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팔식
1 부처님은 대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래는 지혜의 눈으로써 물건 자체의 상과 또는 물건과 공통한 상을 본다. 그것은 외도의 삿된 견해와는 같지 않다. 저들은 주위의 경계가 마음의 분별에서 나타난 것인 줄을 알지 못하고, 법의 자성에 있어서 제일의의 위에 '있다' '없다' 하는 유무의 견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대혜여, 만일 경계가 꼭두각시와 같은 것으로서,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물건인 줄로 알아 버리면, 미혹의 삼악도의 고통과 어리석음과 애욕의 업연은 없어질 것이다."
2 대혜보살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청컨대 나를 위하여 심ㆍ의ㆍ식의 구별과 이름과 모양과 생각과 정지와 여여와의 다섯 가지 법의 자성과 상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이 가르침에 의하여 자기 마음의 세계에 들어가서 바깥 경계의 형상을 여의고, 진실한 도리에 상응한다고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답하여 말씀하셨다.
"먼저 안식은 아홉 가지의 인연에 의하여 활동하나, 대개는 네 가지 인연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아홉 가지의 인연이라는 것은 첫째, 공연이니, 육근과 육경이 서로 떨어진 중간으로서, 걸림이 없는 빈틈의 공이요, 둘째, 명연이니, 곧 해와 달과 등불이 비치는 광명이요, 셋째, 근연이니, 곧 식이라고 이르는 근본의 뿌리요, 넷째, 경연이니, 곧 모든 식이 반연하는 바의 경계요, 다섯째, 작의연이니, 곧 변행 가운데서 작의하는 것이요, 여섯째, 분별의니, 곧 제육식이요, 일곱째, 염정의니, 곧 제칠식이요, 여덟째, 근본의니, 제팔식이요, 아홉째, 종자연이니, 곧 모든 식이 각각 자기 무리의 친한 종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이 네 가지 인연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근연과 경연과 작의연과 종자연이다. 이것을 통틀어 말하면 경계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것임을 모르고, 따로 있는 줄로 알고 인식하며, 무시겁래로 내려온 미집이 찰거머리같이 물건에 집착하는 것과, 식의 성질상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가지가지의 물상을 향락하려 드는 것이다.
대혜여, 근본 의식인 제팔 아뢰야식도 이 네 가지 인연에 의하여, 폭포수의 흐름과 같이 다른 제칠식의 물결을 일으킨다. 이러한 칠식은 모든 감관이나 경계에 대하여, 어느 때에는 거울 위의 물상이 나타나듯이 한꺼번에 움직이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바람이 바닷물 위를 불어서 물결을 일으키듯이 차차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바다에 경계풍이 불어서, 가지가지 마음의 물결을 일으키고, 계속하여 끊어질 때가 없는 것이다. 대혜여, 근본의 제팔 아뢰야식과 나머지 칠식의 상은, 하나도 아니지마는 또 다른 것도 아니다. 이런 등의 모든 식이 서로 깊이 얽혀서 외계의 사물의 성질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그릇됨을 근본으로 하여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오식이 외계로 향하여 움직인다.
대혜여, 아뢰야식의 행상은 이와 같이 미세하기 때문에, 다만 진실하게 공부하는 자만이 지혜의 힘에 의하여 마음의 경계를 알 수 있을 뿐인 것이다."
3 대혜보살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뢰야식이 큰 바다의 물결같이 일어난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까?"
"아뢰야식은 바다와 같고 나머지의 칠식은 물결과 같다고 함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다만 비유로 말한 것일 뿐이다."
"부처님이시여, 해가 솟아서 상하의 차별이 없이 비치듯이, 세상의 등불이신 부처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식심의 진실한 내용을 바로 나타내어 주시지 않습니까?"
"진실한 내용을 말하려고 생각하여도, 저들의 마음에 진실하게 들어줄 귀가 없구나. 바다의 물결과 거울 가운데의 영상과 또는 꿈이 일시에 나타나듯이 마음의 경계도 그와 같다. 일곱 가지의 식은 제가 분담한 세계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제팔식으로부터 차례로 움직여 간다. 제 육식은 분별하여 알 뿐이요, 제칠식은 망심을 나로 잘못 알고,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오식은 다만 눈앞에 경계를 비출 뿐이어서 일정한 순서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재주 있는 화가가 가지가지의 물상을 붓끝으로 그려서 물들여 가듯이, 내가 설하는 법도 그것과 같은 것이다. 채색에는 문채가 없고, 화필이나 화포소지인 집에도 문채는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화려한 물상을 그릴 뿐이다. 사람의 말은 변해가는 것이라, 진실은 언어나 문자로써 나타내지 못한다. 이것은 불자를 위하여 말하는 것이요, 어리석은 자에게는 따로 별다르게 말할 것이다. 말하는 장소와 듣는 사람이 서로 맞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다.
어진 의사가 병에 따라 약을 주듯이, 여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법을 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