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하나님
사무엘상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찬송가 391장(오 놀라운 구세주)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139편에서 노래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입술의 말도 아니고 우리 마음의 생각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형질을 다 보시고 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숨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격언도 있지만 하나님께는 이 격언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17:9,10 말씀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악한 자들에게는 큰 위협이요 재앙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주의 백성들에게는 큰 은혜와 힘이 되는 사실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한나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받았지만 남편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로부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냉대와 설움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였고 브닌나는 자녀를 잘 낳았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곱고 착하였기에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브닌나는 질투가 많고 성질도 사나워서 한나가 남편에게 받는 사랑을 인하여 투기를 부리면서 자식도 낳지 못하는 여자라고 브닌나는 한나를 자주 못살게 굴었습니다. 말도 거칠게 하고 퉁명스럽게 하고 자식 못낳는 여자라고 엄청나게 구박을 했습니다. 한나가 비록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만 가정의 이면에서 브닌나의 미움과 구박을 받으니 서럽고 괴로웠으나 자식을 낳지 못한 것이 죄라고 생각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홀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늘 눈물을 달고 살았는데,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에도 브닌나의 타박과 멸시는 계속되므로 한나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사정을 안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마침 한나가 기도할 때에 엘리 제사장은 성전 문 옆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한나가 하도 눈물로 계속 몸을 흔들면서 간절히 기도하니까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생각한 엘리는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면서 포도주를 끊으라고 말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한나의 깊은 심정의 아픔은 전혀 눈치 못채고 이렇게 오히려 책망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인간은 진단을 잘 못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깊은 속을 다 아시기에, 한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 보시고 그녀의 눈물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서 기도 후에 집에 돌아가서 한나로 하여금 잉태의 복을 주십니다. 또한 한나가 서원대로 낳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자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브닌나의 핍박을 받을까봐 그런지 이어서 남자 아들 셋과 딸 둘이나 한나가 낳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브닌나가 더 이상 아기 못 낳는 여자라고 설움을 주는 일을 못하고 한나로 하여금 브닌나 앞에서나 남편이나 종들 앞에서 고개를 펴고 환한 얼굴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후일에 한나를 하나님의 성전에 젖을 뗀 후에 바쳤을 때에 그 당시 대제사장 엘리는 90세에 가깝게 나이가 매우 늙었는데 그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대제사장과 제사장은 레위인들과 달리 사역의 임기 제한이 없고 늙고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엘리가 심히 나이가 많은 노령이 되었으니 마땅히 아버지를 도와 두 아들이 주된 제사 사역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제사장으로서 늘 아침 저녁으로 경건하게 하나님께 번제를 올려드리고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러 제단에 오면 제사를 잘 집례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죄를 사해주는 기도를 드리고 격려하고 말씀으로 가르쳐주는 일을 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아들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불량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제사하러 온 그 경건한 마음들을 서슴없이 짓밟았고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자기들이 먼저 가로채 먹는 악한 일도 행하였습니다. 그런 일을 하나님께서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래서 선지자를 보내어 엘리 제사장에게도 알리고 금하도록 권했지만 그 두 아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 모든 소행을 아시고 그 둘을 전쟁터에서 한 날에 죽이십니다.
그리고 이 패역한 아들들 대신에 성전에 바쳐진 한나의 어린 아들 사무엘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어린 사무엘의 충성됨도 다 아시고 그에게 제사장 직무를 맡기고 선지자의 사역까지도 감당하도록 역사하십니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다 행하신 것입니다.
훗날 사무엘도 역시 인간인지라 사람의 깊은 속은 알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 후에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청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울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이 변질되어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위에서 폐하고 그 대신에 베들레헴의 목축업자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왕으로 삼으라는 명령을 사무엘에게 내리십니다.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에게 제사 음식을 함께 먹는 자리에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자기 앞에 한 사람씩 지나가게 하였는데, 이새의 첫째 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지날 때 사무엘 보기에 왕이 될 상이었습니다. 늠름한 몸, 부리부리한 눈, 큰 일을 할 모습이 선명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무엘과 같은 영적인 사람조차 사람의 외모에 속고 맙니다. 언변이나 외모나 업적과 사람들의 배경에 속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 전체를 다 보십니다. 깊이 보십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다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행한 모든 것을 따라 갚으십니다. 막내 아들 다윗은 아직 어렸지만 그 홍안 소년 다윗이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기를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이스라엘 왕국의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최전성기를 이루는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 어린 시절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는 모진 시련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잘 이겨내서 끝내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 전체 지파를 다 통합하여 하나님 나라를 크게 드높이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사람의 모든 감추인 마음도 아시고 모든 행동도 다 그의 저울로 달아보십니다. 그리하여 그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우리의 사정도 다 그의 생각 속에 다 고려되어 있음을 알고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심을 믿고 그에게 우리 생각을 다 털어놓고 마음도 다 털어놓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거나 감추인 죄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심을 생각하고 용서를 청하고 죄를 다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청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도 다 알고 계시니까 능력이 한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께 우리 모든 사정을 아뢰면서 간절히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행해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고 무에서 유를 만드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이한 새 일을 행하시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