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오로지 한 사람의 목소리에 의지해 긴 이야기를 이끈다. 가녀린 소녀가 야비한 수령이 되고, 늠름한 암행어사가 되기도 한다. 목소리와 간결한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판소리.
조선 후기에만 해도 ‘계집’이라는 이유로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소리꾼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조선 최초의 여자 소리꾼으로 우뚝 선 한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판소리의 매력 더듬기.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도움말 명현 학예연구사(남도국악원)
참고 자료 국립국악원 포털 사이트·한국민속문학사전·한국전통연희사전 자료 제공 CJ엔터테인먼트
? 궁금해요
소리꾼의 득음은 어떤 걸까요?
득음(得音)은 ‘소리[音]를 얻었다[得]’ 혹은 ‘목[音]을 얻었다[得]’ 는 뜻.
남도국악원의 명현 학예연구사는 “전문가마다 득음에 관한 해석은 조금씩 다르다”며 “기본적으로 득음은 스승에게서 학습한 소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장단과 음정을 자유롭고 분명하게 구사할 줄 아는 경지”
라고 전한다. 예부터 스승에게서 배운 소리를 똑같이 내는 것은 ‘사진 소리’ 라 해서 인정하지 않았다고. 명 학예연구사는 “진정한 득음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곰삭고 그늘이 깊은 소리가 복합적으로 섞인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폭포 아래서만 득음이 가능할까요?
득음을 위한 과정 또한 정해진 게 없다. 예부터 득음을 위해 인분을 먹기도 하고, 동굴이나 폭포 아래서 수행하기도 하고, 목침이 닳아 없어지도록 두드리며 연습을 하기도 했다니 사람마다 득음을 위한 수련 방법은 달랐을 것이다. 이에 대한 명 학예연구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수련을 위해서는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을 소리내기 연습에 활용하고 원하는 바를 얻기까지 긴 시간을 바치는소리꾼의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신재효(1812~1884)는?
19세기 전북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판소리 이론가이자 비평가. 중인으로서 신분적 한계와 현실의 장벽을 절감한 그는 판소리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찾고 큰 업적을 남긴다. 판소리를 후원하고 지도하는 것은 물론, 구전심수(말과 마음으로 전하여 가르침)로 전해 내려오던 판소리의 이론을 정립했다. 또 당대 창자들의 소리에 대한 미학적 평가와 시김새(한국 전통음악에서 주된 음의 앞이나 뒤에서 꾸미는 장식음 혹은 연주법)나 조(가락의 짜임새나 모양새에 따라 지어지는 음악적 특징), 장단론, 연기론 등에 깊이 있는 평론을 남겼다.
‘치산가’ ‘십보가’ ‘꽤심한 서양 되놈’ ‘방아타령’ ‘오섬가’ ‘도리화가’ 등 판소리 단가와 가사체 작품 30여 편을 만들었다. 또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등의 여섯 마당을 개작했다. 나아가 소리판에서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춘향가’ 를 남창, 여창, 동창으로 분화해 창자의 성별과 나이, 가창 능력에 따라 사설을 재구성했다.
동편제와 서편제는?
과거에는 지리적 제약 때문에 음악의 유통이 활발하지 못했다. 특히 민요 같은 서민 음악은 지역적 특색이 뚜렷했다. 판소리 역시 해당 지역 출신 음악인이 누구냐에 따라 지역적 색채가 더해졌다. 지역별
음악의 차이를 ‘제’라는 용어로 구분하는데, 섬진강을 기준으로 전라도 동쪽 지역 소리를 동편제, 서쪽의 소리를 서편제라고 부른 것.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이들 지역의 음악 색깔도 ‘제’라는 용어에 서
로 다르게 녹아 있다.
동편제는 발성을 두껍고 무겁게 하고 소리의 끝을 짧게 끊어 부르며, 되도록 잔 기교를 부리지 않는 꿋꿋한 소리가 특징. 반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슬픈 느낌을 강조하며, 가벼운 발성을 내고 소리의 끝을 길
게 늘이며 기교적인 소리를 선호한다. 판소리의 지
역별 유파는 19세기 초 정립되고 20세기 들어 점점 해체된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각 지역의 명창이 경성으로 모여 함께 활동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주원인.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