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 등대
세상의 끝에서 그대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오늘의 수평선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가도 가도 끝없이 넓은 하늘로 필사의 각오를 하고 바닷새 때들 날아가지만 새롭게 버려야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에 절반은 뭍에 가두고 나머지 반은 빗장을 열어 둔 채로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전에는 허공을 향하여 내 안에서 타오르는 소중한 것들을 무조건 내놓았지만 정작 셈을 하고 미래의 손익 분기점을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그 무엇을 원하지도 않았으나 당장에라도 달라질 건 없을 것입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태풍도 점차 사그라든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나니 이제 마음 놓고 시선은 저 능선 위에 떠 있는 별들에게도 주고 싶습니다 얼마 전 내린 폭우로 이것저것 쓸려갔을 지상에서의 걱정도 저만큼 쌓여 있을 테지만 바람이 잦아들면 또 해가 떠오르듯이 남부럽지 않을 것들도 서서히 내어놓을 것입니다 시선을 거두는 곳에 새로운 항로를 묻고 그대에게 보내는 기호에 민감하듯 부름에 응하는 것들에게는 마음에 꺼지지 않을 오롯한 등불 하나 계속 켜두겠습니다 그러다 하늘에서 임종을 고하는 별똥별 하나라도 떨어지면 폭풍우 속에서도 떨고 있을 그대를 살피는 일 또한 잠시도 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총총
성주사지(聖住寺址)*
내 마음은 이곳에 올 때부터 이미 폐허였지요 흔적만 남아 옛날을 추억하던 곳이었죠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그대의 자취가 이른 봄 햇살에 투명하게 손짓하고 있어요 어쩌면 나는 이미 그대에게 가기 전부터 이 세상에 없던 이가 아니었을까 지금의 내가 나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지요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는 주춧돌의 기억으로만 남아 이곳 보령 땅 한구석에서 울고 있어요 저물녘 그대는 먼발치에서 웃고만 있고 흔적만 남아 있는 우리의 추억은 바람의 각도를 재며 잘려져 가고 있어요 정령 내가 사랑했던 건 그대, 그대라는 건 환상이 아니었을까 지상의 별에서 떠나가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저 깊은 사원도 한때의 약속만 남겨 놓은 채 이곳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잖아요 봄 햇살 투명하게 산허리의 문지방을 건너갈 때에에 비로소 그대의 손길이 노을처럼 번져 오르고 있지 않겠어요 아아, 눈부셔요
- 이용호 시집, 『팔순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집을 읽으시네』(실천문학,2021)
이용호
서울 출생. 2010년 『불교문예』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유배된 자는 말이 많다』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 중봉 조헌문학상 우수상, 김포문학상 우수상, 교단문예상, 목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