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가 골프 알츠하이머에?”
로우 핸디캐퍼의 공통된 특징은 많은 연습량과 경험이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체력이나 체격,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50~60대가 힘과 체력을 무기로 덤벼드는 젊은 사람들에게 참담한 패배를 안겨줄 수도 있는 게 골프다. 아마추어 골퍼로서 혈기왕성한 30~40대가 노련한 50~60대를 이기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 들어서도 골프채를 쉽게 놓지 못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배우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골퍼라도 50대를 접어들면서 높은 집중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노력과 쌓인 구력으로 유지되어온 스코어가 50대에 접어들면서 개선은커녕 퇴행이 일어난다.
주된 요인은 체력의 저하나 노력의 부족이 아니다. 바로 자신도 모르게 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골프 치매 때문이다.
평소 생활에서는 치매 증상이라기보다는 가벼운 건망증 증세에 가까운 증상들이 골프에서는 거의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뭘 꺼내려고 문을 열었는지 깜빡 잊어버린다거나,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려 현관문을 열었으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거나, 평소 복용하는 약을 먹고도 다시 약을 먹겠다고 하고, 안경이나 휴대폰을 손에 들고 열심히 찾는 것 등 일상생활에서의 가벼운 건망증은 40대부터 겪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가벼운 건망증이 골프로 옮겨지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친구 중에는 골프를 치러 가면서 골프채를 현관에 두고 주차장에 내려왔다 트렁크를 열어보고 부랴부랴 다시 채를 가지러 간다든지, 보스톤 백을 챙길 때 골프양말이나 골프신발을 챙기지 않아 골프장에 도착해서 급히 장만하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다.
골퍼를 하는 사람이 이 정도라면 가벼운 건망증으로 볼 단계가 지났다고 봐야 한다.
골프장 밖에서 이 정도의 건망증은 골프장 안에서는 치명성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위력을 발휘한다.
골프에서처럼 매번 깐깐히 챙기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스포츠를 찾기 힘든 데 집중도가 떨어지고 알츠하이머 증상까지 나타난다면 기분 좋은 라운드를 기대할 수 없다.
골프에서 알츠하이머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가장 흔한 경우가 골프채를 잘못 잡는다. 6번을 뽑는다는 게 9번을 뽑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캐디가 알려주는 거리를 듣고도 금방 잊고 다시 묻는가 하면 다시 알려준 거리마저 틀리게 받아들인다.
특히 알츠하이머 증세는 그린에서 자주 발생한다.
그린은 퍼팅에 들어가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 거리에서부터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판단하고 잔디결이 역결인지 순결인지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홀에 이르는 숨겨진 복잡한 라인을 읽어내야 한다.
대개 퍼팅거리를 알기 위해 걸음으로 재는데 왕복하며 걸음수를 다 세어놓고도 막상 퍼팅에 들어가면서 몇 발자국이더라 하고 기억을 못하고 다시 재는 경우도 생긴다. 무엇보다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순결인지 역결인지도 깜빡 하고 스트로크를 해버려 귀중한 버디를 놓치는가 하면 3퍼트를 밥 먹듯 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일어나는 그린에서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골퍼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정상적이라 해도 타수의 절반 이상을 그린에서 소비하는데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면 그 비율이 급격히 높아져 원하던 스코어를 내는 것은 고사하고 급전직하하기 십상이다.
실컷 라운드를 하고 나서 목욕탕에서 동반자를 보고 “오랜만에 뵙는군요.”라고 말하거나 “오늘 잘 치셨습니까?”하고 묻는 것은 애교다.
벙커 탈출을 하고 나서 고무래를 집어 들고 벙커를 고르지는 않고 그린에까지 들고 온다든지, 남들 퍼팅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퍼팅을 한 것으로 착각하고 볼을 들고 그냥 나온다든지, 볼을 홀인한 뒤 깃발을 들고 카트로 향하는 것 등은 어느 정도 봐줄 수 있지만 그린에서의 퍼팅을 할 때 생기는 알츠하이머 증세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을 볼트너트 세트로 생각하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볼트너트 세트를 남기지 말고 다 소비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퍼팅 할 때만 해도 거리에 해당하는 볼트너트, 오르막 내리막의 볼트너트, 역결 순결을 가리는 볼트너트, 라인을 알려주는 볼트너트, 스트로크를 하기 위한 볼트너트 등 최소한 5개가 넘는데 이중 하나라도 깜빡 잊고 주머니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홀인은 불가능하다.
유난히 3퍼팅이 잦다거나, 스코어가 이유 없이 5타 이상 많아진다거나 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혹시 골프의 알츠하이머가 침범하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