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무대 MC 막간무대에서 명성 날린 신인 코미디언, 전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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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20. 15:41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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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무대 MC
막간무대에서 명성 날린 신인 코미디언, 전방일
요약 1940년, 평양에서 창단된 극단 '인간좌'의 막간무대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본 전방일.
유랑극단이 192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고 막간무대도 자리를 잡음.
관객에 대한 배려로 막간에 지루하지 않게 무대를 구성, 사회자로 신인 코미디언 전방일을 발탁.
24세의 나이에 매끄러운 진행을 해 관객들에게 인기를 얻어 유명해짐.
우리 나라 최초의 무대 MC는 막간무대에서 배출되었다. 평양에서 창단된 극단 '인간좌'의 막간무대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본 전방일이 그 주인공이다. 1940년의 일이었다.
막간무대란 본극의 장면 전환을 위한 사이를 말한다. 즉, 막과 막 사이로, 대개 이 시간엔 일단 막을 내리고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관객은 그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막간무대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연극 초창기 때부터였다. 특히 유랑극단의 무대에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쓰여졌다. 왜냐하면 10분이나 20분 정도에 불과한 짧은 시간에 그 무대에서도 뭔가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랑극단은 192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에 따라 막간무대도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유랑극단의 공연을 보러 간다 하면 으레 막간무대의 공연도 기대하게끔 된 것이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노래와 춤·마술 그리고 만담이었다. 짤막하게 하는 그런 공연이 본극보다 더 인기 있을 때도 있었다.
유랑극단에서 막간에 그런 순서를 넣은 것은 처음엔 관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였다.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또한 관객의 동요를 막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재미가 없으면 나가버리기도 하고, 무대로 올라와 막을 올리고 안에서 뭘 하는지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를 잘하는 배우로 하여금 한 곡이나 두 곡 정도 불러주도록 했고, 웃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으면 만담도 한 토막 흉내 내도록 했다. 이런 일은 무턱대고 노래를 하고, 만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 단원 중 비교적 한가한 사람이 나와 막간을 이용하여 노래할 사람, 만담할 사람 이름을 죽 대고 나서 잘 들으라는 말이 끝난 다음에 했다. 이런 일은 대개가 표 받는 사람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랑극단이 비록 연극의 사생아니, 연극의 타락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막간무대는 그저 그런 사소한 무대가 아니었다. 막간가수를 보기 위해 표를 사는 관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막간가수가 대부분 여배우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막간무대를 통해 가수로 명성을 얻은 여성들로는 강석연·김윤심·이경설·신카나리아 등이 있다.
'인간좌'에서는 창단과 동시에 그런 막간무대를 본격적으로 구성하여 선보일 기획을 했다. 따라서 사회자도 그에 걸맞은 자질과 매너 그리고 솜씨를 갖춘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발탁된 사람이 코미디언으로 막 데뷔한 전방일이었다.
전방일은 1916년 인천 출신으로, 당시 명 만담가였던 손일평과 짝을 이루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손일평은 원래 김원호와 콤비가 되어 가는 곳마다 뱃살을 쥐게 했던 만담가였다. 특히 그는 뚱뚱하고, 김원호는 가냘프게 생겨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 로리와 하디에 비교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인기가 있을 때 김원호가 갑자기 무대에서 쓰러져 일어나질 못했다. 지병이 있었던 것이다.
손일평은 궁리 끝에 대타를 들이기로 했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전방일이었다. 김원호처럼 가냘프게 생긴데다 연기력도 좋았다. 홀쭉이와 뚱뚱이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연유로 무대와 인연을 맺다가 '인간좌'의 막간무대에서 MC로 선을 보인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4세, 깔끔한 외모에 당시 첨단유행이라는 더블 상의를 걸치고, 나비 넥타이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당대 최초의 가수 이애리수와 강석연을 소개했다.
'인간좌'의 그런 무대는 단연 관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본극이 있는데도 또 하나의 준비된 무대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시선을 끈 것은 사회자였다. 전방일은 진행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미리 연습해두었기 때문에 순서를 안내하는 그의 연기는 매끄러웠다. 표 받던 사람이 올라와서 더듬더듬 하던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특히 관객은 그의 매너와 차림새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방일은 그때를 계기로 해서 전문 사회자로 나서게 되었다. 강석연이나 신카나리아가 막간무대에서 명가수로 명성을 드날렸듯이 그도 막간무대를 통해 명사회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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