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불쏘시개
2022년 11월 9일 수요일
음력 壬寅年 시월 열엿샛날
영하 1도의 기온,
눈이 내린 듯한 지붕위의 서리,
자욱한 안개는 사방 분간이 안된다.
이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춥게만 느껴진다.
왜 그런가 했더니 몸으로 느끼는 추위보다도
마음으로 느끼는 추위가 심해서 그런 것 같다.
산골의 하루, 촌부의 오늘은 이렇게 시작했다.
어제 아침나절,
아내와 함께 옆산에서 불쏘시개 준비를 했다.
이미 장작준비는 끝이 났지만 겨우내 난롯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불쏘시개용 자잘한 나뭇가지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수월하게 불을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이서 자그마한 톱으로 자르고 손으로
자잘한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알맞게 불쏘시개를
만들어 손수레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아내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에
사색이 된 모습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입원하고 계신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임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지난 5월 9일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신 이후 하루도 빼놓지않고 전화에 너무나
민감했던 우리 부부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엄마의
지금 상태가 많이 좋지않다는 것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는 둘째네를 부르고 영주 막내처제와
통화를 시작했다. 병원측 소견을 알려주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모두 다
엄마가 편한 쪽으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모두의
눈에는 눈물범벅이 되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있는 것은 자식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촌부의 생각에 맏이로서, 엄마 다음으로
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식구들에게 우선 면회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고 아내더러 병원에
면회가 가능한지 문의해보라고 했다. 다행히 가능
하다고 하여 하루에 한번밖에 안되는 면회신청을
했다. 면회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이 왜 그렇게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지 답답한 마음, 초조함이라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다. 침착해야 하는 것이라고
혼자서 마음을 다둑였다.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시간이 되어 서둘러 자매를
데리고 원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엄마가 우리들을
알아보시고 말씀도 하시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연락을 받고 용인에서 달려와준
조카 녀석을 만났다. 엄마가 늘 챙기시는 장손이다.
먼저 가버린 처남의 두 아들은 듬직하게 제 아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우리들 마음도 늘 든든하다.
준비한 자가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한 다음 3층에
있는 엄마 병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다.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이따금씩 기침까지 하시면서... 이미 병원측의
소견을 듣고 왔는지라 마음속으론 각오를 했지만
막상 엄마를 뵙는 순간 식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눈물부터 흘렀다. 아내는 "엄마, 엄마! 눈 좀
떠봐! 우리가 왔어! 엄마가 사랑하는 손자도 오고,
둘째도 오고, 큰이서방도 큰딸도 왔어! 엄마~~~"
옆의 처제도 연신 엄마를 부르며 눈물이 글썽글썽,
조카도 할머니를 부르며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엄마의 손을 붙잡은 촌부의 얼굴에는
눈물범벅이 되어 주무시는 엄마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매도, 촌부도 누워계시는 엄마 이마에 입맞춤을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손자인
조카는 한참동안을 더 할머니 곁에 있다가 나왔다.
원장님 상당을 하려고 들어갔다. 지난 5월 9일에
입원 당시에 하셨던 말씀처럼 지난 6개월 동안을
잘 견뎌주셨으나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말로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성한 사람도 영양제만으로 견디는 것이 힘드는데
그동안 잘 견뎌주신 엄마가 너무나 대단하시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것이
너무나 안스럽고 안타깝고 답답하고 속이 상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늘의 뜻이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불과 열흘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알아보고 말씀도
하셨는데 이렇게 빨리 급속도로 나빠질 수가 있는
것일까? 한평생 너무나 선하게 예쁘게 곱게 천상
여자로 살아오신 엄마, 장모님이시지만 엄마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신 엄마, 그 엄마가 이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시고 누워 계신다. 이 아픔, 이 슬픔,
이 괴로움을 어찌 말로 글로 뭐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까? 어제 산에서 난롯불을 지필 때 밑불이 될
불쏘시개를 준비했던 것처럼 엄마가 다시 우리를
알아보실 수 있게 우리가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하며 병원문을 나서야만했다.
첫댓글 불쏘시개를 준비하시면서
엄마를 그리는 촌부님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워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고 누구는 호상이라는 말을 하지만
언제나 곁에 계실 때와 멀리 떠나실 때는 다르더라구요.
그래도 집안의 어른이시니 대범하게 맞이하셔야만 할 듯합니다.
불쏘시개의 심정으로 조금이라도 안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기를 소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