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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65 - 실종 2
S#1. 캠퍼스 / 낮
민재 빠르게 거의 뛰듯이 걸어가고 있다. 그 위로 들리는.
자현 : (E) 대욱이가 누군데.
S#2. 1부의 33씬 중 일부
플래쉬처럼 보이는 자현의 대사.
자현 : 글쎄 그게 누구냐니까.
S#3. 교무처 건물 / 낮
민재,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뛰듯이 복도를 걸어간다. 그 위로 들리는 1부의 36씬의 대화들.
여학생 : (E) 강대욱이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남학생 : (E) 강대욱? 모르겠는데? 우리 과래?
여학생 : (E) 어. 우리과 4학년이라는데?
남학생 : (E) 우리가 4학년인걸요. 그런 애 없어요.
여학생 : (E) 혹시 휴학생 아니에요? 우리가 모르는 휴학생이나 아님 복학생일수도 있죠.
민재, 교무과 사무실로 들어간다.
S#4. 교무처 학적팀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치는 옆에 민재가 같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 위로 1부의 36씬에 나왔던 민재의 대사.
민재 : (E) 바로 어제까지 학교 다니던 학생이에요. 여기 산디과 4학년이라구요. 근데 모른다는게 말이 됩니까?
모니터에는 조회결과가 없다고 나온다. 직원이 민재를 돌아보며.
직원 : 산디과 4학년 강대욱 맞아요?
민재 : 네 맞습니다. 그런 학생이 분명히 있거든요. 없을 리가 없는데요.
직원 : 뭔가 잘못 알구 있는 모양인데요. 그런 학생은 우리 학교에 없어요. 산디과 뿐이 아니고 학교 전체에
그런 이름을 가진 학생이 없다구요.
민재, 믿을 수가 없어서 직원을 보고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S#5. 민재의 사무실 앞 / 낮
자현이 급하게 뛰어오고 있다. 시계를 보아가며... 사무실 문을 벌컥 연다.
S#6. 민재의 사무실 내부
자현이 들어서며.
자현 : 아이구 바뻐 죽겠는 사람을 왜 오라가라 그러는거야. 뭐야 뭐.
사무실 내부에는 정태와 지원이 경진이 모여있다. 그리고 한쪽에 민재가 책상에 기대어 서있고.
지원 : 오느라구 수고했어. 좀 앉을래.
자현 : 나 앉을 시간 없어. 빨리 용건만 말하라고. 물어볼 게 있다며. 뭐? 뭔데.
아이들, 민재의 눈치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지원 : 자현이 너 산디과에 강대욱이라는 애를 아니?
자현 : 산디과? 내가 거기 아는 애가 어딨어. (하다가 민재를 보며) 가만있어봐. 이민재. 너두 저번에 나한테 그거 물어봤었지?
그게 누군데.
민재 : ...(참고 있다) 좋아. 이건...니들이 한꺼번에 짜구 나를 놀리는 게 아니라면,, 내가 비정상이라는 얘기야. 어쨌든 내 기억으로는
그저께 이 방에서 니들이 모두 모여 대욱이 생일파티를 열어줬어. 바로 이 자리에서 생일케잌에 촛불 켜구..
니들 다 그 자리에 있었다구.
자현 : 그저께? 그렇다면 그게 뭔진 모르지만 난 해당사항 없구만. 그저께라면 난 우리 놀부심보를 가진 랩장땜에 같은 일 두 번 하느라구
밤새고 있을 때야. 알지도 못하는 애 생일같은 거 챙길 수가 없었다구. 근데 얘 지금 먼 소리를 하는거야.
지원 : (한숨 쉬고) 됐어. 이것으로 그날왔던 애들 얘기는 다 들었지? 이제 우린 그 강대욱이란 애에 대해서 더 해줄얘기가 없는거 같은데.
(일어서며 가방을 챙겨든다)
정태 : 아니 잠깐 좀 앉아봐. 이거 아무래도 얘기를 좀 더 해봐야 될 거 같은데.
민재 : (뭔가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날 왔던 애들 얘기를 다 들었다구? 아직 마이클이나 지민이 얘긴 못 들었잖아.
그리고 또 하나 그 누구지? (정태를 보며) 느네 랩에 새로 들어온 학생 있잖아. 그 여학생...
정태 : (물끄러미 보다가) 여학생..이라니.
민재 : ...(미치겟다) 설마 그 여학생두 없는 사람이라구 말하는 건 아니겠지. 있잖아. 그... 이상한 짓 잘하구 다니는...
경진 : (계속 민재를 보다가) 민재야.
민재 : (경진에게 벌컥) 너두 모른다구 말할거야? (자현에게) 자현이 너하구 같은 방 쓴다며. 룸메이트 말야.
자현 : 내 룸메이트는 영숙인데. 영숙이 말야?
민재 : 아니야. 그런 이름이 아니었다구. 걔 이름은....(생각이 안난다)
경진 : (조심스레) 이름을 몰라?
민재 : (멍청하다) 알았었는데.. 이름이.. 그애 이름이.. (그러다가 아이들을 둘러본다) 마이클하구 지민이는.
그래. 그애들 이름은 기억해. 니들은 몰라?
아이들 말없이 민재를 난처해서 보고 있다.
자현 : (혼자 궁시렁대듯) 마이클은 또 뭐야. 외국애 말하는건가.
민재, 어처구니가 없어 아이들을 보다가 옆의 수화기를 집어들더니 버튼을 누른다.
S#7. 박교수 랩 / 낮
남희가 작업중이고 규한은 한쪽에서 잡지를 읽으며 과자를 와작와작 씹고 있다 전화가 온다.
규한 : (전화받으며 여전히 잡지를 본다) 인공지능랩인데요. 누구... 아, 전자과 이민재. 왜? (과자 씹고) 뭔 소리야? 누굴 찾는다구?
어이. 너 술마셨냐? 인공지능랩에 건 거 맞아?
남희 : (보다 못해) 넌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니?
규한 : 선배님. 우리 랩에 나 모르는 랩원있어요?
남희 : 뭐?
규한 : (수화기 가리키며) 전자과 이민재가 마이클인지 잭슨인지 찾구 있는데 있다구 할까요 없다구 할까요?
남희 : (다가와서 수화기를 건네받는다) 여보세요? 민재니? 누굴 찾는다구?
규한, 피식 웃고 다시 잡지 뒤적거린다.
S#8. 석학의 집
미순이 쟁반을 챙겨 놓으며.
미순 : 지민이? 남자야 여자야.
그러더니 뒤에 서있는 민재를 돌아본다.
미순 : 우리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고?
민재 : 그랬잖아요. 진영씨가 그만 둔 다음에 마이클하고 같이 여기서..
미순 : 마이클?
민재 : (말이 막힌다)
미순 : 아니 그러니까 니 말은 우리 집에서 그 지민이란 애하구 또 누구? 마이클?
민재 : ...예.
미순 : 그 둘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단 얘기야?
민재 : (정신이 없다. 얼굴을 부비고) 글세.. 제 기억엔 그랬던 거 같은데..
미순 : 니가 내 생각을 해주는 건 좋은데... 저기 문 앞에 붙여놓은 거 봤냐?
민재 : (멍하니 문 쪽을 돌아본다)
미순 : 거기 아르바이트생 급구..라고 써놓은거. 그거 벌써 일주일째 거기 붙어있잖어. 근데 우리 집에 누가 있다구?
민재 : 지민이하구...마이클... (점점 혼란스럽고 자신이 없어져가고 있다) 그러니까...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누님은
그런 애들은 모르신다는 거죠?
미순 : 글세..내가 기억력 하나는 펜티엄급이잖냐. 우리집에 드나들던 애들을 내가 기억 못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 너두 알잖아.
민재 : 예... (멍하니 끄덕인다)
미순 : 근데 너 여기 좀 있다 갈거야? 뭐 주문할래? 시원한 거 한잔 줘?
S#9. 캠퍼스 밤
민재 혼자서 털레털레 걸어오고 있다. 생각에 잠겨서 땅만 보고 걸어오는데... 저 앞에서 보드를 타고 달려오는 마이클.
마이클은 민재를 전혀 못 보는 것처럼 혼자서 흥얼대면서 민재의 옆을 스쳐서 달려지나간다.
민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걸어가고 있다.
S#10. 대강당 앞 / 밤
민재 계속 걸어오고 있다. 문득 멈춰선다. 주위를 둘러본다. 민재의 눈에 비치는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민재, 후욱...큰 숨을 쉬어보고 계속 걸어간다.
// 거의 동시에 민재가 아웃되는 자리에 정태과 지원이 걸어온다. 정태는 심각하게 생각 중이다.
정태와 지원이 걸어오는 이만치...그 뒤로 보이는 배경에는 민재가 걸어가고 있다.
양쪽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상태.
S#11. 기숙사 앞 / 밤
나란히 걸어오던 정태와 지원이 어느만치에서 멈춰선다.
지원 : 이제 그만 가봐.
정태 : 그래. (찌푸린 얼굴)
지원 : 계속.. 민재 생각하고 있는거지?
정태 : 응. 그 놈이 그렇게 헛소리 하는 건 처음 봐. 어떻게 해줘야 될지.. (그러다가 지원과 시선이 마주친다)
지원 : (빤히 정태를 보고 있다)
정태 : 왜.
지원 : 어떻게 해줘야 할지... 난 아까부터 생각하는 게 있는데.
정태 : 뭔데.
지원 : 넌 별루 찬성하지 않을 거 같아서.
정태 : ....병원에 델구 가라는 거야?
지원 : (끄덕인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정태 : 정신병원을 얘기하는 거야?
지원 : 정신과 치료를 말하는거야. 민재 요즘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일단은 그쪽 진단을 받아봐야 되지 않겠니?
정태 : (맘에 안든다) 민재 그 놈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정신이 오락가락할 놈은 아니야. 내가 알어. 그리고..
지원 : 그건 아무도 몰라. 그리고 분명하게 말해서 민재는 지금 정상이라고 할 수 없어. 너두 봤잖아. 가공의 인물을 실제 인물인 것처럼
말하구 있어. 본인도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처럼 믿고 있다구. 그런 상태라면 누구보다 본인이 괴로울거야.
정태 : (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서 괜히 옆의 나무를 발로 툭툭 차본다) 민재가 비정상이라...
지원 : 비정상이란 건 딴게 아니야. 백명의 사람 중에 아흔아홉명이 같고 하나가 다르면 그게 비정상이라는 거잖아.
정태 : ...아흔아홉명이 틀릴 수도 있지 않나. 한사람이 맞고.
지원 : 그래도 비정상으로 판정되는 건 그 한사람이야.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잖아.
정태,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 좀 망설이다가 정태의 팔을 잡아준다.
지원 : 냉정하게 말해서 미안해. 누구 한사람은 냉정해야 될 거 같아서.
정태 : (자기 팔을 잡은 지원의 손에 한손을 얹어 잡으며) 알어. 니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
지원, 어색해서 손을 빼내는데. 정태, 지원의 손을 좀 더 잡고 있다가 놓아 준다.
정태 : 들어가. 들어가는 거 보구 갈게.
지원, 어쩔 수 없이 웃는다.
S#12. 경진/지원의 방 / 밤
경진이 방안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혼자 생각에 빠져서 이렇게 생각해보고 멈춰섰다가 고개를 젓고 다시 걸어가고...
지원이 책상 앞에서 컴퓨터로 뭔가를 검색하고 있다가.
지원 : 안잘거야? 새벽 한시 넘었어.
경진 : 잘거야. (침대로 가서 들어가려다가 다시 나와 앉으며) 지원아.
지원 : (작업하며) 왜.
경진 :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게 뭘까.
지원 : ....(돌아본다)
경진 : 너하고 나는 서로 아는걸까?
지원 : (웃고 다시 모니터를 보며) 최소한 서로 존재한다는 건 알잖아.
경진 : 우리 학교에는 7천명 정도의 학생이 있어 그렇지.
지원 : 그렇다구 들었어.
경진 : 그 중에 내가 아는 학생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백명도 안돼. 백명이 뭐야 오십명이나 될까. 그럼 그 나머지는 뭐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지원 : (모니터에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는)
경진 : 너 이런 문제 들어봤어?
지원 : (건성으로) 어떤 문제.
경진 : 사람이 살지 않는 아주 깊은 숲속에서 나무 하나가 쓰러졌어. 그 나무가 쓰러질 때 소리가 났을까 안났을까.
지원 : 그게 문제야?
경진 : 답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이거야. 소리는 듣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의미가 없는거래.
지원 : (아예 돌아앉는다) 경진아.
경진 : 네.
지원 : 니가 민재를 위해서 여러 가지 이론을 찾아보고 있는 건 알겠는데. 이건 다른 문제야.
경진 : (시무룩해지는)
지원 : 민재가 메일 주고받았다는 재료공학과 사람 계정을 찾아봤어.
경진 : 그랬어? 그거 찾아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지원 : 민재가 말하는 그런 계정이 아예 없었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주소였다구. 아까 서버 담당자하구 전화해봤어.
그 사람 말로는 민재가 재료공학과의 누구하고도 메일을 주고 받은 기록이 없대. 혹시 계정을 지웠어두 메일을 주고받은 기록은
남아있어야 되는데 그 흔적도 아예 없단 말야.
경진 : ....그러니까 지금 민재는 가상의 현실과 실제 현실을 혼동하고 있다는 건가? 가상의 현실 속에서 메일을 주고받고
어떤 아이들과 친해지고....그랬는데..현실은 아니다.
지원 : 글세.. 민재가 어떤 가상의 현실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좀 심각한 거 같애.
경진 끄덕이는데 걱정스럽다.
S#13. 대강당 앞 / 이른 아침
민재가 자전거를 달려오고 있다. 언제나 자전거 체인이 빠지던 그 자리쯤에서 역시 자전거가 비틀거리더니 멈춘다.
민재, 간신이 자전거를 세워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체인이 빠져서 덜렁거리고 있다.
민재, 짜증스러운 얼굴로 자전거를 보다가 문득 대강당 뒤의 공터를 본다.
검도부 학생들이 연습을 하던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민재, 순간 후딱 한곳을 돌아본다. 수영장 입구가 크게 확대되고..
S#14. 수영장 내려가는 길
민재의 시선으로 그 계단을 내려간다. (꿈속이므로 약간 비현실적인 앵글도 좋을 듯)
수영장 헬스클럽으로 통하는 입구까지 다가가고... 문이 열리고...
S#15. 헬스장 내부
커다란 전망창 아래로 수영장이 보이고...민재, 운동기구 사이로 걸어오며 두리번거린다.
실내에 운동하는 학생은 거의 없는데 맨 구석에서 누군가 벤치프레스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민재, 그쪽으로 다가간다.
민재가 보기에 등을 돌린 자세로 운동하고 있는 학생. 철컥거리는 기구 소리, 오르락내리락하는 쇠추.
민재, 잠시 기다리지만 학생은 계속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기다리다 못한 민재, 마침내 한발 더 다가서서 학생의 어깨에 손을 댄다.
학생,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땀방울이 가득해서 돌아보는 얼굴... 대욱이다.
S#16. 민재 / 정태 방
어두운 실내. 알람시계 소리가 삑삑거리고 잇다. 정태는 2층에, 민재는 아래 쪽에 자고 있다.
벌떡 일어나는 민재, 반사적으로 책상으로 가 알람시계를 끈다.
스탠드를 켜고 실내를 한번 둘러보는 민재. 방안은 별다를게 없지만 민재로선 어쩐지 낯선 기분이다.
정태 : (찌푸리고 돌아누우며) 몇시냐?
민재 : 여섯시.
정태 : 마. 좀 푹 잘 것이지 또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민재 : 할 일이 많아. 오늘 특허 들어가는 게 하나 있구. 그리구.. (앞의 수첩을 들어 뒤진다) 랩세미나두 있었는데..
정태 : (잠이 덜 깨서 일어나 앉으며) 너 괜찮냐?
민재 : 뭐가.
정태 : (언뜻 대답을 못하다가) 그냥 여러 가지.. 컨디션이나.. 뭐.. 기분이나...
민재 : 모두 다 엉망이야.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고.
정태 : 그런 상태루 오늘 일을 하겠다는거야?
민재 : 내가 무슨 중환자냐. 상태는 무슨 상태. (옆에 걸쳐진 수건을 들어서 나가려는데)
정태 : (잠이 덜 깨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오며) 고집 피울 게 아니구.. 좀 앉아봐. 앉아서 얘기 좀 해보자구.
민재 : (멈추어 정태를 본다) 무슨 얘기?
정태 : 자 그러니까...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괜히 얼굴을 부빈다)
민재 : 알고 싶은 게 내 정신상태냐?
정태 : (보는)
민재 : 나두 방금 내 정신상태를 점검해봤는데.. 어제하구 달라진 건 없어. 난 여전히 대욱이나 지민이, 마이클을 기억하고 있고.
그리고.. (그러다가 멈춘다) 맞아. 해성이다. 이해성.
정태 : 해성이?
민재 : 느네 랩에 새로 들어온 랩원 말야. 다른 대학에서 왔던 애. 이름이 이해성이잖아. 머리가 이렇게 긴 여학생.
정태 : (물끄러미 보는)
민재 : (그런 정태를 마주보는) ....역시 모른다는 거지.
정태 : ....나도 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몰라.
S#17. 캠퍼스 / 낮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S#18. 식당 앞
점심 시간... 아이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고.
S#19. 전자동 복도
몇몇 아이들이 모여 서서 얘기하고 있고. 그런 아이들 옆을 걸어 지나치는 민재. 그러다가 후딱 돌아본다.
저만치 복도 끝을 해성이 복사물을 안고 걸어가고 있다.
민재가 놀라 보는 사이에 해성은 복도 코너를 돌아간다. 민재, 달려가기 시작한다.
S#20. 복도 일각
넘어질 듯 코너를 달려 돌아나오는 민재. 그러나 민재가 보는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민재, 가망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S#21. 이교수 랩
만수가 호들갑스럽게 들어오며.
만수 : 정태야. 김정태. 이게 무슨 소리냐. 민재가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니. 뭐가 어떻게 된건데에..
명환은 자기 자리에서 작업중이고, 중희는 정태와 가운데 테이블에서 회로도 정도를 보고 있었고.
정태 : (만수의 소리가 듣기 싫다) 이상은 무슨 이상이 생겼다구 그래.
만수 : 야야 내가 방금 자현이를 만나구 오는길인데 민재가 드디어 맛이가기 시작했대매. 아이구우..내가 언제구 그런일이 생길줄 알었어.
민재 걔가 공부에 치이구 일에 치이구 그러면서 비명 한번 안 지르구 사는 애 아니냐. 사람은 자고로 나처럼 그때그때 발산할 거는
발산해가면서 살아야 되는거야. 그래야 무병장수를 하지.
중희 : 무슨 얘기야. 민재가 어디 아퍼?
만수 : 여기..(자기 머리를 가르키며) 여기가 좀 이상해진 거 같대요.
중희 : 뭐어... (정태 보며) 민재가 왜. 뭐가 어떻게 됐는데.
정태 : (대꾸하기 싫고)
명환 : (작업하다가 돌아본다)
만수 : 정태 넌 제일 친한 친구란 놈이 민재가 그렇게 되도록 뭐하구 있었든거야. 하여간 민재 어딨냐. 엉? 나래두 델구 가서 뭔가 조치를
취해줘야지. 병원 델구 가서 CT촬영두 하고 뇌파검사두 받구 암튼 검사란 검사는 일단 다 받아본 담에..
중희 : 아 차근차근 좀 말해봐. 민재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만수 : 글세 그 놈이 과도한 업무에 지친 나머지 살짝 맛이 갔대지 뭡니까. 헛소리를 하는가하면 헛거를 보구..
사람마다 붙잡구 알지두 못하는 사람 이름을 대면서..이 사람을 왜 모르냐구 물어보고 다닌대요.
정태 : (벌컥) 형은 제대루 알지두 못하면서 왜 그렇게 함부로 떠들어대는 거야. 그렇게 신나.
만수 : 야 난 지금 걱정을 하고 있는 거잖아. 신나다니.
정태 : 걱정할려면 속으로 좀 조용히 해. 동네방네 소문내구 다니지 말구..
명환 : 김정태.
정태 : (성질내다가 움찔)
명환 : 너 선배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이 랩에는 선후배도 없고 위아래도 없어? 누가 누굴 가르치는거야 지금.
정태 : 죄송합니다. (만수 보고) 미안해 형.
만수 : 아니 내가 좀 떠들긴 했어. 근데.. 민재 정확하게 증상이 어떤건데..
명환 : 민재야.
모두 돌아본다. 문이 열리며 민재가 어정쩡하니 들어서고 있다.
만수 : 어. 이민재. 어서 와라. 어서 들어와. 일루일루... (달려가서 민재를 얼른 끌어들이며) 여기 좀 앉어. 그래 무슨 일루 왔니?
민재 : 그냥...(명환을 보고 꾸벅 인사하며) 뭐 좀 물어보려구요.
명환 : 그래. 뭐.
하는데... 카메라가 민재에게 갔다가 다사 왔을 때 랩에는 중희는 빠져있다. 다른 이들은 거기에 신경쓰지 않고 있다.
민재 : 저번에 제가 영성이라는 중소기업 사장님이 그렸다는 회로도를 갖고 왔었잖아요. (명환의 반응을 조심스레 보며)
명환 : 그래. 그게 왜.
민재 : (반갑다) 그걸 선배님이 시뮬레이션에 넣어서 검토해주셨구요.
명환 :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됐어?
민재 : 아뇨. (안심이 되었다) 그거 오늘 특허 넣거든요. 그래서 그냥.. 확인해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분명히 그런 작업을 저나 선배님이 했던 거 맞죠?
명환 : (무슨 소린가해서) 뭘 확인해본다구?
민재 : 아닙니다. 저..거기 사장님이 고맙다구요. 저녁을 사신다구 했어요. 언제 괜찮은 시간가르쳐 주세요. 자리는 제가 마련해 놓을게요.
중희 선배 저번에 갈비가 먹구 싶다구 했는데 갈비를 사달라구 할까요?
명환 : ...누구?
민재 : 중희선배요. (하다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주위를 둘러본다)
정태는...또야...하는 기분으로 시선을 피하고. 만수는 입을 딱 벌리고 보고 있다가..
만수 : 중희선배가 누군데.
민재 : ....류중희 선배. 이 랩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만수 : 그게 누군데.
민재 : (명환을 돌아본다)
명환 : (조심스레) 그러니까 그 중희라는 아이가 우리 랩에 있다는 얘기냐?
민재, 더 말을 하지 않고 정태를 본다.
정태 : (아주 난처하지만) 민재야. 어...그런 사람은 없어. 니가 뭔가 잘못 생각하구 있는 거야.
민재, 허탈해져서 우두커니 서있다가 생각난 듯 명환에게 인사를 하더니 문을 향해 걸어간다.
만수, 잡을까..하다가 그만둔다.
S#22. 석학의 집
백곰과 만수와 정태, 경진이 둘러앉아있고.
미순이 콜라잔을 돌리며 아예 옆에 앉으며.
미순 : 가만있어봐.. 그게 몇 년전이드라. 94학번인가 95학번에 그런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애가 있었지.
만수 : 비슷한 증상이라니.. 그 쪽두 이상한 이름 대면서 이런 애 몰라요. 이러구 묻고 다녔단 말입니까?
미순 : 그런 게 아니구.. 그 앤 어땠었대드라.. 그래 똑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된다구 했대든가...
백곰 : 똑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이 되요?
미순 : 그래요. 그래서 옆의 친구들을 붙잡고 계속 묻더래요. 너 어제도 이렇게 했잖아. 어라 어제도 이 수업을 들었는데. 이게 뭐야.
너 어제도 거기 앉아있었잖아.
만수 : 가만있어봐. 그럼 똑같은 하루가 사흘나흘씩 계속된다면요. 그럼 4일 전에도 이 친구가 여기 앉아서 그 말을 했고,
3일전에도 그러고, 어제도 그러고.. 그런단 말이에요?
미순 : 나두 자세한 건 몰라. 하여간 그런 소릴 하면서 애가 점점 말라가드니 결국은 휴학을 했대나 자퇴를 했대나..
백곰 : 그 비슷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기억을 해요. 시간의 블랙홀인가 사랑의 블랙홀인가 하는 건데요.
그 주인공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어제 아침의 그 시간에서 다시 시작을 하는 거에요. 그게 계속 반복이라구.
정태 : (미순에게) 그 학생 이름 아세요?
미순 : 알아서 뭐하게.
정태 : 연락이 되면 한번 얘기라도 해보게요.
미순 : 나도 건너건너 들은 얘기라서 이름까지는 모르는데. 걔가 무슨 과라구 했드라...
백곰 : 그러니까 시간이 블랙홀 속에 빠진다는 얘긴가.. 경진아. 물리학적으로 이게 무슨 얘기지.
경진 : (시무룩하니 앉아있다가) 그런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저한테 없구요.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건 도대체 민재를
어떻게 도와줘야되나..이거거든요.
미순 : 괜찮아. 걱정 마. 걱정할 거 하나 없어.
정태 : 어째서요.
미순 : 내가 알기루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기는 사람들은 말이지. 열에 아홉은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드라고.
백곰 : 하아.. 그거 심오한 얘기네요.
미순 : 지 맘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내가 어려울 때면 언제든 달려와줄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있는 인간은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길 수가 없는 법이라고.
백곰 : 그렇다면 미순씨는 안심하십시오. 여기 제가 있으니까요. 어허허허.
미순 : 근데 가끔은 친구랍시고 와서 괴롭히는 인간들땜에 멀쩡하던 사람이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다구 합디다.
백곰 : (뭔소린가 생각해보는)
미순 : (정태에게) 민재는 걱정할 거 없어. 느네들이 있구. 그리고. 민재 자체가 허약한 애가 아니잖어.
정태 : 저두 그 점을 믿고 있긴 해요. 민재는 뭔가 오류가 나면 즉각 감지해서 자동으로 복구하는 시스템이거든요.
미순 : 그래 그럼 됐어. 근데 경진이 너 그거 안먹을거야?
그제야 보면, 경진의 앞에만 놓여있는 볶음밥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경진 : 아...예.. (하며 숫갈을 드는데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미순 : 니가 웬일이야. 먹을 걸 앞에 그냥 모셔놓다니..
경진 : 그러게요.
백곰 : (미순에게) 아니 그러니까 미순씨 주위에 미순씨를 돌아버리게 할 만큼 괴롭히는 인간이 있다는 거에요? 누구에요? 말만 해요 예?
미순, 어이그해서 쟁반을 들고 일어서는.
S#23. 엔진랩
자현이 전화를 받고 있다.
자현 : 야야 민경진. 걱정 마. 내가 이래뵈도 의리의 추자현이잖아. 이따가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내서 민재를 찾아가볼게. 근데 가서
무슨 말을 하냐. 어..어..그래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되지? 너두 알겠지만 난 무신 인생상담 이런 건 못해. 그건 내 체질이 아니라고.
어.. 알았어. 만나고 나서 전화해줄게. 끊어.
전화를 씩씩하게 끊고 돌아서는데 거기 해성이 부품상자를 들고 들어서고 있다.
해성 : 다녀왔습니다.
동현 : (한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가) 도대체 부품실 갖다오는데 몇시간이 걸리는거야?
해성 : 그게.. 약도를 보고 가긴 했는데요. 약도에 동서남북 표시가 없어서 좀 헷갈렸어요. 그래서..
자현 : (얼른 다가가서 해성이 들고 있는 부품을 받으며) 일루 줘. 어유 이거 뭐 이렇게 무거워. 아니 동현선배는 저기 힘밖에 없는
후배들 놔두고 하필이면 얘한테 이걸 시킵니까? 얘 생긴 걸 보세요.
해성 : 아냐. 별루 안 무거웠어.
자현 : 가만 있어봐. 이건 어디까지나 랩장의 무능력이라고. 아니 랩장이면 랩원들의 타고난 능력과 재질을 잘 파악해서 업무분담을
시켜야지. 너한텐 타고난 머리가 있잖아. 왜 그 아까운 머리를 놔두고 별볼일없는 힘을 사용하게 하냐고.
동현 : (어이없어 보고 있다가) 추자현. 너 요즘 기어올라두 너무 기어오르구 있는 거 알어?
자현 : 충심에서 우러난 조언은 좀 들으십시오. 무조건 권력만 휘두르지 마시구요.
동현 : 오냐 알겠다. 충심에서 우러난 조언을 들어주지. 그런 뜻에서 너 오늘 저녁에 들어오는 부품들 좀 받아놔.
자현 : 나 혼자서요?
동현 : 너한테 있는 건 힘밖에 없잖아. 그 힘 좀 쓰라고.
동현 안으로 들어가버리고....자현 우씨해서 들고 있던 부품상자를 쾅 놓는데.
해성 : 내 생각엔 말이지. 우리 랩장한테는 그냥 네네하는게 제일 좋은 거 같애. 그럼 두 번 잔소리 안하잖아.
자현 : 아 너같은 애가 네네하면 이뻐보이지만. 내가 네네하믄 반항하는거래잖아. 너 지금 빈정대냐? 뭐가 네네야? 이러잖냐고.
해성 : (히히 웃으면서 상자 여는 걸 돕는데)
자현 : 근데 넌 왜 하필 기계과에 들어왔냐? 전산과 같은데 가면 우아하게 앉아서 너의 빛나는 머리를 쓸 수 있을텐데.
해성 : 학부때는 전자과였어. 근데.. 대학원 진학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난 너무 머리만 굴려서 이상한데로 빠지곤 하거든.
그래서 뭔가 직접 손으로 만들면서 현실감각을 유지하구 싶었다구 할까....(하다가 보면)
자현 : (뭔가 생각해내려고 하고 있다)
해성 : 왜?
자현 : 아니 그냥.. 어디서 누가 너에 대해서 물어본 거 같은데..
해성 : 누가?
자현 : (좀 더 생각해보다가 포기한다) 몰라. 근데 지금 몇시야. 왜 이렇게 배가 고픈거야.
S#24. 센터 전경 / 낮
안테나가 돌아가고 있다. 그 위로.
석우 : (E) 정신을 어디 팔고 다니는거야?
S#25. 위성센터 / FIMS 랩
석우, 잔뜩 화가 나서 랩원들을 혼내고 있다.
석우 : 일렉트로닉스 총괄이 누구야? 대희 너 아냐?
대희 : .....
석우 : 근데 애들이 작업진행 제대로 하는지 들여다보지도 않았어?
민재와 경진, 한쪽에 나란히 서 있고.
대희 : 각자 알아서 잘하길래....
석우 : 알아서 뭘 잘해? (복사물 흔들며) 잘한게 이거야?
대희 : .....
석우 : 민경진.
경진 : 예스 마스터.
석우 : (노려보면)
경진 : (찔끔) 네에.
석우 : ADC 최적화 모델 구하랬지, 누가 다른 논문 써머리 하랬어?
경진 : 다른 논문을 참고해야 모델을 구하죠.
석우 : 지금 반항하는거냐?
경진 : 잘못했습니다. (고개를 틱 떨궈보인다)
석우 : (어이없다가) 이민재. 너는 VHDL code작성하면서 1차 시물에 나온 결과 보정한다구 안했냐? 근데 왜 내 눈에 결과물이 안보여?
민재 : 죄송합니다. 다른 일로.. 좀 바빴습니다.
경진 : (민재 보고)
석우 : 다른 일 뭐?
민재 : .....개인적인 일입니다.
석우 : 벤처일은 너 좋자고 니가 하는 일이야. 그거 쫓아다닌다구 센터 일 뒷전으로 미루면 랩장인 내가 그 꼴 못봐.
민재 : .....
경진 : (민재 편드는 한마디 하려는데)
석우 : 니들 지금 드럼통 뚝딱거려서 우주에 쏘는 줄 알어? 우리별 4호 ETB 조립 시험이 코 앞이야. 6월이라구.
테스트 무사히 끝낼때까진 꿈도 위성꿈만 꿔야돼. 알겠어?
대희 민재 : .....예.
답답한 경진.
S#26. 센터 로비
민재 걸어나오다가 멈춰선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돌아본다. 거기 경진이 슬그머니 따라오다가 멈춘다. 웃어 보인다.
민재 : 나한테 할 말 있냐?
경진 : 어... 글세. 그냥 따라가는거야. 따라가다보면 뭔가 할말이 생기지 않을까해서.
민재 : (우울하다) 지금은 누구하구두 아무 말도 하구 싶지 않은데. 미안하다.
경진 : 알았어. 그럼 너를 지나쳐서 그냥 앞으로 가버릴게. 안녕.. (멈춰선 민재를 지나쳐서 몇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보더니)
근데 나 말구 널 찾아온 사람이 또 있는 거 같은데. 이 친구는 그냥 돌려보낼려구 하면 널 몇대 팰지두 몰라. 이걸 어뜩하냐.
민재, 경진의 뒤를 본다. 거기 유리문 밖에 자현이 안을 기웃거리며 잠긴 유리문을 쾅쾅 두들기고 있다.
S#27. 세미나실
민재와 자현, 그리고 저만치 따로 딴짓하는 척하는 경진. 자현이 음료수를 마시며...
자현 : 그니까 차근차근 말해보라고. 니가 그렇게 확실하게 기억하구 있는 애들이라면 나두 어디선가 만난 애들일 수도 있잖아.
자 시작해봐.
민재 : (소용없는 일이다싶어서 한숨을 쉬었다가 그래도) 대욱이는...
자현 : 오케이 대욱이. 성이 뭐라 그랬지?
민재 : .....강. 강대욱이야.
자현 : 강대욱. ..역시 모르는 이름이야. 계속해봐.
민재 : 대욱이는 산디과 4학년이구 미스터 동아리 회장이야. 진수가 나간 다음에 회장직을 이어받은거구.
자현 : (경진을 돌아보며) 진수는 또 누구야.
경진 : 하나씩 하자구. 그 강대욱이부터.
민재 : (점점 갑갑해지고 있다. 옷깃을 풀며) 대욱이는 의리있구 운동을 좋아하구... 그리고.. (자현이를 힐끗 보고) 자현이 너를 좋아했어.
자현 : (음료수 마시다가 캑캑 걸려서) 뭐?
민재 : 널 좋아했다구. 너 말고 우린 모두 알고 있었어.
자현 : ...그 강대욱이가 남자 맞냐?
민재 : 그래.
자현 : (좋다고 경진을 향해) 들었냐. 날 좋아하는 남자래. 어허허허... 날 좋아하는 남자두 있다네. 이게 먼 일이랴. 근데 4학년이라고?
연하잖아.
민재 : (참고) 너 대욱이하구 아주 친했어. 서로 자주 싸웠지만. 그건 아마 잘 통했기 때문일거야. 대욱이는 널 정말 좋아했어.
넌 대욱이란 존재 자체를 기억못하지만. 그건 알아야 될 거 같아서.
자현 : (더 웃지 못하고 보다가) 그래. 어...그러니까..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경진, 다가앉으며 민재를 본다. 분위기가 숙연해지고 있다.
민재 : 지민이는 생물과 2학년이구. 미스터 동아리 회원이야. 키는 큰 편이구 성격은 아주 싹싹하다구 해야되나. (더 말이 없다)
경진 : 그리구.
민재 : 그리구..
경진 : 좀 더 그애에 대해서 말해봐. 어떤 애였는데.
민재 : (멍해서 경진을 보다가) 그거 뿐이야. 내가 지민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그 정도..인가봐.
경진 : ....마이클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데.
민재 : 마이클은.. 전산과구.. 미국에서 살다 와서 우리말이 좀 서툴고.
경진 : 마이클이란 애 집 전화번호는 알어?
민재 : ....몰라. 그 집에 연락할 일이 없었으니까.
경진 : 사진 같은 건 없니? 너하구 친했다면 같이 사진 정도는 찍어놨을지 모르잖아.
민재 : 사진은.. 사진같은 건 같이 찍을 시간이 없었어.
민재 어쩐지 괴로워진다. 잠시 모두 조용하다. 자현, 남은 음료수를 다 마셔버린다.
경진 : 나..한가지 궁금해진 게 있는데.
민재 : (보는)
경진 : 너, 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니?
민재 : .......(그저 보는)
경진 : 내가 물리과라는 거. 너하구 같이 센터 랩에 있다는 거. 그리구 이렇게 생겼다는 거. 대단히 수다스럽다는 거. (좀 웃고)
그리고 또 어떤 걸 알고 있는데?
민재, 여전히 말을 못하고 경진을 보다가 자현을 돌아본다.
자현도 물끄러미 민재의 대답을 기다리며 보고 있다.
S#28. 캠퍼스 / 밤
민재 혼자 걸어오고 있다. 몇 명의 학생들이 그를 지나쳐간다.
민재 문득 걸음을 멈추고 체육관 쪽을 본다. 그 위로 농구공 튀기는 소리.. 시합을 하는 아이들의 외치는 소리.
S#29. 농구장 내부 / 밤
학생들 몇이 농구 시합을 하고 있다. 관객석에 민재가 혼자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다.
낯선 아이들이 떠들며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시간 경과
이제 농구장에는 아무도 없다. 민재 천천이 농구장 가운데로 나선다. 거기 구르고 있는 농구공을 들어 몇번 튀겨본다.
문득 움직임을 빨리하여 가상의 적을 상대로 공을 놀리다가 골대를 향하여 슛을 한다.
골인된 공이 떨어져 나와 마루바닥을 튀기며 구른다. 이윽고 공이 멈춘다. 그 공을 보고 있는 민재.
S#30. 민재/정태의 방 / 밤
불이 꺼져있는 어두운 방. 문이 열리며 정태가 들어서서 불을 켜다가 멈칫해서본다.
방 가운데에 어둠 속에 민재가 앉아있었다.
정태 : 뭐하냐. 불도 안 켜구.
민재 : ..왔냐.
정태, 가방을 열더니 책을 한권 꺼내서 민재 앞으로 와 던져준다.
민재, 책을 내려다본다.
정태 : 한번 읽어봐. 도서관에서 빌려왔어. 재밌는 얘기들이 많드라. 거기 보니까 웜홀이란 얘기두 나온던데.
민재 : (정태를 보는)
정태 : 벌레구멍. 무수한 시공간의 차원을 연결해주는 통로라구 하든가. 어쩌면 넌 지금 그 웜홀 안을 들락거리구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이런 말은 공학도가 하긴 좀 쑥스럽지만. (미소)
민재 : ....
정태 : 그냥 이거저거 찾아봤어. 우리의 상식 이상의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민재 : 내 말을 믿는다는 얘기냐? 내가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고 사실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거야?
정태 : 니 말을 믿는 게 아니구 너를 믿어. 난 널 아니까.
민재 : 나를 안다고?
정태 : 그래. 어쩌면 너보다 내가 너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있을지두 모르지. (웃는)
민재 : 이를테면 어떤 거.
정태 : 예를 들자면.. 음... (생각해보더니) 니가 잠자는 모습. (하하 웃는) 그건 넌 절대루 모를걸. 난 알아두.
민재 : (웃지 않는다. 책을 들어 몇장 뒤적이다가 도로 놓는다) 난. 포기하기루 했어.
정태 : 포기하다니.
민재 : 내가 기억하는 것들.. 내가 아는 애들. 그런데 이 세상에 없다는 애들. 그냥 포기하기루 했다구.
정태 : 어떤 뜻이야 그건.
민재 : 굳이 찾으려구 애쓰지 않기루 했단 얘기야.
정태 : ....니 상태를 내가 아직 잘 이해하진 못하구 있지만. 근데 그 말은 어째 좀 비겁하게 들린다.
민재 : 마찬가지야.
정태 : 뭐가.
민재 : 대욱이란 아이가 존재하든 말든. 지민이나 마이클이 있든말든 마찬가지라구. 세상은 그냥 굴러가잖아.
세상은 굴러가는데 나 혼자 없는 애들을 찾으면서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지.
정태 : (어째 맘에 안들어서 본다)
민재 : 니들 모두가 모른다는데 나 혼자 우기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겟어. 나만 정신병자가 되는거잖아.
얼른 정신차리구 새로 만난 이 세상에 적응을 해야겠어. 그게 합리적인 방법일거야.
정태 : 잠깐만. 정리 좀 해보자. 그러니까 너는 어제까지 니가 알던 사람들이 하나씩 없어진다구 했어.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인간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고. 그렇지?
민재 : ....그래. 그렇게 착각하구 있어. 내가 지금.
정태 : 앞으로도 계속 니 주위 사람들이 없어질지도 모르잖아.
민재 : 그럴지도 모르지.
정태 : 그래두 그런데 신경 안쓰고 살아가겟다구?
민재 : 그래. 그런 게 정상인가부다..하구 살면 될거야. 어차피 우리 지금 만났지만 언젠가는 헤어져. 헤어지면 다시 기억을 안하고 살수도
있지. 기억을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런 현상이 좀 더 빨리 진행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거 같애.
정태 : (곰곰 생각해보다가 문득) 예를 들어서 말야. 내일 아침에 내가 없어져 버린다면 어뜩할래.
민재 : (보는)
정태 : 그런데 너는 계속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나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민재 : ....포기해야겠지.
정태 : ...
민재 : 정태라는 아이의 꿈을 꾸었었나부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정태 : ....(보기만)
민재 :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존재하지 않는 너를 계속 찾아다닐 수는 없잖아.
정태, 말없이 민재를 보다가 민재 앞에 놓았던 책을 도로 집어들고 자기 책상 쪽으로 간다.
민재, 후우....긴 숨을 내쉬고 얼굴을 부빈다. 그 위로 조용하게 시작되는 피리소리..
S#31. 강의실 안 / 낮
피리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고..
카메라, 맨 뒤의 계단에서 아래를 본다 실내엔 한 명 밖에 없다.
그 누군가의 뒷모습을 따라서 내려가는 화면. 웅크리고 앉아있는 누군가와 점점 가까와진다.
카메라, 바짝 다가 붙어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본다.
고개를 돌리는 민재, 벙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한다.
조용했던 실내에 낮은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한다. 민재,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는데.
이교수 : (E) 이민재.
화면을 내려다보는(민재를 보는) 이교수의 얼굴.
민재,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 피리소리가 그쳐있다. 전자과 수업중인 강의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옆자리에서 걱정스럽게 보는 정태, 조금 떨어진 곳의 해성 등....
이교수는 민재자리의 옆 통로에 와 서 있었다.
이교수 : PRS 구조는 단일로봇 행동을 제어하는 아키텍처라고 했지. 이 경우에 로봇이 환경변화를 인식하는 순서를 말해보라구.
민재 : (아직도 벙하고)
이교수 : (어이가 없는) 너 졸구 있었니?
민재 : (자기가 졸았는지조차 혼란스럽다)
이교수 : (강단으로 가며) 봄이라구 여기저기 늘어지는 학생들 보이는데.. (돌아서고) 내가 분명히 학기 초에 말했을거야.
내 수업에서 졸거나 딴짓 하려면 아예 수업시간에 들어오지 말라고. (민재와 시선 맞추고) 기억나?
민재 : 예 죄송합니다. 졸았던 건 아닌데.. 사실은.. 사실은 내가 언제 이 강의실에 들어왔는지도 기억을 못하겟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러다가 민재 말을 멈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강의실은 수업 전의 모습이다.
이교수는 물론 없고. 학생들 서너명이 저만치에 자리잡고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정태도 해성이도 없다.
민재 문득 시계를 본다. 학생들이 몇 명 더 수업을 받기 위해서 들어온다.
학생 하나가 민재의 옆에 자리잡는다.
민재, 그 학생이 낯설다. 머뭇거리다가 학생에게 묻는다.
민재 : 저..지금 xxxxx 강의 시간 아닌가요?
학생 : 맞는데요.
민재 : 근데... (어색한 웃음) 청강생이세요? 처음 뵙는데 이 강의시간에.
학생 : 나 결석한 적 없는데요. (이상한 놈 봤다는 듯 책을 꺼낸다)
민재 : ..혹시 저 본 적 있습니까?
학생 : (할수없이 민재를 다시 훑어보고) 아뇨.
민재 : 이거 이희정 교수님의 xxxxx 강의시간 맞죠. 화요일 오후 두시부터 하는 거.
학생 :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예 맞는데요.
민재 : 예에. (안심해서 웃는다)
학생 : 그런데 이희정 교수님이 아니구 최용석교수님이신데.
민재 : ....그럴 리가 없는데요. xxxxx 강의는 이희정교수님 밖에 안하시는데.
하는데 앞에 들어서는 남자 교수. 처음 보는 교수다.
민재 당황하지만 그대로 앉아있다.
교수가 출석부를 부르기 시작한다. 열명 남짓한 아이들이 하나씩 대답을 한다. 민재의 옆에 학생도 대답을 한다.
드디어 교수가 출석부를 접고 강의를 시작한다.
교수 : 지난 시간에 PRS 구조에 대해서 알아봤지. 자 오늘은...
칠판에 뭔가를 쓰기 시작하는 교수.
민재, 머뭇거리며 옆을 보면 옆의 학생이 이상한 듯이 민재를 보다가 자기 책을 펼친다.
민재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슬그머니 일어서서 문쪽으로 간다.
S#32. 이교수 랩
명환, 만수, 정태가 둥근 테이블이 둘러 앉아 회의 중이다.
명환이 뭔가 지시하면 정태와 만수 메모해가며 듣는데.
물론 만수는 언제나처럼 혼자 즐겁다가 혼나기도 하면서.. 문이 열리고 이교수가 들어온다.
아이들, 일어나 인사하는데 그새 만수는 빠져있다.
이교수와 자리에 앉는 명환, 정태. 회의를 시작한다 그 위로.
민재 : (E) 하나씩 사라지고 있어.
S#33. 위성센터 지상국
석우, 서교수에게 뭔가 설명하면서 오는 모습이 창너머로 보인다. 서교수, 끄덕이고 들으며 함께 걸어온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서교수 뿐이다.
민재 : (E) 처음부터 그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은 거처럼 아무도 기억을 못해. 흔적도 없어.
S#34. 식당 일각
식사 줄을 길게 늘어선 학생들 모습.
민재 : (E) 내가 아는 사람, 모르던 사람.. 상관없이 사라지구..점점 더 빨리,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
S#35. 전산동 복도
민재 걸어오고 있다.
민재 : (E) 거기까지는 좋아.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구 생각했어. 나만 마음을 굳게 먹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저 앞에 지원이가 손에 든 서류를 들춰보며 걸어오고 있다.
민재 반가워서 그 앞으로 걸음을 빨리 하여 간다.
민재 : (E) 어느 순간부터인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거야.
민재 : 지원아.
지원, 걸음을 멈추고 민재를 보는데 처음 보는 사람을 보듯이 본다.
민재 : 랩에서 오는 길이야? 박교수님 거기 계시니?
지원 : (이상하게 보며) 아뇨. 아마 이 시간이면 연구실에 계실텐데요.
민재 : (당황해서) 말이 왜 그래. 나야 민재.
지원 : ...날 아세요?
민재 말이 막힌다. 지원, 이상한 듯 민재를 보고 예의 쌀쌀맞은 태도로 민재를 지나쳐 간다.
민재, 후딱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도 걸어가다가 민재를 다시 돌아보더니 얼른 시선을 피하고 간다.
민재 : (E)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실종되는 게 아니구..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거야.
S#36.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 산더미같은 서류들을 뒤지며 뭔가를 찾고 있다가.
박교수 : 네에 들어오세요.
민재가 들어선다. 꾸벅 절하고.
민재 : 저 왔는데요.
박교수 : 예? 아.. 그러네. 왔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민재 : 아침에 전화를 드렸는데요. 만나 뵙고 싶다구.
박교수 : 아침에? 이런 내가 또 잊어먹고 있나부다. 그래 무슨 일루요.
민재 : 지금 제가 하는 벤처요. 그거에 대해서 상의를 드릴려고..
박교수 : 호오.. 학생이 벤처를 하고 있다고. 대단하네. 그래. 몇학년이지?
민재 : ....
박교수 : 일루 앉아봐요. 무슨 벤처를 하고 있는데? 내가 뭐 도와줄 일이라도 있나?
민재 : 교수님. 저 이민잰데요.
박교수 : 이민재. 알았어. 난 박기훈이야. (그저 즐겁다) 앉으라니까. 무슨과 몇학년인데..
민재, 말없이 박교수를 보고 서있다.
민재 : (E)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해. 나는 그들을 아는데 그들은 나를 모른다고.
S#37. 캠퍼스 일각 / 저녁
민재와 경진이 나란히 앉아있다.
민재 : 그래서 찾아왔어. 경진이 너는 나를 아직 기억하나 해서..
경진 :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생각해보고 있다가) 평행우주론에 따르면 우리에겐 무수한 선택지가 있구.
그 하나하나 선택에 따라 갈라진 다른 현실이 동시간에 다른 차원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거야.
그 이론에 따르면 넌 시도때도 없이 차원이동을 경험하는 거구. 어때 이 이론은 좀 그럴듯하지.
민재 : 우리에겐 무수한 선택지가 있다구?
경진 : 그래. 별루 인정을 받는 학설은 아니지만 도서관 잘 찾아보면 관련된 책을 발견할 수 있을거야. 답답하면 가서 찾아봐.
(시계를 보면서 일어선다) 미안해 더 얘기 상대가 되주고 싶지만 저녁에 중요한 일이 있거든.
민재 : 아 그래 미안하다. 붙잡고 있어서.
경진 : 나, 데이트가 있어.
민재 : ...데이트?
경진 : 라고 말할 수 있음 얼마나 좋겠냐. 근데.. 사실은 지금 한 남자를 유혹하는 중이야.
민재 : (멍해서 본다)
경진 : 우리 랩장. 속으론 날 좋아하면서 계속 겉돌구 잇단 말야.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좀 도와줘야겠다고.
민재 : (뭔가 말하려지만 말을 못한다)
경진 : 지금 실험실루 가는 길인데 너두 그리 가는 거 아니었어? 실험 봐야되잖아.
민재 : 아.. 실험.....(멍청이 따라 일어선다)
S#38. LG관 현관
경진이 카드키로 유리문을 연다. 민재가 경진을 따라 들어선다.
둘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 서고..민재 몇번이나 경진을 힐끔거리지만 경진은 민재에게 관심이 없는듯, 엘리베이터 번호표시만 보고있다.
민재 : 그 말..
경진 : 응?
민재 : 선택지라는 말이 자꾸 걸려. 그러니까 내가 처한 이 상황이...이 현실이 어떤 점에서는 내가 선택한 것일수도 있다는 얘길까?
경진 : 별로 인정받는 학설은 아니라고 했잖아. 그렇지만 생각을 해볼 수 있지. 니 주위에서 없어지고 있다는 사람들...
어쩌면 니 무의식 속에서 그 사람들을 귀찮아했을 수도 있어.
민재 : 그럴 리는 없어.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내가 잊혀진다는 건 어떤 의미지?
경진 : 글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들어서는 경진. 민재도 들어선다.
S#39. 엘리베이터 안
문이 닫긴다. 그 문을 바라보는 상태로.
경진 : 그렇다면 이젠 너두 니 자신이 귀찮아진 건가?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너의 꿈일수도 있지 뭐.
민재 : 꿈이라고?
경진 : 그래 꿈을 좀 길게 꾸고 있는건지두 모르잖아. (민재를 돌아보며 웃는다) 너 디게 오래 자구 있나부다.
그러니까 이렇게 며칠짜리 꿈을 꾸고 있지.
민재 : ..이 꿈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경진 : 그러게... 음...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게 바로 현실이 되는 거 아닐까.
민재, 두려움으로 경진을 돌아보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민재, 먼저 나서려다가 문득 멈춘다. 후딱 뒤를 돌아본다. 엘리베이터 안에 경진이 없다.
민재, 우두커니 서있다. 닫히려던 문이 민재에게 걸려서 다시 열린다.
민재의 뒤는 어두운 복도. 꼼짝않고 서서 빈 엘리베이터 안을 바라보고 있는 민재.
전체 화면이 천천이 암전된다.
S#40. 민재/정태의 방
책상 위의 자명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침대에서 자던 민재 꿈틀거리다가 잠에서 깬다. 그 상태에서 잠시 누워있다. 그러다가 혼잣말로..
민재 : 꿈이었어. 이제 꿈에서 깬거야. 알았지? 인제 깼어.
민재 조심스레 일어나 앉는다. 아침햇살이 들어오는 방안. 민재 천천이 일어나 침대에서 나온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발할듯한 심정으로 걸어가더니 발에 걸리는 의자를 냅다 차버린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히는 의자. 민재 다시 침대쪽을 돌아본다. 거기 침대는 일층침대. 처음부터 이층침대는 없었던 듯.
방안에는 정태의 책상을 비롯해서 정태의 물건이라고는 없다. 민재의 책상이 하나 덜렁 남아있을 뿐이다.
S#41. 전자동 건물 앞 (아침)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민재, 꺼칠한 모습이다.
보관대에 자전거를 놓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민재.
S#42. 이교수 랩 앞
민재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린다.
S#43. 이교수 랩 내부
문이 열리며 민재가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멈칫 선다.
민재가 보는 내부. 그 안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네명 정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 중의 하나가 민재를 돌아본다.
학생 : 어떻게 오셨어요?
민재 : (마른 침을 삼키며) 저.. 여기 정명환선배 계십니까?
학생 : 누구요?
민재 : 정명환 선배라구 여기 랩장인데요. 여기 이 지능제어랩의 랩장 정명환 선배요.
나이가 들어보이는 학생2가 민재를 돌아본다.
학생2 : 내가 랩장인데 무슨 일이죠?
민재 멀거니 보다가 인사를 한다.
민재 : 죄송합니다. 잘못 찾아온 모양입니다.
S#44. 복도
민재 도로 나와서 문을 닫는다. 잠시 갈 곳을 모르겠다.
S#45. 인공위성 센터 내부
각 랩을 천천이 훑어 가는 스케치. 각 랩에는 학생들이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기기를 체크하기도 하고. 위성의 조립을 하고 있기도 하고.. 등등....모두가 낯선 얼굴들이다.
그리고...유리문 밖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민재가 천천이 돌려서 자리를 떠난다.
S#46. 오리연못 근처 / 낮
학생 몇이 사진을 찍는다고 요란을 떨고 있다.
이만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민재가 몸을 돌리려는데.
처장 : (E) 학생 이거 좀 도와줄래요?
보면, 처장이 연못 옆에서 오리들에게 빵을 뜯어 나눠주며 민재를 돌아본다.
민재 꾸벅 인사하고 그 옆으로 다가선다. 처장, 들고있던 빵을 민재에게 건네준다.
처장 : 골고루 돌아가게 좀 나눠줘봐요.
민재 : 예. (빵을 뭉텅 뜯어 던지는데)
처장 : 아니지.. 좀 잘게 뜯어서 천천이 던져주라구요. 그래야 먹이를 주는 즐거움을 맛보지요.
민재 : (잘 이해를 못하고 처장을 본다)
처장 : 학생 지금 바빠요?
민재 : 아니..별루 바쁠 건 없는데요.
처장 : 그런데 뭐가 그렇게 급해요. 시간이란 건 사람이 사용을 해야지 지배를 당하면 안되는 거에요.
민재 : 시간에 지배를 당해요?
처장 : 그렇지요. 사람들이 편리하자구 시계라는 만들고, 하루를 스물네 시간으로 쪼개고 또 60분으로 쪼개고 그래놓긴 했지만요.
그래놓고는 시간이란 것에 묶여 살게 되버린거에요. 원래는 시간이란 건 없었어요. 사람들이 시간을 재기 전에는 말이지요.
민재 : ....
처장 : 하루 중 가끔씩은 시간에 매이지 말구 그냥 즐기세요. 이렇게 오리들한테 먹이를 주면서까지 시간에 쫓기지 말라구요.
민재 : ....예.
처장 : (손목시계를 보며) 자..그럼 나는 또 시간 속으로 들어가봐야 겠네요. 그 오리먹이 부탁해요.
민재 : 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처장 한가로운 걸음으로 걸어간다. 처장이 가는 길에 마주오던 정태와 지원이 처장에게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으며 그들과 스쳐 지나가는 처장.
민재는 그들 쪽을 보고 있지만 이미 정태나 지원은 기억하지 못한다.
정태는 지원에게 뭔가 말하며 웃고 있고, 지원도 웃는다. 정태는 지원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민재의 앞을 지나쳐간다.
가는 그들과 지나쳐서 마이클이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달려온다. 마이클도 민재의 옆을 스쳐서 지나간다.
민재, 우울하게 자기 손에 들린 빵을 내려다보고 조금 뜯어서 연못에 던진다. 먹이를 향해 모여드는 오리들...
민재, 마지막 남은 빵을 던져주고 연못에 대고 손을 털다가 문득 한곳을 본다. 연못 가 벤치에 놓여져 있는 피리.
민재, 유심히 피리를 보다가 조심스레 다가선다.
민재, 망설이다가 피리를 손에 든다. 손에 잡혀지는 피리. 민재 벤치에 가만이 앉는다. 그리고 피리를 입에 대고 불어본다.
처음에는 끽끽대는 서툰 소리가 들리다가 조금씩 소리를 되찾는다.
민재, 서툴지만 동요가락을 불어보기 시작한다.
S#47. 민재 사무실 앞 / 밤
지쳐있는 민재, 체인이 빠진 자전거를 질질 끌며 걸어오고 있다. 입구로 가려다 보면 입구의 옆에 빈박스가 세 개 정도 흩어져 있다.
민재, 박스를 잘 챙겨서 얹어놓는다. 그러는데 안에서 왁자하게 들리는 웃음소리.
민재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1부의 15씬과 거의 같은 상황입니다)
S#48. 민재의 사무실 내부
민재, 어리둥절해서 들어선다.
모여 있는 아이들, 마악 케잌에 생일초를 꽂으며 떠들던 중이다. 나이 몇이냐, 그거보다 더 되보인다... 하며 시끄러운 아이들.
지민 : (민재 보고) 어. 민재 오빠다. 어서와요.
경진 : (나서며) 너 핸드폰은 왜 꺼놓은거야? 니 번호 찍다가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다.
민재 : (테이블 보고) 이게 다 뭐야..? 무슨 일이야?
경진 : 넌 사장이 되갖구 직원 생일도 안챙겨주냐? 오늘이 대욱이 생일이잖아.
민재 : (대욱 보며) 생일이야?
대욱 : 미안해요. 형. 허락도 없이... 밖에서 해도 되는건데...
자현 : 짜샤. 나가서 돈 쓸 일 있냐? 여기두 분위기 좋구만. 근데 빨랑 좀 시작하자. 나 오늘 밤새야 된단 말야.
정태 : (민재에게) 너 연락 안되길래 일단 우리끼리 시작했어. 이리 와.
지원 : (민재에게) 안그래도 막 생일초 키려던 참이야.
자현 : 자자, 불 붙이자. 마이클, 라이타 있냐?
마이클 : 노우. 생일초는 성냥으로 붙여야 돼. 그래야 소원 이뤄져. 누구 성냥 없어? 매치.
시끌벅적하게 생일초에 불을 붙이는 아이들.
지원, 웃다가 고개 들어 보면 민재, 한쪽으로 빠져나와 책상 위에 자료를 챙기고 있다.
지원, 옆에 있는 정태를 살짝 건드린다.
정태, 지원이 눈짓하는거 보고 민재쪽을 돌아본다.
정태 : 이민재. 뭐해?
민재 : (자료들고 다가와) 미안해. 니들끼리 놀아. 오늘밤 안에 처리해야 될 일이 있어.
자현 : 이거봐. 나두 컴퓨터 켜놓은 채루 달려온 사람이야. 여기 안바쁜 사람 있냐? 없지?
아이들, 그럼! 나도 바빠, 숙제 많아! 떠들썩하고.
경진 : 이런날 개인행동 하면 두고두고 욕먹는다, 이민재.
정태 : 그래. 오늘밤은 그냥 푹 쉬는게 어때?
민재 : 미안하다. 정말 급한 일이야. 아 참 대욱아.
대욱 : (아이들에 묻혀있다가 돌아보며) 예.
민재, 뭔가 말하려다가 아이들을 새삼 둘러본다. 아이들은 민재가 무슨 말을 하나해서 바라보고 있다.
민재, 심각한 얼굴로 대욱을 바라보다가.
민재 : 야 이 나쁜놈아. 생일이면 미리 말을 해야될 거 아냐. 그래야 선물이라도 준비했을 거 아니냐고.
아이들 와르르 웃으며 떠들어대고..
대욱 : 아 저..그냥 현금으로 주셔두 됩니다. 선물은 제가 알아서 사면 안될까요.
민재 어이그하며 다가서며 대욱을 패려하고..
자현 : 아 불 안 끌거야. 촛농 떨어지면 케잌 못 먹잖어. 강대욱 불 꺼!
대욱 : 알았어 자자 불 끕니다. 생일축하노래 준비됐습니까? 하나아.. 두울...
자현,, 우씨 하더니 지가 먼저 불을 꺼버린다.
대욱이 뭐야. 내꺼를 왜 지가 꺼.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 웃어대고.
민재도 어울려서 떠들며 야 먹을 게 왜 이거밖에 없어. 마이클 술 사와라. 소리 지르고 있다.
그 위로 피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S#49. 오리연못 근처 / 낮
아직 낮인 오리연못 근처에서는 민재가 피리를 불고 있다.
동요의 마지막 구절을 정성들여 연주하고 그리고 피리를 내려놓고 우울하게 하늘을 우러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