여 있어 독립된 자연친화적인 교실이었다. 교내 도로에서 조금 내려가면 푸라다나스나무 밤나무들이 우리를 반겼다. 바람이 불면 잡초도 몸을 뒤척이며 대화하였다. 문우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벤취에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벤치에 나뭇잎이 쌓였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같이 흩어진 문우들의 미소와 음성이 그립다.
푸른솔문학회 동인지를 내면서 제목을 “청솔바람소리”라고 하자고 육정숙 작가가 임원회의에서 제안하였고, 내가 다음카페에 푸른속문학회를 만들자고 제안하며 임계남이 카페지기를 한 것이 그 시절이었다. 임계남에 이어 2대 카페지기를 내가 하였다. 그 해 푸른솔 문학회 사무국장을 맡고서 활동을 하던 중 마산에 대형프로젝트를 수주하였다. 현장에 상주하다보니 푸른솔문학회 목요일 모임을 참가할 수 없어 바로 사무국장을 정상옥 작가에게 인계하였다. 그 후 머나먼 고향같이 내 한 구석에 푸른솔문학회가 자리 잡았다.
2004년 겨울 “별빛 내리는 다리”로 김홍은 교수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시상이 떠오를 때면 가끔 붓을 든다.
푸른솔문학회 창단 이십 년이 다가오면서 옛날 수필반 교실을 방문하였다. 벤취는 그 자리에 있으나 낡았고 푸라다나스나무 그늘 밤나무 향기는 여전하였다. 벤취에 앉아보니 엣 문우들이 수업 시작 전에 오는 길목에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던 장면이 보이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린다. 옛 일을 회상하며 감회가 깊었다. 20년의 연륜이 나무에 나이테로 새겨졌으리라.
문학이라는 교실
사람들이 정성스레 심은 향나무가
반갑게 맞이하는 정원
망초 꽃 무리지어 피어 있다
처음 발을 딛고 들어서던 교실
신록이 우거지던 봄 날
플라타나스는 새 잎을 내고
순같이 솟는 생각들
노교수의 열정이 카랑카랑 울리던
문학이라는 이름의 교실
밤나무 향기가 날리는 봄날은 가고
낙엽 태우는 연기가 흐르던 뜨락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퍼져나갔다
그 모습 어디에 있나
낡은 나무벤치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울은 나무판 페인트는 벗겨지고
문은 닫혀있다
흰머리가 늘어가는 가는 봄
나무 의자에 앉아 보았다
잡초들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고
문고리는 녹이 슬었다
나무 큰 가지가 떨어져 있다
진동하는 밤나무 향기
담배공초 무성한 벤치
밤새 삐걱거리는 아베크족이 다녀갔나 보다
한 마리 짐승이 가로 지르는
뒷 뜨락에 바스락 자취를 남긴다
김선중 약력
2004 년 등단 푸른솔문학회 딩아돌하 회원경력
청주시인협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