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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그곳에 서면 계절의 깊이가 보인다
2023년 11월 두발로학교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
11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3강으로, <김포 문수산성>과 <강화도 강화산성>으로 떠납니다. 문수산성은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에 자리하는데요. 아래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야산 같지만, 위로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서울과 김포, 강화도와 북녘 땅,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화산성 역시 서해와 내륙 조망이 일품이라 예로부터 한강 일대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가을이 꼬리를 보이며 단풍 빛깔이 고요해지는 11월 후반, 두 개의 산성으로 떠나 볼까요(난이도 : 문수산성은 <중하>로,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가족 트레킹으로 적합합니다. 강화산성은 절반만 걷는데 <하>로, 급경사나 어려운 코스가 거의 없어 걷기 좋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풍경이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리듯 문수산성에 오르면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김포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3강, 2023년 11월 25일(토) 준비하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에 대해 들어봅니다.
북문 출발, 문수산성 한 바퀴
김포 문수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대개 문수산산림욕장으로 하지만, 북문으로 하는 게 좋다. 북문에서 출발해야 산성의 탁월한 조망을 물 흐르듯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문은 도로 옆에 있다. 문수산성은 산정 능선은 물론 해안 지대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부서졌다. 남문과 북문 등은 복원됐지만 해안 성벽은 사라졌다.
▲능선에 놓인 2개의 전망대에서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진우석
북문에는 옛 깃발을 복원한 문기(門旗)와 영기(令旗) 등이 휘날리고 있다. 북문을 출발하면 성벽 위로 올라선다. 10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한강 너머 북녘땅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강화 시내 쪽이 한눈에 잡힌다.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 울창한 솔숲을 20분쯤 더 오르면 주능선에 올라붙는다. 여기서 길은 오른쪽 장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왼쪽 봉우리에 들르는 것이 좋다.
왼쪽 봉우리는 천혜의 전망대다. 한강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강 건너 개성 땅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이렇게 북녘땅이 가깝게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이제 능선을 따라 장대 방향을 따르면 먼저 동아문이 나온다. 현재 문수산성에는 남문과 북문, 그리고 동아문과 남아문이 남아 있다. 아문은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앉은 작은 성문을 말한다.
동아문부터 이어진 급경사를 오르면 길이 쉬워진다. 능선에 두 개의 전망대가 세워졌다. 두 곳 모두 한강과 서울 북한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능선에서는 발길 멈춘 곳이 다 전망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문수산 정상이자 장대가 지척이다.
장대의 성벽은 강화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돈대의 둥그런 성벽으로 복원됐다. 밖에서 바라보면 내부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감히 범접할 엄두가 안 나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 앉아 오후 빛을 받는 강화도 쪽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하염없이 멍 때리기 좋다.
▲장대까지 이어진 문수산성의 유장한 흐름이 일품이다.Ⓒ진우석
문수산 정상에 자리한 장대
장대에서 하산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성벽을 따른다. 성벽 너머로 강화도 염하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빛을 쫒아가는 느낌이 좋다. 길은 성벽 위에도 성벽 밖에도 있고,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 한동안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성벽이 장대까지 유장하게 이어진 모습이 일품이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에 쌓았고,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3개의 성문과 3개의 암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남아문을 만난다. 문이 무지개 홍예 모양이라 홍예문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으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 길은 김포대학 방향의 하산길이다. 김포 평화누리길도 그곳으로 이어지는데, ‘애기봉 6㎞’ 이정표가 보인다.
남아문에서 500m쯤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남문과 문수산삼림욕장이 갈린다. 북문에 세운 차를 회수하려면 삼림욕장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방향으로 조금 가면 팔각정자가 나온다. 정자 앞에서 마지막으로 강화도 일대 조망을 즐기고,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 삼림욕장을 만나면서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강화산성 남장대는 천혜의 전망대다. 날렵한 남장대 건물 오른쪽으로 강화 시내가 살짝 보이고, 저 멀리 서해와 북녘의 개풍 땅이 한눈에 보인다.Ⓒ진우석
수려한 풍경에 서린 강화의 역사
강화읍에 강화산성이 있다. 외지 사람들은 산성이 강화읍을 두르고 있음을 잘 모른다. 강화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이었을 때가 있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가 그때다. 고려는 강도 시기에 내성·중성·외성을 갖춘 강화산성을 쌓았다. 그중 둘레 약 1.2㎞의 내성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강화산성 한 바퀴 돌다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강화도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강화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남문이다. 남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었던 4대문 중의 하나다. 조선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민진원이 세웠다. 2층 누각으로 만든 남문은 강화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다. 앞쪽에 강도남문, 뒤쪽에는 ‘안파루(晏波樓)’라는 현판을 달았고, 홍예문 천정에는 봉황을 그려 넣었다. 안파루는 ‘파도가 늦게 온다’, ‘파도로부터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외세인 일본에게 강화도는 유린당했다. 1876년 운요호사건 이후 진행된 조일회담 때에 일본 대표가 이 남문을 통해 들어왔다. 우리 역사와 아픔을 함께 겪은 남문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남문 왼쪽에 자리한 비석은 남문을 만든 강화유수 민진원의 송덕비다. 송덕비 뒤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5분쯤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조망이 시원하다. 선화골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조금 급경사 성곽길을 오르면 남산 정상에 우뚝한 남장대를 만난다.
2010년에 복원한 남장대는 단아하면서도 위풍당당하다. 2층 구조의 지붕은 비례가 날렵하다.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 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 조망은 감동적이다. 북쪽으로 강화 시내와 고려궁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한강 너머 개풍 땅이 선명하다. 동쪽으로는 서울 북한산과 도심이 한눈에 잡힌다.
늦가을, 그곳에 서면 계절의 깊이가 보인다
2023년 11월 두발로학교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
11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3강으로, <김포 문수산성>과 <강화도 강화산성>으로 떠납니다. 문수산성은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에 자리하는데요. 아래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야산 같지만, 위로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서울과 김포, 강화도와 북녘 땅,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화산성 역시 서해와 내륙 조망이 일품이라 예로부터 한강 일대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가을이 꼬리를 보이며 단풍 빛깔이 고요해지는 11월 후반, 두 개의 산성으로 떠나 볼까요(난이도 : 문수산성은 <중하>로,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가족 트레킹으로 적합합니다. 강화산성은 절반만 걷는데 <하>로, 급경사나 어려운 코스가 거의 없어 걷기 좋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풍경이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리듯 문수산성에 오르면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김포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3강, 2023년 11월 25일(토) 준비하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에 대해 들어봅니다.
북문 출발, 문수산성 한 바퀴
김포 문수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대개 문수산산림욕장으로 하지만, 북문으로 하는 게 좋다. 북문에서 출발해야 산성의 탁월한 조망을 물 흐르듯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문은 도로 옆에 있다. 문수산성은 산정 능선은 물론 해안 지대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부서졌다. 남문과 북문 등은 복원됐지만 해안 성벽은 사라졌다.
▲능선에 놓인 2개의 전망대에서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진우석
북문에는 옛 깃발을 복원한 문기(門旗)와 영기(令旗) 등이 휘날리고 있다. 북문을 출발하면 성벽 위로 올라선다. 10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한강 너머 북녘땅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강화 시내 쪽이 한눈에 잡힌다.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 울창한 솔숲을 20분쯤 더 오르면 주능선에 올라붙는다. 여기서 길은 오른쪽 장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왼쪽 봉우리에 들르는 것이 좋다.
왼쪽 봉우리는 천혜의 전망대다. 한강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강 건너 개성 땅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이렇게 북녘땅이 가깝게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이제 능선을 따라 장대 방향을 따르면 먼저 동아문이 나온다. 현재 문수산성에는 남문과 북문, 그리고 동아문과 남아문이 남아 있다. 아문은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앉은 작은 성문을 말한다.
동아문부터 이어진 급경사를 오르면 길이 쉬워진다. 능선에 두 개의 전망대가 세워졌다. 두 곳 모두 한강과 서울 북한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능선에서는 발길 멈춘 곳이 다 전망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문수산 정상이자 장대가 지척이다.
장대의 성벽은 강화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돈대의 둥그런 성벽으로 복원됐다. 밖에서 바라보면 내부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감히 범접할 엄두가 안 나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 앉아 오후 빛을 받는 강화도 쪽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하염없이 멍 때리기 좋다.
▲장대까지 이어진 문수산성의 유장한 흐름이 일품이다.Ⓒ진우석
문수산 정상에 자리한 장대
장대에서 하산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성벽을 따른다. 성벽 너머로 강화도 염하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빛을 쫒아가는 느낌이 좋다. 길은 성벽 위에도 성벽 밖에도 있고,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 한동안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성벽이 장대까지 유장하게 이어진 모습이 일품이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에 쌓았고,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3개의 성문과 3개의 암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남아문을 만난다. 문이 무지개 홍예 모양이라 홍예문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으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 길은 김포대학 방향의 하산길이다. 김포 평화누리길도 그곳으로 이어지는데, ‘애기봉 6㎞’ 이정표가 보인다.
남아문에서 500m쯤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남문과 문수산삼림욕장이 갈린다. 북문에 세운 차를 회수하려면 삼림욕장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방향으로 조금 가면 팔각정자가 나온다. 정자 앞에서 마지막으로 강화도 일대 조망을 즐기고,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 삼림욕장을 만나면서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강화산성 남장대는 천혜의 전망대다. 날렵한 남장대 건물 오른쪽으로 강화 시내가 살짝 보이고, 저 멀리 서해와 북녘의 개풍 땅이 한눈에 보인다.Ⓒ진우석
수려한 풍경에 서린 강화의 역사
강화읍에 강화산성이 있다. 외지 사람들은 산성이 강화읍을 두르고 있음을 잘 모른다. 강화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이었을 때가 있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가 그때다. 고려는 강도 시기에 내성·중성·외성을 갖춘 강화산성을 쌓았다. 그중 둘레 약 1.2㎞의 내성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강화산성 한 바퀴 돌다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강화도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강화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남문이다. 남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었던 4대문 중의 하나다. 조선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민진원이 세웠다. 2층 누각으로 만든 남문은 강화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다. 앞쪽에 강도남문, 뒤쪽에는 ‘안파루(晏波樓)’라는 현판을 달았고, 홍예문 천정에는 봉황을 그려 넣었다. 안파루는 ‘파도가 늦게 온다’, ‘파도로부터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외세인 일본에게 강화도는 유린당했다. 1876년 운요호사건 이후 진행된 조일회담 때에 일본 대표가 이 남문을 통해 들어왔다. 우리 역사와 아픔을 함께 겪은 남문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남문 왼쪽에 자리한 비석은 남문을 만든 강화유수 민진원의 송덕비다. 송덕비 뒤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5분쯤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조망이 시원하다. 선화골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조금 급경사 성곽길을 오르면 남산 정상에 우뚝한 남장대를 만난다.
2010년에 복원한 남장대는 단아하면서도 위풍당당하다. 2층 구조의 지붕은 비례가 날렵하다.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 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 조망은 감동적이다. 북쪽으로 강화 시내와 고려궁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한강 너머 개풍 땅이 선명하다. 동쪽으로는 서울 북한산과 도심이 한눈에 잡힌다.
늦가을, 그곳에 서면 계절의 깊이가 보인다
2023년 11월 두발로학교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
11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3강으로, <김포 문수산성>과 <강화도 강화산성>으로 떠납니다. 문수산성은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에 자리하는데요. 아래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야산 같지만, 위로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서울과 김포, 강화도와 북녘 땅,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화산성 역시 서해와 내륙 조망이 일품이라 예로부터 한강 일대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가을이 꼬리를 보이며 단풍 빛깔이 고요해지는 11월 후반, 두 개의 산성으로 떠나 볼까요(난이도 : 문수산성은 <중하>로,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가족 트레킹으로 적합합니다. 강화산성은 절반만 걷는데 <하>로, 급경사나 어려운 코스가 거의 없어 걷기 좋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풍경이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리듯 문수산성에 오르면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김포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3강, 2023년 11월 25일(토) 준비하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에 대해 들어봅니다.
북문 출발, 문수산성 한 바퀴
김포 문수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대개 문수산산림욕장으로 하지만, 북문으로 하는 게 좋다. 북문에서 출발해야 산성의 탁월한 조망을 물 흐르듯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문은 도로 옆에 있다. 문수산성은 산정 능선은 물론 해안 지대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부서졌다. 남문과 북문 등은 복원됐지만 해안 성벽은 사라졌다.
▲능선에 놓인 2개의 전망대에서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진우석
북문에는 옛 깃발을 복원한 문기(門旗)와 영기(令旗) 등이 휘날리고 있다. 북문을 출발하면 성벽 위로 올라선다. 10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한강 너머 북녘땅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강화 시내 쪽이 한눈에 잡힌다.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 울창한 솔숲을 20분쯤 더 오르면 주능선에 올라붙는다. 여기서 길은 오른쪽 장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왼쪽 봉우리에 들르는 것이 좋다.
왼쪽 봉우리는 천혜의 전망대다. 한강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강 건너 개성 땅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이렇게 북녘땅이 가깝게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이제 능선을 따라 장대 방향을 따르면 먼저 동아문이 나온다. 현재 문수산성에는 남문과 북문, 그리고 동아문과 남아문이 남아 있다. 아문은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앉은 작은 성문을 말한다.
동아문부터 이어진 급경사를 오르면 길이 쉬워진다. 능선에 두 개의 전망대가 세워졌다. 두 곳 모두 한강과 서울 북한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능선에서는 발길 멈춘 곳이 다 전망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문수산 정상이자 장대가 지척이다.
장대의 성벽은 강화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돈대의 둥그런 성벽으로 복원됐다. 밖에서 바라보면 내부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감히 범접할 엄두가 안 나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 앉아 오후 빛을 받는 강화도 쪽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하염없이 멍 때리기 좋다.
▲장대까지 이어진 문수산성의 유장한 흐름이 일품이다.Ⓒ진우석
문수산 정상에 자리한 장대
장대에서 하산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성벽을 따른다. 성벽 너머로 강화도 염하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빛을 쫒아가는 느낌이 좋다. 길은 성벽 위에도 성벽 밖에도 있고,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 한동안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성벽이 장대까지 유장하게 이어진 모습이 일품이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에 쌓았고,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3개의 성문과 3개의 암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남아문을 만난다. 문이 무지개 홍예 모양이라 홍예문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으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 길은 김포대학 방향의 하산길이다. 김포 평화누리길도 그곳으로 이어지는데, ‘애기봉 6㎞’ 이정표가 보인다.
남아문에서 500m쯤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남문과 문수산삼림욕장이 갈린다. 북문에 세운 차를 회수하려면 삼림욕장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방향으로 조금 가면 팔각정자가 나온다. 정자 앞에서 마지막으로 강화도 일대 조망을 즐기고,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 삼림욕장을 만나면서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강화산성 남장대는 천혜의 전망대다. 날렵한 남장대 건물 오른쪽으로 강화 시내가 살짝 보이고, 저 멀리 서해와 북녘의 개풍 땅이 한눈에 보인다.Ⓒ진우석
수려한 풍경에 서린 강화의 역사
강화읍에 강화산성이 있다. 외지 사람들은 산성이 강화읍을 두르고 있음을 잘 모른다. 강화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이었을 때가 있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가 그때다. 고려는 강도 시기에 내성·중성·외성을 갖춘 강화산성을 쌓았다. 그중 둘레 약 1.2㎞의 내성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강화산성 한 바퀴 돌다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강화도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강화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남문이다. 남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었던 4대문 중의 하나다. 조선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민진원이 세웠다. 2층 누각으로 만든 남문은 강화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다. 앞쪽에 강도남문, 뒤쪽에는 ‘안파루(晏波樓)’라는 현판을 달았고, 홍예문 천정에는 봉황을 그려 넣었다. 안파루는 ‘파도가 늦게 온다’, ‘파도로부터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외세인 일본에게 강화도는 유린당했다. 1876년 운요호사건 이후 진행된 조일회담 때에 일본 대표가 이 남문을 통해 들어왔다. 우리 역사와 아픔을 함께 겪은 남문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남문 왼쪽에 자리한 비석은 남문을 만든 강화유수 민진원의 송덕비다. 송덕비 뒤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5분쯤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조망이 시원하다. 선화골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조금 급경사 성곽길을 오르면 남산 정상에 우뚝한 남장대를 만난다.
2010년에 복원한 남장대는 단아하면서도 위풍당당하다. 2층 구조의 지붕은 비례가 날렵하다.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 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 조망은 감동적이다. 북쪽으로 강화 시내와 고려궁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한강 너머 개풍 땅이 선명하다. 동쪽으로는 서울 북한산과 도심이 한눈에 잡힌다.
늦가을, 그곳에 서면 계절의 깊이가 보인다
2023년 11월 두발로학교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
11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83강으로, <김포 문수산성>과 <강화도 강화산성>으로 떠납니다. 문수산성은 강화대교를 건너기 직전에 자리하는데요. 아래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야산 같지만, 위로 올라가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서울과 김포, 강화도와 북녘 땅,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화산성 역시 서해와 내륙 조망이 일품이라 예로부터 한강 일대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가을이 꼬리를 보이며 단풍 빛깔이 고요해지는 11월 후반, 두 개의 산성으로 떠나 볼까요(난이도 : 문수산성은 <중하>로,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가족 트레킹으로 적합합니다. 강화산성은 절반만 걷는데 <하>로, 급경사나 어려운 코스가 거의 없어 걷기 좋습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풍경이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산’이라 불리듯 문수산성에 오르면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김포시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두발로학교 제83강, 2023년 11월 25일(토) 준비하는 <한강과 서해의 특급 전망대, 문수산성과 강화산성>에 대해 들어봅니다.
북문 출발, 문수산성 한 바퀴
김포 문수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대개 문수산산림욕장으로 하지만, 북문으로 하는 게 좋다. 북문에서 출발해야 산성의 탁월한 조망을 물 흐르듯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문은 도로 옆에 있다. 문수산성은 산정 능선은 물론 해안 지대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르면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부서졌다. 남문과 북문 등은 복원됐지만 해안 성벽은 사라졌다.
▲능선에 놓인 2개의 전망대에서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진우석
북문에는 옛 깃발을 복원한 문기(門旗)와 영기(令旗) 등이 휘날리고 있다. 북문을 출발하면 성벽 위로 올라선다. 10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한강 너머 북녘땅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강화 시내 쪽이 한눈에 잡힌다. 과연 조망이 일품이다. 울창한 솔숲을 20분쯤 더 오르면 주능선에 올라붙는다. 여기서 길은 오른쪽 장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왼쪽 봉우리에 들르는 것이 좋다.
왼쪽 봉우리는 천혜의 전망대다. 한강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강 건너 개성 땅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 이렇게 북녘땅이 가깝게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이제 능선을 따라 장대 방향을 따르면 먼저 동아문이 나온다. 현재 문수산성에는 남문과 북문, 그리고 동아문과 남아문이 남아 있다. 아문은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앉은 작은 성문을 말한다.
동아문부터 이어진 급경사를 오르면 길이 쉬워진다. 능선에 두 개의 전망대가 세워졌다. 두 곳 모두 한강과 서울 북한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능선에서는 발길 멈춘 곳이 다 전망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문수산 정상이자 장대가 지척이다.
장대의 성벽은 강화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돈대의 둥그런 성벽으로 복원됐다. 밖에서 바라보면 내부를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감히 범접할 엄두가 안 나게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정자가 나온다. 정자에 앉아 오후 빛을 받는 강화도 쪽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하염없이 멍 때리기 좋다.
▲장대까지 이어진 문수산성의 유장한 흐름이 일품이다.Ⓒ진우석
문수산 정상에 자리한 장대
장대에서 하산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성벽을 따른다. 성벽 너머로 강화도 염하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빛을 쫒아가는 느낌이 좋다. 길은 성벽 위에도 성벽 밖에도 있고, 어디를 가도 상관없다. 한동안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성벽이 장대까지 유장하게 이어진 모습이 일품이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에 쌓았고, 1812년(순조 12)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女墻)을 둘렀다. 당시 3개의 성문과 3개의 암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남아문을 만난다. 문이 무지개 홍예 모양이라 홍예문이라고도 부른다. 성문 밖으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 길은 김포대학 방향의 하산길이다. 김포 평화누리길도 그곳으로 이어지는데, ‘애기봉 6㎞’ 이정표가 보인다.
남아문에서 500m쯤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남문과 문수산삼림욕장이 갈린다. 북문에 세운 차를 회수하려면 삼림욕장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 방향으로 조금 가면 팔각정자가 나온다. 정자 앞에서 마지막으로 강화도 일대 조망을 즐기고, 나무 계단을 내려오면 삼림욕장을 만나면서 트레킹이 마무리된다.
▲강화산성 남장대는 천혜의 전망대다. 날렵한 남장대 건물 오른쪽으로 강화 시내가 살짝 보이고, 저 멀리 서해와 북녘의 개풍 땅이 한눈에 보인다.Ⓒ진우석
수려한 풍경에 서린 강화의 역사
강화읍에 강화산성이 있다. 외지 사람들은 산성이 강화읍을 두르고 있음을 잘 모른다. 강화도가 우리 역사의 중심이었을 때가 있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가 그때다. 고려는 강도 시기에 내성·중성·외성을 갖춘 강화산성을 쌓았다. 그중 둘레 약 1.2㎞의 내성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다. 강화산성 한 바퀴 돌다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와 강화도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강화산성 트레킹의 출발점은 남문이다. 남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었던 4대문 중의 하나다. 조선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민진원이 세웠다. 2층 누각으로 만든 남문은 강화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다. 앞쪽에 강도남문, 뒤쪽에는 ‘안파루(晏波樓)’라는 현판을 달았고, 홍예문 천정에는 봉황을 그려 넣었다. 안파루는 ‘파도가 늦게 온다’, ‘파도로부터 편안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또 다른 외세인 일본에게 강화도는 유린당했다. 1876년 운요호사건 이후 진행된 조일회담 때에 일본 대표가 이 남문을 통해 들어왔다. 우리 역사와 아픔을 함께 겪은 남문에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남문 왼쪽에 자리한 비석은 남문을 만든 강화유수 민진원의 송덕비다. 송덕비 뒤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15분쯤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조망이 시원하다. 선화골 약수터 갈림길을 지나 조금 급경사 성곽길을 오르면 남산 정상에 우뚝한 남장대를 만난다.
2010년에 복원한 남장대는 단아하면서도 위풍당당하다. 2층 구조의 지붕은 비례가 날렵하다. 남장대는 조선시대 서해안 방어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 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 조망은 감동적이다. 북쪽으로 강화 시내와 고려궁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 한강 너머 개풍 땅이 선명하다. 동쪽으로는 서울 북한산과 도심이 한눈에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