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원제 : The Breaking Point
1950년 미국영화
감독 : 마이클 커티즈
스토리 제공 : 어네스트 헤밍웨이
음악 : 맥스 스타이너
출연 : 존 가필드, 패트리샤 닐, 필리스 댁스터
후아노 헤르난데스, 월레이스 포드, 에드먼 라이언
존 가필드는 40-50년대 할리우드 고전영화 시대의 배우 중에서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꽤 저평가 된 배우로 생각합니다. 40-50년대 배우 중에서 40세가 되기 전에 요절한 배우로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제라르 필립이 있는데 존 가필드와 비교해 볼 때, 제라르 필립은 최고의 스타 자리에서 각광을 받았던 미남배우였던 것에 비해서 존 가필드는 평범한 인상과 작은 키를 가졌지만 거친 개성을 바탕으로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던 배우였습니다. 제라르 필립 만큼 꼭대기에 있던 인물은 아니었고 비슷한 년배 배우 중에서 로버트 테일러나 타이론 파워 만큼의 빛을 발한 인물도 아니었지만 다부진 개성이 돋보인 배우로 아마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리처드 위드마크 정도의 경지에 올랐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청년 이미지의 꽃미남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40대가 되어서 전성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할 수도 있었다고 보여지지요. 그는 1952년 불과 39세에 요절했고, 1951년에 출연한 작품이 유작이 되었습니다.
1950년 작품 '파국'은 국내에 개봉된 존 가필드 주연 영화로 모처럼 원톱 주연이면서 흥미진진한 수작입니다. 상업영화의 귀재 마이클 커티즈 감독이 연출했으니 믿을만 하지요.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몇 가지 특징을 보면 1. 한 배우에 연연하지 않고 2. 한 장르에 연연하지 않고 3. 다작 연출이지만 소홀히 할 작품이 드문 연출가 입니다. '파국'은 40-50년대 대표 장르라 할 수 있는 범죄물, 즉 필름 느와르 영화입니다.
존 가필드가 연기한 주인공 해리는 작은 배를 임대해서 사업을 하는 인물입니다. 선장이지요. 그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배를 빌려주는 일을 하는데 배의 임대료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한 선장입니다. 그의 아내 루시(필리스 댁스터)는 현모양처 유형의 여자로 이런 가난한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두 딸을 키웁니다. 한 편으로는 남편이 배 사업을 접고 친정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며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라죠. 하지만 해리는 농부로 살 수 없다며 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가난한 남자가 빠지기 쉬운 유혹은 뭘까요? 바로 돈의 유혹입니다. 해리에게 못된 양아치들이 접근하고 불법 사업을 제안합니다. 해리는 정직하게 사는 인물이지만 궁핍한 삶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 놓았다가 뜨거운 맛을 봅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 하죠. 간신히 상대를 제거하여 살아남았지만 살인을 하게 된 거죠. 이런 쓴 맛을 계기로 해리는 다신 검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배를 압류당할 위기에 처하자 결국 큰 건 한 탕을 받아들이게 되죠. 하지만 이번 상대는 경마장을 털고 도주하려는 아주 흉폭한 악당 무리였습니다. 자 이런 악당들을 태워야 하는 해리의 운명은?
내용을 보면 해리와 아내, 그리고 악당들이 필요한 역할이지요. 그런데 출연진을 보면 패트리샤 닐이 있습니다. 배우의 레벨로 보면 존 가필드와 공동 주연을 하는 게 맞지요. 실제로 그런 모양새를 갖추긴 합니다. 그리고 꽤 매혹적으로 등장하지요. 제가 본 패트리샤 닐 출연작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실 없어도 되는 역할입니다. 대체 왜 이런 캐릭터를 뜬금없이 비중있게 넣었는지도 모르겠고, 억지로 패트리샤 닐 출연분량 높여주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각본같은 느낌이 들어요. 졸지에 이 주연급 여배우가 마치 'PPL광고' 같은 처지가 된 영화입니다. 그리고 끝 부분에 등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하지요. 안 나와도 아무도 기억을 못했을 겁니다. 패트리샤 닐 입장에서는 좀 굴욕적 캐릭터지만 대신 굉장히 관능적이고 아름답게 나왔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아요. 오히려 비중있는 여성 캐릭터는 해리의 아내로 출연한 필리스 댁스터 입니다.
아내와 동료의 말을 듣지 않고 범죄자들과 한 탕 하려다가 큰 수난을 겪는 가난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존 가필드는 이 영화에 꽤 만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힘을 내서 연기활동을 할 수 도 있었는데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요절하는 바람에 더 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배우의 저평가라고 생각할 만큼 괜찮은 작품들을 꽤 남겼지요. 그가 출연했던 작품 중 괜찮은 영화들을 볼까요?
'울프 선장' 유모레스크'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육체와 영혼' '신사협정' 그리고 '파국'입니다. 몇년 동안 이정도 작품들을 남겼는데 만약 40대가 된 50년대를 무난히 활동했다면 5-6편 더 수작을 남기고 대표작 10편 정도 꼽을만한 이력을 지닐 수 있었겠죠. 그래서 리처드 위드마크 급 배우는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는 배우입니다. 리처드 위드마크도 본격 전성기는 40대 이후였으니까요. 두 배우 모두 단독 주연과 공동 주연 모두 능한 배우입니다. 그래서 수작을 만날 가능성이 높은 배우들이죠. 로버트 테일러나 타이론 파워 처럼 늘상 단독 주연만 고집하면 좋은 여배우를 만나야 수작이 나올 뿐이죠.
약간은 찰스 브론슨 주연의 '밤의 불청객'이 연상되는 영화이기도 하고, '소유와 무소유' '키 라르고' 등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두 편의 이야기를 적절히 믹스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스토리를 제공했다고 하네요. 그의 원작 소설의 각색물은 아니지만.
볼만한 영화이고 역시 믿고 보는 필름 느와르 장르입니다. 개인적으로 '포스트맨은 벨은 두 번 울린다'가 더 흥미로웠지만 그 영화는 라나 터너의 매력 발산에 존 가필드가 확실히 눌렸는데 '파국'은 전적으로 존 가필드가 혼자 책임진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 자신의 만족도가 컸던 영화일 겁니다.
ps1 : 이 영화를 보면 게리 쿠퍼 같은 대배우가 왜 패트리샤 닐에게 빠져들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더 일찍 출연한 '마천루' 에서의 둘의 공연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덜 들었는데.
ps2 : 존 가필드는 약간 한국 고전 배우 중에서 '황해' 가 연상됩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느낌.
ps3 : 아직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비록 가난한 남자의 딸일 망정 백인 소녀와 흑인 소년이 함께 노는 장면이 다소 이례적입니다.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라지만. 그리고 엔딩을 장식하는 홀로 서 있는 흑인 소년의 모습이 너무 슬픈 엔딩이었습니다. 모든 관심은 백인의 안위에만 쏠려있는.
[출처] 파국 (The Breaking Point, 50년) 존 가필드의 인상적 연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