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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불안으로 부터 해방 (창세기 33:1-11, 마태 5: 21-24)
김경재목사
[1] 현재우리사회 상황 분석
① 8월은 한민족에게 어딘지 기쁘고도 슬픈 달입니다. 계절적으론 입추가 지나고 하늘이 높아져가기 시작하는데, 한 가운데 해방절이 자리잡고 있지요. 설교자는 6살 때 전남 광주에서 해방이라는걸 맞았는데, 아무것도 모른 어린이 때지만, 별배운 것이 없으셨고 평소 집안일 외엔 사회일엔 관여하지도 않으셨던 내 어머님도 아주 밝고 기쁜 얼굴로 당시 YWCA를 중심으로한 대한부인회 봉사부에 다녀오시고 기뻐하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때인지라, 서로 내줄건 없지만 시원한 물통을 도로에 내다놓고 만세부르고 기뻐하는 시민들의 목이라도 추겨가라고 한 맘 한 뜻이 되었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남니다.
② 그런데 그렇게 모두 한 맘 한뜻으로 사심없이 순수하게 기뻐하던 동족 시민들이, 불과몇개월이 지나면서 서로 살기가 등등하고 얼굴을 경직되고 서로 나뉘어져 신탁 통치 반대 찬성 대모를 이루며 거리를 휘졌고 지날 때는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이 남니다. 열 살이 지날땐, 기억이 더욱 또렷하지만 따발총을 든 앳뜬 인민군이 광주까지 내려왔고, 탱크가 굴러왔고, 밤낮이면 지리산에 근거를 둔 빨치산들이 무등산 까지 접근하여, 정규군 아닌 경찰과 빨치산들의 죽고 죽이는 동족상쟁의 어두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4.19와 5.16, 민주화와 산업화의 거센 광풍 속에서 한세월을 지냈습니. 가족 형제중 전사자도 생겼고, 자식과 손자손녀를 폭격에 잃은 부모님이 일평생 전쟁때 잃어버린 맏아들과 그 자녀들 그러니까 부보님으로서는 손자 둘과 며느리를 가슴에 묻고 지내는 아픔을 지켜도 보았습니다.
③ 해방절 68주년을 맞는 오늘 이아침 예배에, 설교자의 마음에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감정은 해방되던 날, 그렇게 빈부귀천 시식유무를 막론하고, 배고프고 가난했지만 기쁘게 웃고 해방을 감격했던 동족의 얼굴들은 어디로 다가버리고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대신 남북한 동족사이엔 물론이고, 같은 남한 대한민국 백성들 얼글에 무엇인지 ‘분노와 불안’이 축적되어있고, 타자를 위한 배려와 역지사지하는 연민의 맘은 약해지고, 너무나 공격적이고 경쟁적이 되었다는 사실만 우리 앞에 있습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정적 적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타자들을 대하게 되어간다는 현실이 제일 슬픈 것이다.
④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을 순명하려고 작정하고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우리들의 문제 본질이 무엇인가를 말씀 앞에서 성찰하려고 함니다.
[2] 성경 말씀 듣기
① 먼저 창세기 33장, 야곱이 20여년이상 장자권을 탈취한 죄책감과 그러나 이제 생각하면 어린시절 형제간에 있었던 일이고 혈육을 그리워하는 맘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일어난 일을 읽었습니다.
② 그런데, 놀랍게도 야곱은 바로 전날 밤, 얍복강가에서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하면서 브니엘의 체험마져 했건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 불안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발대의 통보를 받고 반가워서 달려오는 에서형의 400명 장정의 흙먼지바람을 멀리서 보면서 야곱은 형제재회의 설레임보다는 몹시 불안했던 것이지요. 형의 호감을 사려고 수많은 가축떼를 예물로 이미 보냈더 야곱은, 만일에 대비하여 취하는 태도가 너무나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소인배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배치도 똑같은 자기의 혈육이건만, 레아와 라헬의 몸종에서 난 자녀들을 맨 앞에 세우고, 그담엔 첫부인인 셈인 레아와 그 자녀들을 내세우고, 맨 마지막에 라헬과 라헬의 배에서 난 어린 요셉과 베냐민을 맨 나중에 배치했다는 것입니다. 자매간관계에서 윗 언니이고 굳이 따지자면 첫부인인 레아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무시당하고 살았던가를 생각하면 안쓰럽기 그지 없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보복을 두려워하는 야곱의 불안 심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③ 에서와 야곱의 장자권 다툼이 창세기 족장설화의 중심주제였듯이, 한민족의 근대사는 어쩌면 야곱과 에서 형제의 관계같이, 해방정국에서 남과 북은 이땅의 장자권을 둘러싼 형제난 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족장설화에서는 리브가라고 하는 총명한 이삭의 부인이 있어서, 쌍둘이 두아들간 형제살인이나 다툼을 피하게 하려고 아직 어린 야곱을 먼 하란 땅 친정집에 보냄으로서 형제살인의 비극을 막아주었지만, 한민족에는 불행하게도 리브가가 없었습니다. 도리혀, 먼저 선수를 쳐서 장자권을 쟁취하라고 부추기고 은근히 지원하는 주위 강대국들의 추동이 빠져, 6.25전쟁이라는 동족 상쟁을 하였고 남북합하여 450만명 명의 군인과 민간인의 사상자를 낸 전쟁을 치루었다. 반세기가 지났건만, 한민족 동족사이에 적개심과 분노와 불안감이 가시를 않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인들에게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우리스스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④ 야곱이 형에서를 만나러가면서 자기 종들에게 딸려보낸 막대한 가축떼와 선심성 선물에 대하여, 형 에서는 말하기를 “네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두어라”라고 사양함니다. 야곱은 응대하기를 “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 얼굴뵈오니 하나님 얼굴 뵌것 같고, 형도 나를 기뻐하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청컨대 내 예물을 맏으세요하고강하게 건하니 에서가 받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때 북한 돕기를 “퍼주기 선심”이라고 비난하고, 북한 어린아기들이 굶어죽어가는데 정치논리로서 ‘인간으로서 이웃돕기’를 못하게 만드는 현실 정치 남북한 당국의 경직된 정치 이것도 정치라고 할 수 있을가 세계인들 앞에서 부끄럽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자신모습에 자괴감이 듬니다.
⑤ 비단 남북관계에서 만이 아님니다. 우리사회는 지금 심각한 내부 질병을 앍고 있습니다. 사회가 너무나 간격이 큰 양극화가 심화되어 있습니다. 취업한자와 못한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유통및 생산 관계에서 소위 말하는 갑을 관계, 심지어 학교에서 학생과 선생관계마져도 따뜻한 인간사이 정관계가 붕괴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본래적으로 ‘하나의 교회, 보편적 교회, 사도적교회, 거룩한 교회“라고 초대교회 시대부터 고백해왔지만 지금 그런 교회론 고백은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와교회, 교단과교단, 교파와 교파가 서로 경쟁하고 비방하고 정죄하기에 열을 올림니다.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 분노와불안이 우리 삶을 황폐시키고 있습니다.
[3] 살인하지 말라, 분노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것이다.
① 마태복음 오늘의 본문은 유명한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놀랍게 말해준다. 십계명의 살인금지명령은 고대사회에서 ‘생명의 방파제’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정신을 래디칼하게 더 철저화 했다. ‘래디칼’이란 단어어는 과격하다는 뜻이 본래아니고, 라틴어 RADIUS(반지름) 본래의미에 중심에 가까이 간것, RADIX(뿌리,기원)곧 본래적 의미를 의미한다.
② 사람들의 영악해지면서, 직접적 살인행위는 범법행위를 저질러서 형사적 벌칙을 받기 때문에, 너무나 분에 못이겨 절제능력을 배양못한 보통사람들이 일순간 살인을 저질러 수십년 감방에 들어간 사람많지요. 그런데, 정말 나쁜 악인은 자기는 직법 피흘리는 범죄를 하지않지만, 간접적으로 설인을 교사하고, 살린행위를 저지르도록 인간 맘 속에 분노와 적국을 행해 분노심을 더해가도록 조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2차대전 독일 나치당 의 최고 전략전술은 대중여론을 조종하고 적개심을 유발시키며, 맹목적 애국자가 되도록 그래서 아우스비치에서 수백만명 유대인을 학살해도 애국을 했다고 자임하는 무혈인간들을 양산하였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나는 직접 남의 물건을 모르게 훔치지 않았으니까 떳떳하다고 자부함니다. 그러나, 배고파하는 조카를 위해 빵을 도둑질한 잔발쟌 보다, 수백억 수천억 비자금이다 정치자금이다, 탈세와 회사로비자금이라, 별의별 명분으로 도둑질 한것은 감옥에 넣지 않는 것이 세상입니다.
③ 북한 정치집단의 핵심군부 출신자들이 태레비져에 나올때, 그들의가슴에 주렁주렁달고 나오는 훈장이 역겨울 때가 있습니다. 진정한 무공, 진정한 군인정신은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하사병들을 수십만 죽이고서도 국지전쟁에 승리자라고 국가와 정부로 받은 훈장을 가슴에 달고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을 어떻데 보아야 할가요? 일본국 군국주의자들의 전쟁제1급 범죄자들이 젊은 일본 청년들을 ‘가미가제 특공대’로 만들어 청춘을 일본천화폐하와 대일본제국을 위하여 죽게하고서,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을 만들어 우상화하는 것은 일본의 죽은자들에 대하는 장례문화의 특징이 아니라, “설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인간들의 뻔뻔한 자기 변병인 것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오늘도 인간들은 뻔뻔하게 자기변명 합니다.
④ 예수는 직접살인 행위 이전에 이미 형제를 행해 분노를 품는 그 순간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불교에서도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가지 치명적 독으로서 “탐욕, 분냄, 어리석음‘(탐진치)라고 했습니다.
⑤ 숨밭의 사병생활에 영혼의 싸움은 라인홀드 니버의 “보다 적은 악”이론과 간디, 톨스토이, 함석헌이 주장하는 ‘비폭력 절대평화론’이었습니다. 지금 후회합니다. 한국 교회는 베트난 파병과 이라크파병에 아무런 종교적 이유로 반대를 아니했고, 지지하고 축복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그리스도의 교회일가요? 콘스탄틴적 기독교와 갈릴리 예수의 복음적 기독교를 구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라사랑이라는 애국함에 있어서야 기독교인도 남보다 뒤떨어져 둘째가면 안되지만, 국가주의를 복음과 야합하여 전쟁을 당연시하거나 공격적 전쟁을 정당화하는 사이비 기독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십자군의 영성’이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해 전체를 살리는 ‘십지기의 영성’으로 되돌아가야 함니다.
⑥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에 위치하여, 대륙세력과 태평양 세력의 각축전 마당이었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셈이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들이 한민족을 자기 지배아래 두려고 오랜기간 싸움니다. 6자회담 당사국이 무엇입니까? 우리운명을 우리가 맘데로 정하지 못하게 하는 국제정치군사의 줄다리기 장입니다.
⑦ 오후에 자세하게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한국 전쟁 당사국들은 모두 국가간 교역하고 잘먹고 잘사는데, 당사자 형제끼리는 “너죽고 나죽자!” 식이 되어 있으니 이런 억울함과 바보짓이 어디있습니니까? 기독교 교회는 국가 안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지만 , 그 품은 뜻이 법 우주적인 것이고 거룩한 것이서서 국가의 손이귀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말의 뜻을 깊이 새겨알아야 할 것입니다.
⑦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분노, 적개심, 공격심,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으로 되돌아가려는 추세에서, 교회는 분명히 평화, 비폭력, 용서, 차마못하는 마음을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맘에서 분노와 불안으로부터 해방이 오기전엔, 국토의 통일 정치적 통일, 군사적 통일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⑧ 해월은 동학교도를 가르치는 법설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1) 아이를 ㄸ$ㅔ리거나 욕하지 말라 (2) 거리에 침을 뱉지 말라 (3) 봄에 돋아나는 새순가지를 꺽지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순진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맘을 우리조상들은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의가 올 때 거룩한 분노로서 ‘동학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동학군들의 거룩한 싸움은 청국과 일본의 조선지배를 탐하여 이곳에 파병한 동기와 너무 다른 것입니다., 외국군의 힘을 빌려 동족을 살해하도록 하는 당시 조선조 왕국의 정부군과도 달랐던 것입니다.
결론: 비록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조상이었지만 봄에 새순가지를 차마 꺾지 못하는 그 마음, 우리조상들이 가졌던 그맘을 다시회복하는 날, 진정 참 해방이 올 것입니다. 거기엔 탐욕과 분노가 없습니다. 참새두마리가 한 앗싸리온에 팔려나가는 장터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신세가 꼭 저드로가 같구나 라고 불안하고 염려할 때, 예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저들 참새보다 더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이해인의 <가난한 새의 기도> 첫몇구절을 읽어 드리며 말씀증언을 마칩니다.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의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개 해 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 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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