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세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유럽에서도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과 세계의 현 타이틀 보유자 프랑스와 강팀간의 뚝심은 없으나 언제나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 이탈리아, 프리메라리가의 흥행이 자기들 실력인양 으시대는 에스파냐, 갑자기 요새 한창 떠오르는 잉글랜드, 그리고 불구대천의 앙숙 네덜란드가 독일의 입지를 좁게 만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잣집은 망해도 3년 간다'는 속담이 비단 이 땅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 싶다.바로 그 영광스런 시기를 보낸 선수들이 감독으로, 분데스리가 각 팀에서 현역 선수들과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독일을 다시 부활의 날개짓을 하게 하고, 더 나아가 제 3의 전성기를 가져올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현 독일 축구 침체기 속에서 우리가 아직도 독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까닭,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들이 길러낼 그들의 제자들 때문인 것이다.
이 시기, 네 번의 월드컵과 다섯 번의 유럽선수권에서 뛴 선수는 줄잡아 70여 명에 이른다. 여기에 그 이름을 나열하자면 지면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그 이름들은 생략하기로 하겠다.그 가운데, 지금 현역 감독이나 코치 그리고 매니저나 스카우터와 같은 축구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리라는 생각이 든다.이들의 지도자적 역량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선 이들이 독일 축구계의 흐름 가운데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과연 역사의 흐름에서 당당히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격론 문제이기 때문이다.
1세대는 독일 축구가 이제 막 기지개를 켜면서 체계를 잡아가던 시기에서부터 '뽀록'과도 같은 `54 스위스 월드컵 우승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맡았던 인물들이다.1923에서 1936년까지 대표팀을 맡아 70경기를 치렀던 오토 네어츠 박사와 대표팀을 이끌고 162경기를 치르며 독일 역사상 최초의 국제대회 타이틀, 그것도 너무나 묵직한 것으로 안겨준 '전설적인' 제프 헤어베르거가 그들이다.이들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유사 이래의 자유분방함도 겪었으며, 아돌프 히틀러의 되도 않는 민족주의도 이겨냈고, 전후 패전에 따른 승전 4개국의 영토분할도 이겨낸 말 그대로 독일 현대사의 증인들이었으며, 치욕스런 분단도 체험한 세대였다.
2세대는 그런 면에서 훨씬 쉬웠다.잿더미에서 시작해야했던 콘라트 아데나워와 그들의 영명한 지도자 빌리 브란트는 그들에게 번영과 휴식을 제공했고, 서서히 독일인들은 그들이 이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가장 풍요롭고 번영된 생활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자존심엔 베레모의 신사 헬무트 슈왼이 있었다.132경기를 대표팀 감독으로 치르며 그는, 조국에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선사하게 된다.유럽 최초의, 유럽선수권과 월드컵 연속 제패가 그것이다.헤어베르거가 직접 임명한 후임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그는, 아무 것도 없이 시작했던 선배들의 업적위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독일 축구의 영광을 쌓아올렸다.그리고 그는 독일 축구 최고의 황금시대를 열면서, 선배들의 노고에 영광을 바치게 된다.그리고 다음 세대를 이끌 인재들을 그가 대표팀을 맡고있던 14년간 발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2세대의 두번째 주자는 유프 데어발이었다.흰머리 성성한 이 중년의 노신사는 다시 로마에서, 조국에 앙리 들로네이컵을 안기면서 찬란한 2세대를 정리하게 된다.
5대부터 7대까지의 감독을 맡으며 16년간의 독일 축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3세대라 부를 수 있을 이 세대는 독일에게 영원한 우승후보라는 타이틀을 가능하게 해준다.
2세대들에 의해 길러진 베켄바워, `74 월드컵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의 전담 마크맨이었던 베르티 포그츠, 그리고 에리히 리벡이 그들이었다. 이 엘리트들은 네어츠와 헤어베르거의 맨땅에서의 헤딩을 헛되게 하지 않으며, 1990년 월드컵 우승과 유로96의 우승을 이끌며 가장 찬란한 시대를 열게 된다.이들 또래의 감독들은 아직도 유럽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바이에른 뮌헨 중흥의 명장 오트마어 히츠펠트와 레버쿠젠 중흥의 맹장 클라우스 토프묄러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4세대는 이들이 길러낸 세대로서 대부분 전후 세대들이다.
풍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독일의 치밀한 사회보장제 아래의 스포츠 육성정책이 탄생시킨 축복받은 세대라 할 수 있다.현 대표팀 감독 루디 푈러나 분데스리가의 젊은 감독들이 그들이겠다. 푈러는 통산 세 번(`86∼`94)의 월드컵에 출전해 8골을 기록했었는데, 각각 베르더 브레멘, AS 로마, 마르세유에서 뛰던 시절이었다. 그는 원래 2003년까지 레버쿠젠과 계약을 맺었었지만, 크리스토퍼 다움 대표팀 감독 내정자가 마약 스캔들로 물러나자 구단의 양해 아래 2001년 5월까지만 대표팀을 이끌기로 했었다. 그러나, 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신뢰까지 두터웠기 때문에, 작년 말 독일축구연맹이 레버쿠젠을 설득하여 2002년까지로 1차 연장한데 이어 다시 2006년 월드컵까지 두번째로 계약기간을 늘린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인화형의 지도자다. A급 코치 자격증도 없는 그가 이렇게 온 국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또한, 맏형같은 모습으로 선수들을 챙기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독일 감독 계보에 있어서 현 세대는 그 궤적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대부분이 3세대들에 의해 지도를 받았던 선수 출신임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당연히 논할 가치가 있으며 독일 축구계의 적자(嫡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면면을 세밀히 따져보면, 지난 16년의 시기가 현 독일 축구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갖는 시대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현 분데스리가 34팀 감독들 가운데, 독일 출신 감독은 무려 28명이나 된다.이웃나라 오스트리아의 감독은 두 명으로 그 다음이다.1860뮌헨의 페터 파쿨트와 함부르크 SV의 쿠르트 야라가 그들이다. 그리고는 네덜란드, 불가리아, 체코 공화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미국이 각각 한 명씩 있다. 샬케04의 훕 스테벤스와 우니온 베를린의 게오르기 바실레프, SVW 만하임의 안드레 에글리, RW 오베라우젠의 알렉산다르 리스티치, FC 슈바인푸르트 05의 주라디 바시치, 그리고 FC 자르브뤼켄의 톰 둘리가 그들이다. 이 가운데, 자르브뤼켄의 감독 둘리는 `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던 미국 국가대표로서 우리에게 익은 이름이기도 하다. 감독들의 구성으로도 분데스리가 선수 구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한다.
28명의 분데스리가 감독들은 크게 3세대와 4세대로 나뉜다. 대략 3세대가 12명, 그리고 4세대가 16명 정도라고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오늘의 초점인 4세대 감독들을 살펴보면 바로 이번 칼럼의 결과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마티아스 잠머와 헤르타 베를린의 팔코 괴츠, 베르더 브레멘의 토마스 샤프, FC 카이저슐라우테른의 안드레아스 브레메, 볼프스부르크의 볼프강 볼프, 한자 로스토크의 아르님 페, 장크트 파울리의 디트마어 데무트, 하노버 96의 랄프 랑닉, FSV 마인츠 05의 위르겐 클롭, VfL 보쿰의 페터 노이루러, 그로이터 퓌르트의 오이겐 하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크의 아르님 크라츠, LR 알렌의 우베 라폴더, SSV 로틀링엔의 라이너 가이어, MSV 뒤스부르크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칼스루에 SC의 슈테판 쿤츠이다.
이 가운데 이미,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스타출신 감독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잠머와 브레메는 말할 나위 없고, 리트바르스키와 쿤츠가 그들이다. 쿤츠는 바로 유로96 잉글랜드와의 피말리는 4강전에서 알란 쉬어러의 선제골에 대하여 동점골을 넣으며, 독일을 승부차기까지 끌고갔던 공격수이다.
감독직은 이러한 스타출신만이 산물이 아니다. 팔코 괴츠는 통독 전의 디나모 베를린과 레버쿠젠, 쾰른, 터키의 갈라타사라이에서 현역생활을 했던 재원이었다. 분데스리가 242경기에 출전해 46골을 넣었고, 2000년부터 베를린을 맡고 있다. 이동국을 뺀찌 놓았던 토마스 샤프는 23년간 브레멘에서 뛴 전형적인 브레멘맨으로, 99년 5월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성실형의 지도자이다. 볼프강 볼프는 카이저슐라우테른에서 뛰었던 재원으로 분데스리가 308경기를 소화한 백전노장 출신이다. 보루시아 묀셴글라드바흐에서 뛰었던 아르님 페는 지난 1월 3일부터 팀을 맡고 있는 초보 감독이지만, 팀의 명예를 아직까지는 지켜가고 있는 모습으로 매우 고무적이다. 꼴찌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디트마어 데무트는 레버쿠젠에서 뛰었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처음 아마추어 코치로서 발을 내디뎠던 장크트 파울리를 이끌고 1부 리가로 지난 시즌 올라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의 역부족으로 이미 2부 리가 직행을 확정지은지 오래다. 슈투트가르트 아마추어팀이 선수이력의 전부인 랄프 랑닉은 아시다시피 하노버를 이끌고 경이적인 기록으로 1부 리가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이다.마인츠맨인 위르겐 클롭도 작년 2월부터 자신의 팀을 이끌어 오고 있다. 작년 12월에 명문 보쿰에 부임한 페터 노이루러 또한 랑닉처럼 예외적으로 변변치 못한 선수경력을 갖고 있으나, 이번 시즌은 2부 리가에서 보쿰을 어느 정도 추스린 것으로 평가된다. 오이겐 하흐는 자르브뤼켄과 카이저슐라우테른에서 그다지 촉망받지 못한 선수생활을 했으나, 작년 10월 이후 팀을 꾸준히 이끌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수생활을 접은 아르님 크라츠, 벨기에 리에주 SK에 진출했다가 프라이부르크로 와서 뛰기도 했던 우베 라폴더, 뉘른베르크와 자르브뤼켄에서 뛰었던 라이너 가이어도 현 분데스리가를 이끄는 4세대 감독들이다.
이 세대의 감독화 현상은 비단 독일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
요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톤 빌라의 감독 영입 대상에 올라있는, 작년 9월 이래 오스트리아 라피트 빈의 감독이자 91년 FIFA 올해의 선수 그리고 월드컵 최다 출장기록(25경기)을 갖고 있는 로타어 마테우스도 바로 이들 세대이다.
그는 프리츠 발터, 우베 젤러, 프란츠 베켄바워 다음으로 명예주장 칭호를 받은 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감독이라는 일선의 최고직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다가 아니다. 독일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은 독일 ZDF-TV의 제안을 받아들여 올 월드컵에서 축구전문가로서 해설을 맡게 됐다. 그는 108차례 대표선수로 뛰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잉글랜드 등 축구강국 선수들의 면면에 대해서도 경험적이고 실질적인 분석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바이에른 뮌헨의 부사장을 맡고있는 칼-하인츠 루메니게, 레버쿠젠의 골키퍼 코치 하랄트 슈마허 등도 이 세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다.
이렇듯, 영광된 16년은 지나간 옛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 독일의 재기는 바로 이들에게 달려있다. 이들이 어느 정도 유망주를 발굴하고 관리하고 키워가는 가가 관건일 것이다.
현재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나가서 공을 차거나 뛰어 놀지 않고, 게임기를 가지고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사회 체육제도가 골라내는 가뭄에 콩나듯(?) 한 유망주들.그들을 관리하고 축구의 미래를 세울 의무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딴은 그들의 선배들은 사회불안과 잿더미에서 오늘날의 독일 축구를 일궈냈다.순탄치 못했던 독일의 현대사가 나은 결과는 더욱 눈부셨으나, 이젠 더욱 창대한 앞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면 우리는, 감정을 배제하고 더욱 객관적으로 독일의 축구를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s.
자료제공: 후추닷컴
첫댓글 으아~이런글 너무 읽기 힘듭니다...이런글들은 한칸씩띄워 써주었으면 하네요...눈이 너무 아프네요...잘읽었습니다..
좀 오래된 글인것 같기도 한데.... 유로 2000이후 이런 내용의 글들이 많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