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民國의 역사는 당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간단히 깨닫게 만든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산하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책임장 이마니시류(금서룡)의 조선인 제자인 이병도는 해방후 사학계의 거두가 되어 지금의 서울대학교 역사학과 총장이 된다.
지금 대학교의 역사교수들은 이병도의 3대 4대 제자들이며, 전국의 국사교과를 맡고 있는 이른바 국사선생들은 이들로 부터 교육받았다. 그리고 그들로 부터 당신들은 교육을 받았다. 그 뒤 조선사 편수회에서 편찬했던 조선사 35권은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데 있어서 사료로 쓰이며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당신들은 일제가 지금의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해마다 수백억원을 들여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했던 방식 그대로 편찬했던 일본의 조선사35권을 공부하고 있다.
일제시대때 독립했던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은 모두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봉사했던 선조들을 원망아닌 원망을 하며 살고 있고, 일제시대 동포를 태평양 전쟁과, 731부대와 자신의 딸과같은 어린 소녀들을 일본군대의 화장실로 보내버렸다. 이 나라 국민의 정신은 썩은지 오래며, 대한민국의 윤리도덕은 타락하여 이미 이 나라의 정신은 찾기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는 역사의 게임이 시작되어 감히 붓을 들게 되었다. 이제부터 말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잘 보시기 바란다. 역사는 항상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며, 이 글이 사필귀정으로 역사를 이끄는 자그마한 불씨가 된다면, 천하사를 하셨던 많은 선배들께서 행하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2) 기록으로 직접 남은 대한민국 9203년의 역사
일제시대 20만권에 이르는 고유사서가 불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료는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1900년대 계연수씨에 의해 저술된 고대역사를 한권으로 합본한 [환단고기]가 남아 있고 숙명여대에서 계연수씨가 직접 합본한 [환단고기]가 발견되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증거들을 바탕으로 바른 역사를 살펴 보고자 한다.
(1)桓國
초대 안파견 환인천제께서 환국을 여신 이래 올해로 9203년이 되었다. 곧 올해는 환기로 9203년이다. 초대 안펴견 환인이래 환국은 7대 환인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 환국은 3301년동안 지속되었다.
환국은 12제국의 연합국가로 [古記]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초(太初)에 상·하 사방이 일찍이 어둡고 캄캄하여 보이지 않았으며 옛날은 가고 지금이 오도록 다만 하나의 광명 뿐이었다.
하늘에는 삼신(三神)이 있었는데 곧 하나뿐인 상제로서 주체는 하나의 신이나 각각 신이 있는 것이 아니며 작용하는 것은 곧 삼신(三神)인 것이다. 이에 삼신이 만물을 끌어내어 온 세계를 통치하니 천하 오제(五帝)의 사명을 주관하여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 되고, 지하 오령(五靈) 의 성효(成效)를 주관하여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되었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에 아만(阿曼)과 만난 곳을 아이사타라 한다.
꿈에 천신(天神)의 가르침을 얻어 스스로 혼례를 치루었으니 곧 9환(桓) 64민(民)은 모두 그 자손이다. 처음에 환족이 사백력(斯白力; 지금의 시베리아)에 있었다. 후에 9환의 무리가 환인(桓仁)을 추대하여 임금으로 세우니, 천산(天山)에서 개국하여 환국(桓國)이라 하였다. 이 환국이 인류 최초의 국가이니 바로 역년의 시작이다. 기원을 전으로 7198년이 된다. 초대 환인을 안파견(安巴堅)이라고 한다. 하늘을 대신하여 사람을 교화하여 싸움이 없게 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힘을 내어 일을 함으로서 굶주림과 추운 일이 없었다.
혁서환인(赫胥桓仁),
고시리환인(古是利桓仁),
주우양환인(朱于襄桓仁),
석제임환인(釋提壬桓仁),
구을리환인(邱乙利桓仁)으로 이어져
지위리환인(智爲利桓仁)에 이르니 7세를 이어 그역년이 모두 3301년이었다.
지위리환인을 혹은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삼성기(三聖紀)에 말하기를 "파내류산(波奈留山) 아래에 환인씨(桓仁氏)의 나라가 있었으니 천해(天海 지금의 북해(北海))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波奈留國)이라 하였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 여리인데 이것을 모두 환국(桓國)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나누어 말하면 곧
도읍한 곳을 신시(神市)라 하였는데 14대 환웅 이후에 청구(靑邱)로 옮겨 18세를 이어 전하니 1565년간이나 되었다.
1세 환웅천황(桓雄天皇) 또는 거발환(居發桓), 재위 94년,수(壽)는 120 세,즉위원년 3301년(BC3898)
2세 거불리환웅(居佛理桓雄). 재위 86년, 수는 102세, 즉위원년 3394년(BC3804)
3세 우야고환웅(右耶古桓雄). 재위 99년, 수는 135세, 즉위원년 3480년(BC3718)
4세 모사라환웅(慕士羅桓雄). 재위 107년, 수는 129세, 즉위원년 3579년(BC3619)
5세 태우의환웅(太虞儀桓雄). 재위 93년, 수는 110세, 즉위원년 3686년(BC3512)
6세 다의발환웅(多儀發桓雄). 재위 98년, 수는 110세, 즉위원년 3779년(BC3419)
7세 거련환웅(居連桓雄). 재위 81년, 수는 140세, 즉위원년 3877년(BC3321)
8세 안부련환웅(安夫連桓雄). 재위 73년, 수는 94세, 즉위원년 3958년(BC3240)
9세 양운환웅(養雲桓雄). 재위 96년, 수는 139세, 즉위원년 4031년(BC3167)
10세 갈고환웅(葛古桓雄) 또는 독노한(瀆盧韓). 재위 100년, 수는 125세, 즉위원년 4127년(BC3071)
11세 거야발환웅(居耶發桓雄). 재위 92년, 수는 149세,즉위원년 4227년(BC2971)
12세 주무신환웅(州武愼桓雄). 재위 105년, 수는 123세, 즉위원년 4319년(BC2879)
13세 사와라환웅(斯瓦羅桓雄). 재위 67년, 수는 100세, 즉위원년 4424년(BC2774)
14세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 또는 치우천왕(蚩尤天王). 도읍을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겼다. 재위 109년, 수는 151세, 즉위원년 4491년(BC2707)
15세 치액특환웅(蚩額特桓雄). 재위 89년,수는 118세, 즉위원년 4600년(BC2598)
16세 축다리환웅(祝多利桓雄). 재위 56년, 수는 99세, 즉위원년 4689년(BC2509)
17세 혁다세환웅(赫多世桓雄). 재위 72년, 수는 97세, 즉위원년 4745년(BC2453)
18세 거불단환웅(居弗檀桓雄) 또는 단웅(檀雄). 재위 48년, 수는 82세, 즉위원년 4817년(BC2381)
14대환웅천황인 자오지 환웅때 황제헌원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켜 환웅께서 이를 진압하셨다.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반역을 용서하셨으나, 후에 다시 헌원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지나족이 선조로 떠받들고 있으며, 현재의 동북공정은 지나족의 한민족간의 고대사 컴플렉스의 발현에 다름아니다.
(3)조선
① 단군조선의 수도 변천
1.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思達) - 무순시 대류향 단군 왕검 개국시의 최초의 아사달로 이제까지 한반도 평양설(신증동국여지승람), 하얼빈설(신 채호 등), 본계설(윤내현 등)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정확한 문헌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추정하기로 백악산아사달 유궐(柳闕)은 무순시(撫順市) 동북쪽 대류향(大柳鄕)이고 단군 왕검릉(王儉 王陵)은 무순시(撫順市) 흑호산(黑虎山)에 있었다.
2. 당장경(唐藏京); 창도현 대영반석성(昌圖縣 大營盤石城) 3세 단군 가륵(嘉勒)이 당장경(唐藏京)에 도읍하였다고 [단기고사(檀奇古史)]가 전한다. 이때 백악산 아사달은 가륵의 차자가 남아서 통치하였다.
3. 평양성(平壤城); 진상둔 탑산산성(陣相屯 塔山山城) 4세 단군 오사구(烏斯丘)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서 건청궁(乾淸宮)과 평양성(平壤城) 을 쌓았는데 장당경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4. 소밀랑(蘇密浪); 이수현 소소성(梨水縣 昭蘇城) 6세 단군 달문(達門)은 새로 옮겨간 새도읍 신경(新京)에 대하여 노래를 짓게 하였는데 <서효사(誓效詞)>라고 한다. 바로 길림 아사달로 길림시 교외의 안달목(安達木), 사달구(騷達溝), 아시하달(阿什哈達) 등이 길림시가 곧 달문 단군의 새로운 백악산아사달이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5. 궁홀산금미달(弓忽山今彌達); 개원시 용담산성(開原 龍潭山城) 9세 단군 아술(阿述) 때에 청해성(靑海城)의 욕살(褥薩), 우착(于捉)이 궁성을 침범하여, 단군 아술이 상춘(常春) 구월산(九月山)으로 피하고 구월산에 궁궐을 신축하였다.
6. 녹산 아사달 21세 단군 소태(蘇台) 이하 삼한조선(三韓朝鮮)은 힘을 합쳤지만 역부족으로 반란군 색불루(索弗婁)와 싸워서 패하고, 소태 단군은 색불루에게 단군 위를 내주고 아사달 (阿斯達; 今 燕州城)에서 은거하였으며, 색불루는 녹산(鹿山)에서 22세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22세 단군 색불루(索弗婁)는 신도(新都)라고 하는 새로운 아사달로 천도하였다. 그런데 <마한세가>에서는 색불루가 혁명으로 등극하여 녹산(鹿山)에서 즉위하고 녹산도 새로 백악 산 아사달로 부르도록 하였다. 따라서 부여신경이자 녹산아사달도 아직은 송화강변이다.
7. 영고탑(寧古塔); 영안 동경성(寧安 東京城) 25세 단군 솔나(率那)는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 상소도(上蘇塗)에 있었다고 하며 [단 기고사(檀奇古史)]에서는 영고탑(寧古塔)으로 천도하였다고 한다.
8. 장당경(藏唐京); 창도현 대영반석성(昌圖縣 大營盤石城) 44세 단군 구물(丘勿)은 본래 백민성주(白民城主; 今 八面城)였으나, 43세 단군 물리(勿 理)가 외적 우화충(于和沖)에게 패하여 사망하자 스스로 궐기하여 압록(鴨 ) 18성의 지원 군을 받아 외적을 물리친 이후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 夫餘朝鮮)로 고치고 장당경 (藏唐京)으로 천도하였다.
9. 해성(海城); 무순시 망화구(撫順 望花區) 44세 단군 구물(丘勿)은 장당경(藏唐京)에서 즉위한 해에, 해성(海城)에 이궁(離宮)을 지어 역시 평양성이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이 해성은 무순시 망화구(撫順 望花區)의 옛이름 해성(海城)으로 인하여 무순시 망화구 로 추정된다.
② 단군 명칭
'단군'이란 '박달임금'의 번역이다. 대저 신시씨가 이미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왔고 환검신인이 박달나무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에 올랐기에 '단(檀)'으로 나라이름을 삼게 된 것이니, '단군'이라 함은 박달나라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말에 '단(檀)'을 '박달' 혹은 '백달'이라고 하며 '군(君)'을 '임금'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던 까닭에 단지 '백달임금'이라고 하였던 것을 뒤에 역사를 서술하던 자가 번역하여 '檀君(백달임금)'이라 하였고, 다시 후세에 전해지며 단지 '檀君'이라는 글자만 기록하게 되었기에 '檀君'이 '백달임금'의 번역인 줄을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규원사화
단군 기원 원년부터 47세를 내려와 2096(4865 ~ 6960 - BC2333 ∼ BC238)년간 나라가 이어 왔음이다.
이상이 환국 3301년 배달 1565년 조선 2096년의 삼성조시대 6962년의 역사다.
(4)이하 역사
열국시대 - 사국시대 - 남북국시대 - 고려 - 조선 - 일제식민지(36년), 미소식탁통치(3년) 그리고 남북국시대의 2241년의 역사가 내려온다.
열국시대는 북부여 - 동부여 - 남옥저, 북옥저 - 동예 - 고리 - 낙랑 - 마한, 진한, 변한의 수백개 국가 등 구환족의 분열기였다. 이것이 후에 사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구려, 십제, 서라벌, 가야로 압축되며, 후에 대진국과 후신라로 압축되고 다시 후삼국으로 분열되어 고려(918∼1392)에 의해 통일된다. 그리고 조선(1392~1910)의 역사가 지속된다.
고려 474년과 조선 518년의 992년의 역사를 제외하면 삼성조시대이래 분열의 시기였고, 발전의 시기였다. 그리하여 고려에 의해서 다시 천년간 통일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과 미소신탁으로 38년간의 외세침략기를 맞게 된다. 그뒤 다시 대한민국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곧 古 조선이래 고려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 분열의 역사는 1249년간에 불과하다.
9203년간 1249년간의 분열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에 더해 일제 - 미제 - 소제의 3제의 환란이 38년간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역사가 남아 있었고, 오늘날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질수 있었던 것에는 고대로 부터 문화를 유지시켜왔던 선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5)낭가(郎家)
이들을 일러 단재는 낭가라 불렀다. 이 낭가의 맥은 환국에서 배달국으로 넘어갈때 초대 환웅의 지위에 계시던 거발환께서 3천의 제세핵랑의 무리를 이끌고 백두산 부근의 신시에 개천하시면서 시작된다.
곧 조선의 풍류 -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수사, 신라의 화랑 - 고려의 국선 - 그리고 조선의 선비가 그들이다.
그외 이들은 많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들의 문화는 유불선이 있기 이전부터 유불선이 통합된 현묘한 道였다. 원광이 세속오계를 지었다 하나 세속오계의 내용에 해당하는 낭도의 규칙은 신라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3) 이렇게 이어져 온 역사는 5독에 의해서 거의 절멸에 이른다.
(1)중독 - 사대주의
(2)왜독 - 거의 천여차례에 이르는 침입과 일제식민지
(3)양독 - 개화기를 거치면서 들어온 서양문물로 조선의 것을 천시여기는 풍조가 삭틈
(4)외래사상 - 유물론, 역사는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유물이 없으면 모두 역사에서 삭제함.
(5)외래종교 - 지방신이자 사막의 유일신인 여호와 신앙을 바탕으로 맹신과 아집 독선으로 제 조상을 부정함.
그리하여 38년간의 외환과 이승만의 친일 관료 및 친일학자의 등용과 한국전쟁, 박정희의 근대화주의에 휩쓸려 역사를 정비할 틈도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과거사를 정리하여 민족정기를 되찾는다는 의미에 국한된 것도 아니요, 미래의 우리문화를 발전시키고 문화의 다양성에 기인하고자 하는 문화상업주의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또한 과거 우리영토의 광활함을 주장하여 영토지상주의를 주장하고자 함도 아니며, 옛 영화를 주장하여 우리나라의 광역을 넓혀야 함을 주장하는 제국주의를 주장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민족이 세계인류 곧 사해동포를 위해 9천년간 준비해왔던 일, 곧 앞으로 닥칠 미래의 한 가지 사건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제 이 방대한 역사상 우리민족이 준비해왔던 우리 구환족(九桓族)의 사명을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