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5월의 일기, 2023 문경 찻사발축제/울고 넘는 박달재
4년 전으로 거슬러 2019년 10월쯤의 일이다.
KBS 전국노래자랑이 문경시에서 열린다는 뉴스가 떴다.
내 딴에는 나도 노래 좀 부른다는 생각에, 문경시 문예회관에서 열리는 예선전에 작정하고 참여했다.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48년에 발표된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에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를 신청했다.
회관 오른쪽으로 쭉 늘어선 신청자들 사이에 끼어 한참을 서 있다가 당겨지고 당겨져서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면서 딱 작정했다.
1절보다 2절을 부르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그 2절을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그렇게 부르고, 이렇게 이어갈 참이었다.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바로 그때였다.
땡!
실로폰 소리가 모질게 나고 있었다.
무대 오른쪽의 심사위원 석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혼자서 심사를 보던 심사위원이 방금 실로폰을 친 막대기를 들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왜 그러는지 의아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잠시 머뭇했다.
“그냥 내려오세요.”
그 심사위원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막대기를 더 세게 흔들고 있었다.
무대에서 빨리 내려오라는 사인이었다.
짜증 섞인 분위기인 것이 역력했다.
내 그때 분명히 봤다.
내 이날 출전을 응원하려고 나와 동행해 그 회관에 들어와서, 무대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 국민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인 권만식 친구가,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몸을 수그려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회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겨우 상황 정리가 됐다.
불합격이 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 이후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하도 쪽이 팔려서 정신이 없었기에 그런 것 같다.
대충 짚어서, 일흔 나이를 넘어선 내 인생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쪽 팔림을, 내 그때 그렇게 경험했었다.
무대에서 그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다.
문경읍을 대표해서 무대에 오른 ‘주흘합창단’의 노래였다.
노래는 귓전으로 흘리고, 나는 지난날 그 쪽팔린 추억의 세계로 푹 빠져들고 있었다.
또 다시 등짝에 땀이 흥건히 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