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5월의 일기, 2023 문경 찻사발축제/세상사는 법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
그런 속담이 있다.
인연을 귀하게 여겨서 소홀히 하지 말고 악연을 만들지 말라는 깨우침을 주는 말이기도 하고, 내게 베풀어진 은혜를 감사하게 여겨서 결코 잊지 말라는 깨우침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딱 한 줄의 문장이지만, 내 인생에 귀하게 녹아 있는 속담이다.
내가 그 속담을 접한 것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 나이 40대 중반의 일로, 서울 잠실 쪽에 사는 검찰수사관 한 해 후배인 정찬택 친구와 당시만 해도 번성하던 석촌호숫가의 어느 포장마차에서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기울이던 중에 그 친구로부터 들었다.
딱 듣는 순간, 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담겼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건 간에 인연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인간관계를 엮어왔다.
좋은 인연은 그대로 좋다고 편한 소통을 하면서 고맙다했고, 나와 아내 더 나아가 내 주위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나쁜 인연은 그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그 인연을 고맙다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스쳐지나갔거나 지금 이 순간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인연에서 굳이 감사한 것들만 골라내서 고맙다했다.
그래야 이미 엮인 그 인연이 악연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늘 행복하다 행복하다하는 내 지금의 삶까지, 경북 문경이라는 내 고향땅과 그 땅에서 함께 어울렸던 깨복쟁이 동무들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덕분을 생각하면서, 내 고향땅과 고향 동무들에 대한 애착의 마음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세상사는 법이다.
깨갱 깽깽 깽깨 깨갱!
그렇게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곧 이어 두둥 둥둥 큰북소리도 들렸고, 따닥 따닥 작은 손북소리도 들렸고, 징징 징소리도 들렸고, 뚜닥 뚜닥 뚜다다다 장구소리도 들렸다.
뒤쪽이었다.
그 뒤로 고개를 돌렸다.
열댓 정도 되는 풍물패 한 패가 상쇠를 앞세우고 객석 가운데로 들어서서 무대로 오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중에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큰 북을 치는 중년의 남자로, 덥수룩한 수염에 꽁지머리에 검은 두건을 쓴 자연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바로 이문식이라는 부산출신의 친구였다.
한 해 전쯤에, 우리 고향땅 문경 산북 출신으로 세계적 알피니스트인 이상배 대장의 소개로 첫 만남의 인연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 내 아는 것이라곤, 부산고등학교 출신으로 어쩌다 그에게는 전혀 낯선 땅인 경북 문경 가은 땅으로 흘러 들어와서 산다는 것뿐이었다.
나이도 모르고 어찌 돈 버는지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겠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가 맑고 고운 삶터이며 충효의 고장이라는 가은 풍물패의 일원으로 그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열정적 삶의 반증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문득 한 생각을 떠올렸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놔둘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으로 열정적인 삶을 사는 그와의 인연을 엮어가야겠다는 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