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매스>
1. 영화의 장점은 스팩터클한 장면을 통한 시각적 효과와 사운드의 강력한 울림이다.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하는 이유도, 아무리 가정의 TV가 커진다하더라도 극장에서 보는 느낌을 똑같이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의 장점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영화적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연극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대사로만 구성되었어도, 인물들의 클로즈업된 표정과 그들의 미세한 언어적 감수성을 통해, 영화는 ‘연극’이 보여주지 못하는 특별한 세계로 안내할 수 있다. 연극이 대사와 동작을 통해 의미와 재미를 전달한다면, 영화는 좀더 다양한 표정을 가미하며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영화가 가진 편집과 카메라의 힘이다. 이때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다. 카메라의 압박을 극복하고 강렬한 주제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능력이다. 이런 영화를 만났다. 연극적 구성이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적인 장점을 살려 표현된 인간의 삶과 고통의 문제를 그린 <매스>이다.
2. 영화는 6년 전 학교 총기사건으로 죽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가 한 교회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작은 탁자에서 마주한 네 사람은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서로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용서’하기 위해, ‘용서’받기 위해, 만났지만, 그들의 대화는 여전히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피해자 부모는 가해자의 부모가 자신들만큼 고통받기를 원하며 진실을 말하라고 몰아부친다. 가해자 부모들 또한 ‘가해자’라는 입장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고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 속에서 너무도 불공정하게 행해졌다고 느껴지는 일들에 대해 항변한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가해자 부모들의 사과는 피해자 부모들에게 진심이 아닌 ‘변명’으로만 들린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치유’보다는 ‘갈등’이 증폭된다.
3. 끔찍한 사건의 전모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씩 재현된다. 치밀하게 구성된 사건의 전개는 놀랄만한 내러티브의 매력을 보여준다. 어떤 보조물도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만 표현된 그 날의 비극적인 상황은 어떤 추리물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게 사건을 되살려 낸다. 누구도 자신의 자식이 ‘악마’와 같은 존재로 변할 것이라 예측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은 어떤 무엇보다도 편향적 요소가 강한 대상이다. 조금씩 변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부모들은 그것이 비극의 전조라고 해석할 수 없다. 다만 조금 아플 뿐이라고 여길 뿐이다. 피해자 부모는 가해자의 잔혹성을 드러내려 하고, 가해자 부모는 그것을 방어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치유’의 목적은 어려워진다. 상대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문제 해결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4. 해결의 가능성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회상하면서 나타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고 부모들은 그들이 자랄 때 순수하고 귀여웠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하나씩 끌어내면서 그들은 아이들에 대한 공감을 나눈다. 어떤 부모도 똑같이 아이를 사랑하고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랬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의 부모는 꺼내기 힘든 말을 내놓는다. 가해자의 부모를 용서하겠다고, 그리고 가해자 또한 용서하겠다고, 그것은 가해자를 향한 용서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들이 고통의 늪 속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였다. 용서하지 않고 증오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이라는 것을 그들은 6년 간 경험했던 것이다.
5. 영화는 ‘고통’의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피해자의 부모들은 아이의 죽음을 통해 세상이 좀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희생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경우, 문제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뿐이다. 특히 미국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총기사건’은 이러한 좌절감을 심화시킨다. 영화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더 이상 고통받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리 노력한다할지라도 할 수 없는 것이 때론 있다. 그때 우선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에 대한 내려놓음이 우선이며, 평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6. 결국 그들은 서로가 상처입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확인했다. ‘가해자’의 부모일지라도, 어떻게 완전히 가해자를 통제할 수 있는가? 영화 마지막 가해자 엄마의 고백은 그것을 확인시켜준다. 가해자 엄마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아이가 거칠게 협박하면서 엄마를 때리겠다는 말에 두려움에 떨려 방을 닫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 아이에게 맞았어야 했다고 울음을 터뜨린다. 서로가 꼭 껴안은 두 엄마의 가슴 속에서 그들의 진심이 통한다. 우리에게 고통은 통제할 수 없이 나타난다. 그것이 부모라도 그것에 전적인 책임을 가질 수 없다. 독립적 존재로 성장한 자식들을 어떻게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안타까움은 분명 있다. 폭력적으로 변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폭력성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총기와 결합되면 언제든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7. 영화 <매스>는 네 배우의 대화를 통해, 폭력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부모들의 상황을,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갈등이 가져오는 비극적 결과를, 끔찍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장면이나 요란한 효과보다도 네 사람의 나누는 대화의 진실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시간 동안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같이 긴장하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공감하게 된다. 뛰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또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작품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라는 측면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좋은 영화였다.
첫댓글 -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더 이상 고통받지 말라. 아무리 노력한다할지라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 인간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