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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기>
40일간의 남아메리카 여행 14
-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투어, 그리고 탱고 -
탱고 / 부에노스 아이레스, 2015년 4월 12일
탱고의 본고장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으니 그 열정을 맛봐야지!
안개가 자욱한 날 밤,
숨이 멎을 듯한 열정적인 춤과 음악, 격정의 순간들이 밀려왔던
알람브라 알바이신 타블라오에서의 플라멩코를 잊을 수가 없었다.
탱고도 그러하다 했다.
어딘지 음습하고, 어딘지 에로틱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지?
'말이 필요없는 대화'
'3분 간의 사랑', '정열과 유혹의 춤', '몸으로 하는 언어'라는 탱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를 돌았다. 5월 광장과 대통령궁, 산 텔모 벼룩시장 그리고 탱고에 취했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명동, 플로리다 거리
호주머니 깊숙한 곳에 숙소 명함을 간직하고 길을 나섰다.
아르헨티나가 어딘고 하니 나 살던 곳에서 수십만 리 떨어진 이국이었다. 그런 곳에서 길이라도 잃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도시가 유혹하는 손길을 뿌리칠 수는 없으니 그럴 때를 대비해서 주소가 적힌 숙소 명함을 보험으로 삼았다.
오늘의 일정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명동이라는 플로리다 거리에서부터 시작해서 5월 광장과 산 텔모 일요시장을 돌아보고 저녁에는 탱고를 체험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번화가는 여느 대도시의 휴일 아침 풍경과 다를 바 없이 한적했다. 햇살 밝고 공기 맑은 도심의 거리를 걷는 여행자의 발길도 경쾌했다.
숙소에서 플로리다 거리로 가는 길목의 풍경
1936년, 도시 건립 400주년을 기념해 세운 7월 9일 대로의 오벨리스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무는 동안 오가는 길의 이정표였다.
무려 왕복 20차선에 이르는 7월 9일 대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메인 도로다. 이 7월 9일 도로를 남북으로 가르는 코리엔테스 대로와의 교차점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시 건립 40주년을 기념하여 1936년에 세운 72m 높이의 커다란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교차로 한 코너의 건물 옥상에는 먼 거리에서도 쉽게 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LG마크가 걸려 있어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여행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7월 9일 대로의 버스정차장도 아직은 한가하기만 했다.
꼴론극장 Teatro Colon/Columbus Theatre
7월 9일 대로의 오벨리스크를 뒤로 하고 잠시 걸으면 대로변에 꼴론극장(콜럼버스 극장)이 눈에 들어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메인 오페라 하우스인 이 극장은 1857년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1889년부터 새롭게 개조를 시작하여 1908년 5월 25일 완공되어 개관기념으로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했다. 2,500여석의 객석을 지닌 남미 유일의 이 극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 거장들의 공연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플로리다 거리의 화려한 건물. 아르헨티나 국기가 걸린 것으로 보아 공적 공간임에 분명한데 마치 궁전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외관이 돋보였다.
플로리다 거리의 갈레리아스 백화점.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건물에 들어있는 이 백화점은 아르헨티나 최고의 가죽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곳. 아르헨티나 벽화 미술가들이 그린 백화점 안의 화려한 돔 천장화가 고급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여행의 기쁨 중의 하나는 쇼핑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내나 나나 쇼핑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기에 - 실제는 쇼핑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여행 중에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를 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들러야 할 이유가 있었다. 맥주 한 잔 덜 마시더라도 꼭 사야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갤러리아스 백화점을 지나 5월 광장으로 이어지는 플로리다 거리.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1의 쇼핑가, 언제 가도 늘 생생한 활기가 넘치는 플로리다 거리는 오래된 건물들과 현대식 건물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가죽 제품에서부터 의류, 까페,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 곳곳에서는 거리 예술가의 멋진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곳이다. 특히, 이 거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들려오는 독특한 소리는 이 거리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스페인어 단어 하나를 손쉽게 기억하게 했다. 바로 환전을 나타내는 "깜비오Cambio"였다. 이 거리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많은 환전상들이 있어 지나는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드는데, 아르헨티나의 암환율이 어떻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 미리 준비하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5월 광장과 대통령 궁 Casa Rosada
갤러리아스 백화점에서 플로리다 거리를 따라 직선으로 걸어가면 아르헨티나 대통령 궁이 있는 '5월 광장 Plaza De Mayo'에 닿는다.
'5월 광장'이라는 명칭은 1810년 5월 25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5월 혁명"으로부터 나왔다. 세 개의 지하철노선이 연결되어 있을 만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5월 광장 지역은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발원한 곳이자 아르헨티나의 주요한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광장의 주변에는 대통령 궁 Casa Rosada을 비롯하여 대성당, 까빌도, 시청사, 국립중앙은행 등이 들어서 있어 고전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데 광장의 가운데는 흰색의 "5월의 탑"과 아르헨티나의 국기를 창안한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청동 기마상이 지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5월 광장의 '5월의 탑'. 이 탑은 1811년에 '5월 혁명 1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세워졌는데, 지금의 것은 1911년 새로 세워진 것이다.
5월 광장의 국기 게양대. 아르헨티나 국기를 창안한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상 앞에 있다. 바닥에는 청동의 기념비가 새겨져 있다.
아르헨티나 국기의 파란색과 하얀색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옷 색깔이었다. 파란색은 하늘을, 하얀색을 땅을 상징한다고 했다.
5월 광장의 동쪽 끝에 있는 대통령 궁 Casa Rosada. 현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다. 그러나 집무실을 제외한 제외한 궁의 일부는 역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박물관이어서 일반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궁은 "까사 로사다 Casa Rosada, 분홍빛 저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의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 Blue House로, 미국의 대통령 집무실이 백악관 White House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의미로 아르헨티나 대통령 궁의 별칭인 것이다.
1873년 처음 지어졌을 때는 요새로 사용되었던 이 건물은 몇 번의 개조와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이 건물이 분홍색을 띄게 된 이유는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아르헨티나 지역에 생겨난 두 개의 대규모 독립 세력인 '남아메리카합중국(흰색을 상징색으로 했다)'과 '자유 연맹'(붉은색을 기치로 내걸었다)의 통합(자유 연맹이 남아메리카합중국에 흡수되었다)에 따른 단결과 결속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국부'로 추앙 받는 사르미엔또 대통령(재임 1868~1874)이 분홍색으로 칠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어떻게 움직일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지만, 전통과 역사,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정치적 행위의 주요 기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세상의 모든 행위들이 이해되고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붉은색 건물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영원한 연인이자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저 붉은 건물 2층 발코니에서 가난하고 배고픈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대변하고 옹호했던 그녀가 5월 광장에 군집한 수많은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연설을 하던 모습이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오롯이 새겨진 곳이기에 더욱 기억되는 곳이기도 했다.
대통령궁 입구의 동상. 일요일에는 내부 관람이 가능했다.
대통령 궁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오후 1시 궁으로 들어갔다. 궁을 관람하는데는 특별한 검색이나 제지는 없었으나 일단 가이드가 안내를 하기 때문에 대열에 합류하면 개인 행동은 할 수가 없고 투어가 끝날 때까지 같이해야 했다.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공적 공간은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지만 박물관으로 공개된 일반 지역은 비교적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대통령 궁 중앙뜰. 대통령 궁의 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소박하고 아쉬운 공간이었다.
대통령 궁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5월 광장. 이 발코니는 페론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이 광장에 군집한 수많은 관중들을 향해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위해 연설을 했던 역사적 장소다. 오른쪽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있다.
접견실
페론 대통령과 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 33살의 나이로 격정의 세월을 살다간 한 여인이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특별한 이유는 그 여인이 살아온 행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국민들은 아무나 존경하고 아무나 가슴에 담는 우매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대통령궁 앞의 아르헨티나 국립중앙은행
한 시간 가까운 대통령 궁 투어를 마치고 다시 5월 광장으로 나와 산 텔모 시장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산 텔모 시장으로 가는 길목인 줄로만 알고 걸음을 옮겨간 곳에는 이민자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찬 도로에는 왁자지껄한 먹거리장터와 춤판이 열리고 있었고, 까빌도 옆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공식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의 지리를 완전히 익히지 못한 탓에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산 텔모 일요시장인줄로 알았다. 그런데 한참을 머물다보니 듣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서툰 스페인어 몇 마디로 물어보니 이곳은 산 텔모 일요시장이 아니었다. 다시 묻고 묻기를 반복하며 산 텔모 일요시장을 찾았을 때는 시간이 한참을 흐르고 난 뒤였다.
대통령 궁 맞은편, 5월 광장 서쪽 끝에 있는 까빌도Cabildo(흰색 건물)과 시청사(청색 돔 시계탑이 있는 건물).
까빌도라 불리는, 지붕 한 가운데에 사각형 시계탑을 지닌 2층의 이 하얀색 건물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 총독부 건물이었다. 현재는 '5월 혁명 박물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 까빌도 바로 옆의 도로에 세워진 무대에서는 이민자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5월 광장의 서쪽 끝 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민자의 날 행사
이민자의 날 행사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산 텔모 벼룩시장
무엇인가 분명하지 않으면 꼭 사단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금은 번거롭고 힘이 들어도 확실하지 않으면 다시 확인하고 뒤돌아 재차 검토해봐야 한다. 그러려니 하고 맡겨두면 반드시 탈이 생긴다.
산 텔모 일요시장이라고 해서 일요일에만 서는 시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산 텔모 시장'은 따로 있었다. 우리가 실제 찾아가고자 했던 곳은 5월 광장 남쪽에서부터 원래의 산 텔모 시장을 잇는 골동품 거리인 "데펜사 거리 Calle Defensa"의 일요 벼룩시장이었는데, 그 벼룩시장을 산 텔모 시장으로 잘못 알고 있던 여행자가 "산 텔모 시장이 어딘가?" 물으니 현지인들은 당연히 "원래의 산 텔모 시장"을 알려 줄 수밖에,,,,덕분에 5월 광장 바로 옆에다 데펜사 거리를 두고 멀리 돌아가느라 고생은 좀 했지만 모로 가도 서울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산 텔모 벼룩시장으로 가는 길의 벽화. 남미에서 이런 벽화를 보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데펜사 거리의 일요벼룩시장에 펼쳐진 마테차 용기들. 데펜사 거리는 평일에는 골돌품 시장이 열리는, 우리의 인사동과 같은 곳이다.
물어 물어 찾아간 데펜사 거리의 일요벼룩시장에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마테차 용기들, 가면들, 끈반지들, 그림들, 음악들 그리고 먹을 거리들이 넘쳐났다. 여느 시장들이 그렇듯이 조금은 어수선하고, 조금은 시끌벅적하고, 조금은 바가지가 있을 것 같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넉넉치 못한 여행자의 주머니는 쉴새없이 열리고 닫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생생한 시장 바닥이었다.
데펜사 거리 일요벼룩시장의 좌판들,,,
어렵게 만난 데펜사 거리 풍경에 빠져 잠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숙소에서 본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8개월째 여행 중이라는 젊은 부부,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남미 여행에 나선 젊은이들이었다. 반가움을 나누고 인근 공터에 차려진 고기집에 들러 시커멓게 그을린 고깃덩어리를 하나씩 들고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다시 거리 구경을 하다 이번에는 우리 일행 전부를 만났다. 일요일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무는 여행자들은 모두가 이곳으로 몰려들었나 보다.
어디를 가도 만나게 되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 썩 잘 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눈이 마주치면 엄지를 치켜세워 '당신 그림이 최고'라 해주는 센스는 공짜로 감상하는 그림값으로 충분했다.
데펜사 벼룩시장의 유화. 재능있는 어느 화가의 작품이겠지?
데펜사 거리의 끝지점에 있는 '도레고 광장'의 연주가들 ,,, 거리 곳곳에는 크고 작은 거리 공연이 쉼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벼룩시장의 소품들,
데펜사 거리의 일요 벼룩시장을 나와 만나는 산호세 거리를 한 블럭 벗어나면 '5월 대로'다. 이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30여분쯤 걸으면 국회의사당에 이른다. 우리의 숙소가 그곳에 있다.
벼룩시장의 이것 저것을 돌아보느라 시간이 제법 흘렀다. 저녁에는 아르헨티나의 살아있는 문화유산 탱고를 체험하기로 했으니 늦지 않도록 벼룩시장의 투어를 마무리 했다. 데펜사 거리의 벼룩시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30여 분이 걸리는데 아침부터 쉬지 않고 걷느라 피곤했지만 택시를 타고 싶지 않았다. 도시와 친해지는 데는 걷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일요일 데펜사 거리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꼭 들러봐야 한다는 앞선 여행자들의 얘기를 실감하는 사이 어느덧 숙소에 도착했다. 잠시 쉬었다 탱고 체험에 나섰다.
사랑보다 깊은 슬픔, 탱고
알 파치노는 그가 열연했던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말했다.
"탱고를 추는 것을 두려워 말아요. 인생과 달리 탱고에는 실수가 없다오. 행여 실수를 한다해도 다시 추면 되는 것이니까."
탱고를 감상하려면 우선 탱고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탱고의 기본 스텝을 익히는 것에서부터 근사한 만찬, 그리고 탱고 쇼가 한번에 이루어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의 꼼쁠레호 탱고 Complejo Tango로 가 아르헨티나의 밤을 즐겨보기로 했다.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이니 아무리 자유로운 배낭여행자지만 깨끗한 옷과 신발을 갖추고 최소한의 예의와 격식을 차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꼼플레호 탱고'에서의 탱고 교습 중
탱고를 가르쳐 주는 멋진 강사는 오늘 탱고 쇼의 남자 주인공이다.
꼼쁠레호 탱고의 포스터. 탱고 교습에서부터 만찬,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탱고 교습을 마치고 나자 이렇게 멋진 수료증도 주었다.
탱고 강습을 마치고 무대가 있는 공연장으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식사를 마치면 탱고 쇼가 이어진다.
탱고 쇼를 시작하기에 앞서 출연자들이 공연장을 돌며 관객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분위기를 돋군다.
연극이든 음악회든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뜨거운 사전 분위기가 중요하기 마련이다. 관객과 배우들간의 호흡 일치야말로 공연 성공의 제1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 전에 미리 뜨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배우들이 관중석을 다니며 관객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든가, 공연과 관련된 음악을 내보내는 일들이 그런 것이다. 무대가 크던 작던, 아마추어의 공연이던 프로의 공연이든 그 어떤 공연을 불문하고 그 조건은 변함이 없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관객들과 사진을 찍으며 분위기를 조성하던 배우들이 무대 위로 사라지자 2층 테라스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홀에는 서서히 빛들이 사라졌다. 그 어둠 사이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음악과 함께 탱고가 막을 올렸다. 첫 무대는 1945년대를 배경으로 한 초기 공연탱고에서부터 출발했다.
홀 2층에 자리를 잡은 탱고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반도네온(아코디언), 피아노, 콘트라(더블)베이스로 구성된다.
탱고 쇼의 서막. 뭇 사내들이 창밖의 여인들과 수상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선 중절모의 두 사내가 어느 집 창문 아래를 서성이자 기다렸다는 듯 2층의 창문이 활짝 열리며 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낌없이 열리는 창문, 여인들의 머리 치장, 옷차림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얼핏보아도 품위있는 귀부인들은 아니다.
춤은 곧 말이고 대화였다. 사내들과 여인들의 끈적한(?) 댄스는 곧 그들의 언어이자 대화였다.
탱고의 기원에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19세기 말 라플라타 강 유역에 인접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남쪽의 항구지역 보카Boca에서 가난한 이탈리아계 부두 노동자들과 선원들이 창녀촌에서 순번을 기다리며 남자들끼리 추던 춤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외국을 드나들던 선원들이 쿠바에서 들여온 무곡 '하바네라Habanera'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우르과이의 몬테비데오 거리에서 즐기던 아프리카 후예들의 '깐돔베Candombe'가 섞여 탱고의 원조격인 밀롱가Milonga가 생겨났고, 이것이 아르헨티나의 드림을 찾아 유럽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의 악기와 음악, 춤과 문화가 섞여 탱고가 탄생했다는 것.
그러나, 탱고의 기원이 사창가나 술집이라는 설이 대표적이라고 하지만 탱고가 주로 아르헨티나 빈민층과 이민자, 아프리카 노예들 등 하층민에 의해 시작된 것이어서 그 기원이나 변천에 관한 정확한 자료나 기록은 찾을 수가 없고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라 했다. 탱고를 깊게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몇 장의 사진으로나마 문외한의 부끄러움을 덮기로 하자.
로맨틱하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가 탱고의 생명이다.
파트너의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 탱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온 슬픔, 가버린 연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달래주던 탱고는 삶에 지친 이민자들과 가난한 하층민들의 존재를 향한 몸짓이었다. 지극히 즉흥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리듬이었기에 세월이 흘러 부유한 사람들의 품위있는 공연예술으로 발전되었다지만 탱고의 내면에 흐르는 원초적 흐름은 변함이 없다.
붉은색 커튼 너머의 실루엣은 그렇찮아도 호기심 많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더욱 가열시켰다.
입에 문 파이프, 옷차림, 머리 스타일 어디를 봐도 정숙한 요조숙녀는 아니다.
탱고와 관련한 인물로는 까를로스 가르델(1890-1935)이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온 가르델은 탱고 가수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44살의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요절했다. 라 곰빠르시타, 뽀르 우나 까베사,,,,,
그가 작곡하고 알프레도Alfredo Le Pere(비행기 사고로 가르델과 함께 사망했다)가 가사를 붙인 '간발의 차이 Por Una Cabeza"처럼 탱고는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간발의 차이'는 한 난봉꾼이 자신의 애인을 속여 손에 든 돈 전부를 경마에 걸었는데 줄곧 선두를 달리던 말이 마지막에 머리 하나 차이로 져 돈을 탕진해버린 것을 사랑에 실패한 사람에 비유해 만든 가사로 '말 머리 하나 차이'란 뜻이다.
하층민들의 천박한 춤이라고 무시되던 탱고는 1950년대에 들면서 음악과 안무가 갖춰지고 유럽에서 새로운 무대공연의 형태로 발전하면서 아르헨티나 상류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아무런 형식도, 음악도 없이 오직 춤으로만 시작된 탱고는 현대에 이르러 체계적인 음악과 안무를 갖춘 무대공연의 한 장르로 발전했다.
클로징
탱고를 설명하고 해설을 할 입장은 아니다. 탱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경험한 바도 없으니 그저 가만히 지켜보다 가슴에 닿는대로 느끼면 그것으로 족했다. 귓전으로 얻어들은 지식으로는 공연히 어설픈 한계만 드러낼 뿐이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탱고의 내용이 주로 '고향을 그리거나 떠나간 여인들을 회상하는 것'들이라는데 생각이 이르자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불렀던 1950년대의 우리의 트로트와 너무나 닮은 것이 아닌가! 특별히 즐겨 부르던 남인수의 '고향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고달픈 처지를 노래와 춤으로 달래보려는 탱고의 애절한 사연이 우리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진 것도 이 탓이런가!
그리움, 향수, 애수, 사랑 등이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 그 무엇으로도 포장되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본능. 그래서 비록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다해도 탱고는 그 자체로 순수하고 로맨틱했다.
첫댓글 와우~~~탱고 수료증도 받으셨네요
이참에 스포츠 댄스에 도전하심이ㅎ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탱고를
감상하고 싶어요^^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실제로 저런 수료증을 받는다는 것은 탱고를 곁에서 지켜봤다는 정도의 의미 이상은 아닐 겁니다. ㅎ~
기본 스텝 몇 가지 익히는 데도 쩔쩔 매었으니,,,
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달려 가시기를 성원합니다.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
@무명시대 네~응원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ㅎ
광화문거리는 몇차선이나되나 비슷할거같은데..
에바페론이 미친영향은 국민들가슴에
얼마나 클까합니다.
여행은 참여하는마음이 반절이란말이 있습니다
즐거워보입니다 ㅎㅎ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참여하지 않고 방관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재미없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저 그랬다는, 재미 없었다는 식의 반응은 대체로 그 여행을 수동적으로 보냈을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여행은 내가 해야지 남이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즐거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