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어느 분이 문의한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40대 초반의 000라고 합니다.
불교는 어릴 적부터 가까이 접하기는 했지만 신심을 가지고 믿질 않았습니다.
어머님이 불교에 아주 가까운 민중신앙에 젖어 있으셨던 관계로 불교라고 하면 어쩐지 미신적인
면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대학때는 의도적으로 교회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교리와 교회의 분위기들이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질 않더군요
그러다가 삶이 상당히 힘이 들 때쯤 절에 가면 부처님께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삼배도 하고 ... 열배도 하고.... 그냥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절도 옆에 다른 분들 하는 걸 보고
대충 배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어느 절로 템플스테이를 갔을 때
절하는 방법이랑 아주 초보적인 불교에 관한 것들을 접했지요.
그 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며 밤을 세워 철야 정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발음도
잘안되는데다 무슨 주문을 외는 것이 미신 같아서 약간은 거북했는데요..
절에서 템플스테이를 담당하시는 분이 신묘장구다라니를 계속해서 염송하면 모든 것이
잘풀리며 좋다고 하더군요.
저는 템플스테이 이후로 불교에 대해서 아주 흠씬 매력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거의 매일 아침
한번정도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웠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쯤엔가 혼자서 설악산의
봉정암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mp3에 녹음을 해서 등산하는
도중에 계속해서 외고 하면서 암기를 다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불교에 대해서 더더욱 관심이 많아졌지만 딱히 어느 절을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좀 유명한 절이라면 주말에 여행간다는 기분으로 찾아가서 절을 하고
왔습니다. 강화도 전등사, 서울의 도선사, 용문사등등...
희안하게도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더군요.
그러다가 어디선가 성철스님 이야기를 보게 되었지요.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었습니다.
올 초 엔 성철스님이 강조하셨다는 삼천배를 꼭한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해인사 백련암에서 삼천배를 한다는 공지문을 보게되었습니다.
처음 하는 삼천배에서 저는 거의 초주검이 되다시피 했는데요... 절을 하는 도중 틈틈이 쉬는
휴식시간엔 관음전 법당에 아예 드러누워 벽에다 발을 올리고 쉬었습니다. 어떻게 간신히 다른
분들 절하는 틈에 끼어 흉내만 내면서 절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 전 거의 일주일을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를 못할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제대로 삼천배를 못한 것이 죄스럽고 또 내자신도 못 마땅해서 올 삼월 초 쯤
혼자서 해인사 백련암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삼천배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저는 해인사 내려갈 때 삼천배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엄청
암송하면서 내려갔습니다....
백련암 적광전에 오후 두시 쯤 도착하여 삼천배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머리 속으로 한번, 두 번 , 세 번,..... 이렇게 헤아리면서 절을
했지요. 삼백배쯤 했을 때 다리도 아파오고 몸에 땀도 나고...힘이 무척 들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옆에서 절을 하던 보살님이 그 냥 절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예불참회문을 보고
부처님을 명호하면서 절을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냥 내식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왜 자꾸 참견하는지 못 마땅해서...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습니다. 그 보살님이 얼마나 무안 하셨는지 절을 하시다가 말고 밖으로 나가서는 한참있다가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살님이 다시 들어오셨을 때 어떻게 부처님 명호를 외며 절을 하는지를 다시 물어서
그 보살님 시키는대로 했지요. 저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는데 그 보살님이 옳았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절하는 횟수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좋았고 집중도
훨씬 더 잘되었습니다.
절을 하는 도중에 틈틈이 앉아서 뭔가를 암송하는 다른 보살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백련암에 비치되어있던 예불대참회문에 빽빽하게 적혀져 있는 발음도 잘안되는
능엄주 라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밤 열두시가 되어도 약 이천배 정도 밖에 절을 못한 상태여서 밤을 샐 각오로 아주
천천이 절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진주에서 오셨다는 세분의 보살님들이 보다 못하셨는지
같이 절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그 분들이 아니었으면 삼천배를 아침 예불 전까지 다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절을 하는 중간 중간 휴식시간에 그 보살님들은 떡과
과일을 갖다 주시면서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보살님들에게서 능엄주에 대한 이야기와 아비라 기도 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무사히 삼천배를 마치고 무척 기뻤습니다. 저는 백련암으로 가는 도중에 신묘장구대다
라니를 열심히 외웠기 때문에 삼천배를 무사히 끝낸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도 정초에 삼천배 참가 했을 때 보다는 훨씬 더 편했습니다.
해인사에서 돌아와서는 능엄주을 주로 외웠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한번씩 암송을 했습니다.
공들여서 외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도 모든 일들이 꼬이기 시작을 했습니다. 직장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 버렸습니다. 새롭게 직장을 찾고는 있지만 현재로는 마땅하질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어느 까페 어디선가 신묘장구대다라니와 능엄주을 같이 하면 안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두가지가 다 좋은 것이라면 왜 같이하면 안되는지.... 그리고 저에게 일어난 일들이 그렇게
두가지를 병행을 했기 때문인지.... 몹시 궁금합니다.
특히 두가지를 같이 병행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불경이라던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던가 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있다면 그것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하튼 저는 이제는 두 가지를 병행하지 않고 하나만 할려고 하는데요....
물론 저와 좀더 인연이 있는 걸로 선택을 하려하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도 조언 부탁드립니다.
4월 어느 봄날
선지식에 배고픈 처사 올림 ..
안녕하세요?
비교적 소상히 적어 주셨는데 답변이 늦었습니다.
궁금해 하시는 것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주와 능엄주를 같이 하면 안 되는가?
안 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둘 중의 하나를 하고자 하는데 나와 좀 더 인연이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물음은 ‘어떤 것을 하는 게 더 좋을까? 즉, 영험이 있을까?’라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난 이 의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의문은 단지 기능적(방법적)인 측면일 뿐이지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측면이 잘못되어 있다면 기능적인 부분을 가지고
시(是)와 비(非)를, 취(取)와 사(捨)를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하나의 방법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사님은 신묘장구대다라니주를 왜 하는 겁니까?
능엄주를 무엇 때문에 하지요?
그리고 절은 왜 하는 것이죠?
무엇을 이루기 위해?
대다라니주와 능엄주 그리고 절이라는 수행방법을 통해 어떤 내용을 담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 담고자 하는 내용이 본질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뜻도 알지 못하고 발음도 잘 돌아가지 않지만 대다라니주를 하면 하는 일이 잘 풀린다니
참고 하신 건가요?
그러다가 능엄주도 좋다고 하니 덧붙여서 하기 시작한 것인가요?
그런데 바람과는 달리 되려 더 좋지 않은 일상이 펼쳐지니 당황스러우셨던 것인가요?
이렇게 하시면서 불교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하신 건 아니길 바랍니다.
'나는 현실이 고달프니 이것을 함으로써 벗어나길 희망한다'고 하면 더 이상 말할 게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시면 되니까요.
수행방법은 참 많습니다. 그 중의 주력(呪力)이라는 방법에도 갖가지 도구들이 있습니다.
능엄주, 신묘장구대다라니주 등등 무수히 많은 진언(眞言)의 도구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믿을만한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 진언들은 부처님이나 대보살님들의 공덕(功德)과
서원(誓願)에서 나온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언과 저 진언이 서로 상충(相衝)되어 같이 하면 잘못된다 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진언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부처님이나 대보살님들이 해서 잘못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내 놓았겠습니까?
그럼에도 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진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는 사람이 잘못 받아들여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언도 하는 사람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진언이 더 좋을까 라는 의문에는 별로 관심을 가져주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 후로 제가 거사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카페에 올려져 있기에 더 언급은 하지
않으렵니다.
정림사랑방 카페의 ‘정림공부방’에 있는 다음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1) 159번. 김동현 거사와의 채팅2-‘대다라니는 신통을 하는 것이다?’
2) 118번. <죽창수필> 갖가지 법문
3) 142번. 하는 일이 잘 되게 하는 법?-상담형식
이 외에 차근히 정림공부방의 글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서 이왕 공부를 하더라도 방향을 잘 잡아서 진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수행(修行)법을 택해 공부한다는 것은 일종의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가야 할 목적지가 먼저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그 목적지는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떤 방법으로 갈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마음속에 자리 했으면 그 다음은 그저 무조건 애쓸 뿐입니다.
목적지에 대한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갖지 않고, 그에 대한 방향 개념없이 무조건 가는 방법에만
치중한다면 이 또한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입니다.
영험을 찾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찾고자 애쓰는 분이 되길 바래봅니다.
참 행복과 평안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늘 평안할 수 있기를...
- 日行千里 -
첫댓글 ...()()()...
영험을 찾지말고 자신의 가치를 찾으라....는 법문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영험을 의식하면서 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향설정을 잘 잡아주시는 스님 곁에 있는 우리는 행복한 불자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스님!
항상 중생들은 갈등속에서 길을 찾죠. 이것 저것의 분별심과 차별심때문에,그래서 스님이 말씀하신 참회와집중이 필요하겠지요.하지만 오늘도 또 놓치고 말죠!!!
스님, 참좋은 답변이 시군요! 성불하세요! 스크랩하고 싶습니다.
()()()..^^
감사합니다 스님^^자신의 가치를 찾으라는 스님의 말씀 가슴에 담아갑니다..늘 건안하시길요..()
감사합니다. 니무 마하 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