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하자고 했다.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제가 여태 살아온 것도 다 잘 먹은 덕택이죠. 문제는... 세상에는 희한한(제가 보기에는) 분들도 많다는 사실 때문에 갑자기 분개하여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겁니다. 흔히 말하는, 소위 미식가라는 분들 때문입니다. 저는, 전혀 미식가가 아니며, 간만 맞으면 대충 먹고 치우는 스따일의 미남 골프칼럼니스트인데 말입니다.
처음 결혼을 하고 (물론 처음 결혼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제 아내가 제일 놀란 것이, 제가 참으로 기르기 쉬운 남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뭔 남자가, 도대체 반찬 투정을 안 한다는 겁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숟가락을 놓고 잘 먹었어! 라고 말하는 저를 아내가 빠안히 바라보더군요. 정말 잘 먹었어요? 그럼, 잘 먹었지. 아침 반찬이 뭐였는지 기억나요? 아니... 안나는데? 한번 봐요... 그래서 식탁을 바라봤더니... 식탁에는 밥 한 그릇, 물김치, 배추김치, 열무김치라는 김치 3종 세트만이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반찬을 저렇게 해줬는데, 잘 먹었다는 말이 나와요? 그랬구나 하면서도, 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세상에 밥도 못 먹고 굶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더운 밥에 김치 있으면 됐지. (아내 감동 모드!!!) - 사실 전 반찬이 뭐였는지도 모르고 밥을 먹는 사람입니다.
이런 기본 자세가, 적어도 애들을 낳아서 꽤 키울 때까지는 유지가 되었으며, 애들에게도 기본 영양소만 갖춰졌다 싶으면, 반찬 투정을 일체 못하도록 교육을 시켰습니다. 임마, 아프리카에서는, 소말리아에서는, 파키스탄에서는, 북한에서는, 심지어 아빠 어렸을 때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렇게 교육을 시키고 나니, 지금도 애들은 마치 훌륭한 제 아빠 모냥으로 반찬에 대해서는 투정을 안 하고 삽니다. 반찬투정? 얘가 어디서 쁘띠 귀족부르조아틱한 구전민요를 낭랑한 목소리로 낭독하거나 외치고 있어? 졸타, 3일 식음을 전폐해서 굶은 후에 우리 진지한 대화를 계속해보자. 그럼 끝입니다.
그렇게 곱게(?) 자라온 제가, 어느 날 드디어 강적들을 만납니다. 묘하게도 제 대학 선배와 후배였습니다. 6년씩 차이가 나니, 대학에서 본 것은 아니고, 거래를 하다보니 알게 되어 죽이 맞았습니다. 다 좋습니다. 외모도 상큼개성지성발랄의 상개지랄이고, 고스톱도 제법 치고, 아구도 제법 돌려서, 함께 놀면 노는 재미, 일하면 일하는 재미, 공 치러가면 골프도 곧잘 쳐서 재미가 나는 짐승들이었는데, 딱 한 가지.... 이 처먹는 습관이 저와는 남극과 북극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경악발악흉악을 다 떨어도, 안 고쳐지는, 소위 미식가들이었던 겁니다. 예를 들면,
10시쯤, 제 회사로 옵니다. 선배가 와서 먼저 녹차(해롭다고 커피는 절대 안 마심)를 청해 마시고 있으면 5분 후에 후배가 또 출몰합니다. 오자마자 바로 저를 닦달합니다. 점심밥 먹으러 가자는 겁니다. 아니 새벽녘에 뭔 점심? 하면 어쨌든 나가자고 한 후에 납치를 하듯 저를 선배의 차에 태웁니다. 그런 후, 선배가 기사 분에게 딱 한 마디 합니다. 가자!
두 시간 동안 달려서 대전의 어느 냉면집에 도착합니다. 또 한 마디 하십니다. 먹자!
다 먹고 나면 또 한 마디 하십니다. 가자! - 다시 서울로 가는 겁니다. 즉, 냉면 한 따까리 하러, 서울에서 대전까지 쏜 겁니다. 가자! 먹자! 가자!..... 지가 무슨 쥴리어스 시저라고, 왔노라, 봤노라, 먹었노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면서 하는 말씀이 더 기가 막힙니다. 야, 어제 소문 듣고 여기 와서 냉면을 먹는데 말야, 너하고 저 후배놈이 여엉 맘에 걸려서... 정말 맛있지 않냐? 저는 조용한 차안에서 발광을 합니다. 아니, 냉면 한 사발 하러, 서울에서 여기까지 온 겁니까? 도대체 저를 뭘로 보고.... 뭐긴 뭐냐, 간만 맞으면 처먹는 불쌍한 짐승이지. 어떠냐, 두 시간 달려 온 보람이 있지? - 보람은 개뿔...
셋이서 미국 LA로 출장을 갔습니다. 저는 업무를 위해서 거래처 방문 스케쥴을 짜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저 두 짐승은, 처먹는 일정 잡느라고 침이 한 사발입니다. 야, LA에서는 역시 진주 곰탕 아니겠어? 아침은 거기서 먹고, 점심은 코끼리 다리 분식에서 양은냄비 라면 어떠냐? 그리고 저녁은 역시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 대게 요리를 찜쪄먹자! 아니죠, 산타 모니카 해변에서라면 역시 땅콩에 갈치구이와 스테이크 아닐까요? 그래? 그럼 대게는 그 담날로 할까? 어쩌구저쩌구... 저는 또 발악경악흉악을 떱니다. 아, 제발 우리 대충 좀 먹읍시다. 햄버거나 먹죠. 이런 미친 넘... 야, 니가 몰라서 그러는데, LA에서는 역시.... 으이구.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이 두 인간은 12시간 내내, 감자는 쪄먹을 때와, 으깨서 먹을 때, 구워 먹을 때, 튀겨 먹을 때가 다 다르다! 심지어 구운 것을 으깨서 올리브 기름을 부어 일본 간장에 찍어 먹다가... 아니죠, 군 감자는 역시 죽염입니다. 어허, 무슨 소리, 굵은 천일염에 찍어 먹다가 왕소금 씹는 재미를 모르나뇨? 형님, 알미늄에 싸서 구워 러시아산 아카시아 꿀에 재어 먹는 맛 아세요? 전 너무 맛있어서 혓바닥까지 씹었다니까요, 아 그 냄새.... 이러다 보니, 미국에 도착하더군요. 옆에서 저는 거의 울부짖으면서 외쳤습니다. 아, 제발... 먹는 얘기 좀 그만하죠. 우리 대충 간만 맞으면 먹읍시다.
하기야 이 두 인간은, 군대 시절 제일 힘들었던 것이, 짬밥이었다는 인간들입니다. 훈련은 아무래도 좋고 대가리 박는 것도 괜찮은데, 오로지 먹는 거... 이게 평소 드시던 호텔 뷔페 수준만 되어도 대가리 아니라 말뚝도 박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엔간하면 박박 기다가 먹는 짬밥이 꿀덩어리라는 걸 알 만도 한데, 자기들은 전혀 아니었다고 합니다.
출장 마지막날... 저는 그야말로 제 속이 양말짝이나 버선짝처럼 뒤집어지는 걸 보고야 말았습니다. LA의 아름다운 골프장, 윌슨에 부킹씩이나 해놓고... 급히 거래처에서 돌아와 후다닥 점심을 먹읍시다, 그리고 얼렁 갑시다 했더니, 그에는 겨우 동의를 하면서 빨리 되는 메뉴가 뭐냐? 회덮밥? 응, 그거 밥에다가 회만 덮으면 되는 거지? 그거 먹자 해서 단군이래 최초로 모처럼 식단에 동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회덮밥이 나온 순간, 저는 속이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이 일제히.... 숟가락 놔두고 젓가락으로 밥을 비비고 있는 겁니다. 두 인간, 뭐하는 겁니까? 빨리 먹고 갑시닷! 했더니, 그때 두 사람의 대답. 어허, 밥을 비벼 먹을 때에 숟가락으로 비벼먹으면 밥알이 으깨져서 맛이 안나요, 맛이....원래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하는 거예요. 저는 그 자리에서 숟가락을 팽개치고, 똥꼬에 로케트를 달고 일어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택시를 타고 골프장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3번홀쯤을 혼자 돌고 있으니까, 두 인간이 나타나더군요. 꽤나 반성한다는 말을 했지만, 표정으로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잘 처먹었다는 흐뭇한 낯짝이었습니다. 제가 18홀을 돌면서 하도 끓는 주전자처럼 투덜대고 있으니까, 억지로 반성을 하는 척 하는 것이었던 겁니다. 그러더니, 저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그래그래, 우리가 잘못했다. 18홀 끝나면 간단하게 우리 햄버거나 먹자, 그럼 되는 거지? 해서, 어라 이 인간들이 갑자기 사람이 되었네 하고 기뻐했던 것도 한 순간....
18홀을 끝나고 옷을 갈아입으며, 대충 아무 맥씨네 집에 가서 우리 저녁은 햄버거로 땡깁시다 라고 제안을 했더니.... 또 안 된답니다. 아니, 뭐가 안됩니까? 아까 분명히 햄버거로 대충 저녁 먹자고 했잖아요? 그랬더니.... 이 인간같지도 않은 밥통들은, 웬X스라는 햄버거집으로 가야 한다고 우기는 겁니다. 그건 또 왜 그래요? 했더니, 겨우 하는 말이, 오직 웬X스라는 햄버거집만이, 고기 패티를 직화구이로 구워주고, 다른 햄버거집은 모두 기름에 튀긴다는 거죠. 정말 못 말리는 밥통들...
김밥을 먹어도 어느 동네 무슨 집에서 먹어야 하고, 냉면은 함흥식이냐 평양식이냐를 따져야 하고, 만두는 크기도 봐야 하고, 만두소의 씹히는 감촉도 느껴야 하고, 동동주는 가라앉는 정도를 안 볼 수 없고, 초밥은 생선의 두께도 봐야 하고, 하다못해 군고구마를 먹어도 거의 관상을 보듯이 크기와 익은 정도를 따져야 하는 인간들... 토요일이면 10시반에 전화를 해서, 야, 지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어느 맛집으로 지금 가는 중이니까 너도 빨리 와라 하고 무전을 치는 인간들. 김치찌개는 묵은지의 익은 정도를 반드시 살펴야 하고, 외국 출장 다녀오면 느끼함을 덜기 위해서 명동의 무슨 라면집을 가야 하는데, 그 또한 반드시, 본점으로 가서 빨간 라면을 먹어야 한다는 밥통들.
이 인간들과의 특별식 먹기 대회는 결국, 골프장에서 마무리를 짓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총무로 있는 골프 모임에서 두 명이 펑크를 내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마침, 제 앞에 앉아 있는 두 인간들도 골프를 치는지라, 저는 즉시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 구명지은을 부탁하였습니다. 형님, 그리고 후배야.... 이 오빠가 급히 모월 모일에 두 명의 활발한 골퍼 참석이 필요한지라, 긴급히 빵꾸를 때워줄 것을 부탁드리노라. 이번에 참가해주면, 담에는 꼭 내가 당신들의 빵꾸를 메워주마.
그래? 그럼 가야지...하는 흔쾌한 동의에 저는 저절로 앗싸~ 소리가 나왔습니다. 즉시 골프장으로 전화를 때려서, 모레 하는 우리들의 모임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으므로, 염려 마시고 철저한 협조나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씀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마친 순간.... 이 두 인간이 갑자기, 그 골프장은 안 간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딴 데 가서 알아봐라. 라고 메몰찬 짐승의 울부짖음을 외치는 겁니다. 저는 금방 아무 이상없이 모든 팀이 참석한다는 전화를 마친 터라, 황당함에 따져 물었습니다. 뭐예요, 5분 전에 간다, 빵꾸 메워준다 라고 하셨잖아요, 이 선배와 후배 셋트 두 인간아! 라고 했더니.... 답변이 간단합니다.
그 골프장.... 저녁에 먹어야 한다는 김치찌개.... 그거, 돼지죽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걸 먹으러 가냐.... 아무리 골프장이 좋으면 뭐하냐, 음식이 개판인데.... 후배까지 덩달아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요, 형님. 그거, 돼지죽입니다. 묵은지는 분명 6개월 조기 숙성에다가 양념으로만 짜가로 맛을 내고 끓이는 온도도 못 맞추고 밥은 뜸을 덜 들여 쌀알 씹히는 게 마치 여물로 쓰는 콩밥 맛이잖아요. 에휴, 그런 골프장에서 어떻게 밥을....
저는 물론, 가까이 있는 우산으로 찔러총! 2회와 개머리판 돌려치기로 아구 돌리기를 실시한 후.... 여태까지 두 인간이 도대체 뭘 처먹고 사는지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아.... 대충 좀 먹고 삽시다. 간만 맞으면 우리 그냥 좀 먹읍시다. 뭘 먹을 것인가를 염려하지 말고, 뭘 읽을 것인가를 번뇌하라 라는 명언도 있잖습니까? - 아마 그거... 오 입싱글이라는 저명유명훌륭청년미남골프칼럼니스트가 남긴 말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