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0일(목)
* 시작 기도
(렘 26:8-9)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주님...
예레미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 나를 비롯한 다수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만 자기들의 마음과 생각을 절대적인 판단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던 성전과 예루살렘조차 파괴하실 것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천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자기들의 뜻과는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를 선포하자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 그 제사장과 선지자 그리고 백성들 안에 내가 있습니다.
나야 말로 나의 생각과 뜻을 신앙의 보루로 생각하였던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나의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나도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십니다.
이런 나는 그저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내용처럼 심판은 공의를 세우고 공의의 결과 화평과 안전을 가져다주는 것을 아오니 나의 심령이 주 안에서 다시 새로워지도록 강하게 붙들어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겔 33:10-20
제목 :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니라.
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1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3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14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15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16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17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니라.
18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그가 그 가운데에서 죽을 것이고
19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 나의 묵상
악인이라도 파수꾼이 전한 경고를 듣고 돌이키면 살 것이다.
하지만 의인이라도 파수꾼의 경고를 저버리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악인이고 누가 의인인가?
파수꾼인 에스겔이 경고하는 이들은 바벨론 포로지에 있는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당시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고 있던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예루살렘에서 빠져나온 이들이다.
이들이 자랑하던 민족성과 고향, 국가와 가족, 예배와 미래에 대한 신앙 등 모든 것을 박탈당한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악인으로 지칭된다.
이들은 하나님을 신앙했지만 거짓 선지자의 말에 속아 거짓 믿음으로 버티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온 후에 참담한 현실 앞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죄책을 깨닫는다.
(10절, 표준새번역) 우리의 온갖 허물과 우리의 모든 죄악이 우리를 짓눌러서 우리가 그 속에서 기진하여 죽어 가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살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부정한 이방 나라에서 죽는다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모든 희망을 접고 있다.
죽음밖에 대안이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된다.
(11절)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절망의 순간, 죽음의 열매만 가득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된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 사랑과 자비의 힘으로 그들의 죽어버린 삶을 소생시키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최대의 절망, 죽음의 자리에서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이 열려 있다.
또한 경고를 받는 자들 중에는 의인으로 지칭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이다.
설령 지금까지 의인으로 살았을지라도 지금 와서 범죄한다면 그들의 공의가 그들을 결코 살리지 못한다.
이들은 부정한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왔고 이제는 절망에 싸여 신앙을 저버리는 이들이다.
악인들 곧 지금까지 율법을 따르지 않았더라도 지금 돌아온다면 살 것이다.
반면 의인들 곧 지금까지 율법을 지켜왔던 자라도 절망에 휩싸여 신앙을 버린다면 악인의 형벌을 받는다.
지금 포로지에서 중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고 안 지키고의 단편적인 문제가 아니다.
단편적인 율법 준수를 요구한 시내산 언약은 이미 파기되었다(렘 31:32).
그리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이 약속되고 선포되었다(렘 31:31-34).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더불어 새로운 언약 공동체를 세워가신다.
그것은 지금까지 율법 없이 살았던 악인이든, 율법을 지켰다고 자부한 의인이든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새로운 공동체는 진부하고도 평범해 보이는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그것은 저당물을 도로 주고 강탈한 물건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15절).
새로운 공동체의 삶의 방식은 한 마디로 이웃 사랑의 계명이다.
형제 사랑의 내적 결함은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같은 하나님의 길이 바르지 않다고 불평한다.
(17절)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바르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을 불경건한 자들과 동등하게 하고 경건한 자들이 자부하던 영적 우월감을 제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용납하지 않으시며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
지금도 구원은 늦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무궁한 자비와 긍휼로 인함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구원자를 거부하는 자는 심판자와 마주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민을 하나님의 형제로 만드는 새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죽음이다.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그들은 서로 사랑으로 결합되며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을 지어간다.
그들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엡 2:19-22)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만민에 대한 심판을 담지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사를 예표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담 안의 옛 사람의 죽음이며 심판이다.
그의 죽음과 무덤 안에 거하는 자는 절망의 밑바닥에 이른 자이다.
그런데 모든 희망이 사라진 그 무덤의 자리에서 생명의 빛이 임한다.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장사된 자, 그는 창세전 약속된 영생을 얻는다.
나는 결코 쉽지 않은 교회 개척에 도전하였고 이에 대해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성공을 이루었다.
그것은 곧 나의 자랑이요 나의 義였다.
나의 어깨는 한 없이 올라갔고 목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치셨다.
그리고 나는 무덤에 들어갔다.
그 무덤은 사방이 깜깜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무덤이었다.
아마도 요나가 들어간 큰 물고기 뱃속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그곳이 주님이 들어가신 무덤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저 그 무덤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밤새 목놓아 울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어떠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복음을 듣게 되었다.
그 복음이 나를 살렸다.
나의 상황이 해결 된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처한 무덤이 바로 주님의 무덤이며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무덤에 들어가신 주님께서 큰 물고기 뱃속에 있는 요나를 품으신 것처럼 나 또한 주님께서 품어 주셨다.
상황은 전혀 변화된 것이 없으나 그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 숨은 복음이신 주님으로 인함이다.
그렇게 나는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했던 그 교회를 내려놓고 전혀 새로운 사역지인 선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하여 지금 베트남 하이퐁에 온 지 벌써 4년이 훌쩍 넘었다.
여기서의 사역은 예전에 비하면 사역이라고 표현할 수조차 없는 보기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나 복음을 알기 전의 나의 가치관으로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나 사역의 가치를 새롭게 한 후로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오직 예수가 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이요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도 내게 주신 일이 어떠하든지 감사함으로 받는다.
이 모든 일에 영광 받으실 분은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롬 16: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 묵상 후 기도
주님...
요나가 들어갔던 큰 물고기 뱃속이 바로 나의 무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절망의 구덩이로 빠졌습니다.
비참함과 부끄러운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복음의 빛이 임하고 성공 가도만 바라보았던 나의 허망을 보게 하셨습니다.
평생을 예수를 믿는다고 자부하였지만, 예수는 나를 성공으로 인도하는 알라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도깨비방망이를 붙들지 않고 진정 나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붙잡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바벨론 포로지일지라도 그곳에서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살기 원합니다.
나의 무덤이 어둡고 깜깜한 흑암이었던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무덤에서 빛으로 인도하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끄셨나이다.
그런 생명의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