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길목에서 / 전남혁
자줏빛 갈대 꽃이
허옇게 세어
남쪽으로 흔들리는 걸 보니
삭풍이 불고 있나 보다
예전엔
겨울이 추울거라고
걱정도 했으련만
삼한사온이 잊힌지 오래고
꽁꽁 얼어 버린 개울에서
팽이 치던 기억과
무릎 꿇고 타던 작은 썰매는
빙판위에서
물수제비처럼 미끄러져 갔다
눈싸움하다가
눈알에 맞아 별이 튀어도
마냥 신이 났었고
눈발을 헤치며 달려나가던
누렁이가
흑백의 즐거움은 어땠을까
아랫녘 초가의 처마에 달린
수정 같은 고드름을 떼어
좋은 편이 되어 나쁜편과 싸우며
차디 찬 허공을 가르던
칼싸움은
정의로움에 으스대었지
이게 다 제대로 추워야 가능한
일이고
스키장 가는 일도 즐겁지 아니한가
얼어 붙은 그대 입술에
닿자 녹아버린 흰 눈 보다
머리숱이나 눈섭에 앉아
하얗게 서리 핀 그대가
가여워
따뜻한 포옹이 필요한
혹한의 겨울이 되기를
바라는 게
무리인 듯 하는 것은,
봄인 듯
여름이 오고
가을인 듯 봄 같은 겨울의
경계선이 무너지니
남방의 물고기가 식탁에 오르겠네
명태와 정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여름엔
주저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간단 없이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는
횟수를 초과해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라도 띄어야 할까 봐
지난해
겨울로 들어선 길목에서
온화해진 모습으로 왔기에
누구시더라? 하고 되묻는 내가
치매인가요
얼어 붙은
밤 하늘의 별들이 흔들리던
경이로운 순간과
어떤 날은 눈을 떴을 때
수북히 쌓인 푸른 눈이 시려 보여
아랫목으로 기어들던
기억의 첫 장이 그대 겨울인데
첫눈에 반했거나 한눈에 반했거나
이젠 볼 수가 없어
지구촌엔
후회라는 언어가 있어서
후회를 함으로써
뚫린 하늘의 구멍을 막아
맨 처음 하늘로 되돌려 준다면. . .
인류가 캐어낸
윤택한 돌과 기름으로 부단하게 찔러댄
푸른 하늘의 구멍에 새 살이 돋는 날
나그네 되어 떠나 갔던 냉정한 사내가
그렇게
치유 되어 돌아오는 겨울 길목에서
다시 만날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래전
그해 그 겨울날의 겨울 다운 추위에게
기별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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