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십육강 기념 열두섯가지 축구 이야기.
1.
초등학교 5학년
당시 반장이었던 나는
봄 체육대회에 나갈 우리반 축구 대표팀의
작전을 짜야 했었다.
당시 내가 구상한 작전은
3-4-3 포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압박축구' ㅡㅡ;
빠르고 축구 잘하던 친구 세명을 최전방에 세우고
덩치크고 싸움 잘하던 애들을 미드필더로
나머지는 후방 수비수로 세우는
당시 초등계에서는 획기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볼을 중심으로한 토털사커 -전원공격, 골기퍼 수비-를 선보여
0:2 (0:3이었나? ㅡㅡ;) 로 대패하게 된다.
감독 양세영씨의 실패는 아마도 그가
공으로 하는 운동은 다 못하는 공치에다.
독재적 반장으로 왕따였으며
당시 인기 만화였던 '춤추는 센터포드'의 열혈독자인 나머지
만화와 현실을 심하게 혼동하였다는데 있지 싶다.
2.
히딩크의 업적이 특별한건
지금 우리팀의 놀랄만한 발전때문이기도 하지만
히딩크 이전의 한국축구가 국가'한국'의 문제점과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 더 크다.
다른 나라도 아닌 네덜란드에서 온 이 축구인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어느 축구 전문가도
상명하복의 권위적 질서가 지배하는 경직된 대표팀 분위기와
(사실 패배주의라고 불러도 좋은) 악으로 깡으로 죽을때까지 뛰라는
'정신력 제일주의'와
실력보다는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며 학연지연 위주로 편향된 선수선발이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라는 걸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아마. 아님말고.
3.
머 기업에서 정당에서
히딩크를 배우자고 난리란다.
그래. 이왕배우고 싶으면 제대로 좀 배워라.
뭐 지도력의 비결..이따구 거 배우지 말고
도대체 우리나라가 이모냥인게 무엇 때문인지 제대로 좀 배우길 바란다.
뭐 이미 축구를 통해서 대부분 가르쳐 준셈이지만
선진 유럽 축구 배우듯이 선진 유럽 정치도 좀 배우고
선진 유럽 행정도 좀 배우고 선진 유럽 도시계획도 좀 배우고
선진 유럽 교육도 좀 배워라 배워.
맨날 싸가지 없고 천박해 빠진 미국것만 배워오지 말고 말이닷.
4.
(그리고 히딩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말해서
선수들 관찰해서 부족한 부분 파악한뒤에
집중적으로 보충해주고 훈련시키고
잘하는 애들 뽑아서 키우고
사기 올려주고 분위기 만들고
상대팀 파악해서 전략 세우고...
이게 사실 대단한거냐?
감독이라면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당연하디 당연한거 아닌가?
그게 대단하다기 보다는 축구의 또 축구 감독의
기본도 해내지 못한 우리가 못난거다.
히딩크 왈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세계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재능있는 애들 데리고 여태 죽을 쒀 온 이유는
우리가 뭐가 기본인지도 몰랐기 때문인거다.)
5.
고등학교 체육시간에는 항상 축구를 했다.
우리반 42명중 22명은 풀면적의 축구장에서 뛰는 '메이저 리거'였고
12명은 핸드볼 골대에서 뛰는 '마이너 리거'였고
나머지는 골수 농구파였다.
마이너 리그는 선수변동이 심해 어떤 날은 경기없이
리거들 모두가 야구를 하거나ㅡㅡ; 교실에서 자거나
운동장 바닥에 낙서를 하거나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축구를 했다.
나는 마이너 리그 후보 수비수였다. ㅡㅡ;
그래도 나는 항상 상대 공격수를 압박하며 공격의 맥을 끊는
플레이를 할려고 애를 썼었다. 모두가 골을 넣는데에만 집중할때
혼자 최후방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고집하며 노력하는
수비수 였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었다. ㅠ.ㅠ;;;
6.
나는 김남일이 좋다.
안정환도 좋지만 그래도 그넘은
축구선수라고 생각하면 뭔가 어색하다
그 굵은 다리와 그 얍삽하게 잘생긴 얼굴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클릭B의 그 김상혁인가 하는 애랑 닮았다.
반면에 김남일은 축구선수 그 자체다.
돌고래씨가 올린 프로필 다들 봤듯이
그넘 섬에서 가난한 목수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었고
축구명문 부천고 다녔었다. 당연히 군기 엄청 쎘었고
얼차려에 못이긴 1학년들이 단체로 파업(?)을 한적이 있었는데
다른 애들 배신때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때 지혼자 남아서 버텼단다.
나중에 지 아부지가 인천의 한 나이트에서 웨이터 하고 있는 남일이를
찾아서 눈물로 호소했다더라. 그래서 8개월만에 다시 돌아왔단다.
그 눈 보셨는가..그것이 남자의 눈이닷! 크오오오..ㅅ
여성분들이 좋아하신다는 "싸가지 없는 매력적인 남자"가 바로 그런것이었다.
7.
지은 선배의 말처럼 축구 선수는 최고의 남자다.
돈 잘벌고
힘좋고(!-다들 허리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리 힘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대부분) 잘생겼다.
더구나 은퇴후에는 시간도 많다.
그냥 벌어놓은 돈으로 유유자적 지내면 된다.
장동건 정우성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신랑감이다.
여성들이여!
티비에 나오는 꽃미남 연예인 녀석들 따위는 잊어버려라!
억대연봉의 넥타이 금테안경 샌님따위는 걷어 차버려라!
폭탄주 처먹고 단란주점 가서 여자들 희롱하는 판검변호사 따위는 개무시해라!
진짜 남자란 그라운드를 달리는 백만장자인것이다!
축구선수를 잡는 여성이 이시대의 진정한 신데렐라다!
8.
윌 앤 그레이스라는 시트콤과
해피 투게더에 감명받아 이반론을 주창한 덕분에
야오이에 익숙해진 나는
가끔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로맨스ㅡㅡ;따위를 상상하는
엽기적인 짓을 종종한다.
박지성은 히딩크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어쩔줄 몰라하고
히딩크와 김남일만을 편애한다. 상처받은 박지성은
마지막 경기에서 그를 위한 골을 넣고
둘은 감격의 포옹을 한.....퍼버버벅!!!! ㅇ_o;;
9.
포르투갈전 후반에
나와 내 친구 두명은 포르투갈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이 올라가는 꼴을 보기 싫어서.
꽃미남 포르투갈 애들과 한국이 미국을 왕따 시키며
나란히 십육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에
그라운드에서 포르투갈 애들이랑 나란히 쇼트트랙 세레모니를
펼치는게 그순간 내 작은 바램이었다. ㅡㅡ;
(피구가 오노 역할을 했으면 싶었다..)
그게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축구와 축구인들이 나아갈 바라고 생각했었다.
어레난지 얼레린지 하는 미국 감독도 재수없었고
그 졸라리 멋없는 닭대가리 시키도 보기 싫었고
또 그넘들이 우리 특수부대의 경호를 받으며 입장하는 꼴은
두고두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으며
오자마자 휴전선에 주한 미군을 찾아갔다는 사실에
도대체 뭐하는 넘들인지 궁금했으며
미국 경기 있는 날 대공 미사일을 배치했다는 뉴스에
그 미사일 날릴 일을 꼭 만들고야 만들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으며
반미 시위 날까봐 전투경찰 5000명이 광화문에 배치됬다는 얘기에
이겨도 대사관 밀어버리자고 글을 올렸다. 그 전투경찰이
붉은 악마에게 몽둥이 질을 하나 안하나 함 보게 말이다.
30만 대군이니 총을 쏘게 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씨바
10.
그래도.
이겨서 기분좋은 한-포전이었다.
그래도.
미국이 올라갔다는건 나한테는 두고두고 한이 될거다. 아마.
멕시코 한테 8:0으로 깨지고 어서 이나라를 떠나라 제발.
너희는 절대로 이해 못한다.
48년동안 한번도 월드컵에서 이겨보지 못한 나라의 한을.
너희는 절대로 이해 못한다.
"100년간 일본에게 당하고, 남북이 전쟁하고, 국토가 단절되고",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친미파시스트의 잔당들이 아직도 선거에서
절반넘게 득세하는, 이 후진 약소국 국민의 설움을.
싸가지 없는 저질나라 米國눈치나 열심히 살펴야하는,
무기사라면 사야되고
금메달 달라면 줘야되고
너네 군인들이 우리 여자들 강간하고 죽이는데도
우리 법으로 처벌도 못하는
그래서 축구만에서만이라도 너네들을 지근지근 밟아버리고 싶은,
이 작은 나라 국민의 참담함을 너희는 절대 이해 못한다.씨바들아.
11.
스타하다가 독일애를 하나 만났다.
19살이고 고딩 졸업하고 사회봉사 9개월 갈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매너있고 싸가지가 있길래 한 네시간 넘게 붙들고 이야기 했다.
월드컵 얘기 스타 얘기 포르노 얘기 하다가..
내가 주한 미군이 아직 한국에 있고
한국 땅, 전기 쓰면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고 하니까
나보고 liar란다. kidding me란다. 내가 자기를 놀리고 있단다.
그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엔 내 영어는 너무 짧았다.
어설픈 내 몇마디 설명에 너네나라에 군대가 없기 때문이란다.
우린 2년 2개월 가야 한다(must)고 하니까. oh my god이란다.
자기 사회봉사 9개월 가는거 불평하면 안되겠다고 한다.
신경질 났다.
우리나라가 분단된게 잉글랜드와 아일랜드가
분리된거랑 같은거라고 생각하더라
너네 나라 동독 서독 갈라졌듯이 우리도 갈라진거라고
하니까. 기분 나쁜 투로 it doesnt exist any more!.란다.
더 설명하고 싶었다. 첨으로 영어를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좋은데 취직하려고 배우는 영어회하는 얼마나 비참한가.
13.
올해는 물의 기운이 왕성한 해이기 때문에
월드컵도 물이 기운이 강한 나라가 선전할거라고 역술인들이 그러더라
그래서 인천이나 부산에서 열린 경기는 우리가 승리했고
땅의 기운이 강한 대구에선 그렇지 않은거란다.
"대구전 하는날 비왔잖아 엄청...?"
"그래서 비긴거야."
"그렇군...ㅡㅡ; 근데 대구는 안왔잖아.."
"그렇군..ㅡㅡ;;;;"
그래서 일본이랑 영국이랑 스페인이 선전할 것이며
우승은 스페인이 먹고 우리랑 일본은 8강 간단다.
만약 한국이 8강가고 스페인이 우승하면
다들 물 많이 드시고 이번 여름은 꼭 바다나 강에서 보내시라. ㅡㅡ;
특히 공부 하시는 분들 ..
바쁘시더라도 꼭 해변을 찾으시어 물의 기운을 엄청 흡수하고 오시라.
특히 돌고래 형님의 선전이 예상되오니 기뻐하시라.
(엉님아.. 엉님 별명이 고래인 보람이 이제서야 찾아 오려나 봅니다...흑흑..)
(난 올해 토정비결에 물가를 조심하라가 세개나 있던디..ㅠ.ㅠ)
암튼. 월드컵에 불구하고 더위에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시는 선배 동기님들 부디 물 많이 드시고 좋은 성과 있으시길..
14.
폴란드전에서 골 넣은 황선홍이 세레모니 하면서 뛰는
장면을 봤을때...
난 좀 착찹했다.
재방송에서 봤을때
난 좀 당황했다.
하이라이트에서 봤을때
난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저건 인석이다. 인석이가 골을 넣었다. ㅡㅡ;
우리는 최근 100년 동안 일본에게 당하고, 남북이 전쟁하고,
국토가 단절되고, 지역이 분열하고, 이웃과 분리되고, 가족은
해체된 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과 달라야 한다는 재촉을 끊임없이
받으며 살아온 족속이다.
군집 생활하는 동물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제 한 몸 간수를 위해
방어적이고 소심하게 위축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불안정하게 서로로부터
소외된 개체로 뚝뚝 떨어져 지난 100여년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조건 없이 일순간에 모든 종류의
단절과 분열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생물학적 본능에 가까운 동질감을
폭발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 종류의 감정을 우린 지난 100년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응원 후 휴지 줍는 것만 봐도 가슴이 찡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휴지 줍는다고 선진 질서의식 운운하는 닭대가리 언론들아,
우리가 뭐 줄 잘 서고 거리 청결하게 해야겠다는 투철한 질서의식으로
휴지 줍는 줄 아냐. 그렇게 한꺼번에 얻어진 동질감, 자신감,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고, 그런 걸 해치는 짓은 스스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서 나오는,
종족 보호 본능에 가까운 행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