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4일차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쌓은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에 오릅니다. 마니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관이 수려하고 기운이 맑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입니다. 또 정상에 오르면 강화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강화도의 지리적 특성을 잘 살필 수가 있습니다.
오후에는 산에 오르면서 흘린 땀도 식히고 며칠 동안 도보여행의 피로도 풀 겸 동막해수욕장에서 여름을 즐깁니다.
↑마니산 초입입니다.
↑매표를 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아주 넓고 평탄한 길입니다. 이런 길이 한 동안 계속됩니다. 가다가 두 길이 있는데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단군로와 계단로. 단군로는 비교적 완만한 산세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입니다. 계단로는 흔이 천사계단이라고 하는데 1004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등산로입니다. 우리는 계단로로 올라가서 단군로로 내려옵니다.
↑평탄한 길이 끝나면 이제 계단이 시작됩니다.
↑길 위의 강인한 느낌을 주는 화강암을 보면 이곳이 기가 센 산이 맞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오르막 계단만 계속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숨을 돌릴 곳도 많이 있습니다.
↑석주 권필의 시가 있습니다. 선조 광해군 연간에 이안눌과 함께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을 받던 그는 평생 야인으로 살면서 벼슬길을 멀리하고 살았습니다. 강화에는 30세를 전후하여 고려산 기슭 오류천 주위에 초가를 짓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살았습니다.(나중에 병자호란 때 갑곶을 수비하다 전사한 강흥업이 권필의 제자였습니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타협할 줄을 몰라 벼슬을 주어도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광해군의 인척이 국정을 농단하자 이를 풍자하는 시를 지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어 광해군의 친국을 받고 유배길에 오릅니다. 그가 유배길에 오르자 사람들이 슬퍼하여 술을 주었는데 이를 거절하지 않고 마시고는 절명하였습니다.
宮柳靑靑花亂飛 궁류청청화난비
滿城冠蓋媚春暉 만성관개미춘휘
朝家共賀昇平樂 조가공하승평락
誰遣危言出布衣 수견위언출포의
궁궐안 뜰 버들은 푸르고 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는데
온 성안의 벼슬아치들은 봄빛을 받아 아양을 떠는구나
조정에서는 태평성대의 즐거움을 함께 축하했는데
누가 위태로운 말을 한갓 선비에게서 나오게 했는가?
↑다시 계단이 시작됩니다.
↑계단의 경사가 제법 가파릅니다.
↑군데군데 화강암으로 된 산길이 있습니다. 계단보다는 한결 쉽습니다.
↑산 중간 지점 안내판 앞에 잠시 섰습니다.
↑계단의 경사가 급격하게 가팔라집니다. 정상이 가까이 있다는 암시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경관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 나옵니다. 숨을 돌리며 쉬어 가도 됩니다. 저 앞에 보이는 산이 진강산입니다. 진강산 끝자락과 이곳을 막아 제방을 쌓아서 간척을 하였습니다. 원래는 갯벌이었는데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 민진언이 이곳에 제방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여 지금은 비옥한 토지로 변하여 있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오히려 계단이 수긋하여집니다.
↑참성단 벽이 보입니다.
↑참성단 입구에 마니산 안내 표지가 서 있습니다.
↑사적 제 136호 마니산 참성단에 올랐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는 단군시대에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강도 시절에 원종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국왕을 대신하여 정2품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단군세기에는 '단군왕검 51년에 운사를 보내어 혈구에 삼랑성을 쌓고 마니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침 학생들이 이곳으로 소풍을 와 갑자기 산마루가 떠들썩해집니다. 학생들은 정상에 올라 점심을 먹고 내려갔습니다. 고등학생인 듯하였는데 힘들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제단은 아래는 둥글게 위는 네모지게 쌓았습니다. 둥근 것은 하늘, 각 진 것은 땅을 상징합니다. 당시에 이 마니산은 바다 가운데 섬이었습니다. 물은 양을, 산은 음을 나타냅니다. 마니산의 참성대는 양 속의 음, 양 위의 음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제천단에도 그대로 구현되어 있는데 태백산 제천단은 원형의 돌담 안에 사각의 제단이 조성되어 있고, 경주의 첨성대는 둥근 몸통 위에 사각의 정자석이 놓여 있습니다.
↑서쪽으로 석모도가 보입니다. 내일 보문사를 가려면 배를 타고 저 섬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멀리 갯벌이 보입니다, 지금이 간조 때라서 넓은 갯벌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이곳 마니산도 과거에는 저기 바다에 둘러싸인 섬과 같았을 것입니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봅니다. 자세히 보면 어제 갔던 정족산이 보입니다.
↑참성단 옆에 있는 나무는 소사나무입니다. 2008년 9월 천연기념물 제 5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수령은 약 150년 정도 됩니다.
천연기념물은 다 지정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나무는 소사나무의 특징을 가장 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정되었습니다. 소사나무는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납니다. 주로 바람이 드센 해안이나 산 정상에 많이 자랍니다. 밑둥에서 여러 갈래로 퍼져 나오고 나무줄기가 잔근육이 아주 발달한 몸매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수형이 노거수처럼 구불구불하여 분재로도 많이 기릅니다.
↑ 여기 소사나무는 15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단군신화의 신단수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듯한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스컴을 많이 타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전국체전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하는데 그 때마다 매번 등장을 합니다.
↑참성단을 지나 남쪽으로 200미터 정도 오면 마니산이란 푯말이 보입니다. 여기가 정상입니다. 마니산은 마리산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머리산입니다. 가장 으뜸 되는 산이란 뜻입니다. 해발 472.1 m입니다.
↑마니산 정상에서 본 참성단
↑정상 직전에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상을 내려서서 남쪽 암릉구간으로 내려섭니다.
↑여기 바위는 신기하게도 칼로 자른 듯이 반듯합니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가면 강화도 남쪽 바다가 모두 보입니다. 저 봉우리가 마니산 정상이라는 지도도 많이 있습니다.
↑암릉 구간을 가다보면 흡사 여기에 누가 산성을 쌓은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암릉구간을 가면서 몸을 돌려 참성단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참성단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암릉구간에서 본 강화도 남쪽바다. 맨 뒤로 아스라이 보이는 곳이 영종도입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입니다.
↑위험한 곳을 아이들이 거침없이 다닙니다. 지금 마니산의 높이를 보면 지도마다 약간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떤 지도에 의하면 마니산 469 m라 하여 이곳이 정상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기는 함허동천이나 정수사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암릉에서 본 마니산 정상과 참성단
↑정수사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정상에 다시 오르기 직전에 참성단 중수비가 있습니다. 자연석 바위를 갈아 면을 고른 다음 글씨를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 최석항이 마니산을 순시하다가 이 참성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전등사 총섭과 선두초 별장에게 명령하여 다시 쌓았다는 기록입니다. 이때가 1717년 숙종 43년입니다. 그 전에 인조 17년(1639년)에 보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의 동토 수 천리 중 강도(江都)는 보존하고 방어하는 언덕이고, 강도 수 백리 중 마니(摩尼)는 제사를 지내는 명산이다. 산의 서쪽 가장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었으니 이른바 참성단이다. 세상에서는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돌아보니 연대가 오래되고 비바람을 받아 서쪽과 북쪽 양면은 태반이 무너졌고 동편 계단도 대부분 무너져 그곳에 사는 원로들이 서로 개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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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단양월(端陽月) 행유수 최석항(崔錫恒) 기록.
↑참성단에서 하산합니다. 내려갈 적에는 계단로로 내려가지 않고 단군로로 내려섭니다.
↑내려오면서 보는 강화도 서쪽 바다는 가슴을 탁 틔게 합니다. 산자락 아래 흥왕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흥왕리는 흥왕사가 있던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흥왕사는 고려 문종이 창건한 사찰로 대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간행한 곳입니다.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를 할 적에 흥왕사도 같이 옮겨 왔습니다. 나중에 흥왕사 옆에 고려 이궁이 건립됩니다. 지금은 이궁의 모습은 찾아 볼 길이 없고 이궁지 앞바다는 간척사업이 이루어져 밭이 되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서 본 참성대
↑단군로에 있는 372계단.
↑계단을 내려서면 완만한 경사의 능선이 이어집니다.
↑동막해변
↑동막해변 백사장. 만조 때입니다.
↑석양의 동막해변
↑간조 때의 동막해변 갯벌
↑동막해변 남단에 위치한 분오리돈대
↑분오리돈대 안에서 본 마니산
↑분오리돈대에서 본 동막해변
↑분오리돈대에서 본 선두 앞바다
↑분오리돈대에서 본 마니산 남단
↑분오리돈대에 내려오는 길목에 노점을 펴 놓은 할머니. 이곳을 수십 년을 지키고 있었답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할머니라고 생각하면 큰일.
↑동막해변 앞바다에 떠 있는 어선들. 말 그대로 황금빛 햇살입니다.