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의 전통 생활양식 및 인간관계가 근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를 해 가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둘째딸과 만날겸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보기 위해서 중국 남부 장족자치구의 三江이라는 곳에 있는 동족부락을 방문을 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부락까지는 중국 남부의 홍콩에서 가까운 廣東省의 廣州라는 곳으로 입국을 해서 廣州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桂林이라는 곳까지 비행기로 가고 桂林이라는 곳에서 뻐스를 타고 약 4시간쯤 가야 되는 곳이다.
아직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시골 길을 30명 정도 타는 마이크로 뻐스로 터덜 거리면서 가야 되는데 이 뻐스에는 아직도 차장이 타고서 손님들에게서 요금을 받고 있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 앞의 국도3호선 신작로가 봄만 되면 수렁이 되어 가끔 차가 빠져서 고생들을 하는 것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곤 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직접
내가 그 경우에 처했었다.
차가 출발을 해서 2시간쯤 달렸을
때였다.
뒷쪽에 타고 있던 남자가 앞으로 가서 운전수와 차장에게 뭐라고 말을하자 둘이서 낄낄거리면서 웃는다.
딸에게 저들이 뭐라고 하는거냐고 물었더니 남자가 오줌이 마려우니까 차를 세워 달라고 해서 운전수와
차장이 웃는거라고 한다.
아무리 손님이 오줌이 마렵다고 해도 설마 차를 세워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조금더 가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 운전수가 뒤를 보고 뭐라고하니까 조금전의 남자가 서둘러서 내린다.
그것을 보자 손님들중에 다른 남자들도 덩달라 내리기에 나도 내려서 대여섯명의 남자가 길가에 일려로
늘어서서 시원하게 오줌을 깔겼다.
도중에 교통사정으로 고생을 한 이야기나 관관광을 생략할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생략을하고 고생고생하면서
동족 마을로 들어가니 마을의 택시 내리는 곳에 마을아줌마 10여명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딸이 하숙을하고 있는 집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할때 부락민 20여명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즐겼다.
아줌마들이 오늘은 이집에서 자고 내일은 자기집에 초대를 할테니 자기집에서 묵고 다음엔 누구네집 하면서
말을 꺼내기에 일정관계로 내일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더니 모두들 섭섭하다고 하면서 내년에 다시 오라고 한다.
딸은 아줌마들과 집사람과의 대화의 통역으로 바쁘기에 나는 부락민들과 말은 통하지 않었지만 한자를 조금
아는 관계로 노트에 필담으로 상호 의사 소통을 하면서 함께 낄낄거리곤 했다.
그들에게는 타민족인 둘째딸을 마치 자기들과 같은 부락의 출신과 같이 친절하게 대해줄뿐만 아니라 딸의
연구에도 많은 협조를 해주는 부락사람들에게 고마울 뿐이였다.
그들의 푸근한 인정은 내가 어릴때 우리나라 시골과 비슷한 감이 들어 가는게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어울릴수가 있었고 마치 오래간만에 고향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수민족의 집단부락이라고는 해도 마을 외관과 주택만은 옛날 그대로지만 집집마다 파라보라 안테나로 위성테레비들을
보고 있고, 남녀 할것없이 모두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집집마다 냉장고,전자렌지등 현대화
되어 있으나 마을의 외관과 주택만은 전통민속부락으로 지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변형을 할수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고 한다.
어찌되었던 이곳의 소수민족들의 생활양식도 급속도로 변화를하리라고 생각을 하니 지금 이시기에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상과 같은 소수민족인 동족 부락의 이야기만을 소개하면 중국이 덜 발전이 된 나라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었다.
이번에 가서 딸의 지도교수이며 中山大學校의 문화인류대학의 부학장이라는 분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일본에 유학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일본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는 관계로 의사소통이 아주 원활하게 이루어 졌다.
그에게 요즈음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으로 이곳 광동성 특히 광주근처의 공장들도 도산을 하는 곳이 많어서
경제가 힘이든다는 보도를 일본에서 보고 왔는데 실제로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중국 전체의 생활수준 특히 농촌지역의 생활수준은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지만 이곳 광동성은 중국 전체의 생활수준으로 볼때 다른곳에 비해서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실제로는 광주부근은 대만과 같은 생활수준이라고 본다.우리 중국 수천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헤아릴수 없이 많은 곤난을 극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르고 있다.현재 다소 경기가 침체 되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들은 현명한 지도자들이 이 난관을 잘 극복해주리라고
믿으며 견디고 있다.”는 대답이였다.
처음 그의 말을 들을때는 자기의 지위가 있으니까 그런 대답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날 저녁에 중심가를 돌아 보고 그의 말이 외국인들을 위한 모범답안이 아님을 몸으로 느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였는데 거리의 열기는 대단하였고 저녁을 먹기 위해서 들어간 고급음식점은 어디나
만원으로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귀금속점에서 귀금속을 구입하기 위해서 점원과 상담을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는 놀랄수
밖에 없었다.
의복이나 값싼 악세사리라면 몰라도 귀금속이라면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이 되지 않으면 구입을 할수가 없을텐데
귀금속 점포 마다 빈집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금까지 6번이나 중국을
여행을 했지만 옛날과 현대를 한꺼번에 체험을 할수 있었던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첫댓글 그란해도 저녁에 중국무협영화를 잠시 봄서 땅덩거리가 킁깨 뻥도 쎄기는 허제마는 참말로 대단헌 나라라는 이약을 했었는디, 보먼 볼수록 불가사의라는 말을 실감나게 허는 나라더랑깨요... 중국인들이 다 배부르개 묵고 살먼 온 시상 사람들이 굶어죽개된다는 말도 허풍만은 아닌 거 겉고... 따님들 덕에 이러고 댕기는 사람들이 질로 붑던디.. 재미난 이약은 더 남았것지다 이~! ^^
이번의 여행은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어준 아주 재미있는 여행이였고 소수민족인 동족들의 따듯한 마음씨에 감동을하고 돌아 왔습니다.아마 멀지않은 장래에 동족들도 변하리라 생각을하니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예쁜 아가씨들 넓은 목걸이가 은으로 만던것이지요? 아니면 보기에는 그렇네요. 딸래미가 장합니다. 오랜만에 오라버니, 올캐언니 사진보니 아주 좋아요. 저도 여행때마다 "남자몸이 훨씬 더 편해" 하고 궁시렁그릴때가 많아요. (길가에서 오줌눌수있는 경우 ㅎㅎㅎ)
그래요 은으로 만든 장식품들이예요.내가 방문한 동족들은 옷에 현란하게 자수로 치장을 하지 않는데 묘족이라는 소수민족은 아주 호화차란한 치장을 한답니다.그리고 머리에 쓰는 관도 아주 커다란 은으로 만든 관을 쓰고요.
옛날 저의들 자랄때와 비슷한 농촌 풍경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네요...공부하는 훌륭한 따님과 함께 하신 여행이라서 더욱 즐거우셨겠어요...
동족부락민들의 따듯한 마음씨와 분에 넘치는 환대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겁니다.
아니, 어떻게 따님 셋이 각국에서 활약하시나봐요~~따님 덕분에 특이한 여행 하셨네유~
어찌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앞으로 1년반은 더 그곳에서 연구를 한다고하니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