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31일 묵상 본문 : 에스겔 33장 21절 - 33절 -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리에 섬으로써 참된 부요함과 영광을 얻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이제 7월도 하루도 남지 않은 마지막 날을 시작합니다.
여름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는 일이 많아지네요.
전 세계적으로는 이상 고온이 발생하고 전쟁으로 인한 고통도 깊어짐을 느낍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짐을 기억하여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게 하시고 주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주말을 맞는 금요일에 해야 할 일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잘 감당케 하옵소서.
지체들도 땅의 것에만 매여 있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의 은혜를 깊이 누리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날마다 복음의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2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22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그 때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12년 10월 5일은 B.C. 585년 10월 5일을 의미한다. 이때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는 걸어서 약 4개월의 기간이 걸렸었다. 그런데 1년 6개월이 지나서 도착했다는 것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벗어나는 모든 길이 차단되어 빠져 나오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에스겔은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벙어리처럼 지냈다가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그 입이 열려 자유롭게 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이 이스라엘의 이 황폐한 땅에 거주하는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많은즉 더욱 이 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하나님은 당시 예루살렘에(황폐한 땅) 거하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을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배제시키고 자신들이 그 땅을 차지하겠다는 태도에 대해 지적하신다.
25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고기를 피째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26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유다의 남은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가나안이 그들의 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그 이유로 그들이 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겼으며 죄 없는 자를 죽였고 간음했기 때문임을 밝히신다.
27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넘겨 먹히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게 하리라
28 내가 그 땅이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폐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황무지에 있는 자는 유다의 잔류민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그들이 칼(폭력)에 죽게 될 것을 선언하신다. 또한 황무지에서 들, 산성, 굴로 묘사되는 것은 심판의 범위가 더 넓어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도망하여 다른 곳에 피할지라도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29 내가 그들이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그 땅을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하면 그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라
하나님은 유다에 남은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실 것을 보여준다.
30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하나님은 바벨론에 끌려온 유다 백성들이 에스겔의 예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담 곁은 비밀리에 말하는 것을 상징하며 집 문은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은 듣기만 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에 대해 질책하신다. 그들이 이익을 따랐다는 표현은 그들이 불의하게 모은 재물을 환원하지 않고 이웃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며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하지 않고 불의한 이익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에스겔이 전했던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메시지를 노래 정도로 여기며 즐겼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언이 성취될 때 그들은 에스겔의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후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바벨론에 있는 유다 공동체에 예루살렘 함락 소식이 전달된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는 약 4개월의 이동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1년 6개월, 약 4배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은 당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차단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1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곳에서 벗어나 바벨론까지 도망하여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 에스겔을 통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했던 메시지는 하나님의 선포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난공불낙의 요새로써 높은 지대에 계곡들로 둘러 싸여 쉽게 정복할 수 없었다.
과거 앗수르도 예루살렘을 정복하려다가 하루만에 185,000명이 죽은 후에 퇴각했고 그 결과 앗수르 왕이 죽임을 당하며 나라가 쇠퇴의 길을 가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에 바벨론에 의해 포위당했던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결코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잘못된 확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져 있었기에 나타난 열매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귀가 열려 있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도 없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오직 자기의 유익과 이익에만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쉽게 나타나는 모습임을 부인 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의 관심은 자신의 소유를 확보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며 자신의 힘과 능력을 키우는 것에만 몰두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자 하는 자는 극히 적으며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참 믿음의 길을 가고자 힘쓰는 이들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종교적 행위를 다하면 그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여기고 일상의 삶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같이 행하는 일이 얼마나 깊이 뿌리 내려져 있는 지를 보게 된다.
그 모습이 나의 삶에서도 너무 쉽게 발견되는 것은 인생의 절망적 상태가 얼마나 오랫 동안 이어져 왔는지를 보게 만든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에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 가운데 거하기를 기뻐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 가운데 선명하게 드러난다.
육신의 삶으로는 풍요함을 누렸으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지독한 빈곤을 누렸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17~22)
주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도가 부요함을 누리는 삶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무엇보다 귀 있는 자가 성령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주님과 영적 교제를 하며 주의 음성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와 능력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그 능력을 힘입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 풍요함을 누리고 주의 영광에 동참하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삶의 모습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이며 영광에 참여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잃어버리고 자기 이익과 욕심을 따라 육신의 탐욕만을 따르려는 어리석음이 저의 삶 가운데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에스겔을 통해 심판의 말씀이 성취 될 때에야 비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는 백성의 우둔함이 저의 모습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긍휼히 여겨 주사 주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자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함께 먹고 마시는 영적 연합의 삶을 살아가며 진정한 풍요함을 누리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계속해서 육신의 만족과 부요함만이 진정한 가치인줄 알고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주의 말씀에 기준을 두고 생명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오늘도 붙드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함께 하사 선한 길, 생명의 길로 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