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일 가야산
새벽 네시 반, 어제 저녁 마신 막걸리가 잠을 깨운다. 푹 자고 싶은 일요일의 유혹과 충동을 걷어차고 머리를 감는다.
따끈한 아침밥을 하시느라 분주하실 익서님과 형수님을 생각하며 점심용 충무김밥 5인분, 사과 2알과 단감 3알, 식수, 배즙 3파우치, 사탕 여러 알, 차가운 겨울 등산에 꼭 필요한 여벌의 겨울 옷과 혹 늦으면 생명을 지켜줄 랜턴에 무거운 카메라, 그리고 익서님과 정상에서 나눠 마실 화이트 1병을 다 넣고 보니 묵직한게 마음이 든든하다.
다섯 시에 지하 주차장, 간 밤에 비가 내렸는가 말았는가, 어제부터 심하게 불던 바람이 그치지 않은 새벽 대로를 헤쳐간다. 해인사까지는 두 시간, 중부내륙 고속도로 고령에서 팔팔로 갈아타고 해인사 IC에서 내려 은행나무 노란잎을 밟으며 인적이 뜸한 홍류동 계곡으로 들어간다.
미명의 홍류동은 노랑색 빨강색 가을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고, 계곡물은 그 옛날 속세의 연을 끊고 은둔한 최치원 할아버지를 생각케한다.
해인사 집단시설지구로 향하려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인사까지 차를 몰아 간다. 이른 아침이라 입장료 주차비를 벌었다. 해인사 일주문 앞에 차를 세우려니 웬 노스님이 백련암까지 보시를 해 달래서 덤으로 백련암 구경에 마눌은 기도까지 했다. 아침 공양을 하고 가라는 스님의 배려를 뒤로하고 돌아 내려와서 충무김밥 5인 분 중 2인분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점심도 충무김밥이다.
백련암은 성철 스님 열반 16주기라 중생들이 고심원에서 열심히 팔만사천배 참회법회를 하고, 경내는 관광지처럼 시끌벅적 사람들로 붐빈다. 조그마한 법당 한 두개를 연상했는데 생각보다 큰 규모에 약간은 실망이었다. 깍아지른 뒷산을 배경으로 툭트인 전망이 좋다. 삶의 무게를 새파랗게 익어가는 배춧잎 위에 내려놓은 낙엽, 그 배추 참 맛나겠다. 모두들 군침을 흘린다.
여덟시 십 분쯤 산행을 시작한다. 좋다.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이른 아침 한적한 오솔길 그리고 울긋 불긋 계곡을 물들인 단풍잎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바쁜 사람들인지 아님 원래 산을 다람쥐처럼 잘 타는 이들인지 잰걸음으로 우릴 추월한다. 빠르면 자세히 보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저마다의 빛깔로 가을을 맞는 나무들을 두리번 두리번 바라보며 느릿 느릿 숨을 골라가며 오르다 보면 좀 전 부리나케 질러가던 그 사람들이 땀을 닦으며 쉬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생각난다.^^
쉬엄 쉬엄 두 시간 남짓 오르니 정상이다. 정상엔 이미 겨울 바람이 점령해 버렸다. 어제 흐렸던 날이 개느라 구름 사이로 빛내림이 멋있고 언뜻 언뜻 눈이 시린 파란 하늘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상왕봉(우두봉) 정상엔 한 무리의 인파가 시끌벅적 단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고 멀지 않은 저쪽 산봉우리 칠불봉도 울긋불긋 사람들로 가득찼다. 최근 경북 성주군에서는 자기땅 칠불봉이 경남 합천의 상왕봉(1,430미터)보다 3미터 높다고, 가야산의 정상은 칠불봉이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
우두봉을 내려서서 칠불봉으로 향한다. 저 아래 한 무리의 구름이 바람을 타고 산정으로 빠르게 달려온다. 그 능선에 앉아 자연이 빚어내는 동양화에 넋을 빼앗긴다.
차츰 사람이 많아진다. 선경을 뒤로하고 점심 먹기 좋은 명당을 찾는다. 전망 좋은 너럭바위에 전을 펴고 충무 김밥 오징어 무침과 깍두기를 안주로 화이트 소주 맛이 그야말로 죽인다. 익서 행님 왔으면 모자랄 뻔했네^^
시시각각 몰려왔다 밀려가는 구름과 늦가을 가야산의 추억을 잡으러 올라오는 인파를 바라보며 충무김밥을 맛나게 먹는데 산정의 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이제 내려가야지...
여긴 우리 동네 뒷산 대암산에서 용제봉 가는 길입니다. 올핸 단풍이 아무데나 잘 들었다.
용제봉에서 내려다본 진례 들판
용제봉 턱밑의 팔각정, 아래로 장유가 보인다.
알록달록한 앞산 저 너머로 불모산이 연무에 흐릿하다.
* 여기서부터 가야산
성철 대스님 열반 16주기 맞이 용맹정진 중인 백련암 고심원
백련암 고심원 앞뜰에서
뒤로는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앞으로는 툭 트인 전망이 시원하다.
고심원 古心院
부처님은 없고 법당가운데 성철스님 소조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법회와 삼천배 기도를 하는 전각이다.
백련암 일주문 오르는 호젓한 계단
백련암 일주문
백련암의 큰법당 적광전
낙엽이 내려 앉은 싱싱한 배추, 보는 사람마다 군침을 흘린다.
해인사 일주문 앞 주차장에서 가야산 산행 들머리에 있는 용탑선원, 가을로 분주하다...
가야산 오르는 계곡
나지막한 산죽이 예쁜 오솔길
어느덧 정상아래 된비알에 도착, 가파른 숨을 쉬며 올라야 한다.
정상에 거의 다 올라 바라본 하늘, 잔뜩 흐렸다가 빗방울도 몇 방울씩 뿌렸던 하늘인데 새파란 물감이 번지고 있다.
정상 부근 반석 위에서 화이트 마시면서 빛내림을 보다.
사진의 정 중앙 저 멀리 어슴프레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거창의 미녀봉도 보이고
여기가 상왕봉 진짜 꼭대기
우두봉 또는 상왕봉
경북 성주땅의 칠불봉에도 벌써 산객들로 붐빈다.
상왕봉 아래
올록 볼록한 봉우리, 남산제일봉은 아니고 해인사 뒷산쯤
상왕봉에서 칠불봉 가는 길목의 천년송, 오가는 등산객들이 얼마나 만졌는지 윤기가 자르르 돈다.
합천의 상왕봉보다 3미터 높다는 성주군의 칠불봉
선경을 연출하는 가야산 산신
성주 백운동탐방지원소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
칠불봉에서 바라본 상왕봉
홍류동 단풍
첫댓글 영화 "십계"의 한장면 같은 (정상 부근 반석 위에서....) 빛내림을 보면서 음복하신 화이트 맛은 어떻던지요? 따라나섯음 클날뻔했네^^:: (엄청시리 아쉬웠슴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